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과 인생

인간은 현재(現在)가 아닌 미래(未來)를 살고 있다.

돈호인 2015. 3. 2. 17:22

 

 

 

  이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인간도 자연도 사회도 변화하고 있다.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운데 인간은 항상 자기가 존재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단위로 세월을 구분하여 왔다. 그러나 우주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에 사실상 현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인간이 얹혀살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은 끊임없이 자전과 공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오늘은 바로 어제가 되고 내일은 곧바로 오늘이 된다. 시간의 폭을 넓히면 현재라고 생각하는 찰나(刹那)는 순간순간 과거가 되고 미래는 순간순간 현재가 된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은 현재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미래 속을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화엄교학(華嚴敎學)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의상(義相, 625-702)대사는 불교경전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는 화엄경(華嚴經)의 광대무변한 진리를 압축하여 게송(偈頌)을 짓고 도인(圖印)으로 나타내었는데, 그것이 바로 불가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는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이다.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는 세간에서는 법계도(法界圖)’ 또는 해인도(海印圖)’라고 부르고 있으며, 게송은 법성게(法性偈)’라고 일컫는다. 게송인 법성게7() 30() 210()의 짧은 시문(詩文)으로 되어 있으며, ‘법계도는 이 시문을 54()의 네모꼴 도인(圖印)에 합쳐서 만든 인장(印章)이다.

 

  ‘법성게가운데 우주의 공간성과 시간성을 표현한 내용이 제7()에서 14()까지의 글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7구에서 10구까지는 공간성을 나타내는 것이고, 11구에서 14구까지는 시간성을 나타내고 있다. 법성게에서의 공간성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하나 속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 속에 하나가 있으니(一中一切多中一, 일중일체다중일),

하나가 곧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은 곧 하나이네(一卽一切多卽一, 일즉일체다즉일).

하나의 티끌 속에 우주를 품고 있으니(一微塵中含十方, 일미진중함시방),

모든 티끌 속에도 또한 이와 같네(一切塵中亦如是, 일체진중역여시).”

 

  한편 법성게에서 시간성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헤아릴 수 없이 아득한 세월은 곧 한 생각이고(無量遠劫卽一念, 무량원겁즉일념),

한 생각은 곧 바로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이네(一念卽是無量劫, 일념즉시무량겁).

구세(九世)와 십세(十世)가 함께 서로하니(九世十世互相卽, 구세십세호상즉),

오히려 어지럽게 섞이지 않고 나뉘어 따로 이루어지네(仍不雜亂隔別成, 잉불잡난격별성).”

 

  여기에서 구세(九世)는 일반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각각 다시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하여 표현한 것이며, 십세(十世)는 구세(九世)에 일념(一念)을 더한 것을 말한다. 즉 구세(九世)가 일념(一念) 속에 있으니 십세가 되는 것이다. 현상적으로 펼쳐지는 과거 현재 미래의 헤아릴 수 없는 세월(구세)이 지금 이 순간의 일념(一念)에 있으니 구세와 십세가 함께 서로 하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구세와 일념이 어지럽게 서로 섞이지 않고 현상계는 현상계대로 본체계는 본체계대로 이루어지고 있다(仍不雜亂隔別成)는 말일 것이다.

 

一中一切多中一 (일중일체다중일)

一卽一切多卽一 (일즉일체다즉일)

一微塵中含十方 (일미진중함시방)

一切塵中亦如是 (일체진중역여시)

無量遠劫卽一念 (무량원겁즉일념)

一念卽是無量劫 (일념즉시무량겁)

九世十世互相卽 (구세십세호상즉)

仍不雜亂隔別成 (잉불잡난격별성)

 

  우주는 태초 이래로 끊임없이 창조되어가는 과정에 있으며, 인간은 항상 미래를 설계하며 살아가고 있다. 미래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들의 역동적인 삶의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이 순간 존재하고 있는 모든 생명력은 항상 미래를 창조하고 있다. 인간의 인식 속에 펼쳐지고 있는 물리적 현상들은 지나간 것과 지금 있는 것과 앞으로 올 것이라는 과거 현재 미래의 연속선상에서 그렇게 흘러가지만, 정신계에는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발산되는 사념의 파동은 그 나름의 총합을 이루기도 하고 충돌과 분산으로 해체되기도 하면서 미래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미래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전망이 있을 때 대부분의 생명력이 그곳으로 결집하게 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할 때 대부분의 생명력은 목표를 잃고 방황하게 된다. 미래를 보는 관점에는 열린 미래관이 있고 닫힌 미래관이 있다. 열린 미래관은 능동적 미래관이라 할 수 있고, 닫힌 미래관은 수동적 미래관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열린 미래관은 창조적 미래관이라 한다면, 닫힌 미래관은 퇴보적이고 숙명론적인 미래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열린 미래관에서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미래가 열린다.

   "인간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