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화공존과 소통

천하는 신비스런 그릇(天下神器), 자주자주 오고가면 벗이 너의 뜻을 좇을 것이다(憧憧往來 朋從爾思)

돈호인 2018. 2. 25. 13:08

 

 

 

   해안가에서 파도가 일렁이며 육지 쪽으로 들이쳤다 나감을 반복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바다의 생명력을 느끼게 된다. 또한 파도의 일렁임이 반복하는 과정에서 어느 새 밀물과 썰물이 바뀌면서 하루라는 시공간이 바뀌게 됨을 알게 된다. 1년에 24절기가 있듯이 지구의 공전과 자전 그리고 달의 공전에 기초한 자연의 변화에는 일정한 정률이 있다. 자연은 기본적으로 작은 주기부터 보다 큰 주기의 다원적인 파동 속에서 생명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아마도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무대인 이 사회에서 빚어지고 있는 현상의 흐름을 보노라면, 마치 바다에서 수많은 파도가 일렁이듯이 수많은 사건과 상황의 파노라마가 전개되고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사건과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이 사회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것은 인간과 사회의 생명력이다. 더 나아가 이른바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 이념이 서로 밀고 당기는 갈등과 긴장 그리고 때로 이루어지는 화합 속에서 정권이 교차하면서 국가사회는 끊임없는 변화의 생명력을 창출하게 된다. 더 큰 의미로 보자면 국제사회의 변화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이보다 더 큰 차원의 변화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변화해 나간다는 것은 모든 존재자가 교감(交感)하는 것이고, 모든 생명력이 자기 자신의 존재이유를 드러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어느 집단이나 가치체계에 속하여 변화로 일렁이고 있는 파도를 타게 된다. 그리고 이리저리 부딪치면서 때로는 뜻대로 이루어지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좌절을 맛보는 고통을 받기도 하면서 저마다의 삶을 누리고 있다. 부분적인 흐름에 집착할 때 어느 누군가는 성공하고 어느 누군가는 실패한다는 개체적 삶의 흥망에 희비가 엇갈리지만, 큰 흐름을 보면 바로 그러한 변화의 갈등 속에서 국가사회의 보다 발전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이 그러하듯이 인간사회도 모든 생명력이 저마다의 가치와 이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밀고 당기는 역동적인 변화를 통하여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마치 자벌레가 자신의 생명력을 펴 나가기 위하여 먼저는 굽혀야 하고, 때로는 자기 몸을 보존하기 위하여 용이나 뱀처럼 땅 속에 숨어야 하듯이, 인간도 자신의 생명력과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때로는 굽히기도 하고 때로는 숨기도 한다.

 

  더 나아가 단지 굽히고 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더욱 정미하게 가다듬고 신의 경지에 들어가도록 갈고 닦는데, 이는 후일에 자신의 뜻을 펼치고 사회를 위하여 유익한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큰 흐름을 아는 자는 자기만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항상 전체의 흐름을 보고 이익의 균형을 도모한다. 왜냐하면 오늘의 이익이 내일의 손해가 되고, 나의 이익이 타자의 손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체의 큰 흐름을 볼 수 있는 사람을 덕()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노자(老子)가 말하였듯이 이 세상은 신비스런 그릇이다(天下 神器). 그러니 이 세상을 경륜하고자 하는 자는 이 세상의 신비스러운 변화를 더욱 연구하고 깨우쳐서 가급적 모든 이의 행복을 추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역64괘 가운데 31번째이자 하경 첫 번째에 있는 택산함(澤山咸)괘의 네 번째 효에 구사는 바르게 하면 길하고 뉘우침이 없어질 것이니, 자주자주 오고가면 벗이 너의 뜻을 좇을 것이다(九四 貞吉悔亡 憧憧往來 朋從爾思).”라는 문장이 있다. 외괘가 태택(兌澤), 내괘가 간산(艮山)으로 이루어진 괘를 ()괘라고 하는데, 연못과 산이 기운을 통하고, 외괘의 태소녀와 내괘의 간소남이 교감하면서 서로의 기운을 통하여 느끼는 것이다. 함괘(咸卦)는 청춘 남녀가 교감(交感)을 나누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네 번째 효는 바로 교감(交感)의 절정을 이루는 자리이다.

 

   함괘의 괘사를 풀이한 단전(彖傳)에서는 천지가 느껴서 만물이 화생하고, 성인(聖人)이 인심(人心)을 느껴서 천하가 화평하니, 그 느끼는 바를 보아 천지만물의 정을 가히 볼 수 있을 것이다(天地 感而萬物化生하고聖人感人心而天下 和平하나니 觀其所感而天地萬物之情可見矣리라).”라고 설명하였다.

 

   보다 이상적인 세상을 갈망하던 공자(孔子)13년여를 주유(周遊)하다가 만년(晩年)에 귀향하여 제자를 가르치면서 역()에 심취하였는데(韋編三絶), 공자는 그 자신의 편력과 감회를 담아 함괘 구사효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에 말하길 자주자주 오고가면 벗이 네 생각을 좇는다.”라 하니,

공자 말씀하시길,

천하에 어찌 생각하고 어찌 근심하겠는가?

천하가 돌아가는 곳은 같은데 저마다 가는 길은 다르며,

이루고자 하는 것은 하나이지만 백가지 생각이니,

천하에 어찌 생각하고 어찌 근심하겠는가?

해가 가면 달이 오고 달이 가면 해가 와서

해와 달이 서로 밀쳐서 밝음이 나오며,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면 추위가 와서

추위와 더위가 서로 밀쳐서 해(1)를 이루니,

가는 것은 굽힘이요 오는 것은 펴는 것이니,

굽히고 폄이 서로 느껴서 이로움이 생하느니라.

자벌레의 굽힘은 폄을 구함이요,

용과 뱀의 숨음은 몸을 보존함이요,

의리를 정미롭게 하여 신()에 들어감은 쓰임을 이룸이요,

씀을 이롭게 하여 몸을 편안히 함은 덕()을 숭상함이니,

이를 지나서 감은 혹 알지 못하니,

()을 궁구하여 화()함을 앎이 덕()의 성함이라.

 

易曰 憧憧往來朋從爾思라하니 曰 天下 何思何慮리오. 天下 同歸而殊塗하며 一致而百慮天下 何思何慮리오. 日往則月來하고 月往則日來하야 日月相推而明生焉하며 寒往則暑來하고 暑往則寒來하야 寒暑 相推而歲成焉하니 往者屈也來者信也屈信相感而利生焉하니라. 尺蠖之屈以求信也龍蛇之蟄以存身也精義入神以致用也利用安身以崇德也過此以往未之或知也窮神知化 德之盛也.

 

한편 노자(老子) 도덕경29장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장차 천하를 취할 욕심으로 취하려고 하면,

내가 보기에 그것을 얻지 못할 뿐이도다.

천하는 신비스런 그릇이어서 가히 취하지 못하며 가히 잡을 수 없으니,

취하고자 하는 자는 패하고 잡으려고 하는 자는 잃는다.

그러므로 사물은 혹 나서기도 하고 혹 따르기도 하며,

혹 가늘게 불기도 하고 혹 급하게 불기도 하며,

혹 강하기도 하고 혹 약하기도 하며,

혹 싣기도 하고 혹 무너지기도 하니,

이로써 성인은 심함을 버리고 사치스러움을 버리며 교만함을 버린다.

 

將欲取天下而爲之인댄 吾見其不得已로라 天下神器不可爲也不可執也爲者敗之하고 執者失之或行或隨하며 或噓或吹하며 或强或羸하며 或載或隳하나니 是以聖人去甚하고 去奢하고 去泰니라.

: 장차 장   : 취할 취   : 따를 수   : 가늘게 불 허   : 급하게 불 취   : 약할 리   : 실을 재

: 무너뜨릴 휴   : 심할 심   : 사치할 사   : 클 태·편안할 태·교만할 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