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강자(季康子)가 정치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政者 正也)”라고 말하였다(『논어(論語)』 「안연(顔淵)」). 이 말은 예나 지금이나 정치(政治)의 기본 강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대적 표현을 곁들인다면, 정치란 ‘국민을 위하여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사회에서 ‘바르다’라는 것의 기준은 국민의 보편적 이익, 이른바 공리(公利)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의 일신(一身)을 위한 것이 아니고, 특정 정당이나 단체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 정의 관념에 맞아야 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정치(政治)는 이른바 정치한다고 자처하는 자들만이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시민사회 조직을 비롯하여 기업이나 단체, 더 나아가 지방자치단체나 국가 행정조직에 이르기까지 현대사회의 모든 조직의 행위는 정치(政治)라고 볼 수 있다. 현대사회의 모든 조직은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모든 개개인은 개인적 차원뿐만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 대하여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른바 정치인들이 전근대적 사유에 빠져 그들만의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는 시대착오(時代錯誤)일 뿐만 아니라 시대에 역행(逆行)하는 과오(過誤)를 저지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이른바 정치인이든 경영인이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들이 귀담아 보아야 할 내용을 노자(老子)와 공자(孔子)를 빌려 말하고자 한다(『주역으로 보는 도덕경』, 109∼111쪽).
현행본 『도덕경』 제26장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가 되고, 고요함은 조급함의 인군이 된다. 이로써 성인은 하루 종일 가더라도 무거운 짐수레를 떠나지 않으며, 비록 영화로운 구경거리가 있더라도 편안한 곳에서 초연하니, 어찌 만승의 주인(천자)으로서 자기 몸으로 천하를 가볍게 하겠는가? 가벼우면 뿌리를 잃고 조급하면 인군을 잃는다.”(重爲輕根이오 靜爲躁君이라 是以로 聖人은 終日行호대 不離輜重하며 雖有榮觀이나 燕處超然하나니 柰何萬乘之主로 而以身輕天下리오 輕則失根(本)하고 躁則失君이니라.)
도(道)의 근원은 무겁고 고요하다. 무거운 도의 근원에서 온갖 가벼운 것들이 나온다. 또한 말없이 고요한 도의 근원에서 온갖 조급한 것들이 나온다. 드넓은 대양(大洋)은 얼마나 무겁고 고요한가? 그런데 그 무거움 속에 가벼운 파도들이 일렁이며, 그 고요함 속에 가벼운 파도들의 조급함이 있다. 저 하늘과 땅은 얼마나 무겁고 고요한가? 그 무거움 속에 천하 만물을 싣고 있으며, 그 고요함 속에 바람이 몰아치는 조급함이 있다. 가벼움과 조급함은 마치 파도나 바람처럼 일시적인 것일 뿐 도의 근원은 아니다. 그래서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가 되고, 고요함은 조급함의 인군이 된다고 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하를 다스리는 성인은 도의 후중함을 본받아 천하 백성을 짊어지고 있다. 그런데 천하를 다스리는 자가 그 후중함을 잃고 세상 사람처럼 가볍게 명예나 이익을 추구하면 어떻게 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천하를 다스리는 성인은 천하 백성의 소리를 들어야 하기에 고요함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천하를 다스리는 자가 고요히 듣지 않고 세상 사람처럼 이해관계를 따지고 시비를 논하는 조급함에 빠지면 어떻게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성인은 살아가는 역정 속에서 한결같이 천하 백성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하루 종일 가더라도 백성을 싣고 있는 무거운 짐수레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세상에 화려하고 영화로운 구경거리가 있더라도 성인은 오로지 고요하고 편안한 곳에 거처하여 그러한 번잡한 영화에 초연한다.
어찌 만승의 주인인 천자(天子)로서 자기 몸으로 천하를 가볍게 여길 수 있겠는가? 백성을 다스리는 천자는 자기 일신의 몸이 아니다. 천자의 몸은 곧 천하 백성의 몸이니 스스로를 가볍게 하면 곧 천하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자기를 가볍게 하면 도의 근원인 후중한 뿌리(천하 백성)를 잃게 되고, 조급하게 하면 고요함의 주인인 인군을 잃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맡아 정치하는 자들에 대한 경구이다.
『주역』 64괘 가운데 60번째에 있는 수택절괘(水澤節卦)는 연못 위에 물이 있으니 이 물을 잘 조절하듯이 정치를 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절괘(節卦) 초효(初爻)는 정치를 하는데 말조심을 하라는 뜻에서 “초구는 호정을 나서지 않으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初九 不出戶庭 无咎)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공자(孔子)는 『주역』 「계사상전」 제8장에서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호정(戶庭)을 나서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어지러움이 생하는 바는 말(言語)로써 계제(階梯)가 되는 것이니, 인군이 주밀하지 못하면 신하를 잃으며, 신하가 주밀하지 못하면 자기 몸을 잃으며, 기밀한 일이 주밀하지 못하면 해로움을 이루니, 이로써 군자가 (말을) 삼가고 주밀해서 나가지 않는 것이다.”(不出戶庭이면 无咎라하니 子曰 亂之所生也 則言語 以爲階니 君不密則失臣하며 臣不密則失身하며 幾事 不密則害成하나니 是以君子 愼密而不出也하나니라.)
인군이 경망하면 신하가 인군에게 의지하지 못함을 알고, 신하가 조급하면 인군은 신하가 사사로운 이익에 뜻을 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인군이 경망하면 신하를 잃고, 신하가 조급하면 목숨을 잃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인군이 주밀하지 못하면 신하를 잃고, 신하가 주밀하지 못하면 자기 몸을 잃으며, 기밀한 일이 주밀하지 못하면 결국 해로움을 이루는 것이다.
공자(孔子)는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政事)를 도모하지 않아야 한다.”(『논어(論語)』 [泰伯 第八 14] 子曰 不在其位 不謀其政.)고 경계하였다. 이 말을 오늘날 이 시대에 일반화하면 어떤 사안에 대하여 정당한 권한과 책임이 없으면 간섭하지 말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항상 국민을 거론하며 그들 자신의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때문에 국민은 정치인들의 언동을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국민이 있기에 정치가 행해지고 국가가 보존되며, 사원이 있기에 사업이 행해지며 기업이 보존된다. 정치를 하면서 국민을 망각하면 국가가 위태롭게 되고, 사업을 하면서 사원을 무시하면 기업이 위태롭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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