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4괘 배열원리로서의 도전괘와 배합괘
현행본 『주역』은 상경 30괘와 하경 34괘로 구분되어 있는데, 첫 번째 괘인 중천건(重天乾)괘로부터 마지막 64번째 괘인 화수미제(火水未濟)괘에 이르기까지의 괘상(卦象)을 보면 1·2(건·곤), 3·4(둔·몽), 5·6(수·송) … 61·62(중부·소과), 63·64(기제·미제)와 같이 둘씩 짝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두 괘씩 짝을 맞추는 기본방식은 도전괘(倒顚卦)와 배합괘(配合卦)의 원리이다.
1) 도전괘
일반적으로 6효(爻)로 이루어진 괘는 아래로부터 위로, 즉 맨 아래를 초효(初爻)로 하고 맨 위를 상효(上爻)로 보아 괘상(卦象)을 판단한다. 그런데 보는 방향을 거꾸로 하여 맨 위를 초효로 보고 맨 아래를 상효로 볼 경우에 기본적인 괘상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본괘(本卦)를 거꾸로 보아서 이루어지는 괘를 도전괘라고 한다. 이 경우의 괘상을 보면 초효 2효 3효 4효 5효 상효의 여섯 효를 그 중간이 되는 3효와 4효 사이를 접어서 합할 경우 괘상이 다르게 되어 비대칭구조를 이루게 된다.
예를 들면 64괘 가운데 3번째인 수뢰둔(水雷屯)괘와 4번째인 산수몽(山水蒙)괘는 짝이 되는데, 수뢰둔괘를 거꾸로 보면 산수몽괘가 되고 산수몽괘를 거꾸로 보면 수뢰둔괘가 되어 서로 도전괘 관계로 짝이 되고 있다.
2) 부도전괘의 배합괘 관계
본괘를 거꾸로 보아도 같은 괘상으로 나오는 경우를 부도전괘(不倒顚卦)라고 하는데, 이 경우의 괘상을 보면 초효 2효 3효 4효 5효 상효의 여섯 효를 그 중간이 되는 3효와 4효 사이를 접어서 합할 경우 괘상이 똑같게 되어 대칭구조를 이루게 된다. 이렇게 부도전괘로 되는 괘가 64괘 가운데 모두 여덟 괘가 나오는데, 이 부도전괘들은 모두 배합괘로 짝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도전해 보아도 같은 괘로 나오는 경우로는, 상경에 중천건(重天乾) 중지곤(重地坤), 산뢰이(山雷頤) 택풍대과(澤風大過), 중수감(重水坎) 중화리(重火離)의 6괘가 있고 하경에 풍택중부(風澤中孚) 뇌산소과(雷山小過)의 2괘가 있어 모두 여덟 괘가 된다. 이러한 괘의 괘상을 보면 모두 기하학적으로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괘를 ‘부도전괘(不倒顚卦)’라고 한다.
64괘 가운데 부도전괘가 되는 여덟 괘는 모두 배합괘 관계로 짝을 맞추고 잇는데, 배합괘(配合卦)란 본괘의 모든 효의 음양관계를 바꿔 놓은 괘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배합괘 관계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부도전괘 여덟 괘가 각각 배합괘 관계로 짝이 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2. 상경 30괘와 하경 34괘의 균형
『주역』경전은 상경과 하경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상경은 30괘로 되어 있고 하경은 34괘로 되어 있다. 상경과 하경이 각각 32괘로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각각 30괘와 34괘로 되어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작역자(作易者)의 의도를 알 수 없는 한 확실하게 추론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기에 상경 30괘 하경 34괘로 불균형한 상태에 있는 것 같아도, 그 이면을 보면 상경과 하경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도전괘와 배합괘의 구조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상경 30괘 가운데 도전괘 관계로 짝이 되고 있는 괘로는 둔(屯) 몽(蒙), 수(需) 송(訟), 사(師) 비(比), 소축(小畜) 리(履), 태(泰) 비(否), 동인(同人) 대유(大有), 겸(謙) 예(豫), 수(隨) 고(蠱), 임(臨) 관(觀), 서합(噬嗑) 비(賁), 박(剝) 복(復), 무망(无妄) 대축(大畜) 등 모두 24괘가 있고, 부도전괘이기 때문에 배합괘 관계로 짝이 되고 있는 괘로는 건(乾) 곤(坤), 이(頤) 대과(大過), 감(坎) 리(離) 등 모두 6괘가 있다. 그런데 도전괘 관계로 짝이 되고 있는 괘들은 한 괘만 놓고 도전하면 두 괘가 되기 때문에 도전괘 24괘는 12괘로 축약된다. 따라서 상경은 도전괘 12괘와 부도전괘 6괘가 되어 18괘로 된다.
한편 하경 34괘 가운데 도전괘 관계로 짝이 되고 있는 괘로는 함(咸) 항(恒), 돈(遯) 대장(大壯), 진(晉) 명이(明夷), 가인(家人) 규(睽), 건(蹇) 해(解), 손(損) 익(益), 쾌(夬) 구(姤), 취(萃) 승(升), 곤(困) 정(井), 혁(革) 정(鼎), 진(震) 간(艮), 점(漸) 귀매(歸妹), 풍(豐) 려(旅), 손(巽) 태(兌), 환(渙) 절(節), 기제(旣濟) 미제(未濟) 등 모두 32괘가 있으며, 부도전괘이기 때문에 배합괘로 짝이 되고 있는 괘로는 중부(中孚) 소과(小過)의 두 괘가 있다. 상경에서와 마찬가지로 도전괘 관계로 짝이 되고 있는 괘들은 한 괘만 놓고 도전하면 두 괘가 되기 때문에 도전괘 32괘는 16괘로 축약된다. 따라서 하경은 도전괘 16괘와 부도전괘 2괘가 되어 18괘로 된다.
결국 상경 30괘는 도전괘 12괘와 부도전괘 6괘로 모두 18괘가 되며, 하경 34괘는 도전괘 16괘와 부도전괘 2괘로 되어 역시 18괘가 되니, 상경과 하경은 각각 18괘로 같게 되어 균형을 이루게 된다.
3. 『주역』 64괘의 유기적 관계와 상경·하경의 의미
1) 『주역』 64괘의 유기적 관계
자연의 원리에 바탕을 둔 선천팔괘와 후천팔괘를 근거로 하여 64괘가 형성되는 방식에는 선천팔괘상중방식, 후천팔괘상중방식, 선천·후천상교방식의 세 가지가 있다. 이것은 그야말로 대자연의 음양기운의 양상에 근거를 둔 64괘의 변화양상이다.
그런데 현행본 『주역』경문의 64괘 배열은 이러한 자연한 순서에 입각하지 않고, 작역자(作易者)의 역사관과 철학이 반영되어 배열되어 있다. 기본팔괘(☰ ☱ ☲ ☳ ☴ ☵ ☶ ☷)가 순서를 달리할 수 있는 총 경우의 수가 40,320가지 (8×7×6×5×4×3×2×1)가 되듯이, 대성괘 64괘가 각각 순서를 달리할 수 있는 총 경우의 수는 64×63×62×61×60×…×4×3×2×1에 이르는 거의 무한대의 경우로 나가게 된다.
이렇게 무한대에 이르는 64괘 배열의 경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행본 『주역』의 괘 순서는 어떠한 원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가? 『주역』상경 30괘와 하경 34괘의 배열은 기계적이고 자연한 순서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작역자(作易者)의 역사관과 철학적 가치관 및 미래관에 입각하여 우주창조로부터 시작하는 인류사의 흐름과 국가사회적 변화양상 그리고 지구환경의 변화양상, 사회적 관계에서의 인간의 변화원리 등에 기초하여 64괘를 배열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64괘의 각 괘체(卦體)는 각각 고유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64괘의 전체적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즉 64괘라는 전체에서 각 괘는 1/64에 해당하는 하나의 부분이지만 각 괘에는 64괘 전체의 원형을 간직하여 64괘 상호간에 유기적인 관계성을 나타내고 있다. 결국 음양 6단 구조의 64괘가 모두 태극(太極)에서 분화되었기 때문에 각 괘에는 근원성을 의미하는 태극의 인자(因子)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2) 『주역』 상경과 하경의 의미
상경(上經)과 하경(下經)의 의미를 단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64괘의 모든 괘체에는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의 다양한 의미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경은 선천(先天)이고 하경은 후천(後天)이라는 비교, 상경은 형이상적이고 하경은 형이하적이라는 비교, 상경은 천도(天道)이고 하경은 인사(人事)라고 하는 비교 등은 어느 정도 부합하는 면도 있지만 절대적인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주역』상경과 하경의 단적인 비교를 해 보면, 상경은 천지부모인 중천건(重天乾)괘와 중지곤(重地坤)괘로부터 시작하고, 하경은 청춘남녀가 교감하여 가정을 꾸리는 택산함(澤山咸)괘와 뇌풍항(雷風恒)괘로부터 시작한다는 점이다.
대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주역』 상경은 거대한 인류역사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원리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본성회복원리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면, 『주역』 하경은 상경에 내재된 원리를 비교적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아울러 인류역사의 미래관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 신성수, 『주역통해』(대학서림, 2005), 64∼65쪽; 신성수, 『현대주역학개론』(대학서림, 2007), 145∼151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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