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속의 모든 존재는 미래(未來)를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다가오는 미래적 상황에 적응하면서 최적(最適)의 상태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면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최적(最適)의 상태를 만들어 가려는 존재들 사이에 때로는 갈등과 충돌이 빚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협력과 조화를 통해 상승작용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개체적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미래적 상황에 대한 전망(展望)이 불투명하거나 어두울 경우에 인간은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인간의 공동체인 사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작게는 소규모 조직에서 크게는 국가조직에 이르기까지 공동체가 나아가는 미래적 전망이 불투명하게 되면 그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존재는 살아가야 할 방향성을 잃고 혼돈에 빠지게 된다.
미래는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모든 생명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생명력들에게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거나 절망적일 경우에는 그러한 미래로 다가올 것이고,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설계도가 있을 경우에는 희망찬 미래로 다가올 것이다. 그런데 현대사회의 모든 지표(指標)에서 긍정적인 전망(展望)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든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국제적이든 국내적이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희망찬 미래를 제시하는 지표(指標)를 찾아보기 힘들다.
『논어(論語)』「위령공(衛靈公)편」에 공자(孔子)가 말하길 “사람이 원대한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다.”(子曰 人無遠慮 必有近憂)고 하였다. 이 말은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당장 주어져 있는 현실적 난관에 부딪쳐 원대한 미래를 설계할 겨를이 없다는 측면이고, 또 하나는 원대한 포부와 미래에 대한 신념이 없으면 당장 주어져 있는 자잘한 현실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원대한 포부와 신념이 있는 사람은 크든 작든 당면한 일에 집착하지 않고 슬기롭게 극복해 나간다. 반면에 원대한 포부와 신념이 없는 사람은 당장 닥쳐온 일에 목숨을 걸고 매달리다가 결국 미래를 포기하게 된다. 국가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찬 설계가 있는 공동체는 안팎의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의연하게 미래로 나아가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공동체는 당면한 문제에 봉착하여 끊임없는 미궁에 빠져 허덕이게 된다.
그 사회가 그 국가가 희망찬 미래로 갈 수 있는가의 여부는 지금 이 순간 펼쳐지고 있는 현상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존재들이 미래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순자(荀子)』「비상편(非相篇)」에 “천년 앞을 내다보려면 오늘을 잘 살펴야 한다.”(欲觀千世 則審今日)고 하였다. 작금(昨今)의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할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영역에서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에게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전망과 신념이 있는가에 대하여 자문(自問)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 우리에게는 나에게는 미래에 대한 설계도가 마음속에 있는가에 대하여 모두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봐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공동체이든 개인이든, 모든 존재들이 이 어려운 현실을 탓하기만 하고 정작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있는 생명력은 잠재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날의 현실은 모든 존재에게 내재되어 있는 생명력(生命力)을 근본적으로 다시 일깨워야 하는 절실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래는 이른바 미래학자들이 현란하게 전망하는 이야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존재들의 생명력에 내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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