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산책/주역

48. 수풍정(水風井)

돈호인 2020. 11. 4. 11:51

 

괘의

경제를 원활하게 하여 나라를 부유하게 하려면 백성을 위로하여 근면하게 하고 서로 돕기를 권장하여야 한다(勞民勸相).

 

괘명과 괘상

외괘가 감수(坎水), 내괘가 손풍(巽風)으로 이루어진 괘를 ()이라 한다. 앞서 살펴 본 택수곤(澤水困)괘와 수풍정(水風井)괘는 표리(表裏)의 관계에 있다. 택수곤괘가 연못에 있는 물이 새어 나가 나라의 재정이 파탄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수풍정괘는 우물을 잘 관리하면 언제나 맑은 물을 마실 수 있듯이 나라 경제를 원활하게 유지할 수 있는 지혜를 알려주고 있다. 수풍정괘는 우물과 샘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백성의 삶을 위한 경제정책을 나타내고 있다.

 

서괘

서괘전은 택수곤괘 다음에 수풍정괘가 온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困乎上者 必反下라 故로 受之以井하고

곤호상자 필반하    고   수지이정

위에서 곤궁한 자는 반드시 아래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정(井)으로 받고

 

지풍승(地風升)괘에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오르기만 하면 결국 근본이 약해져 위에서 곤궁하게 된다. 곤궁하게 되면 항상 근본을 다시 돌아보고 원천적으로 새로운 제도를 정비해야 하니, 아래부터 다시 우물을 만드는 정괘(井卦)로 받았다는 뜻이다.

 

괘사

井은 改邑호대 不改井이니 无喪无得하며 往來 井井하나니

정    개읍      불개정       무상무득       왕래 정정

汔至亦未繘井이니 羸其甁이면 凶하니라.

흘지역미귤정       이기병      흉

정(井)은 고을(邑)은 고치되 우물은 고치지 못하니, 잃는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으며, 가고 오는 이가 우물을 우물로 쓰니, 거의 이름에 또 두레박줄이 우물에 닿지 않으니, 그 두레박(병)을 엎으면 흉하다.

井:우물 정   改:고칠 개   邑:고을 읍   喪:잃을 상   得:얻을 득  汔:거의 흘   亦:또 역   繘:두레박줄 귤(율)

羸:여윌 리·못할 리·엎을 리  甁:두레박 병·병 병

 

  나라의 경제정책이나 도시의 행정구역 및 선거제도와 같이 나라의 틀을 이루는 제도는 고칠 수 있지만, 민생(民生)의 근본이 되는 우물은 고치지 못한다. 우물이라는 것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근본으로 어느 누구나 향유해야 할 권리이다. 따라서 우물과 같은 민생의 근본은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래서 잃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으며, 누구나 오고 가며 물을 마시는 우물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책이란 당장 효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정책은 서서히 집행되어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그 결과가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레박줄이 거의 우물 바닥에 이를 무렵에 성급하게 줄을 당기면 정작 두레박에 물이 없으니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당장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없다고 하여 그 병을 엎으면(깨면) 결국 나라 경제가 망하고 민생이 곤궁해지니 흉하게 된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합의로 이루어진 정책은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안정성 있게 꾸준히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巽乎水而上水 井이니 井은 養而不窮也하니라.

단왈 손호수이상수 정       정   양이불궁야

改邑不改井은 乃以剛中也오 汔至亦未繘井은 未有功也오

개읍불개정    내이강중야    흘지역미귤정    미유공야

羸其甁이라 是以凶也라.

이기병      시이흉야

단전에 말하였다. “물에 들어가서 물을 올리는 것이 정(井)이니, 정(井)은 길러서 궁하지 않는 것이다. ‘고을은 고치되 우물은 고치지 않는다’는 것은 이에 강으로써 가운데 함이고, ‘거의 이르러 또 두레박줄이 우물에 닿지 않음’은 공이 있지 않은 것이고, ‘그 병을 엎는다’ 이로써 흉한 것이다.”

巽:들어갈 손(巽爲入)    上:올릴 상   養:기를 양

 

  물을 마시려면 물이 있는 곳까지 두레박을 들여보내 물을 퍼 올려야 한다. 민생의 안정을 유지하려면 진정 국민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백성과 가까이 하면서 알아내어 그 요구를 들어야 한다. 이렇게 진정한 민생의 요구를 들어주면, 우물물이 마르지 않듯이 국민의 생활에 궁함이 없게 된다.

  ‘읍은 고치되 우물은 고치지 않는다는 말은 정괘(井卦) 구오가 외괘 감수(坎水)에서 중정하게 있듯이, 나라 정책은 누구나 믿고 따를 수 있게 굳세고 강하고 중도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의 이르러 두레박줄이 우물에 닿지 않는다는 것은 정책의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하니 공이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민생()의 필수조건인 두레박을 깨면 결국 나라와 백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흉하게 되는 것이다.

 

괘상사

象曰 木上有水 井이니 君子 以하야 勞民勸相하나니라.

상왈 목상유수 정      군자 이       노민권상

상전에 말하였다. “나무 위에 물이 있는 것이 정(井)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백성을 위로하고 돕는 것을 권한다.”

勞:수고할 로·일할 로·위로할 로   勸:권할 권   相:서로 상·도울 상·정승 상

 

  땅 아래에 나무로 우물을 짜고 위로 물이 모이게 하여 우물을 만들듯이, 국민의 경제를 위해서는 의식주(衣食住)의 기본생활이 안정될 수 있는 정책의 틀을 잘 짜서 경제흐름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경제의 안정과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군자는 항상 백성을 위로하고 서로가 도와가며 열심히 일할 것을 권장한다.

  인간이 자아(自我)를 완성하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모든 집단이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집착하지 말고, 서로가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영자(정치인)는 근로자(백성)를 위로하여 복지혜택을 마련하고, 근로자(백성)는 서로 도와가며 회사(국가)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이 경제의 핵심이라 할 것이다.

 

효사 및 효상사

初六은 井泥不食이라 舊井애 无禽이로다.

초륙    정니불식      구정    무금

초육은 우물이 진흙이어서 먹지 못한다. 오래된 우물에 새가 없도다.

泥:진흙 니   食:먹을 식   舊:옛날(예) 구·오랠 구   禽:날짐승 금

 

초육은 우물의 맨 아래에 있고, 양 자리에 음으로 있으니, 마치 우물 바닥에 쌓인 진흙과 같은 양상이다. 이러한 진흙은 먹지 못한다. 집안이나, 회사, 나라에 이르기까지 민생의 근본이 되는 경제(經濟)는 그 시대에 맞게 변화를 도모하면서 항상 맑은 샘물을 유지해야 한다. 우물을 치지 않아 물이 고이면 물이 썩어서 새도 날아들지 않듯이, 경제정책이 고착(固着)되면 결국 나라 경제가 썩는다.

 

象曰 井泥不食은 下也일새오 舊井旡禽은 時舍也라.

상왈 정니불식    하야         구정무금    시사야

상전에 말하였다. “우물이 진흙이어서 먹지 못함은 아래이기 때문이고, 오래된 우물에 새가 없는 것은 때에 버려진 것이다.”

舍:버릴 사

 

정괘(井卦)에서 초육은 우물의 맨 아래에 있기 때문에 진흙이 쌓여 먹지 못하는 것이고, 오래된 우물에 새가 없는 것은 그 우물이 오래되어서 버려졌기 때문이다.

 

九二는 井谷이라. 射鮒오 甕敝漏로다.

구이    정곡       석부    옹폐루

구이는 우물이 골짜기다. 붕어가 쏘고 독이 깨져서 새도다.

谷:골 곡   射:쏠 사·산 이름 야·맞힐 석·싫어할 역   鮒:붕어 부   甕:독 옹  敝:혜질 폐·깨질 폐   漏:샐 루

 

  구이는 내괘 손풍(巽風)의 중()에 있으나, 음 자리에 양으로 있다. 일반적인 다른 괘의 상황에서는 내괘 이효는 중을 얻은 자리로 외괘 오효와 더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물을 상징한 정괘(井卦)에서 이효는 우물 바닥에서 바로 위에 있는 물의 상황을 뜻하고, 또한 구이 입장에서는 초효의 음()이 마치 독이 깨져서 물이 흘러나가는 상이다.

  그리고 내괘 손풍(巽風)이 인체(人體)로는 다리에 해당하고(巽爲股), 구이효가 변하면 양이 음으로 되면서 내괘가 간산()으로 되니, 산에 있는 무릎은 계곡(溪谷)에 해당한다. 우물이 계곡이라(井谷)는 말은 우물의 물이 밖으로 흘러나간다는 말이다. 그 흘러가는 물에 있는 물고기가 물이 부족하여 밖으로 뛰면서 물을 쏘고 있는 격이다. 이는 우물의 독이 깨져서 새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국가나 사회나 가정의 경제정책이 부실한 것을 뜻한다.

 

象曰 井谷射鮒는 无與也일새라.

상왈 정곡석부    무여야

상전에 말하였다. “우물이 골짜기여서 붕어가 쏜다는 것은 더불음이 없기 때문이다.”

 

우물이 깨져 물이 새면서 흐르는 물에 붕어가 산들 얼마나 살겠는가? 경제정책이 부실하여 나라와 백성이 서로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다.

 

九三은 井渫不食하야 爲我心惻하야 可用汲이니 王明하면 竝受其福하리라.

구삼    정설불식       위아심측      가용급       왕명       병수기복

구삼은 우물이 깨끗하되 먹지 못해서, 내 마음이 슬프게 되어, 가히 물을 길을만하니, 왕이 밝으면 아울러 그 복을 받을 것이다.

渫:칠 설·출렁출렁할 접   惻:슬퍼할 측   汲:길을 급   竝:아우를 병   受:받을 수

 

구삼은 양 자리에 양으로 실()한 상태이다. 우물의 중간에 이르러 깨끗이 청소하여 맑은 상태이나 아직은 알려지지 않아서 아무도 먹지 않으니, 구삼의 입장에서는 쓰이지 못해 슬퍼하는 상황이다. 구삼의 우물물은 가히 퍼서 먹을 수 있는 상태이니, 만일 왕이 현명하여 구삼의 인재(人才)를 등용해서 쓰면, 왕과 구삼의 신하가 아울러 복을 받게 된다. ,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깨끗하고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여 등용하면 나라 정책이 잘 되어 모든 국민이 다 편안해진다는 말이다.

 

象曰 井渫不食은 行을 惻也오 求王明은 受福也라.

상왈 정설불식    행    측야    구왕명   수복야

상전에 말하였다. “우물이 깨끗하되 먹지 않음은 (먹지 않고) 감을 슬퍼하는 것이고, 왕의 밝음을 구함은 복을 받는 것이다.”

惻:슬퍼할 측

 

六四는 井甃면 无咎리라.

육사    정추    무구

육사는 우물을 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甃:벽돌 추·꾸밀 추·샘칠 추

 

  육사는 외괘 감수(坎水)에 있고 음 자리에 음으로 있어 자리가 바르다. 후천팔괘방위의 계절로 보면 내괘 손풍(巽風)은 봄이고 내호괘 태택(兌澤)은 가을이며, 외호괘 이화(離火)는 여름이고 외괘 감수(坎水)는 겨울이니,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에 맞추어 맑은 물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우물을 청소하고 수리하여야 한다.

  특히 육사 자리를 중심으로 보면 내호괘가 태택가을이고 외호괘가 이화여름이며 외괘가 감수겨울이니, 여름에서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인 가을에 우물을 깨끗이 청소하면 허물이 없는 것이다.

 

象曰 井甃无咎는 修井也일새라.

상왈 정추무구    수정야

상전에 말하였다. “우물을 쳐서 허물이 없는 것은 우물을 닦기 때문이다.”

修:닦을 수

 

九五는 井冽寒泉食이로다.

구오    정렬한천식

구오는 우물이 맑아 찬 샘물을 먹도다.

冽:찰 렬·맑을 례   寒:찰 한   泉:샘 천

 

구오는 외괘 감수(坎水)에서 중정한 자리이다. 정괘(井卦) 초효는 진흙이 섞여 먹지 못하며, 구이는 이제 조금 물이 고여 붕어나 뛰노는 정도이고 또한 물이 새고 있는 상황이다. 삼효는 맑은 물이지만 알아주지 못해서 자신의 재질이 쓰이지 못함을 슬퍼한다. 사효는 우물을 청소하여 맑은 샘물을 유지하게 하는 상태이다. 이제 중정한 외괘 오효에 이르러 맑고 찬 샘물을 마시게 된다. 구오가 변하면 지괘(之卦)가 지풍승(地風升)이 되니, 물을 퍼 올려 맑은 샘물을 마신다.

 

象曰 寒泉之食은 中正也일새라.

상왈 한천지식    중정야

상전에 말하였다. “찬 샘물을 먹는 것은 가운데하고 바르기 때문이다.”

 

上六은 井收勿幕고 有孚라. 元吉이니라.

상육    정수물막   유부     원길

상육은 우물을 거두어서 덮지 말고 믿음을 둔다. 크게 길하다.

收:거둘 수   幕:장막 막·덮을 막

 

  상육은 정괘(井卦) 우물의 형상에서 맨 위에 있다. 고을()은 고쳐도 우물은 고치지 않는데, 우물은 만인의 공변된 그릇이기 때문이다. , 우물은 어느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며, 모든 백성이 맑은 물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 때문에 우물을 쓰지 못하게 거두어 뚜껑을 덮으면 만인을 위한 우물로서 사용될 수 없으니, 뚜껑을 덮지 말고 믿음을 두어 어느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하면 크게 길하다.

  경제를 원활히 하기 위한 제도(制度)도 마찬가지이다. 규제(規制) 위주로 정책을 펴면 어느 누구도 제도를 활용할 수가 없다. 제도는 규제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인이 보다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象曰 元吉在上이 大成也라.

상왈 원길재상    대성야

상전에 말하였다. “크게 길함이 위에 있음이 크게 이루는 것이다.”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520∼527.

'동양고전산책 > 주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 화풍정(火風鼎)  (0) 2020.11.04
49. 택화혁(澤火革)  (0) 2020.11.04
47. 택수곤(澤水困)  (0) 2020.11.04
46. 지풍승(地風升)  (0) 2020.11.03
45. 택지취(澤地萃)  (0) 2020.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