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를 만들고 그 사회 속에서 존재한다. 시원적으로는 인간이 사회를 만든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은 이미 만들어진 사회 속에서 태어나 그 삶을 누리게 된다. 때문에 이미 형성된 사회 속에 존재하는 인간은 그 사회가 어떠한 체제를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 선천적으로 혹은 후천적으로 사회적 위치가 정해진다.
인류사회를 시간적 흐름으로 분류하게 되면 흔히 원시사회, 고대사회, 중세사회, 근대사회, 현대사회, 미래사회라는 구분을 하게 된다. 이는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시대를 구분하는 일반적 개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구분하는 이유는 각 시대별로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등 각 분야에 걸쳐 중요한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환기에 해당하는 중세사회와 근대사회를 구분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징표는 이른바 사회속의 인간관계가 수직구도에서 수평구도로 변화한 것이다. 즉 중세사회의 절대왕정에 근간하는 봉건제도 속에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왕족, 귀족(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평민, 노예라는 신분적 계급질서에 의해 규정되면서 모든 인간관계는 수직구도로 편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근대사회는 신분적 계급질서가 무너지고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다는 이념 아래 모든 인격이 평등하다는 수평구도로 전환된다. 수직적 인간관계에서 수평적 인간관계로의 전환이 중세와 근대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징표가 된다. 이러한 변화를 영국의 법학자인 헨리 메인(Sir Henry Maine)은 그의 저서 『고대법 Ancient Law』에서 “신분(身分)에서 계약(契約)으로”(From Status To Contract)라는 표현으로 중세적 신분질서사회로부터 근대적 계약질서사회로의 이행을 묘사한 바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현대사회라고 한다. 물론 역사학적으로는 대체로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를 현대사회로 지칭한다. 그런데 현대사회의 참 모습은 어떠한가? 사실 지구상에 펼쳐진 21세기 현대사회를 보면 역사적으로 매우 오래된 인류문화의 흔적들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극히 미래적인 현상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이 순간에 원시적 문화현상부터 고대적, 중세적, 근대적, 현대적, 미래적 문화현상이 공존하고 있다. 이를 “종적(縱的) 문화사(文化史)가 횡적(橫的) 지평선(地平線) 위에 펼쳐져 있다.”고 표현한다. 시간적으로는 과거로부터 미래로 무한히 가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는 모든 현상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말이다.
현대사회에도 예컨대 인도의 카스트제도(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불가촉천민)와 같이 중세적 신분계급질서가 여전히 존재하는 나라들도 있다. 불교나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들은 성직을 가장 우선시하는 중세적 종교국가체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세계 각 지역에는 원시적 부족 형태를 지니고 있는 소수민족도 산재해 있다. 그리고 최첨단 문명으로 찬란하게 장식되고 있는 대형 도시들도 있다. 이러한 현상을 볼 때, 인류의 미래를 과학문명이라는 하나의 잣대로만 규정하려는 것은 인간과 인류의 발전양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편협된 시각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나 민족, 사회는 각자 고유의 가치체계와 제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가 속한 사회의 집단적 이념과 가치 및 제도에 의해 현상세계에서의 위상이 정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근대 이후 세계의 보편적 흐름은 인간(人間)의 자유(自由)와 평등(平等)에 기초한 사회질서로 변화하고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의 대부분의 국가는 이념적 차이와는 무관하게 자본(금융)의 소유와 재력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계급질서가 형성되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중세의 신분적 계급질서에 비유하자면, 자본적 계급질서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대사회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본이 국민 대다수에게 흘러가지 않고 특정 소수에게만 편중되면서 발생하는 부(富)의 편중과 독점문제에서 비롯되며 더 나아가 부(富)의 세습(世襲)으로 이어지면서 발생하는 새로운 유형의 계급질서라 할 수 있다. 자본이 권력이며 신분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근대 이후 민주사회의 큰 이념적 바탕이었던 ‘인격평등의 원칙’이 흔들리게 되는 위기상황을 가져오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갑(甲)의 횡포’는 이러한 사회적 위기를 반영하는 신조어가 되었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국가사회를 구성하는 국민들 사이의 경제적 불균형이 심하게 되면 정치사회적 위기가 닥쳐오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사회적 파국을 초래하기 전에 경제사회적 균형을 잡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모든 인간은 인격적으로 평등하며, 따라서 재력의 차이, 지위의 고하, 남녀의 차이, 연령의 차이, 종교의 차이, 신념의 차이 등 모든 현상적 차이를 넘어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윤리관이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맹자(孟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03~221) 칠웅(七雄) 가운데 제(齊)나라 패자(覇者)로 왕(王)을 자칭하였던 제선왕(齊宣王)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떳떳한 생업(生業)이 없으면서도 떳떳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오직 선비만이 가능한 것이요, 백성으로 말하면 떳떳이 살 수 있는 생업이 없으면 그로 인하여 떳떳한 마음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떳떳한 마음이 없어진다면 방벽(放辟, 방탕함과 간사함)함과 사치함을 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그리하여 죄(罪)를 짐에 이른 뒤에 따라서 이들을 형벌한다면, 이것은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어찌 인인(仁人)이 지위에 있으면서 백성을 그물질하는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백성의 생업을 제정해 주되 반드시 위로는 족히 부모를 섬길 만하며, 아래로는 족히 처자(妻子)를 기를 만하여 풍년에는 1년 내내 배부르고, 흉년에는 사망에서 면하게 하나니, 그런 뒤에야 백성들을 몰아서 선(善)에 나아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명령을 따르기가 쉬운 것입니다. …”(『孟子』 [梁惠王章句上 7] … 曰 無恆産而有恆心者는 惟士爲能이어니와 若民則無恆産이면 因無恆心이니 苟無恆心이면 放辟邪侈를 無不爲已니 及陷於罪然後에 從而刑之면 是는 罔民也라 焉有仁人在位하여 罔民을 而可爲也리오 是故로 明君이 制民之産하되 必使仰足以事父母하며 俯足以畜妻子하여 樂歲에 終身飽하고 凶年에 免於死亡하나니 然後에 驅而之善이라 故로 民之從之也輕하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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