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화공존과 소통

관찰(觀察) : 천문(天文)을 보고 지리(地理)를 살피다

돈호인 2018. 2. 1. 22:28

 

 

 

  세상에 관한 모든 지식은 일차적으로 관찰을 통해서 습득된다. 즉 모든 지식의 1차적 자료는 바로 관찰(觀察)에 의해 형성된 그 무엇이라 할 것이다. 관찰은 인간이 세상과 교류하는 통로이며 세상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초석이다.

 

   관찰의 자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우선 관()은 황새()가 큰 눈을 뜨고 본다(), 또는 황새가 창공으로 날아올라 세상을 크게 내려다본다는 뜻으로 객관적인 세상을 크게 조망해 본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찰()은 집()에서 제사()를 올리며 신의 뜻을 알아낸다는 것으로 지극한 정성을 기울여 사물과 상황의 진의를 파악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관()은 세상을 크게 조망하는 것이고, ()은 세부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관찰(觀察)은 큰 흐름의 줄기를 보고 세부적인 일의 정황을 파악한다는 두 가지 방법이 동시에 수반되는 것이다. 큰 흐름만 보고 세부적인 정황에 대한 살핌이 없으면 두루뭉술한 이야기가 될 것이고, 세부적인 정황만 살피고 큰 흐름을 보지 못하면 그 정황의 정확한 주소지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관찰이라는 것은 단지 객관적인 세상을 보는 것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스스로를 객관적인 대상으로 던져 놓고 던져진 자기 자신을 살펴보는 것도 관찰이다. 모든 현상과 존재를 관찰하는데, 우선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다. 큰 흐름을 보고 세부적인 정황을 살펴본다. 나를 관찰하고 세상을 관찰한다. 나를 관찰하고 세상을 관찰하는 그 무엇을 또한 관찰한다.

 

  『주역』「계사상전4장에 ()은 천지(天地)를 그대로 본받은 것이기 때문에 천지의 도를 얽어 짜놓았다. 우러러서는 천문(天文)을 보고 구부려서는 지리(地理)를 살피는 까닭으로 그윽하고 밝은 연고를 알며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우러러서는 천문을 보고(仰以觀於天文) 구부려서는 지리를 살핀다(俯以察於地理)는 표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늘의 이치인 천문(天文)은 관()하고 땅의 이치인 지리(地理)는 찰()한다는 표현을 하였다. 거대한 국면인 하늘의 이치는 관()하고 구체적인 땅의 이치는 찰()한다는 것이다. ()과 찰()이 겸해질 때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알게 되는 셈이다.

 

   세상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각종 언론의 정보, 넘치는 지식들, SNS를 통해 퍼지는 내용들 등 이 모든 지식과 정보들이 진정한 관찰(觀察)에 의한 지식과 정보인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주역경전공부에 비유하자면 64괘 괘상(卦象)을 공부하는 것은 관()이고 각 괘의 여섯 효, 다시 말하면 384효를 공부하는 것은 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64()를 관()하고 384()를 찰()한다. 주역공부는 세상을 관찰(觀察)하는 공부이다.

 

주역』「계사상전4

역이 천지와 더불어 준함이라. 그러므로 능히 천지의 도를 미륜하나니(얽어 짜놓으니), 우러러서는 천문을 보고 구부려서는 지리를 살피니라. 이런 까닭으로 그윽하고 밝은 연고를 알며, 처음을 근원으로 하여 마침을 돌이킨다. 그러므로 죽고 사는 말(이치)을 알며, 정과 기가 물건이 되고 혼이 놀아서 변이 됨이라. 이런 까닭으로 귀신의 정상을 아느니라.”

與天地準이라 能彌綸天地之道하나니 仰以觀於天文하고 俯以察於地理是故知幽明之故하며 原始反終이라 知死生之說하며 精氣爲物이오 遊魂爲變이라 是故知鬼神之情狀하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