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산책/주역

44. 천풍구(天風姤)

돈호인 2020. 11. 2. 13:51

 

괘의

기존의 상황과 다른 새로운 조짐이 있을 때에는 모두가 알도록 공표하고 이러한 흐름을 견제하고 조화롭게 포용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라(命誥四方).

 

괘명과 괘상

외괘가 건천(乾天), 내괘가 손풍(巽風)으로 이루어진 괘를 ()라고 한다. 순양(純陽)으로 되어 있던 중천건(重天乾)의 상태에서 맨 아래에 음() 기운이 들어오니, 양 기운이 음 기운을 만나게 된다. 기존의 상황과 다른 새로운 기운이 들어오면서 변화를 예고하는 만남이다. 그러나 이 기운은 음 기운으로 기존의 입장에서는 부정적인 양상을 내포하고 있으니 잘 다스려야 한다. 12월괘중 하나로 음력 5월에 해당한다.

서괘

서괘전은 택천쾌괘 다음에 천풍구괘를 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夬者는 決也니 決必有所遇라 故로 受之以姤하고

쾌자    결야   결필유소우    고    수지이구

쾌란 결단함이니, 결단함에 반드시 만나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구괘(姤卦)로 받고

遇:만날 우

 

어떤 상황을 결정하고 매듭을 짓기 위해서는 그 상황에 직면하여야 한다. 즉 직접 만나야 한다. 또한 고정된 하나의 상황이 지속될 수는 없으며, 항상 기존의 상황과 다른 새로운 양상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결단한다는 쾌괘() 다음에 만난다는 구괘()를 두었다는 서괘전의 설명이다.

 

괘사

姤는 女壯이니 勿用取女니라.

구    여장      물용취녀

구(姤)는 여자가 씩씩하니 여자를 취하지 말라.

姤:만날 구   勿:말 물   用:써 용   取:취할 취

 

  구()는 중천건(重天乾)괘 순양(純陽)의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새로운 기운, 즉 음 기운이 생하는 것이다. ()은 남자요 음()은 여자라는 대비 하에 여자가 씩씩하다고 하였으나, 보다 바른 의미는 역동적인 자연과 사회현상에 있어서 현재의 안정적인 상황에 소용돌이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현상의 조짐이 나오는 것을 뜻한다. 또한 현재의 상황과 대비할 때 부정적인 기운의 양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순양(純陽)의 중천건(重天乾)이라는 긍정적인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음의 부정적인 현상을 취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편 양 기운이 많은 상황에 음 기운이 나올 때, 그 음 기운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생명력을 보다 강하게 키우기 마련이다. 이것을 여자에 비유하면, 뭇 남자에 대응하기 위하여 여자로서의 순한 도를 잃고 기운이 드센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여자는 아내로서의 정순한 덕을 잃어 올바른 가정을 이끌 수 없으니, 그러한 여자는 취하지 말라는 뜻도 된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姤는 遇也니 柔遇剛也라. 勿用取女는 不可與長也일새라.

단왈 구    우야    유우강야    물용취녀    불가여장야

天地相遇하니 品物이 咸章也오

천지상우       품물   함장야

剛遇中正하니 天下에 大行也니 姤之時義 大矣哉라.

강우중정      천하     대행야   구지시의 대의재

단전에 말하였다. “구(姤)는 만남이니, 유(柔)가 강(剛)을 만나는 것이다. 여자를 취하지 말라는 것은 가히 더불어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지가 서로 만나니 모든 물건이 다 나타나고, 강이 중정(中正)함을 만나니 천하에 크게 행하니, 구(姤)의 때와 뜻이 크도다.”

品:물건 품   咸:다 함   章:문채 장·밝을 장·나타날 장

 

()는 아래의 음유(陰柔)가 위에 있는 양강(陽剛)을 만나는 것이다. 양강한 기운이 많은 상황에서 들어오는 음 기운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드센 기운의 양상을 가지게 되고, 또한 안정적인 현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요인이 되니, 그러한 양상과는 함께 오래할 수 없다. 천지자연의 이치로 볼 때 음 기운과 양 기운의 상호작용으로 만물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사회현상도 보수(保守)와 진보(進步)역동성으로 인간사회가 유지·발전되고 있다. 구괘()에서 외괘의 구오 양이 중정한 자리를 만나니, 중정한 도가 천하에 크게 행하고 있다. 새로운 음 기운이 태동하는 구괘()의 때와 뜻이 매우 크다.

 

괘상사

象曰 天下有風이 姤니 后 以하야 施命誥四方하나니라.

상왈 천하유풍    구    후 이      시명고사방

상전에 말하였다. “하늘 아래 바람이 있는 것이 구(姤)니, 후(임금)가 이를 본받아 명(命)을 베풀어 사방에 고한다.”

施:베풀 시   命:목숨 명·가르침 명·명할 명   誥:고할 고

 

구괘()는 외괘 건천(乾天)하늘 아래에 손풍(巽風)바람이 일고 있으니, 사회에 새로운 바람이 일고 있는 상이다. 이러한 양상을 보고 나라와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는 새로운 기운이 일고 있다는 사실을 사방에 알리고 또한 명을 베풀어 이에 대비하게 한다. 군자는 기미·조짐이 있을 때 미리 대비하여야 한다. 나라의 경제지표가 하강(下降)의 조짐을 보일 때, 이를 미리 알리고 부정적인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

 

효사 및 효상사

初六은 繫于金柅면 貞이 吉코 有攸往이면 見凶하리니 羸豕 孚蹢躅하니라.

초륙    계우금니    정   길    유유왕       견흉          이시 부척촉

초육은 쇠말뚝에 매면 바르게 함이 길하고, 가는 바를 두면 흉함을 볼 것이니, 여윈 돼지가 떠들며 머뭇거리는 것과 같다.

繫:맬 계   柅:고동목(말뚝) 니·성할 니   羸:여윌 리·고달플 리·앓을 리  豕:돼지 시  

孚:미쁠 부·알깔 부·기를 부·달릴 부·떠들 부   蹢:머뭇거릴 척·굽 적   躅:머뭇거릴 촉·자취 탁

 

  초육은 순양(純陽)으로 되어 있던 양상에서 음 기운이 맨 아래에 나타난 상태이다. 사회현상에서 부정적인 기운의 조짐이 나타나면, 이를 단단하게 쇠말뚝에 매놓고 바르게 해야 길하다. 만일 그렇지 못하고 이 음 기운이 가는 바를 두게 되면 사회의 부정적인 양상이 계속 확산되어 혼탁하게 되는 흉한 상황을 보게 된다. 이렇게 되면 마치 여윈 돼지가 꽥꽥거리며 날뛰듯이, 사회를 혼탁하게 하는 무리들이 자기들 세상을 구축하기 위해 날뛰게 된다. 새로 태동하는 이 음 기운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지곤(重地坤)괘 초효에 대한 문언전의 구절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積善之家는 必有餘慶하고 積不善之家는 必有餘殃하나니 臣弑其君하며 子弑其父 非一朝一夕之故라. 其所由來者 漸矣니 由辨之不早辨也니 易曰 履霜堅冰至라하니 蓋言順也라.

선(善)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고 선하지 못함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재앙이 있으니, 신하가 그 인군을 죽이고 자식이 그 아버지를 죽임이 하루아침 하루저녁의 연고가 아니다. 그 유래한 바가 차츰차츰함이니, 분별할 것을 일찍 분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역에 이르길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라고 하니 대개 순함을 말한 것이다.

 

象曰 繫于金柅는 柔道 牽也일새라.

상왈 계우금니    유도 견야

상전에 말하였다. “쇠말뚝에 매는 것은 유(柔)의 도가 끌기 때문이다.”

牽:끌 견

 

초육의 음을 쇠말뚝에 매는 것은 음유(陰柔)의 도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九二는 包有魚면 无咎하리니 不利賓하니라.

구이    포유어    무구         불리빈

구이는 꾸러미에 고기가 있으면 허물이 없을 것이니, 손님에게는 이롭지 않다.

包:쌀 포·꾸러미 포   魚:고기 어   賓:손 빈

 

구이 양()은 내괘의 중을 얻어 아래의 초육 음()과 바로 접하고 있다. 기존의 질서에 부정한 변화를 가져오는 새로운 기운이 바로 아래에서 올라오니, 구이가 초육 음(고기)을 잘 감싸서 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노력을 하고, 초육이 응하는 구사(손님)에게 그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한다. 군자는 부정한 기운이 있을 때 스스로 대책을 강구해야 하고, 이를 남에게 미루지 않는다. 이것이 의리(義理)인 것이다. 반대로 만일 구이가 초육에게 감화되어 음() 소인으로 변하면 천산돈(天山遯)괘가 되어 군자들의 바른 정치가 사라지게 된다.

 

象曰 包有魚는 義不及賓也라.

상왈 포유어    의불급빈야

상전에 말하였다. “꾸러미에 고기가 있음은 의리가 손님에게 미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구이 군자가 초육 음을 감싸서 교화하려는 것은 초육의 부정한 기운이 구사의 대신(손님)에게 미치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다.

 

九三은 臀无膚나 其行은 次且니 厲하면 无大咎리라.

구삼    둔무부    기행    자저   려       무대구

구삼은 볼기에 살이 없으나 그 행함은 머뭇거리니, 위태롭게 여기면 큰 허물이 없을 것이다.

臀:볼기 둔   膚:살 부   次:버금 차·차례 차·머무를 차·나아가지 않을 차

且:또 차·구차스러울 차·머뭇거릴 저·어조사 저·공경스러울 저

 

구삼은 양 자리에 양으로 있어 강하지만 중에서 벗어나 있다. 맨 아래에서 음 기운이 자라나니 초육을 다스리려는 마음에 노심초사하지만(臀无膚), 아래 구이가 초육을 맡아 견제하니 정작 행하지는 못하고 머뭇거리는 상이다(其行 次且). 새로운 조짐에 위태롭게 여기고 조심하면 큰 허물은 없을 것이다. 次且는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뜻을 나타내는 문자로 자저라고 읽는다.

 

象曰 其行次且는 行未牽也라.

상왈 기행자저   행미견야

상전에 말하였다. “그 행함이 머뭇거림은 행함을 끌지 못하는 것이다.”

 

구삼이 구이 때문에 초육을 이끌지 못하니, 그 행함이 머뭇거리는 것이다.

 

九四는 包无魚니 起凶하리라.

구사    포무어    기흉

구사는 꾸러미에 고기가 없으니, 흉함이 일어날 것이다.

起 : 일어날 기

 

구사는 음 자리에 양으로 있어 자리가 부당하다. 대신(大臣)으로서 아래의 백성들을 포용하여 정치를 잘 해야 하는 자리이다. 그런데 구괘()에서는 구이가 초육을 감싸고 있고, 구삼이 또한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있으니, 구사는 정작 대신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 없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 구사 대신이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계속 방기하면, 결국 백성이 구사 대신을 멀리하게 되어 마치 꾸러미에 고기가 없는 격이 된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나중에는 대신으로서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되는 흉함이 일어나게 된다.

 

象曰 无魚之凶은 遠民也일새라.

상왈 무어지흉    원민야

상전에 말하였다. “고기가 없어 흉함은 백성을 멀리하기 때문이다.”

遠:멀 원

 

고기가 없어 흉하다는 것은 구사가 백성을 포용하여 정치를 잘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멀리하기 때문에 흉하게 된다는 뜻이다.

 

九五는 以杞包瓜니 含章이면 有隕自天이리라.

구오    이기포과    함장      유운자천

구오는 버들나무로써 오이를 싸니, 빛남을 머금으면 하늘로부터 떨어짐이 있을 것이다.

杞:나무이름 기(소태나무·구기자나무·버들나무)   瓜:오이 과   含:머금을 함  章:빛날 장   隕:떨어질 운   自:부터 자

 

구오는 외괘에서 중정한 인군이다. 마치 큰 버들나무가 그 가지를 길게 늘어뜨려서 밭에 있는 오이를 감싸듯이, 천하 백성을 모두 감싸서 덕으로 정치하는 자리이다. 천자(天子)로서는 백성들 사이의 이해관계에 편을 드는 것이 없이 공정하게 두루두루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 이렇게 밝은 덕을 머금고 정치를 하면 하늘로부터 천하를 맡기는 명()이 떨어진다. 구오가 변하면 외괘가 이화(離火)로 되니 밝음을 머금은 상이다.

 

象曰 九五含章은 中正也오 有隕自天은 志不舍命也일새라.

상왈 구오함장    중정야    유운자천    지불사명야

상전에 말하였다. “구오가 빛남을 머금음은 가운데하고 바르기 때문이고, 하늘로부터 떨어짐이 있음은 뜻이 명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舍:버릴 사

 

上九는 姤其角이라 吝하니 无咎니라.

상구   구기각       인       무구

상구는 그 뿔에 만난다. 인색하니 허물할 데가 없다.

角:뿔 각 吝:아낄 린·인색할 린

 

상구는 구괘()의 맨 위에 있으니, 몸체가 아닌 뿔에 있는 격이다. 초육에서 새로운 조짐이 나타나니, 구이가 감싸서 잘 교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구삼은 노심초사하고 구오는 덕으로 밝은 정치를 하고자 하는데, 정작 상구는 높은 자리에 있지만 해야 할 역할이 없어 인색하게 된다. 그렇다고 상구가 나서면 외괘가 태택(兌澤)이 되고, 지괘(之卦)가 택풍대과(澤風大過)괘가 되니 잘못하면 큰 허물을 짓게 된다. 이렇게 된 것은 맨 위에 처하여 궁해져서 인색한 것이지, 어느 누구를 탓할 바는 아니다.

 

象曰 姤其角은 上窮하야 吝也라.

상왈 구기각    상궁      인야

상전에 말하였다. “그 뿔에 만남은 위에서 궁하여 인색한 것이다.”

窮:궁할 궁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489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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