29. 將欲章
장욕장
將欲取天下而爲之
장욕취천하이위지
吾見其不得已
오견기부득이
天下 神器 不可爲也
천하 신기 불가위야
爲者 敗之 執者 失之
위자 패지 집자 실지
故 物 或行或隨
고 물 혹행혹수
或噓或吹
혹허혹취
或强或羸
혹강혹리
或載或隳
혹재혹휴
是以 聖人 去甚 去奢 去泰
시이 성인 거심 거사 거태
將 : 장차 장 取 : 취할 취 隨 : 따를 수 噓 : 가늘게 불 허 吹 : 급하게 불 취
羸 : 약할 리 載 : 실을 재 隳 : 무너뜨릴 휴 甚 : 심할 심 奢 : 사치할 사
泰 : 클 태·편안할 태·교만할 태
장차 천하를 취하고자 도모하지만,
나는 그 얻지 못함을 볼 뿐이도다.
천하는 신비스런 그릇이어서 가히 도모하지 못하니,
도모하고자 하는 자는 패하고 잡으려고 하는 자는 잃는다.
그러므로 사물은 혹 앞서기도 하고 혹 따르기도 하며,
혹 가늘게 불기도 하고 혹 급하게 불기도 하며,
혹 강하기도 하고 혹 약하기도 하며,
혹 싣기도 하고 혹 무너지기도 하니,
이로써 성인은 심함을 버리고 사치스러움을 버리며 교만함을 버린다.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세상의 변화와 그 속에서 생멸하는 인간의 역사를 보건대, 과연 천하를 얻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인간의 욕망과 영화는 일장춘몽(一場春夢)일 뿐이다. 역대 제왕으로 군림했던 자들이 천하를 얻었다고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오래 갔으며, 또한 한때의 제왕이 되고자 하여 얼마나 많은 백성의 피를 흘리게 했는가? 오랜 옛날이나 지금이나 천하는 그저 천하일뿐이다. 그러니 “장차 천하를 취하고자 도모하지만, 나는 그 얻지 못함을 볼 뿐이도다”라고 하였다.
인간이 욕심으로 천하를 취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지만, 천하라는 존재 그 자체는 인간의 욕망으로 범접할 수 없는 신비스런 그릇이다. 그래서 천하는 가히 도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하를 얻으려는 욕심으로 도모하는 자는 결국 패하게 되고, 잡으려고 하는 자는 결국 잃는다. 은나라의 천자가 되어 천하를 다스리던 주(紂)왕이 폭정을 일삼자 민심이 흩어지고 결국 주나라의 무왕(武王)에 의해 정벌되면서 은나라는 멸망하고 주나라가 들어서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주역』‘지화명이괘’(地火明夷卦) 상육효(上六爻)에서 표현하기를 “상육은 밝지 못해서 어두워지니, 처음에는 하늘에 오르고 뒤에는 땅에 들어가도다”(上六 不明 晦 初登于天 後入于地)라고 하였다. 이 효사를 설명한 효상전에서는 “상전에 말하길, 처음에 하늘에 오름은 사국(천하)를 비춤이요, 뒤에 땅에 들어감은 법칙을 잃었기 때문이다”(象曰 初登于天 照四國也 後入于地 失則也)라고 하였다.
현상계의 변화를 살펴보자. 모든 사물과 상황은 남보다 앞서 나가는 것 같지만 돌이켜 보면 남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물은 혹 앞서기도 하고 혹 따르기도 한다”고 하였다. 또한 상황의 변화는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만하게 변하기도 하고 혁명의 소용돌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혹 가늘게 불기도 하고 혹 급하게 불기도 한다”고 하였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의 상호관계를 보자. 영원히 강하기만 하고 영원히 약하기만 한 존재가 어디 있는가? 강하고 약하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현상일 뿐이다. 그래서 “혹 강하기도 하고 혹 약하기도 하다”고 하였다.
문명과 문화는 어떠한가? 하늘까지 오를 듯한 높은 건물로 가득하여 화려한 문명이 지속될 것 같지만,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어느 한 순간에 피폐한 황무지로 변한다. 그래서 “혹 싣기도 하고 혹 무너지기도 한다”고 하였다. 영원히 평화롭게 발전해갈 것만 같지만, 자연과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은 어느 것도 영속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태평하다는 ‘지천태괘’(地天泰卦) 다음에 천지가 막혀 비색하다는 ‘천지비괘’(天地否卦)를 두었다. 또한 물질문명이 풍대한 세상을 표현한 ‘뇌화풍괘’(雷火豐卦) 상육효(上六爻)에서는 극에 달한 물질문명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상육은 그 집을 풍대하게 하고 그 집을 덮는다. 그 문을 엿보니 고요해서 그 사람이 없어서 3년이라도 보지 못하니 흉하다.(上六 豐其屋 蔀其家. 闚其戶 闃其无人, 三歲 不覿, 凶.)
상전에 말하였다. “그 집을 풍대하게 함은 하늘 끝까지 오름이요, 그 문을 엿보아 고요해서 그 사람이 없음은 스스로 감추어진 것이다.”(象曰 豐其屋 天際翔也, 闚其戶闃其无人 自藏也.)
천하라는 물건 자체가 신비스런 그릇이어서 가히 취하지 못하며 가히 잡을 수 없으니, 취하고자 하는 자는 패하고 잡으려고 하는 자는 잃는다. 그러니 천하 안에서 생멸하고 변화하는 사물은 어떠하겠는가? 그저 사물은 혹 앞서기도 하고 혹 따르기도 하며, 혹 가늘게 불기도 하고 혹 급하게 불기도 하며, 혹 강하기도 하고 혹 약하기도 하며, 혹 싣기도 하고 혹 무너지기도 하는 상대적인 현상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이치를 깨달은 성인은 억지로 하려는 것(심함)을 피하고, 영화만을 추구하려는 사치스러움을 버리며, 천하에 유일자로 군림하려는 교만함을 버린다. 천지자연의 이치도 그러하니, 이는 또한 천지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가져야 할 마음의 법칙이자 행동준칙이라고 할 수 있다.
청춘남녀가 정을 느끼는 『주역』‘택산함괘’(澤山咸卦) 구사효사(九四爻辭)에 “구사는 바르게 하면 길해서 뉘우침이 없어질 것이니, 자주자주 오고가면 벗이 너의 뜻을 좇을 것이다”(九四 貞 吉 悔亡 憧憧往來 朋從爾思)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공자는 「계사하전」제5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역에 이르길 “자주자주 오고 가면 벗이 네 생각을 좇는다”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하에 어찌 생각하고 어찌 근심하겠는가?
천하가 돌아가는 곳은 같아도 길이 다르며,
이루는 것은 하나지만 백가지 생각이니,
천하에 어찌 생각하고 어찌 근심하겠는가?
해가 가면 달이 오고 달이 가면 해가 와서,
해와 달이 서로 밀어서 밝음이 나오며,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면 추위가 와서,
추위와 더위가 서로 밀어서 해(1년)를 이루니,
가는 것은 굽힘이요 오는 것은 펴는 것이니,
굽히고 폄이 서로 느껴서 이로운 것이 생한다.
자벌레가 굽히는 것은 폄을 구함이요,
용과 뱀이 움츠리는 것은 몸을 보존함이요,
의리를 정미롭게 해서 신에 들어감은 씀을 이룸이요,
쓰는 것을 이롭게 하여 몸을 편안히 함은 덕을 숭상함이니,
이를 지나서 감은 혹 알지 못하니,
신을 궁구하여 화함을 앎이 덕의 성함이다.”
(易曰 憧憧往來 朋從爾思, 子曰 天下 何思何慮? 天下 同歸而殊塗, 一致而百慮, 天下 何思何慮? 日往則月來 月往則日來, 日月 相推而明生焉, 寒往則暑來 暑往則寒來, 寒暑 相推而歲成焉, 往者 屈也 來者 信也, 屈信 相感而利生焉. 尺蠖之屈 以求信也, 龍蛇之蟄 以存身也, 精義入神 以致用也, 利用安身 以崇德也, 過此以往 未之或知也, 窮神知化 德之盛也)
將欲取天下而爲之인댄
吾見其不得已로라
天下는 神器라 不可爲也니
爲者는 敗之하고 執者는 失之라
故로 物은 或行或隨하며
或噓或吹하며
或强或羸하며
或載或隳하나니
是以로 聖人은 去甚하고 去奢하고 去泰니라.
※ 대산 김석진·수산 신성수,『주역으로 보는 도덕경-대산 노자강의』 대학서림, 2005, 120∼1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