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의
큰 일을 도모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多衆)을 모이게 할 때에는 지극한 정성으로 순하고 기쁜 마음으로 따르게 하되,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위험을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라(警戒不虞).
괘명과 괘상
외괘가 태택(兌澤)☱, 내괘가 곤지(坤地)☷로 이루어진 괘를 ‘취(萃)’라고 한다. 인류역사의 발전은 물(강)에서 비롯된다. 모든 도시와 국가가 물(하천)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듯, 땅 위에 연못이 있으니 천하백성이 연못으로 모여든다. ‘취(萃)’는 ‘모인다’는 뜻이다. 정치를 하는 입장에서는 백성을 하나의 마음으로 결집시키는 것이다. 나라와 백성을 위한 마음을 정성스럽게 하여 백성이 편안하게 살도록 흥기시키는 것이다.
서괘
「서괘전」은 천풍구괘 다음에 택지취괘가 온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姤者는 遇也니 物相遇而後에 聚라 故로 受之以萃하고
구자 우야 물상우이후 취 고 수지이취
구(姤)는 만남이니, 물건이 서로 만난 뒤에 모인다. 그러므로 취(萃)로써 받고
聚: 모일 취
천지기운이 서로 만나든, 현상계의 사물과 상황이 서로 만나든, 서로 만나게 되면 모이게 된다. 그래서 만난다는 구괘(姤卦) 다음에 모인다는 취괘(萃卦)를 두었다.
괘사
萃는 (亨)王假有廟니 利見大人하니 亨하니 利貞하니라. 用大牲이 吉하니 利有攸往하니라.
취 (형)왕격유묘 이견대인 형 이정 용대생 길 이유유왕
취(萃)는 (형통하니) 왕이 사당을 둠에 지극히 하니, 대인을 봄이 이로우니, 형통하니, 바르게 함이 이롭다. 큰 희생을 씀이 길하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롭다.
萃:모일 취(췌) 假:빌 가·거짓 가·아름다울 가·멀 하·이를 격 廟:사당 묘 牲:희생 생
취괘(萃卦)는 천하 백성, 나라의 국민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큰 뜻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하려면 통치자는 나라의 근본을 의미하는 사당을 둠에 지극히 해야 하고, 백성을 결집하는데 큰 힘이 되는 대인을 등용하는 것이 이롭고 형통하다. 나라를 결집시키는 중대사이니 바르게 함이 이롭다. 또한 국민을 결집하는데 있어서는 큰 잔치를 베풀거나 큰 행사를 치르는 것이 길하고, 가는 바를 둠이 이롭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萃는 聚也니 順以說하고 剛中而應이라 故로 聚也니라.
단왈 취 취야 순이열 강중이응 고 취야
王假有廟는 致孝享也오 利見大人亨은 聚以正也일새오
왕격유묘 치효향야 이견대인형 취이정야
用大牲吉利有攸往은 順天命也니
용대생길이유유왕 순천명야
觀其所聚而天地萬物之情을 可見矣리라.
관기소취이천지만물지정 가견의
단전에 말하였다. “취(萃)는 모이는 것이니, 순해서 기뻐하고, 강한 것이 가운데 해서 응한다. 그러므로 모인다. ‘왕이 사당을 둠에 지극히 함’은 효성으로 제사를 이루는 것이고, ‘대인을 봄이 이롭고 형통함’은 모으는 것을 바름으로써 하기 때문이요, ‘큰 희생을 써서 길하여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운 것’은 천명을 따름이니, 그 모이는 바를 보아서 천지만물의 실정을 가히 볼 수 있을 것이다.”
聚:모일 취 說:기쁠 열 致:이룰 치 孝:효도 효 享:제사드릴 향
취(萃)는 모이는 것이다. 내괘 곤지(坤地)☷로 순하고 외괘 태택(兌澤)☱으로 기뻐하는 상이다. 그리고 외괘의 구오 인군이 강(剛)으로 중정하여 내괘 육이 신하와 잘 응하니, 위와 아래가 순응하여 모인다. ‘왕이 사당을 둠에 지극히 한다’는 것은 정성을 지극히 하여 제사를 이루는 것을 말하고, 모이는데 바르게 하려면 구오 인군의 명을 받들어 백성을 바르게 흥기시켜 모이게 할 수 있는 대인(大人)을 등용시켜야 한다. ‘큰 희생을 써서 길하고 갈 바를 둠이 이롭다’는 것은 천명에 순하게 따르는 것이니, 그 시대와 사회의 순리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백성이 뜻을 합하여 모이는 바를 잘 보면 천지만물의 실정도 가히 볼 수 있다.
괘상사
象曰 澤上於地 萃니 君子 以하야 除戎器하야 戒不虞하나니라.
상왈 택상어지 취 군자 이 제융기 계불우
상전에 말하였다. “연못이 땅 위에 한 것이 취(萃)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병기(兵器)를 수리하여 헤아리지 못함을 경계한다.”
除:섬돌 제·뜰 제·덜 제·다스릴 제·나눌 제 戒:경계할 계 虞:헤아릴 우
취괘(萃卦)는 연못이 땅 위에 있어, 마치 땅 위로 샘이 솟는 상이다. 샘이란 민생(民生)의 근원이다. 모든 문명의 발상지는 하천(河川)을 끼고 있다. 백성이 샘솟는 연못으로 모여들어 기뻐하며 생업을 꾸려나가고, 인군은 백성을 흥기시켜 기운을 북돋아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백성이 모여들 때, 군자는 항상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생각하고 국방(國防)을 생각한다. 그래서 백성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한 병기를 수리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경계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다.
효사 및 효상사
初六은 有孚나 不終이면 乃亂乃萃하릴새 若號하면 一握爲笑하리니 勿恤코 往하면 无咎리라.
초륙 유부 부종 내란내취 약호 일악위소 물휼 왕 무구
초육은 믿음을 두나 끝까지 안하면 이에 어지럽고 이에 모이기 때문에, 만약 부르짖으면 조금 웃음거리가 될 것이니, 근심하지 말고 가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亂:어지러울 란 號:부르짖을 호 握:쥘 악·주먹 악·장막 악 一握:한 줌, 조금, 약간 笑:웃을 소 恤:근심 휼
초육 백성은 양 자리에 음으로 있고 중을 얻지 못하여 중심을 잡기가 어렵다. 백성의 마음은 군중심리(群衆心理)로 나타나는데 이합집산(離合集散)의 우려도 있고, 한번 믿음을 두다가도 여론(輿論)의 흐름에 따라 민감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백성이 믿음을 두지만 그 믿음을 끝까지 가지지 못하면, 군중심리로 인해 어지럽게 흩어지고 또 모이는 현상이 있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만일 백성의 마음을 모으고자 크게 부르짖으면 여론몰이에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근심하지 말고 백성의 마음을 모아 나가면 허물이 없다. 원래 백성의 뜻은 한결같지 않고 다양한 것이다.
象曰 乃亂乃萃는 其志亂也일새라.
상왈 내란내취 기지란야
상전에 말하였다. “이에 어지럽고 이에 모이는 것은 그 뜻이 어지럽기 때문이다.”
六二는 引하면 吉하야 无咎하리니 孚乃利用禴이리라.
육이 인 길 무구 부내이용약
육이는 이끌면 길하여 허물이 없을 것이니, 믿어서 이에 간략한 제사를 올림이 이로울 것이다.
引:끌 인 禴:종묘제사이름 약(여름제사·간략한 제사)
육이는 내괘에서 중정한 자리에 있고, 외괘에서 중정한 구오 인군과 잘 응하고 있다. 구오 인군의 명을 받들어 초육의 백성을 잘 이끌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백성의 마음을 모으는 데는 허례허식(虛禮虛飾)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이롭다. ‘약(禴)’은 여름제사를 뜻하고 또한 간략한 제사로 그때그때 올리는 제사를 뜻한다. 백성과 가까이 하면서 수시로 백성의 마음을 규합하기 위한 정성을 그때그때 올리는 것이다. 육이가 백성을 이끌 수 있는 것은 내괘의 중을 얻어 구오 인군과 나라를 위한 마음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육이가 변하면 지괘(之卦)가 택수곤(澤水困)이 되니, 육이 자신은 조금 고달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象曰 引吉无咎는 中하야 未變也일새라.
상왈 인길무구 중 미변야
상전에 말하였다. “이끌면 길해서 허물이 없는 것은 가운데 해서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變:변할 변
六三은 萃如嗟如라 无攸利하니 往하면 无咎어니와 小吝하니라.
육삼 취여차여 무유리 왕 무구 소린
육삼은 모이는데 탄식한다. 이로울 바가 없으니, 가면 허물이 없지만 조금 인색하다.
嗟:탄식할 차
육삼은 지방제후에 해당하는 자리에 있으나, 중을 얻지 못하였고 양 자리에 음으로 있어 부당한 상태이다. 천하 백성이 모이는 때에 모든 백성이 구오 인군을 중심으로 모이니, 지방제후인 육삼은 자기 자신을 따르는 이가 없어서 탄식한다. 그래서 구삼 자신으로서는 이로울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구오 인군을 믿고 모이는 때에 육삼 자신도 함께 가면 허물이 없지만, 지방제후라는 자리에 연연하게 되면 조금 인색하게 된다.
한편 구오 인군은 지방제후인 육삼이 자신의 백성을 구오 인군에게 빼앗김을 탄식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육삼의 지방제후를 구오 인군이 겸손하게 받아들이니, 가서 허물이 없게 된다.
象曰 往无咎는 上이 巽也일새라.
상왈 왕무구 상 손야
상전에 말하였다. “가서 허물이 없다는 것은 위(구오)가 겸손하기 때문이다.”
巽:공손할 손
九四는 大吉이라아 无咎리라.
구사 대길 무구
구사는 크게 길하여야 허물이 없을 것이다.
구사 대신(大臣)은 음 자리에 양으로 있어 자리가 마땅하지 않다. 때문에 모두가 구오 인군을 중심으로 모이는 때에 지나친 언행을 할 수가 있다. 구오 인군을 중심으로 모이지만 모든 백성이 인군과 만나는 길은 구사 대신을 통하게 되어 있으니, 구사 대신이 조금이라도 마음과 언행을 바르게 하지 못하면 매우 어렵게 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 있어서는 크게 길해야 허물이 없다고 하였다. 위와 아래를 연결해 주는 대신의 자리는 언제나 조심스러운 것이다.
象曰 大吉无咎는 位不當也일새라.
상왈 대길무구 위부당야
상전에 말하였다. “크게 길해야 허물이 없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九五는 萃有位코 无咎하나 匪孚어든 元永貞이면 悔 亡하리라.
구오 취유위 무구 비부 원영정 회 망
구오는 모이는데 자리가 있고 허물이 없으나, 믿지 않거든 착하고 오래하고 바르게 하면 뉘우침이 없어질 것이다.
외괘에서 중정한 자리에 있는 구오 인군은 천하 백성을 모을 수 있는 자리이다. 인군으로서 사당을 두는데 지극한 마음으로 하고, 큰 희생을 써서 백성을 모은다. 그러니 만일 백성이 믿지 않더라도 중정한 마음으로 백성이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오래갈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고 또한 바르게 하면 뉘우침이 없어진다.
구오의 자리가 중정하여 백성을 모으는 자리이지만, 백성이 믿음을 두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은 외괘가 태택(兌澤)☱으로 저물어가는 석양(夕陽)처럼 어두워지고 기울어지는 양상에 있어, 그 뜻이 빛나지 않기 때문이다.
象曰 萃有位는 志未光也일새라.
상왈 취유위 지미광야
상전에 말하였다. “모이는 데 자리가 있다는 것은 뜻이 빛나지 않기 때문이다.”
上六은 齎咨涕洟니 无咎니라.
상륙 자자체이 무구
상육은 탄식하고 탄식하며 눈물콧물을 흘리니, 허물할 데가 없다.
齎:가져갈 자·탄식할 자(재) 咨:물을 자·탄식할 자 涕:눈물 체 洟:콧물 이
상육은 천하백성이 다 모이는 때에 맨 위에 처하여 있다. 자리는 높은 데 있지만, 천하 백성이 모두 구오 인군을 따르니 어느 누구도 상육을 알아주지 않는다. 이에 스스로를 한탄하며 탄식하고 슬픈 마음에 눈물콧물을 흘리는데, 이는 어느 누구의 탓이 아니라 스스로의 업보이다. 맨 위에 있지만 마음이 슬프기만 하고 편안하지 못하다. 상육이 동하여 천하를 모이게 하려고 해도, 지괘(之卦)가 천지비(天地否)괘가 되어 위와 아래가 오히려 막히게 되니 더욱 편안치 못하다.
象曰 齎咨涕洟는 未安上也라.
상왈 자자체이 미안상야
상전에 말하였다. “탄식하고 탄식하며 눈물콧물을 흘리는 것은 위에서 편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497∼5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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