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만물은 저마다 가야하는 길을 가고 있다. 태양도 스스로 가는 길이 있으며, 지구도 지구의 위성인 달도 가는 길이 있다. 이 지구에 얹혀살고 있는 인간도 저마다 가는 길이 있다. 모든 존재가 가는 길을 도(道)라고 한다. 천체가 가는 길을 천도(天道)라 하고 지구가 가는 길을 지도(地道)라 하며 사람이 가는 길을 인도(人道)라 한다.
지구를 포함한 천체는 이 우주 속에서 일정한 궤도(軌道)를 가고 있다. 그런데 사람이 가는 길, 즉 인도(人道)는 그저 일정한 길(궤도)을 가는 것이 아니라, ‘가야 하는 길’을 가고 있다. 인간이 ‘가야 하는 길’이란 인간 또는 인류가 지향해야 하는 이상(理想)을 향해 가는 것이다. 인간이 지향해야 하는 길은 현상세계에서 설정한 목표를 이루는 것과 궁극적으로 자아의 본질을 깨닫는 길이라고 한다면, 인류가 지향해야 하는 길은 대자연과 더불어 공존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공영(共榮)이라 하든 평화(平和)라고 하든 혹은 종교적 표현을 빌려 말한다면 지상천국이라 하든 극락세계라고 하든, 용어는 달라도 그 지향점은 하나라고 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지선사회(至善社會)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가야할 길’은 한가지라고 볼 수 있지만, 현실세계에서 인간 개개인이 가는 길은 저마다 다르다. 이 사회가 지향해야 할 길은 한가지라고 할 수 있건만, 각종의 인간 집단이 가는 길은 또한 저마다 다르다. 개인과 집단이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면서 빚어지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물질적 이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현대사회의 기본 속성상 모든 존재들 사이의 경쟁은 불가피한 현상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특정 이념과 가치로 무장한 집단들 사이의 관계는 마치 그 이념과 가치가 그 집단의 존재적 근거로 되어 인간의 진정한 삶의 본질은 왜곡되고 오로지 집단적 가치의 생존에만 몰두하게 된다. 이렇게 집단적 가치가 우선하게 되면, 인간을 위한 집단이 아닌 집단을 위한 집단이 되고, 그 속에서 인간은 단지 집단을 위한 부속품으로 전락되고 만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저마다 ‘가야 하는 길’을 추구하고 있다. 국가사회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의 역할은 모든 인간이 ‘가야 하는 길’을 열어주고 잘 통하게 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야 하는 길’을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모든 국민이 ‘가야 하는 길’을 잘 열어주는 것이 바로 정치(政治)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야 하는 길’을 열어가기 위한 길, 그것이 정치의 도(道)이다. 그것은 바로 소통(疏通)의 길, 인화(人和)의 길이다.
공자는 "도가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으니, 사람이 도를 하는데 사람을 멀리하면, 가히 도라 할 수 없다."(『중용(中庸)』 제13장 “子曰道不遠人하니 人之爲道而遠人이면 不可以爲道니라.)고 하였다. 아무리 이상적인 목표가 있더라도 소통(疏通)과 인화(人和)가 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바람직한 이상세계는 관념(觀念)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야 하는 길’을 가는 인간(人間)의 실존(實存)에 있기 때문이다.
맹자(孟子)는 전쟁(戰爭)이라는 상황을 빗대어서 “천시(天時)가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가 인화(人和)만 못하다.”(孟子曰 天時不如地利요 地利不如人和니라.)고 하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사실 이 문장의 맥락에서 핵심은 “도(道)를 얻은 자는 도와주는 이가 많고, 도(道)를 잃은 자는 도와주는 이가 적다. 도와주는 이가 적음의 지극함에는 친척이 배반하고, 도와주는 이가 많음의 지극함에는 천하가 순종하는 것이다.”(得道者는 多助하고 失道者는 寡助라 寡助之至에는 親戚畔之하고 多助之至에는 天下順之니라)라는 문장이다. 여기에서의 도(道)는 바로 소통(疏通)과 인화(人和)의 도(道)이다.
비단 정치에서뿐이겠는가? 인간이 살아가면서 펼쳐지는 모든 관계의 핵심은 소통과 인화에 있다고 할 것이다.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현대 과학문명시대에 소통(疏通)과 인화(人和)의 길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孟子』 [公孫丑章句下 1]
孟子曰 天時不如地利요 地利不如人和니라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천시(天時)가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가 인화(人和)만 못하다.
三里之城과 七里之郭을 環而攻之而不勝하나니 夫環而攻之에 必有得天時者矣언마는 然而不勝者는 是天時不如地利也니라
3리(里)되는 성(城)과 7리(里) 되는 곽(郭, 外城)을 포위 공격하여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포위 공격하면 반드시 천시(天時)를 얻을 때가 있으련마는 그런데도 이기지 못함은, 이는 천시(天時)가 지리(地利)만 못한 것이다.
城非不高也며 池非不深也며 兵革이 非不堅利也며 米粟이 非不多也로되 委而去之하나니 是地利不如人和也니라
성(城)이 높지 않은 것도 아니며, 못이 깊지 않은 것도 아니며, 병기와 갑옷이 견고하고 예리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쌀과 곡식이 많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이것을 버리고 떠나가니, 이는 지리(地利)가 인화(人和)만 못한 것이다.
故로 曰 域民하되 不以封疆之界하며 固國하되 不以山谿之險하며 威天下하되 不以兵革之利니 得道者는 多助하고 失道者는 寡助라 寡助之至에는 親戚畔之하고 多助之至에는 天下順之니라
그러므로 옛말에 이르기를 ‘백성을 한계짓되 국경의 경계로써 하지 않으며, 국가를 견고히 하되 산과 강의 험고(險固)함으로써 하지 않으며, 천하를 두렵게 하되 병혁(兵革)의 예리함으로써 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도(道)를 얻은 자는 도와주는 이가 많고, 도(道)를 잃은 자는 도와주는 이가 적다. 도와주는 이가 적음의 지극함에는 친척이 배반하고, 도와주는 이가 많음의 지극함에는 천하가 순종하는 것이다.
以天下之所順으로 攻親戚之所畔이라 故로 君子有不戰이언정 戰必勝矣니라
천하가 순종하는 바로써 친척이 배반하는 바를 공격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싸우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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