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의
중뢰진괘와 같이 세상사의 번잡한 소용돌이 속에서도 존재의 의미를 반추하고 삶의 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고요함이 있어야 한다. 세상사를 잊고 조용히 그쳐 영혼을 관조하라(無思無爲).
괘명과 괘상
외괘가 간산(艮山)☶, 내괘도 간산(艮山)☶으로 이루어진 괘를 ‘간(艮)’이라 한다. 안에서 그치고 밖으로도 그친다. 중뢰진(重雷震)은 강력한 움직임으로 지진이라는 재앙이 일어나는데, 중산간(重山艮)괘는 모든 움직임을 그치고 그야말로 아무 생각도 없고 함도 없는 평정(平靜)의 세계이다. 중산간괘는 수양방법론과 그 과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중산간괘가 육체(肉體)의 평정(平靜)을 이루는 수양을 의미한다면, 상경(上經)의 풍지관(風地觀)괘는 육체의 그침으로 일어나는 정신계(精神界)의 작용을 설명하고 있는 괘이다.
서괘
「서괘전」은 중뢰진괘 다음에 중산간괘가 온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震者는 動也니 物不可以終動하야 止之라 故로 受之以艮하고
진자 동야 물불가이종동 지지 고 수지이간
진(震)이란 움직임이니, 물건이 가히 끝까지 움직이지 못해서 그치게 된다. 그러므로 간(艮)으로 받고
중뢰진은 가장 강력하게 움직이는 기운을 내재하고 있다. 천하의 운동은 상대성을 지니고 있다. 움직임이 극에 이르면 도리어 그쳐서 고요한 평정(平靜)을 유지하게 된다. 그래서 중뢰진괘 다음에 중산간괘를 둔 것이다.
괘사
艮其背면 不獲其身하며 行其庭하야도 不見其人하야 无咎리라.
간기배 불획기신 행기정 불견기인 무구
그 등에 그치면 그 몸을 얻지 못하며, 그 뜰에 행하여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을 것이다.
艮:머무를 간·어려울 간 背:등 배 獲:얻을 획 身:몸 신 庭:뜰 정
인체에서 앞에는 모든 오감(五感)작용의 기관(眼·耳·鼻·舌·身)이 있어 외계(外界)에 현혹되기 쉬우나, 뒤의 등에는 아무 기관이 없으니 욕심이 없다. 그래서 아무 욕심이 없는 상태인 그 등에 그치면 감각기관의 느낌도 없으니, 그 몸을 잊은 상태가 된다. 또한 자기 자신을 잊을 뿐만 아니라 외계(外界)의 물상(物像)도 잊게 되어, 뜰을 행하여도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천하의 연고(緣故)를 깨우치기 위해 고요히 우주심(宇宙心)으로 향하니, 자기 자신을 잊고 다른 사람을 잊으나 허물이 없는 것이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艮은 止也니 時止則止하고 時行則行하야
단왈 간 지야 시지즉지 시행즉행
動靜不失其時 其道 光明이니 艮其(止)背는 止其所也일새라.
동정불실기시 기도 광명 간기(지)배 지기소야
上下 敵應하야 不相與也일새
상하 적응 불상여야
是以不獲其身行其庭不見其人无咎也라.
시이불획기신행기정불견기인무구야
단전에 말하였다. “간(艮)은 그침이니, 때가 그칠 때면 그치고 때가 행할 때면 행하여, 움직이고 고요함이 그 때를 잃지 않음이 그 도(道)가 광명하니, ‘그 등에 그침’은 그 곳에 그치기 때문이다. 위와 아래가 적으로 응하여 서로 더불지 못하기 때문이니, 이로써 그 몸을 얻지 못하며 그 뜰에 행하여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는 것이다.”
止:발 지·그칠 지·머무를지 動:움직일 동 靜:고요할 정 失:잃을 실 敵:원수 적
간(艮)은 그치는 것이다. 그친다는 것도 항상 때와 상황에 적절하게 그쳐야 한다. 그래서 그쳐야 될 상황에서는 그치고 행하여야 할 상황에서는 행하여, 움직이고 고요함에 그 때를 잃지 않는 중도(中道)를 지니니 그 도(道)가 광명한 것이다. ‘그 등에 그친다’는 것은 그쳐야 할 그 곳에 그치는 것이다. ‘艮其(止)背’에서 ‘止’는 불필요한 연문(衍文)으로 풀이하지 않는다.
중산간(重山艮)괘는 초효부터 상효에 이르기까지 모두 음양으로 상응(相應)하지 않고 적응(適應)하니, 위와 아래가 마치 원수처럼 대응하여 서로 더불지 못한다. 이는 행선(行禪)을 하든, 주선(住禪)을 하든, 좌선(坐禪)을 하든, 와선(臥禪)을 하든지 간에 상체(上體)와 하체(下體)·정신(精神)과 육체(肉體)가 서로를 느끼지 못하고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 더불지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 몸을 얻지 못하고 그 뜰을 행하여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다”고 한 것이다. 《대학(大學)》의 첫 머리에 다음 문장이 있다.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親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 知止而后에 有定이니 定而后에 能靜하며 靜而后에 能安하며 安而后에 能慮하며 慮而后에 能得이니라.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데 있으며, 백성을 친함(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극히 착한 곳에 그침에 있다. 그칠 줄을 안 뒤에 정함이 있으니, 정한 뒤에 능히 고요하며, 고요한 뒤에 능히 편안하며, 편안한 뒤에 능히 생각하며, 생각한 뒤에 능히 얻는다.
괘상사
象曰 兼山이 艮이니 君子 以하야 思不出其位하나니라.
상왈 겸산 간 군자 이 사불출기위
상전에 말하였다. “겹쳐있는 산이 간(艮)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생각이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兼:겸할 겸·쌓을 겸 思:생각할 사 位:자리 위
첩첩산중(疊疊山中)이다. 후중(厚重)하게 자연의 기운이 그쳐 있는 곳. 그치고 또 그쳐 있는 것이 간(艮)이니, 군자는 이러한 기운의 양상을 보고 본받아 생각이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게 한다. 그친다는 것은 아무 생각도 없고 함도 없는 이른바 ‘무사무위(無思無爲)’의 경지이다. 생각이 끊어진 자리는 도(道)가 통하는 자리요, 호흡이 끊어진 자리는 죽음의 자리이다. 생각이 끊어진 자리와 호흡이 끊어진 자리의 경계는 어디인가?
인간은 나날이 계속되는 하루 24시간을 생각에서 생각으로 꼬리를 물고 물어 끊임없는 사념(思念)작용을 일으킨다. 세속사(世俗事)의 생각이 끊어진 자리, 그 자리에서 생각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그침의 경지이다. 공자(孔子)는 「계사상전」 제10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易은 无思也하며 无爲也하야 寂然不動이라가 感而遂通天下之故하나니 非天下之至神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역(易)은 생각함도 없으며 함도 없어서,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느껴서 드디어 천하의 연고에 통하니, 천하의 지극한 신(神)이 아니면 그 누가 이에 참여하겠는가?
효사 및 효상사
初六은 艮其趾라. 无咎하니 利永貞하니라.
초육 간기지 무구 이영정
초육은 그 발에 그친다. 허물이 없으니, 영구히 바르게 함이 이롭다.
趾:발 지
자세를 바로 하고 고요히 좌선(坐禪)에 들어가는 처음 자리이다. 발이 움직이면 몸이 움직이게 되니, 발을 그쳐 자리를 정하고 좌선에 들어간다. 허물이 없으니 추호의 흔들림이 없이 길이 바르게 하면 선정(禪定)을 얻을 수 있어 이롭다. 초육이 변하면 내괘가 이화(離火)☲가 되어 화기(火氣)가 상승하면 마음이 움직이기 쉬우니, 후중(厚重)한 산처럼 길이 바르게 하여야 한다.
象曰 艮其趾는 未失正也라.
상왈 간기지 미실정야
상전에 말하였다. “그 발에 그침은 바름을 잃지 않는 것이다.”
六二는 艮其腓니 不拯其隨라. 其心不快로다.
육이 간기비 부증기수 기심불쾌
육이는 그 장딴지에 그치니, 그 따름을 구원하지 못한다. 그 마음이 쾌하지 않도다.
腓:장딴지 비 拯:건질 증·도울 증 隨:따를 수 快:쾌할 쾌
육이는 신체로 보면 장딴지에 해당하는 자리이다.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좌선(坐禪)에 들어가니, 초효에서 발꿈치에 그치고 이제 구이에서는 장딴지에 그치는 격이다. 장딴지에 그치고자 하나 발이 아프고, 발이 그치면 장딴지가 아프다. 발과 장딴지가 서로 따르는 바가 되어 발이 장딴지에게 원하고 장딴지가 발에게 원하는 바가 있으나, 물러나 듣지 못하고 서로 그 따름을 구원하지 못한다. 모두가 그쳐야 하기 때문이다.
발과 장딴지의 고통에 마음이 불쾌하다. 육이가 변하면 내괘가 손풍(巽風)☴이 되어 다리가 되고(巽爲股), 지괘(之卦)가 산풍고(山風蠱)괘가 되니, 발과 장딴지가 서로 따름이 있어 움직이면 일이 생긴다. 마음과 몸이 흐트러지는 것이다.
象曰 不拯其隨는 未退聽也일새라.
상왈 부증기수 미퇴청야
상전에 말하였다. “그 따름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은 물러나서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未:아닐 미 退:물러날 퇴 聽:들을 청
九三은 艮其限이라 列其夤이니 厲 薰心이로다.
구삼 간기한 열기인 려 훈심
구삼은 그 허리에 그친다. 그 팔뚝을 벌리니, 위태함이 마음을 태우도다.
限:지경 한·한정 한·기한 한·허리 한 列:벌릴 열 夤:조심할 인·연줄 인·팔뚝 인 厲:위태할 려 薰:향기로울 훈·태울 훈
구삼은 내괘의 끝에 있어 신체로 보면 하체(下體)와 상체(上體)의 경계가 되는 곳, 즉 허리에 해당한다. 발과 장딴지를 거쳐서, 드디어 허리에 그친다. 하체(下體)가 그치니 상체(上體)의 등뼈와 허리가 뻐근하여 고통이 따른다. 등과 허리의 고통을 완화하고자 팔뚝을 벌린다. 또한 하체(下體)가 그치니 척추(脊椎)에서 기운이 뻗어 위로 올라간다. 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우는 듯하다. 그러나 간괘(艮卦)의 호괘(互卦)가 뇌수해(雷水解)이니 기운이 소통되지 않아 막혀있던 기혈(氣血)이 풀리고, 외호괘가 진뢰(震雷)☳가 되니 척추(脊椎)의 강한 기운이 발동하기도 한다.
象曰 艮其限이라 危 薰心也라.
상왈 간기한 위 훈심야
상전에 말하였다. “그 허리에 그친다. 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운다.”
六四는 艮其身이니 无咎니라.
육사 간기신 무구
육사는 그 몸에 그치니 허물이 없다.
육사는 외괘의 처음으로 음 자리에 음(陰)으로 자리가 마땅하다. 아래 발에서 그치고 장딴지에서 그치고 허리에 그쳐서 드디어 평정(平靜)을 이루고 몸 전체가 그쳐있는 상태가 된다. 육사가 변하면 지괘(之卦)가 화산려(火山旅)가 되어 여행을 하게 되는데, 그 여행은 정신적(精神的)인 여행으로, 바로 풍지관(風地觀)괘로 여행을 하는 것이다. 상경(上經) 풍지관괘의 동관(童觀), 규관(闚觀), 관아생(觀我生), 관국지광(觀國之光), 관아생(觀我生·觀民), 관기생(觀其生)의 육관(六觀)을 각자의 근기에 맡게 여행하게 된다.
象曰 艮其身은 止諸躬也라.
상왈 간기신 지저궁야
상전에 말하였다. “그 몸에 그침은 몸에 그치는 것이다.”
諸:모두 제·어조사 제·무릇 제(본음 ‘저’)
六五는 艮其輔라. 言有序니 悔亡하리라.
육오 간기보 언유서 회망
육오는 그 광대뼈(볼)에 그친다. 말에 차례가 있으니 후회가 없을 것이다.
輔:광대뼈 보·바퀴덧방나무 보·도울 보·재상 보
육오는 외괘의 중(中)을 얻은 자리로 인체에서는 얼굴의 광대뼈, 볼에 해당한다. 육사에서 풍지관(風地觀)으로 정신계(精神界)를 여행하니, 말이 있게 된다. 말(言)에는 차례가 있고, 해서는 안 될 말도 있다. 육오가 변하면 풍산점(風山漸)괘가 되니, 차츰차츰 순서 있게 나아가야 한다. 욕심은 엄하게 막아야 한다. 한 순간에 깨우친다는 것도 헛된 망령이다. 파상(破相)을 해야 한다.
象曰 艮其輔는 以中으로 正也라.
상왈 간기보 이중 정야
상전에 말하였다. “그 광대뼈에 그침은 중(中)으로써 바른 것이다.”
上九는 敦艮이니 吉하니라.
상구 돈간 길
상구는 도탑게 그치니 길하다.
敦:도타울 돈
상구는 드디어 도탑게 그친 평정(平靜)의 상태이다. 세상사를 잊고 평정을 유지한다. 《대학》의 ‘지극한 선에 그친(止於至善)’ 경지이다. 선정(禪定)의 맛을 느끼니 길하다. 상구가 변하면 지산겸(地山謙)괘가 되니 더욱 겸손해야 하며, 선정(禪定)에 들어가 깨우쳤다고 입을 함부로 놀리면 도(道)가 어그러진다. 깨달음이란 천하의 연고(緣故)를 통하는 것이다. 풍지관(風地觀)의 관법(觀法)과 중산간(重山艮)의 지법(止法)이 하나로 통합이 되는 자리이다.
象曰 敦艮之吉은 以厚終也일새라.
상왈 돈간지질 이후종야
상전에 말하였다. “도탑게 그쳐서 길함은 두터움으로 마치기 때문이다.”
厚:두터울 후 終:마칠 종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552∼5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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