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희선천팔괘·문왕후천팔괘의 명칭과 유래
1) 복희선천팔괘(伏羲先天八卦)의 명칭과 유래
『주역』계사하전 제2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옛적에 포희씨가 천하에 왕을 할 적에 우러러서는 하늘의 형상을 보고, 구부려서는 땅의 법을 보며, 새와 짐승의 무늬와 땅의 마땅함을 보며, 가까이는 저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저 물건에서 취하여, 이에 비로소 팔괘를 지음으로써 신명의 덕을 통하며 만물의 실정을 같이 하니, …
古者包犧氏之王天下也에 仰則觀象於天하고 俯則觀法於地하며 觀鳥獸之文과 與地之宜하며 近取諸身하고 遠取諸物하야 於是에 始作八卦하야 以通神明之德하며 以類萬物之情하니 …
복희(伏犧․包犧)는 중국 고대 삼황오제(三皇: 복희․신농․황제, 五帝: 소호․전욱․제곡․요․순)시대에 해당하는 성인으로 약 5000여년전에 지금의 황하유역에서 용마(龍馬)가 짊어지고 나왔다는 하도(河圖)에서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팔괘(八卦)를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를 복희팔괘라고 한다. 그러나 팔괘(八卦)를 복희씨가 지었다는 전통적인 입장에 대하여 여러 문헌과 고증을 통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취하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팔괘(八卦)가 『주역』의 상징적인 원상(原象)이기에 유가(儒家)의 조종(祖宗)으로 일컫고 있는 복희씨의 이름을 빌려 ‘복희팔괘’라 한 것으로 추론한다. 그리고 복희팔괘를 선천(先天)팔괘라고 하는 이유는, 태극에서 양의․사상․팔괘로 분화되어 나타나는 유일한 차서이고 또한 이른바 문왕후천팔괘와 대비하여 이를 선천팔괘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온 '복희선천팔괘‘라는 명칭 대신에 〈선천팔괘〉로 명명하고자 한다.
2) 문왕후천팔괘(文王後天八卦)의 명칭과 유래
문왕(文王)은 지금으로부터 약 3100여년전 중국 은(殷)나라 말기 주(周)나라 초기의 성인으로, 은나라 말기에 서쪽 제후(西伯)로 있었는데 문왕이 선정(善政)을 베풀어 민심(民心)이 문왕에게 기울자, 폭군인 주왕(紂王)이 이를 두려워하여 문왕을 유리(羑里) 지방에 있는 옥(獄)에 가두었다고 한다. 문왕은 옥중생활을 하면서 은나라 이전인 하(夏)나라 우(禹)임금이 다스릴 때(약 4,200여년전) 출현한 낙서(洛書)의 이치를 깨달아 복희팔괘의 배열을 달리 한 팔괘를 지었는데, 이를 문왕팔괘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인 입장에 대해서도 복희팔괘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설(異說)이 있다. 아마도 문왕이 주나라때 역(易)을 체계화시킨 상징적인 인물로 보아 복희팔괘보다 뒤에 나온 팔괘를 문왕팔괘라 하고, 또한 복희선천팔괘보다 뒤에 나왔기에 후천팔괘라고 명명한 것으로 추론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온 ‘문왕후천팔괘’라는 명칭 대신에 〈후천팔괘〉로 명명하고자 한다.
2. 지구의 공간적 양상과 선천팔괘(先天八卦)의 원리
선천팔괘와 후천팔괘의 괘 배열이 다른 이유는 선천팔괘가 공간적 양상을 표현한 원리라면 후천팔괘는 공간의 변화양상(시간)에서 펼쳐지는 계절 기후의 변화원리에 맞추어 괘 배열을 달리했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앞서 역(易)의 원리에서 태극에서 양의·사상·팔괘로 펼쳐지는 자연한 기운의 양상을 「기본팔괘」로 살펴본 바 있다. 이 「기본팔괘」를 원도(圓圖)로 돌리게 되면, 하루의 자전주기에서 나타나는 음양기운의 양상이나 1년 공전주기에서 나타나는 음양기운의 양상이 선천팔괘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음양기운의 자연한 현상을 드리운 선천팔괘는 또한 어느 시점에서나 펼쳐지는 공간적(空間的) 양상을 드리우게 된다.
그래서 선천팔괘를 보면, 상하좌우 정방위(正方位)에 상하에는 천지(天地)를 의미하는 건(乾☰)·곤(坤☷)이 정위하고 좌우에는 일월(日月)을 의미하는 리(離☲)·감(坎☵)이 운행하는 천문적(天文的)인 형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간방위(間方位)에는 산과 연못을 의미하는 간(艮☶)·태(兌☱)가 통기하여 우뢰와 바람을 일으키는 진(震☳)·손(巽☴)이 자리하는 지리적(地理的)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선천팔괘는 천문지리(天文地理)적인 공간(空間)성을 표상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원리를 『주역』 설괘전 제3장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하늘과 땅이 자리를 정함에 산과 못이 기운을 통하며, 우레와 바람이 서로 부딪치며, 물과 불이 서로 쏘지 아니하여 팔괘가 서로 섞이니, 가는 것을 헤아리는 것은 순하고 오는 것을 아는 것은 거스르는 것이니, 이런 까닭으로 역은 거슬러 헤아림이라.
天地 正位에(하며) 山澤이 通氣하며 雷風이 相薄하며 水火 不相射하야 八卦相錯하니 數往者는 順코 知來者는 逆하니 是故로 易은 逆數也라.
3. 지구의 시간적 양상과 후천팔괘(後天八卦)의 원리
1) 후천팔괘의 계절성과 방위성
한편 후천팔괘는 팔괘의 속성을 바탕으로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나타나는 공간의 변화양상을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四時)변화의 원리에 맞추어 괘 배열을 달리한 것이다. 즉, 후천팔괘는 선천팔괘의 건(乾☰)․곤(坤☷)을 대행한 감(坎☵)·리(離☲)가 체가 되어, 일월(日月)의 운행에 따른 기후의 변화작용에 근원을 둔 시간적․계절적 변화의 상을 보여주고 있다.
정방위에 있는 진(震☳)·리(離☲)·태(兌☱)·감(坎☵)은 각각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四時)한서(寒暑)의 기운을 표상하여, 봄(春生 ☳)·여름(夏長 ☲)·가을(秋收 ☱)·겨울(冬藏 ☵)의 이치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후천팔괘는 전체적으로 공간이 이동하면서 나타나는 계절적 변화, 즉 시간성을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후천팔괘는 계절성과 방위성의 두가지 요소를 동시에 지니게 된다. 선천팔괘의 괘체(卦體)는 상하좌우(上下左右)의 공간적 개념으로 설명함이 타당하며, 후천팔괘의 괘체는 동서남북(東西南北)의 방위와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시간적 개념으로 설명함이 타당하다.
이러한 원리에 바탕하여 『주역』설괘전 제 5장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제(帝)가 진(震)에서 나와서, 손(巽)에서 가지런히 하고, 리(離)에서 서로 보고, 곤(坤)에서 역사를 이루고, 태(兌)에서 기뻐 말하고, 건(乾)에서 싸우고, 감(坎)에서 위로하고, 간(艮)에서 이루느니라(帝 出乎震하야 齊乎巽하고 相見乎離하고 致役乎坤하고 說言乎兌하고 戰乎乾하고 勞乎坎하고 成言乎艮하니라).
만물이 진(震)에서 나오니 진은 동방이라(萬物이 出乎震하니 震은 東方也라).
손(巽)에서 가지런히 하니, 손은 동남이니, ‘제(齊)’라는 것은 만물이 깨끗하게 가지런히 하는 것을 말함이라(齊乎巽하니 巽은 東南也니 齊也者는 言萬物之潔齊也라).
리(離)라는 것은 밝음이니, 만물이 다 서로 보기 때문이니, 남방의 괘이니, 성인이 남쪽을 향해 천하를 들어서 밝은 것을 향하여 다스리니, 다 이것에서 취함이라(離也者는 明也니 萬物이 皆相見할새니 南方之卦也니 聖人이 南面而聽天下하야 嚮明而治하니 蓋取諸此也라).
곤(坤)이란 것은 땅이니, 만물이 모두 기름을 이루기 때문에, ‘역사가 곤에서 이루어진다’고 함이라(坤也者는 地也니 萬物이 皆致養焉할새 故로 曰致役乎坤이라).
태(兌)는 바로 가을이니, 만물의 기뻐하는 바이기 때문에, ‘태에서 기뻐 말한다’고 함이라(兌는 正秋也니 萬物之所說也일새 故로 曰說言乎兌라).
‘건(乾)에서 싸운다’ 함은, 건은 서북의 괘이니, 음과 양이 서로 부딪침을 말함이라(戰乎乾은 乾은 西北之卦也니 言陰陽相薄也라).
감(坎)은 물이니, 정북방의 괘이니, 수고로움을 위로하는 괘이니, 만물이 돌아가는 바이기 때문에, ‘감에서 위로한다’고 함이라(坎者는 水也니 正北方之卦也니 勞卦也니 萬物之所歸也일새 故로 曰勞乎坎이라).
간(艮)은 동북의 괘이니, 만물이 마침을 이루는 바요, 시작함을 이루는 바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간에서 이루어진다’고 함이라(艮은 東北之卦也니 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일새 故로 曰成言乎艮이라).
2) 후천팔괘의 오행성(五行性)
후천팔괘는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의 변화에 따라 괘를 배열한 것이기 때문에, 오행성(五行性)이 나오게 된다. 즉, 동방(봄)의 진(震☳)은 양목(陽木)이고 동남방의 손(巽☴)은 음목(陰木)이며, 남방(여름)의 리(離☲)는 화(火)이고, 서남방의 곤(坤☷)은 음토(陰土)이며, 서방(가을)의 태(兌☱)는 음금(陰金)이고 서북방의 건(乾☰)은 양금(陽金)이며, 북방(겨울)의 감(坎☵)은 수(水)이며, 동북방의 간(艮☶)은 음토(陰土)의 기운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해서 팔괘의 오행성은 바로 후천팔괘의 원리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는 계절이 봄·여름·가을·겨울로 순행하는 상생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동북방의 간(艮☶)을 중심으로 하여 동방의 진(震☳)과 북방의 감(坎☲)의 관계는 상극관계임을 볼 수 있다. 간(艮)은 설괘전 제5장에 “만물의 마침을 이루는 바가 되고 또한 만물의 비롯함을 이루는 바가 된다”(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라고 한 바와 같이 만물의 마침과 비롯함에 중요한 작용을 하는 괘인데, 이러한 작용을 바로 간(艮)을 중심으로 한 오행상극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만물을 마치는 작용은 간(艮☶)의 토(土)가 감(坎☲)의 수(水)를 극하는 작용으로 이루어지며, 만물을 비롯하는 작용은 진(震☳)의 목(木)이 간(艮☶)의 토(土)를 극하는 작용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오행작용의 이치에서 볼 때 후천팔괘는 간(艮)의 양토(陽土)와 곤(坤)의 음토(陰土)가 상호 대대하는 축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음(陰)이 극성한 겨울에서 양(陽)의 봄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는 간(艮)의 양토(陽土)가 중요한 작용을 하고, 양이 극성한 여름에서 음의 가을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는 곤(坤)의 음토(陰土)가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후천팔괘와 관련된 내용을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4. 선천팔괘(공간)·후천팔괘(시간)의 조합 : 우주변화의 원상(原象)
선천팔괘는 어느 계절과 방위에서나 공간적으로 펼쳐지는 대자연의 공간(空間)과 지리적(地理的) 원상(原象)을 표현한 것이고, 후천팔괘는 그러한 공간의 변화에서 나타나는 계절적 변화 즉 시간적(時間的) 양상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자연히 우주변화의 원리는 선천팔괘와 후천팔괘의 조합을 통해서 그 온전한 원상(原象)이 드리워지게 된다.
즉 후천팔괘가 표상하는 계절·방위의 어느 시점에서나 항상 선천팔괘의 공간적 양상은 그대로 펼쳐지는 것이기 때문에, 후천팔괘의 각 팔방(八方)·계절(季節)에 선천팔괘의 공간적 상은 여여(如如)한 것이다. 따라서 후천팔괘의 각 괘를 체(體)로 하여 선천팔괘를 각각 공간적으로 배열하면, 우주변화의 원상(原象)이 이루어지고, 이렇게 되면 팔괘가 서로 거듭하여 나타나는 6효로 이루어진 대성괘(大成卦) 64괘의 조합이 자연히 드러나게 된다. 결국 64괘 384효는 우주자연의 변화원리를 드러낸 대자연의 원상(原象)이 되는 것이다.
※ 신성수, 『주역통해』(대학서림, 2005), 46∼55쪽; 신성수, 『현대주역학개론』(대학서림, 2007), 106∼125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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