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의
국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뜻이 있어도 뜻을 펼칠 수 없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지극히 곤궁한 때에는 목숨을 다하여 뜻을 이루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致命遂志).
괘명과 괘상
외괘가 태택(兌澤)☱, 내괘가 감수(坎水)☵로 이루어진 괘를 ‘곤(困)’이라고 한다. 외괘의 연못에 고여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계속 새어 흘러버리니, 마실 물이 없어져 곤궁한 상황이다. 매우 어려운 괘이다. 곤괘(困卦)는 나라 경제(經濟)가 피폐하여 백성이 너나할 것 없이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도 없는 매우 어려운 상황을 뜻한다. 경제적인 자력(自力)도 없고, 도와주는 이도 없고, 그야말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어려운 상황이다.
서괘
「서괘전」은 지풍승괘 다음에 택수곤괘가 온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升而不已면 必困이라 故로 受之以困하고
승이불이 필곤 고 수지이곤
오르기만 하고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곤하게 된다. 그러므로 곤(困)으로 받고
已:그칠 이
앞으로 나가기만 하고 뒤를 돌아보지 못하면, 자기의 근본을 망각하고 나라 경제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니 반드시 곤궁하게 된다. 그래서 지풍승괘 다음에 택수곤괘를 두었다.
괘사
困은 亨코 貞하니 大人이라야 吉코 无咎하니 有言이면 不信하리라.
곤 형 정 대인 길 무구 유언 불신
곤(困)은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니 대인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으니, 말이 있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困:괴로울 곤·부족할 곤
택수곤(澤水困)괘는 연못에 물이 없는 상이고, 집안이나 국가사회로 보면 생활의 근간이 되는 경제(經濟)가 빈곤하여 그야말로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때에는 일반 백성뿐만 아니라 군자도 바르게 행하기가 어렵다. 오직 마음을 굳게 하여 형통하게 하고 바르게 하는 대인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게 된다.
즉,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는 모두가 대인(大人)과 같은 심법(心法)을 가지라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 말만 하게 되면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困은 剛揜也니 險以說하야 困而不失其所亨하니 其唯君子乎인저.
단왈 곤 강엄야 험이열 곤이불실기소형 기유군자호
貞大人吉은 以剛中也오 有言不信은 尙口 乃窮也라.
정대인길 이강중야 유언불신 상구 내궁야
단전에 말하였다. “곤(困)은 강이 가려짐이니, 험하되 기뻐하여, 곤궁하되 그 형통한 바를 잃지 않으니, 그 오직 군자인저! ‘바르게 해서 대인이라야 길함’은 강(剛)으로써 가운데 하기 때문이고, ‘말이 있으면 믿지 않음’은 입을 숭상함이 이에 궁한 것이다.”
揜:가릴 엄 說:기쁠 열 唯:오직 유 尙:숭상할 상 乃:이에 내
곤(困)이 어려운 것은 강하고 밝은 양(구이, 구사, 구오)이 모두 어둡고 험한 음(초육, 육삼, 상육)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괘 감수(坎水)☵로 험하되 외괘 태택(兌澤)☱으로 기뻐하는 마음을 가져서 곤궁하면서도 그 마음의 형통한 바를 잃지 않으니, 오직 군자라야 가능하다.
나라가 극도로 어려워지면 민생고(民生苦)로 인한 범죄가 급증하게 되는데, 이는 마음의 형통함을 유지하는 군자의 심법을 잃었기 때문이다. ‘바르게 해서 대인이라야 길하다’는 것은 괘상(卦象)으로 보면 내괘 구이와 외괘 구오의 강한 양이 중(中)을 얻어 중도를 지키기 때문이고, ‘말이 있으면 믿지 않는다’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입을 숭상하는 것, 즉 말만 하는 것은 지극히 궁한 것이다.
괘상사
象曰 澤无水 困이니 君子 以하야 致命遂志하나니라.
상왈 택무수 곤 군자 이 치명수지
상전에 말하였다. “연못에 물이 없는 것이 곤(困)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목숨을 다하여 뜻을 이룬다.”
致:이를 치·이룰 치·다할 치 遂:이룰 수·나갈 수·드디어 수
외괘 태택(兌澤)☱의 연못에 내괘 감수(坎水)☵의 물이 계속 새어나가서 정작 있어야 할 물이 없는 것이 곤괘(困卦)의 상황이다. 나라의 근본이 없어지고 민생의 근원이 다 말라있는 지극히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보통 사람들은 자기의 생명을 부지(扶持)하고자 약탈과 살인 등의 온갖 범죄를 자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군자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나라의 경제를 회복하고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쳐서 뜻을 이룬다. 우리는 이러한 격언을 잘 알고 있다.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게 되고,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게 된다(必生卽死 必死卽生).”
효사 및 효상사
初六은 臀困于株木이라. 入于幽谷하야 三歲라도 不覿이로다.
초륙 둔곤우주목 입우유곡 삼세 부적
초육은 궁둥이가 나무뿌리에 곤하다. 그윽한 골짜기에 들어가서 3년이라도 보지 못하도다.
臀:볼기 둔 株:뿌리 주·줄기 주·그루 주·주식 주 幽:그윽할 유 谷:골 곡 覿:볼 적
초육은 내괘 감수(坎水)☵ 험한 아래에 처하여 있다. 양 자리에 음으로 거하여 자리도 바르지 못하고, 중을 얻지 못하여 어려운 상황에 마음을 잃고 있다. 물이 없어 말라죽은 나무뿌리에 걸터앉아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이다. 외괘의 구사 양과 응하고 있지만 곤괘(困卦)에서와 같이 지극히 곤궁한 상황에서는 구사도 초육을 도와줄 여력이 없다.
오직 홀로 어두운 골짜기로 들어가 3년이 되도록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격이다. 초육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음의 형통함을 유지하여 굳게 이겨내야 하는데, 마음이 어두워져 판단을 밝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象曰 入于幽谷은 幽不明也라.
상왈 입우유곡 유불명야
상전에 말하였다. “그윽한 골짜기에 들어감은 그윽해서 밝지 못한 것이다.”
九二는 困于酒食이나 朱紱이 方來하리니 利用亨祀니 征이면 凶하니 无咎니라.
구이 곤우주식 주불 방래 이용향사 정 흉 무구
구이는 술과 음식에 곤하나 주불(임금)이 바야흐로 올 것이니, 제사를 올리는 것이 이로우니, 가면 흉하니 허물할 데가 없다.
酒:술 주 朱:붉을 주 紱:인끈 불 方:바야흐로 방 亨:제사드릴 향(享)
구이는 음 자리에 양으로 있으나 중(中)을 지키고 있어 마음의 형통함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상이다. 비록 술과 음식에 곤한 상태이지만 중도를 지키니, 때가 되면 구오 인군이 찾아오게 된다. 오직 변치 않는 마음으로 지극한 정성을 드려 자리를 지키는 것이 이롭다. 만일 자리를 지키지 않고 앞서 나가면 흉하게 되어 어느 누구를 탓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된다.
‘붉은 인끈(朱紱)’이란 임금이 두르는 끈으로 왕(王)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내괘의 구이 선비로서는 굳게 마음을 지키고 정성을 지극히 하여 어려움을 극복하고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구이가 변하면 택지취(澤地萃)괘가 되는데, 때가 되면 구오 인군의 명을 받아 나라를 구원하는 큰일을 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경사(慶事)가 있게 된다. 택지취괘 육이 효사를 같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六二는 引하면 吉하야 无咎하리니 孚乃利用禴이리라.
육이는 이끌면 길하여 허물이 없을 것이니, 믿어서 이에 간략히 제사를 올림이 이로울 것이다.
象曰 困于酒食은 中이라 有慶也리라.
상왈 곤우주식 중 유경야
상전에 말하였다. “술과 음식에 곤함은 가운데 함이라. 경사가 있을 것이다.”
六三은 困于石하며 據于蒺藜라. 入于其宮이라도 不見其妻니 凶토다.
육삼 곤우석 거우질려 입우기궁 불견기처 흉
육삼은 돌에 곤하며 납가새 가시에 웅거한다. 그 집에 들어가더라도 그 처를 보지 못하니 흉하도다.
據:웅거할 거·의거할 거 蒺:납가새 질·마름쇠 질 藜:명아주 려 宮:집 궁 妻:아내 처
육삼은 내괘 감수(坎水)☵ 험한 데에 거하고, 양 자리에 음으로 있으며 중도 얻지 못한 상태이다. 응하는 자리도 같은 음(陰)이니 도와줄 이도 없다. 그야말로 재정이 파탄되어 밟히는 것은 돌과 앙상한 가시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가정을 꾸릴 수 없어서 아내도 가족도 모두 뿔뿔이 흩어져 집을 나가니, 집에 들어가더라도 아내를 볼 수 없다.
앙상하고 날카로운 가시(납가새)에 웅거한다는 것은 양 자리에 음으로 거하여 강(剛)을 타고 있기 때문이고,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것이다.
공자는 「계사하전」 제5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易曰 困于石하며 據于蒺藜라. 入于其宮이라도 不見其妻니 凶이라하니 子曰 非所困而困焉하니 名必辱하고 非所據而據焉하니 身必危하리니 旣辱且危하야 死期將至어니 妻其可得見耶아.
역에 이르길 “돌에 곤하며 가시덤불에 응거한다. 그 집에 들어가더라도 그 아내를 보지 못하니 흉하다”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곤할 바가 아닌데 곤궁하니 이름이 반드시 욕되고, 웅거할 바가 아닌데 웅거하니 몸이 반드시 위태할 것이니, 이미 욕되고 또 위태해서 죽을 기약이 장차 이르니 아내를 가히 얻어 볼 수 있겠는가.”
象曰 據于蒺藜는 乘剛也일새오 入于其宮不見其妻는 不祥也라.
상왈 거우질려 승강야 입우기궁불견기처 불상야
상전에 말하였다. “납가새 가시에 웅거함은 강을 탔기 때문이고,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볼 수 없음은 상서롭지 못한 것이다.”
祥:상서로울 상
九四는 來徐徐는 困于金車일새니 吝하나 有終이리라.
구사 래서서 곤우금거 인 유종
구사는 오는 것이 느릿느릿함은 쇠수레에 곤하기 때문이니, 인색하나 마침이 있을 것이다.
徐:천천히 서
구사는 나라의 재정이 파탄(破綻)난 어려운 상황 속에 대신(大臣)의 자리에 있다. 음 자리에 양으로 있으니 자리가 마땅하지 않다. 나라 일을 하는 대신으로서는 응하는 자리인 초육 백성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세금을 내야 나라 재정을 확보할 수가 있다. 그러나 경제가 너무 어려워서 백성들이 빈곤하여 세금을 제때 내지 못하니, 세금을 실은 수레가 오는 것이 느릿느릿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나라 전체가 어렵기 때문에 빈곤에 빠진 백성을 도와주지 못하고 오히려 세금을 기다리는 것이 인색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려움이 지나면 경제사정이 좋아지니 백성과 더불어 나라 경제를 부흥시키는 좋은 결과가 있게 된다.
象曰 來徐徐는 志在下也니 雖不當位나 有與也니라.
상왈 래서서 지재하야 수부당위 유여야
상전에 말하였다. “오는 것이 느릿느릿함은 뜻이 아래에 있는 것이니, 비록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나 더불음이 있는 것이다.”
雖:비록 수 與:더불 여
九五는 劓刖이니 困于赤紱하나 乃徐有說하리니 利用祭祀니라.
구오 의월 곤우적불 내서유열 이용제사
구오는 코를 베이고 발꿈치를 베이니, 적불(신하)에 곤하나, 이에 서서히 기쁨이 있을 것이니, 제사를 지냄이 이롭다.
劓 : 코벨 의 刖 : 발꿈치 벨 월 赤 : 붉을 적 祭 : 제사 제 祀 : 제사 사
구오는 외괘에서 중정(中正)한 인군의 자리에 있다. 나라 경제가 파탄이 나서 백성과 신하가 모두 어려운 상황이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인군자리에 있는 것이 지극히 어려우니 마치 형벌을 받아 코를 베이는 것과 같고, 나라 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으니 발꿈치가 베인 것과 같다. 또한 어려운 난국을 타개할 신하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중정한 자리에서 목숨을 다하여 지극한 정성을 드리면 이에 감화되어 내괘 구이와 같은 훌륭한 신하도 만나게 되고 서서히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기쁨이 있을 것이니, 더욱 더 정성을 지극히 하는 것이 이롭다.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정성을 지극히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목숨을 다해서 뜻을 이루는 자리이다(致命遂志). 구오가 변하면 지괘(之卦)가 뇌수해(雷水解)괘가 되어 어려움이 풀리게 되니, 택수곤괘 구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象曰 劓刖은 志未得也오 乃徐有說은 以中直也오 利用祭祀는 受福也리라.
상왈 의월 지미득야 내서유열 이중직야 이용제사 수복야
상전에 말하였다. “코를 베이고 발꿈치를 베임은 뜻을 얻지 못하는 것이고, 이에 서서히 기쁨이 있음은 가운데하고 곧기 때문이고, 제사를 드림이 이로움은 복을 받을 것이다.”
나라 전체가 어려운 상황에 인군 자리에 있지만 신하도 어렵고 백성도 어려워 경제부흥의 뜻을 이루지 못하니, 마치 형벌을 받아 코를 베이고 발꿈치를 베이는 것과 같다. 그러나 구오가 중정하여 중도의 마음으로 곧은 정책을 실현하니 이에 서서히 기쁨이 있게 된다. 이에 지극한 정성으로 제사를 올리듯이 나라와 백성을 위한 마음을 지극히 하니, 나라 경제가 부흥되고 백성이 잘 살게 되는 복을 받게 된다.
上六은 困于葛藟와 于臲卼이니 曰動悔라하야 有悔면 征하야 吉하리라.
상륙 곤우갈류 우얼올 왈동회 유회 정 길
상육은 칡덩굴과 위태하고 위태함에 곤하니, 말하되 ‘움직이면 뉘우친다’라고 하여 뉘우침을 두면 가서 길할 것이다.
葛:칡 갈 藟:등나무 덩굴 류 臲:위태할 얼 卼:위태할 올
어려운 상황의 맨 끝에 처하여, 마치 칡덩굴에 둘러싸여 있고 위태하고 위태한 상황에 빠져 있어, 매우 곤궁한 상태이다. 그런데 상육은 위태하고 어려운 상황의 끝에 있으니, 뉘우치고 잘 움직이면 위험한 상황을 모면할 수도 있는 자리이다. 그래서 움직이면 어려운 데서 벗어나 자기 스스로를 반성하며 뉘우칠 수 있는 상황이 되니, 이렇게 뉘우침을 두게 되면 가서 길하게 된다.
象曰 困于葛藟는 未當也오 動悔有悔는 吉行也라.
상왈 곤우갈류 미당야 동회유회 길행야
상전에 말하였다. “칡덩굴에 곤함은 마땅하지 않음이요, 움직여 뉘우치라하여 뉘우침이 있음은 길하게 행하는 것이다.”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512∼5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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