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과 인생

미인(美人)과 지선사회(至善社會)

돈호인 2015. 1. 30. 12:53

 

 

  현대 민주사회의 대강령은 인격평등의 원칙이다. 인종, 종교, 성별, 나이, 직업 등 현상적 차이를 넘어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인격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국제연합헌장을 비롯하여 지구상의 모든 국가가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대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모든 인간은 사회적으로 어떠한 위상에 있든 어떠한 일을 하든 인격적으로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할 권리가 있으며, 또한 모든 인간은 상호간에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모든 인간은 인격적으로 동등하다. 그런데 동서를 막론하고 예로부터 성인과 철인들은 인간의 영적 차원과 마음의 깊이에 관하여 논하였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그 마음의 깊이에 따라 영적 차원이 다르고 처세가 다르다는 것이다. 도가(道家)에서는 지극한 깨달음을 얻은 경지에 있는 사람을 지인(至人) 또는 진인(眞人)이라 하고, 유가(儒家)에서는 도와 덕을 중시하여 그 정도에 따라 성인(聖人), 현인(賢人), 대인(大人), 군자(君子), 소인(小人) 등의 표현을 하고 있다.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교에서는 그들 나름대로 종교적 권위에 의한 위계질서를 정해 놓고 있다.

 

  세속적인 차원, 다시 말하면 현상계의 질서 속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인격적으로 대등하지만, 종교적 차원에서는 각 종교에서 정하고 있는 나름대로의 위계가 있고, 정신계 차원에서는 개개인의 영적 차원, 혹은 깨달음과 수양의 정도에 따라 인간의 내면세계에는 차등이 있으며, 도덕적으로도 인()과 덕() 혹은 선()의 정도에 따라 마음의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의 차원은 정신계의 수준을 나타낼 뿐 그것이 현상계에서의 위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깨달음을 얻은 자는 세인들에게 더욱 몸을 낮추어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 성인들의 가르침이었다. 하늘의 도가 아래로 임하듯이 성인의 도는 저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맨 아래로 임하는 것이다. 이를 노자(老子)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표현하였다. 물은 항상 아래로 흘러 천하를 품기 때문이다. 노자에게 있어 최상의 경지는 선()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하늘의 도는 어느 누구도 사사로이 친하지 않고 - 특정 종교인이나 특정 민족만을 사랑하지 않고 - 항상 선한 사람과 함께 한다(天道無親 常與善人)고 하였다. 유가의 대표경전 가운데 하나인 대학의 삼강령에서 최종 목표는 지극히 선함에 그치는 것이다(止於至善).

 

  맹자(孟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선()함의 정도에 따라 사람을 선인(善人), 신인(信人), 미인(美人), 대인(大人), 성인(聖人), 신인(神人)의 여섯 단계로 구분하였다. 선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선인(善人)이다. ()을 체득한 사람은 신인(信人)이다. 체득한 선()이 충실한 사람은 미인(美人)이다. 선이 충실하여 밖으로 광휘(光輝)하게 되면 대인(大人)이다. 대인이면서 저절로 만물을 화()하게 되면 성인(聖人)이라 한다. 더 나아가 너무나 성()스러워 알 수 없는 경지가 되면 신인(神人)이라 한다. 맹자에게 있어 미인(美人)은 선()이 충실(充實)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서 지향해야 할 도덕적 가치는 무수히 많다. 유가의 오상(五常)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비롯하여 덕(), (), (), (), (), (), () 등 각각의 종교 철학 및 문화적 양상에 따라 많은 덕목이 일컬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결국 선()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선()하고자 노력하고 선()한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한다면, 이 현실세계는 지선사회(至善社會)가 될 것이다. 국가의 공조직에서부터 일반 사조직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일을 수행하든 모든 사람이 선()한 마음에 기초를 둔다면 모든 일은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이든 소통(疏通)을 막는 것은 선()하지 못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한 마음으로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선한 마음으로 자기의 직무를 수행한다면, 이 세상은 진정 선한 사회가 될 것이다.

 

  맹자는 인간을 선()함의 정도에 따라 여섯 단계로 구분하였다. 그 가운데 대인(大人) 성인(聖人) 신인(神人)은 높은 경지이니 논외로 한다면, 일반 사람들에게는 선인(善人) 신인(信人) 미인(美人)의 단계가 무난할 것이다. 그 중에서 세 번째 단계가 바로 미인(美人)이다. 이제 진정한 미인(美人)이 되어 보자. 그리고 보다 선()한 사회를 만들어보자.

 

맹자(孟子)[盡心章句下 25]

浩生不害問曰 樂正子何人也잇고 孟子曰 善人也信人也니라 何謂善이며 何謂信이닛고 曰 可欲之謂善이요 有諸己之謂信이요 充實之謂美充實而有光輝之謂大大而化之之謂聖이요 聖而不可知之之謂神이니 樂正子二之中이요 四之下也니라

호생불해(浩生不害)가 물었다, “낙정자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선인(善人)이며, 신인(信人)이다.” “무엇을 선인(善人)이라 이르며, 무엇을 신인(信人)이라 이릅니까?” “가욕스러움을 선인(善人)이라 이르고, ()을 자기 몸에 소유함을 신인(信人)이라 이르고, 충실(充實)함을 미인(美人)이라 이르고, 충실하여 광휘(光輝)함이 있음을 대인(大人)이라 이르고, 대인이면서 저절로 화()함을 성인(聖人)이라 이르고, ()스러워 알 수 없는 것을 신인(神人)이라 이른다. 낙정자는 두 가지의 중간이요, 네 가지의 아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