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설시원리와 역(易)의 원리와의 관계, 설시원리와 사상(四象)과의 관계, 설시원리에 내재된 확률의 문제 그리고 예측판단원리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서죽(筮竹) 또는 시초(蓍草) 50 가지로 펼쳐지는 설시원리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연법의 원상으로 태극·양의·사상·팔괘로 분화되어 나아가는 역(易)의 원리와 그대로 부합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49 가지로 실질적으로 펼쳐지는 수리에 있어 사상수 및 사상책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도 살펴보았다. 애초에 이 설시법을 누가 창안했는지에 대하여는 고증할 길이 없다. 오랜 세월을 통해 복관(卜官)들에 의해 이루어진 다양한 방법들이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정제되면서 어느 순간 복서(卜筮)에 밝은 누군가에 의해 설시법이 완성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설시법을 오늘날의 통계방법에 의한 확률로 볼 때, 확률상의 불균형이 있다는 점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이 실질적으로 변화하고 발전되어 가는 양상이 확률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확률이란 세상이 변화해 나갈 수 있는 모든 현상을 추출하여 평균화시킨 가상적인 수치이다. 때문에 오히려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되고 있는 확률 자체가 현상의 실질(實質)에서 벗어난 가설(假說)에 불과한 것이다.
『주역』에서의 점, 즉 설시(揲蓍)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사유체계의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즉, 의식(意識)과 무의식(無意識), 도구이성(道具理性)과 명상이성(冥想理性), 정신세계와 물질세계의 양자를 아우르는 종합체계로 파악해야만 설시를 비롯한 『역경(易經)』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 융(C. G. Jung)은 그의 심리학 이론의 근거로 『주역』과 점(占)의 원리를 원용하기도 하였다.
대연지수 50과 천지절도수 49로 이루어지는 설시(揲蓍)는 인간계(人間界)와 신명계(神明界)를 연결하는 통로이며, 본체계와 현상계를 연결하는 끈이다. 또한 어떤 사건과 상황을 종합적으로 묘사하는 지도(地圖)가 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지침(指針)이 되며, 나와 우리를 연결하고 상대적인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설시를 통하여 나타난 결과가 굳이 설시를 하지 않고 객관적 이성으로 판단한 것과 동일하거나 유사하게 나오는 경우도 많다. 이것은 그만큼 설시가 매우 정확하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신비로움이 있기 때문에 「계사상전」 제9장에서는 설시(揲蓍)의 묘용(妙用)을 “… 도를 나타내고 덕행을 신비스럽게 하는 까닭으로 가히 (신과) 더불어 수작할 수 있으며, 더불어 신을 도울 수 있으니, 공자 이르길 변화의 도를 아는 자는 그 신의 하는 바를 알 것이다.”(… 顯道 神德行 是故 可與酬酌 可與祐神矣 子曰 知變化之道者 其知神之所爲乎)라고 하였다.
또한 「계사상전」 제10장에는 설시(揲蓍)의 신묘함을 표현한 다음의 글이 있다. 이 글은 대단히 의미있고 『주역』을 공부함에 있어 중요한 교훈이 되는 글이다.
【繫辭上傳 제 10 장】
易有聖人之道 四焉하니 以言者는 尙其辭하고 以動者는 尙其變하고 以制器者는 尙其象하고 以卜筮者는 尙其占하나니 是以君子 將有爲也하며 將有行也에 問焉而以言하거든 其受命也 如嚮하야 无有遠近幽深히 遂知來物하나니 非天下之至精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역(易)에 성인의 도가 넷 있으니, 말로 하는 자는 그 말을 숭상하고, 움직임으로 하는 자는 그 변함을 숭상하고, 그릇을 만드는 자는 그 상을 숭상하고, 복서(점)를 하는 자는 그 점을 숭상하니, 이로써 군자가 장차 하고자 함이 있으며 장차 행하고자 함이 있음에, 물어서 (신이) 말을 하거든, 그 명을 받음이 울리는 것 같아서, 먼 데나 가까운 데나 그윽한 데나 깊은 데나 할 것 없이 드디어 오는 물건(일·상황)을 아니, 천하의 지극한 정미로움이 아니면 그 누가 이에 참여하겠는가!
參伍以變하며 錯綜其數하야 通其變하야 遂成天地之文하며 極其數하야 遂定天下之象하나니 非天下之至變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3과 5로써 변하며, 그 수를 착종하여 그 변함을 통해서 드디어 천지의 무늬를 이루며, 그 수를 극해서 드디어 천하의 상을 정하니, 천하의 지극한 변함이 아니면 그 누가 능히 이에 참여하겠는가!
易은 无思也하며 无爲也하야 寂然不動이라가 感而遂通天下之故하나니 非天下之至神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역(易)은 생각도 없으며 함도 없어서,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느껴서 드디어 천하의 연고에 통하니, 천하의 지극한 신이 아니면 그 누가 능히 이에 참여하겠는가!
夫易은 聖人之所以極深而硏幾也니 唯深也 故로 能通天下之志하며 唯幾也 故로 能成天下之務하며 唯神也 故로 不疾而速하며 不行而至하나니 子曰 易有聖人之道四焉者 此之謂也라.
무릇 역(易)은 성인이 이로써 깊은 것을 지극히 하고 기미를 연구함이니, 오직 깊은 까닭으로 능히 천하의 뜻을 통하며, 오직 기밀한 까닭으로 능히 천하의 일을 이루며, 오직 신비스러운 까닭으로 빨리 아니해도 빠르며 행하지 아니해도 이르니, 공자께서 말한 ‘역에 성인의 도가 넷이 있다’고 함은 이를 일컫는 것이다.
※ 신성수, 『주역통해』(대학서림, 2005), 95∼98쪽; 신성수, 『현대주역학개론』(대학서림, 2007), 226∼229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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