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의
새로운 시대에 명을 베풀어 새로운 사회적 기틀을 만들어가는 데는 각자의 자리와 역할을 바르게 하고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해야 한다(正位凝命).
괘명과 괘상
외괘가 이화(離火)☲, 내괘가 손풍(巽風)☴으로 이루어진 괘를 ‘정(鼎)’이라 한다. 화풍정(火風鼎)괘는 솥의 형상을 바탕으로 그 기운의 양상을 표현하고 있다. 인간이 먹을 밥을 짓기 위해서는 솥에 물과 쌀을 넣고 불을 지펴서 익혀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솥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에 맡게 사회의 모든 요소를 불로 담금질하여 익혀야 한다.
인간이 새로운 명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세를 바로 하고 하늘로부터 받은 명을 잘 응결하여야 한다. 택화혁(澤火革)괘의 혁명(革命)은 화풍정(火風鼎)괘의 응명(凝命)을 통하여 완성되는 것이다.
서괘
「서괘전」은 택화혁괘 다음에 화풍정괘가 온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革物者 莫若鼎이라 故로 受之以鼎하고
혁물자 막약정 고 수지이정
물건을 고치는 것은 솥만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정괘(鼎卦)로써 받고
莫:없을 막 若:같을 약
솥은 쌀을 밥으로 만들어내듯이, 물건을 새롭게 고쳐내는 대표적인 그릇이다. 그래서 택화혁(澤火革)괘 다음에 솥을 형상한 화풍정(火風鼎)괘를 둔 것이다.
괘사
鼎은 元(吉)亨하니라.
정 원(길)형
정(鼎)은 크게 (길하여) 형통하다.
鼎:솥 정·바야흐로 정
인간이 먹을 수 있게 밥을 만들어 내며, 인간이 사회에서 잘 살아가게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고 명(命)을 응결하는 화풍정(火風鼎)괘는 크게 형통하다. ‘길(吉)’자는 필요 없는 글자이므로 해석하지 않는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鼎은 象也니 以木巽火 亨飪也니
단왈 정 상야 이목손화 팽임야
聖人이 亨하야 以享上帝하고 而大亨하야 以養聖賢하니라.
성인 팽 이향상제 이대팽 이양성현
巽而耳目이 聰明하며 柔進而上行하고 得中而應乎剛이라.
손이이목 총명 유진이상행 득중이응호강
是以元亨하니라.
시이원형
단전에 말하였다. “정(鼎)은 형상이니, 나무로써 불을 들여서 밥을 삶으니, 성인이 삶아서 상제께 제사올리고, 크게 삶아서 성현을 기른다. 겸손하고 귀와 눈이 총명하며, 유(柔)가 나아가 위로 행하고 중을 얻어 강(剛)에 응하고 있다. 이로써 크게 형통한 것이다.”
象:코끼리 상·모양 상 巽:들일 손·공손할 손 亨:형통할 형·제사드릴 향(享)·삶을 팽(烹) 飪:익힐 임 聰:귀밝을 총
정괘(鼎卦)는 솥의 형상과 같다. 초효 음은 솥발이고, 이효․삼효․사효의 양은 솥의 몸체로 음식을 담는 곳이 되고, 오효 음은 솥을 잡는 귀가 되며, 상효 양은 솥뚜껑의 고리가 된다. 또한 솥으로 음식을 삶는 원리는 내괘 손풍(巽風)☴의 나무로 외괘 이화(離火)☲의 불을 들여서 밥을 삶는다.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성인(聖人)이 음식을 삶아서 상제께 제사를 올리고, 또한 크게 삶아서 성인과 현인을 길렀다. 괘덕(卦德)을 보면 내괘 손풍☴으로 겸손하고 외괘 이화☲로 귀와 눈이 총명한 상이다. 또한 부드러운 음(陰) 기운이 아래에서 나아가 위로 행하여 외괘에서 중을 얻어 아래 구이의 양(陽)과 응하니, 이로써 형통하다.
‘柔進而上行 得中而應乎剛’은 괘변(卦變)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솥에서 음식이 삶아지는 원리를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솥 안에 물과 쌀을 넣고 아래에 불을 지펴 끓이면 물(陰)이 끓으면서 수증기를 내며 위로 오르게 된다. 솥 위의 육오효 음 자리에서 부글부글 끓으면서 아래 솥 안이 되는 구이효의 양(陽) 즉 음식과 잘 응하여 조율이 되니 맛있는 음식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이 음식을 삶아 제사를 올리고 성현을 기르는 것도 위와 아래가 잘 조응(調應)이 되어야 한다. 그 기운은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 즉 제사를 올리는 성인의 마음이 아래로부터 하늘의 상제(上帝)에 이르러, 상제와 아래에 있는 성인이 잘 조응되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성현의 마음과 정성에도 잘 조응되어야 한다.
괘상사
象曰 木上有火 鼎이니 君子 以하야 正位하야 凝命하나니라.
상왈 목상유화 정 군자 이 정위 응명
상전에 말하였다. “나무 위에 불이 있는 것이 정(鼎)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자리를 바로해서 명을 엉긴다.”
凝:엉길 응
내괘 손풍(巽風)☴의 나무 위에 외괘 이화(離火)☲의 불이 있는 기운의 양상으로 음식을 익히는 것이 솥의 원리이다. 나무로 불을 지피고 그 위에 솥을 올려 음식을 삶으니, 이러한 상을 보고 군자는 솥이 바르게 자리하여 음식을 잘 익게 하듯이, 자리(자세)를 바르게 하고 천명(天命)을 잘 엉기게 한다.
효사 및 효상사
初六은 鼎이 顚趾나 利出否하니 得妾하면 以其子无咎리라.
초육 정 전지 이출비 득첩 이기자무구
초육은 솥이 발이 엎어지나 비색한 것을 내놓음이 이로우니, 첩을 얻으면 그 자식으로써 허물이 없을 것이다.
顚:머리 전·넘어질 전·뒤집힐 전 趾:발 지 否:아닐 부·악할 비·막힐 비·비색할 비
초육은 정괘(鼎卦)에 있어 맨 아래에 해당하니 솥발에 해당한다. 그런데 솥으로 음식을 하는 순서에 있어서는 솥을 깨끗하게 닦아내는 처음에 해당한다. 밥을 하기 전에 솥을 깨끗하게 청소하기 위해 솥을 엎어놓고 속에 있는 비색한 것을 밖으로 내놓는다.
혁명(革命)을 하고 새로운 명을 엉기게 하는데(凝命), 먼저 해야 할 일은 구태의연한 악습(惡習)을 제거하는 것이다.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으라’고 했다. 그리고 옛날 가도(家道)로 보면, 본처(本妻)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첩(妾)을 얻어서라도 자식을 낳으니, 가문의 대(代)를 잇게 되어 허물이 없는 것과 같다.
象曰 鼎顚趾나 未悖也오 利出否는 以從貴也라.
상왈 정전지 미패야 이출비 이종귀야
상전에 말하였다. “솥이 발이 엎어지나 어그러지지 않는 것이고, 비색한 것을 내놓음이 이로운 것은 귀함을 좇는 것이다.”
悖:어그러질 패 貴:귀할 귀
솥의 발을 엎는 것은 더러운 것을 씻어내 깨끗하게 하기 위한 것이니 도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비색한 것을 닦아내어 구습(舊習)을 제거하는 것은 새로운 귀한 것을 좇기 위한 것이다.
九二는 鼎有實이나 我仇 有疾하니 不我能卽이면 吉하리라.
구이 정유실 아구 유질 불아능즉 길
구이는 솥에 실물이 있으나, 내 짝이 병이 있으니, 나에게 능히 나아가지 못하게 하면 길할 것이다.
實:열매 실·찰 실 仇:짝 구·원수 구·해칠 구 疾:병 질 卽:나아갈 즉
구이는 내괘에서 중(中)을 얻어 음식의 실물이 있는 자리이다. 솥에 음식을 넣고 불로 끓이기 시작하면 불이 닿는 밑바닥이 뜨겁게 달궈지고, 위에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오게 된다. 구이로서는 아래에 있는 초효의 음(陰)과 구이가 응하고 있는 육오의 음(陰)이 신경 쓰인다.
초육의 음(陰)은 아래에서 불이 달궈지니 병이 있는 것이요, 육오의 음은 위에서 뜨거운 김이 나오면서 빨리 삶아지기를 애타게 기다리니, 구이로서는 짝이 되는 음들이 모두 병이 있는 격이다. 그렇지만 구이 실물은 가만히 제자리를 지켜 잘 익혀지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초육과 육오가 구이에게 성급하게 가면 음식이 잘 익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초육과 육오가 구이에게 오지 못하도록 하면 길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짝이 되든 원수가 되든 구이로서는 제자리를 지키고 중도로써 삼가야 한다.
象曰 鼎有實이나 愼所之也니 我仇有疾은 終无尤也리라.
상왈 정유실 신소지야 아구유질 종무우야
상전에 말하였다. “솥에 실물이 있으나 갈 바를 삼가니, 나의 짝이 병이 있음은 마침내 허물이 없을 것이다.”
愼:삼갈 신 尤:허물 우·더욱 우
솥에 있는 실물이 잘 익기 위해서는 급하게 하면 안 된다. 서서히 순리에 맞게 삼가면서 가야 한다. 또한 초효와 오효의 짝이 병이 있는 것은 순리에 맞게 참고 기다리면 결국 잘 익게 되어 허물이 없게 된다.
九三은 鼎耳 革하야 其行이 塞하야 稚膏를 不食하나 方雨하야 虧悔 終吉이리라.
구삼 정이 혁 기행 색 치고 불식 방우 휴회 종길
구삼은 솥귀가 바뀌어서 그 행함이 막혀 꿩 기름을 먹지 못하나, 바야흐로 비가 와서 이지러진 뉘우침이 마침내 길할 것이다.
塞:막힐 색 雉:꿩 치 膏:기름 고·은혜 고 方:바야흐로 방 虧:이지러질 휴·덜 휴 悔:뉘우칠 회
구삼은 양 자리에 양으로 제자리에 있으나, 중(中)을 얻지 못하였다. 정괘(鼎卦)의 구삼효는 앞의 택화혁(澤火革)괘의 구사효와 조응하는 개념이다. 화풍정괘를 도전하면 정괘(鼎卦)의 구삼효가 혁괘(革卦)의 구사효로 된다.
혁괘(革卦) 구사효에 “뉘우침이 없어지니 믿음을 두면 명을 고쳐서 길할 것이다(悔亡하니 有孚면 改命하야 吉하리라)”라고 하였다. 즉 솥귀가 고쳐졌다는 것(鼎耳 革)은 혁명이 되어 이전의 제도가 바뀌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삼이 양 자리에 양으로 실(實)하여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을 얻지 못하였으니, 혁명의 상황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여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 막히게 된 것이다. 즉, 나라에 등용되어 국록(國祿)을 받아먹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때는 바뀌어 새로운 명이 엉기고 있고 구삼 역시 실력이 있는 상태이니, 때가 되면 비가 내리는 나라의 은덕을 받게 되어 후회가 사라지고 마침내 길하게 된다. 구삼이 변하면 지괘(之卦)가 화수미제(火水未濟)가 되니, 신중하게 때를 기다려야 한다.
象曰 鼎耳革은 失其義也일새라.
상왈 정이혁 실기의야
상전에 말하였다. “솥귀가 바뀜은 그 뜻을 잃었기 때문이다.”
구삼이 솥귀가 바뀌는 혁명의 때에 부응하지 못했으니, 원래 가지고 있던 뜻을 잃은 것이다.
九四는 鼎이 折足하야 覆公餗하니 其形이 渥이라 凶토다.
구사 정 절족 복공속 기형 악 흉
구사는 솥이 발이 부러져서 공의 밥을 엎으니, 그 얼굴이 젖는다. 흉하도다.
折:꺾을 절 覆:엎어질 복·뒤집힐 복·덮을 부 餗:솥안음식 속 形:형상 형·얼굴 형·나타날 형 渥:두터울 악·젖을 악
구사는 외괘 대신(大臣)자리에 처하여 있다. 중(中)을 얻지 못하였고 또한 음 자리에 양으로 있으니, 자칫 중도를 잃고 경솔하게 처신할 수가 있다. 대신으로서 육오(公)의 명을 받아 구사가 응하고 있는 초육의 백성에게 일을 시켰는데, 그만 초육이 일을 그르쳐 마치 공(公)의 밥을 엎은 격이 되었다. 그러니 구사 대신의 얼굴이 죄책감에 땀으로 젖으니 흉하다. 인군의 명(命)을 그르쳤으니 믿음을 잃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자(朱子)는 ‘얼굴 형(形)’을 ‘형벌 형(刑)’으로 보고, 또한 ‘젖을 악(渥)’을 ‘목벨 옥(剭)’으로 보아 큰 형벌을 받아 흉하다고 해석하였으나, 그 의미는 같다. 공자(孔子)는 「계사하전」(繫辭下傳) 제5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子曰 德薄而位尊하며 知小而謀大하며 力小而任重하면 鮮不及矣나니 易曰 鼎이 折足하야 覆公餗하니 其形이 渥이라 凶이라하니 言不勝其任也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德)은 낮은데 지위는 높으며, 지혜는 적은데 꾀하는 것은 크며, 힘은 작은데 책임이 무거우면 (禍에) 미치지 않을 이가 적으니, 역(易)에 가로되 ‘솥이 발이 부러져서 공의 밥을 엎으니, 그 얼굴이 젖어 흉하다’라고 하니, 그 책임을 이기지 못함을 말한다.”
象曰 覆公餗하니 信如何也오.
상왈 복공속 신여하야
상전에 말하였다. “공의 밥을 엎으니, 믿음이 어떠하겠는가?”
六五는 鼎黃耳金鉉이니 利貞하니라.
육오 정황이금현 이정
육오는 솥이 누런 귀에 금 고리니 바르게 함이 이롭다.
鉉:솥귀고리 현
육오는 외괘 이화(離火)☲에서 중(中)을 얻은 자리이다. 솥으로 보면 상부(上部) 옆에 누런 솥귀에 달린 금 고리에 해당한다. 정괘(鼎卦)에서는 다른 괘에서와는 달리 육오 자리가 삼공(三公)에 해당하고, 상구효가 왕의 자리에 해당한다.
또한 육오 음(陰)은 내괘의 구이 양(陽)과 잘 응하여 음양기운의 조화로 솥 안의 음식(밥)이 잘 익는 자리이다. 다된 밥이 설지 않도록 더욱 더 바르게 함이 이롭다. 일이 잘 완성되도록 중도(中道)로써 더욱 신중해야 한다.
象曰 鼎黃耳는 中以爲實也라.
상왈 정황이 중이위실야
상전에 말하였다. “솥의 누런 귀는 중(中)으로써 실물이 되는 것이다.”
上九는 鼎玉鉉이니 大吉하야 无不利니라.
상구 정옥현 대길 무불리
상구는 솥이 옥고리니, 크게 길해서 이롭지 않음이 없다.
솥을 상징하는 정괘(鼎卦)의 맨 위에 있는 상구로서, 왕의 자리에 해당한다. 그래서 옥현(玉鉉)이라고 하였다. 음 자리에 양으로 있고 중에서 벗어난 극에 처하여 있으나, 정괘(鼎卦)에서의 상구는 잘 익은 음식을 퍼 올려 먹는 자리가 되니 크게 길한 자리이다. 수풍정(水風井)괘의 상육효와 같은 의미이다.
솥의 옥고리라는 것은 솥을 덮은 뚜껑의 고리를 말한다. 육오에서 음양 기운이 조화되어 밥이 잘 익고, 상구에서는 뚜껑을 열어 밥을 퍼 먹게 되니 크게 길하고 이롭지 않음이 없다. 이렇게 상구에 이르러 길하게 되는 것은 음식 재료를 넣고 물과 불의 조화로 잘 삶았기 때문이다. 즉, 강(剛)과 유(柔)가 잘 조절되어야 밥이 잘 익게 되는 것이다.
국가사회내의 이해집단의 관계, 국가정책과 제도의 실현, 백성의 안녕과 질서 등 이 모든 것이 모두 강(剛)과 유(柔)의 조절작용을 통해서 잘 이루어지게 된다.
象曰 玉鉉在上은 剛柔 節也일새라.
상왈 옥현재상 강유 절야
상전에 말하였다. “옥고리가 위에 있음은 강과 유가 조절되었기 때문이다.”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535∼5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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