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의
하늘이 부여한 성품을 바르게 지켜 나가고, 천도의 변화에 응하여 만물을 기르라(對時育物).
괘명과 괘상
외괘가 건천(乾天)☰, 내괘가 진뢰(震雷)☳로 이루어진 괘를 ‘무망(无妄)’이라 한다. 지뢰복(地雷復)괘는 순음(純陰)의 상태에서 강한 양(陽) 기운이 상서롭게 회복함을 나타낸 것이고, 인간으로 치면 불선(不善)함에 물들어 있다가 착한 본성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본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성(天性)을 회복하는 것인데, 원래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성은 망령됨이 없다. 외괘의 건천(乾天)☰은 공정무사(公正無私)한 하늘의 모습이며, 내괘 초구 양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성을 의미한다.
서괘
「서괘전」은 지뢰복괘 다음에 천뢰무망괘를 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復則不妄矣라 故로 受之以无妄하고
복즉불망의 고 수지입무망
회복되면 망령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망으로써 받고
유약하고 음울한 기운이 가득하다가 밝고 상서로운 양의 기운이 생하면, 천성이 회복되어 망령됨이 없어진다. 그래서 망령됨이 없다는 천뢰무망괘를 지뢰복괘 다음에 두었다.
괘사
无妄은 元亨하고 利貞하니 其匪正이면 有眚하릴새 不利有攸往하니라.
무망 원형 이정 기비정 유생 불리유유왕
무망(无妄)은 크게 형통하고 바름이 이로우니, 그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을 것이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
妄:망령될 망 匪:아닐 비 眚:눈에 백태 낄 생·재앙 생(人災)
천성이 회복되어 망령됨이 없어진 무망(无妄)은 크게 형통하다. 그렇지만 인생살이에 있어서는 바르게 해야 무망(无妄)이 지속될 수 있으니, 바르게 해야 이롭다. 만일 바르게 하지 못하면 망령됨이 있게 되고, 그로 인한 재앙이 생겨 무슨 일을 하든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无妄은 剛이 自外來而爲主於內하니 動而健하고
단왈 무망 강 자외래이위주어내 동이건
剛中而應하야 大亨以正하니 天之命也라.
강중이응 대형이정 천지명야
其匪正有眚不利有攸往은 无妄之往이 何之矣리오.
기비정유생불리유유왕 무망지왕 하지의
天命不祐를 行矣哉아.
천명불우 행의재
단전에 말하였다. “무망(无妄)은 강(剛)이 밖으로부터 와서 안에서 주장하니, 움직이고 굳건하고, 강이 가운데 하고 응해서 크게 형통해서 바르니 하늘의 명이다. ‘그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어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음’은 무망(无妄)의 감이 어디를 가겠는가? 천명이 돕지 않음을 행하겠는가?”
自:부터 자 之:갈 지 祐:도울 우 矣:어조사 의 哉:어조사 재
무망(无妄)은 내괘 초구의 강이 밖으로부터 와서 안을 주장하니, 괘덕(卦德)이 내괘 진(震)☳으로 움직이고 외괘 건(乾)☰으로 굳건한 상이다. 초구가 밖으로부터 왔다는 것은 다른 괘체에서 온 것이 아니라, 외괘의 건천(乾天)☰으로부터 천성을 회복하여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외괘에서 중정한 구오 양이 내괘에서 중정한 육이 음과 잘 응하고 있으니, 이것이 크게 형통하고 바른 것으로 곧 하늘의 명인 것이다.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어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는 것은 바르지 못해서 망령된 상태에서는 그 무엇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바르지 못하면 천명(天命)이 돕지 않으니 제대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괘상사
象曰 天下雷行하야 物與无妄하니 先王이 以하야 茂對時하야 育萬物하니라.
상왈 천하뇌행 물여무망 선왕 이 무대시 육만물
상전에 말하였다. “하늘 아래에 우레가 행해서 물건마다 무망(망녕됨이 없는 천성)을 주니, 옛 왕이 이를 본받아 성하게 때를 대해서 만물을 길렀다.”
與:줄 여 茂:우거질 무·성할 무·힘쓸 무 對:대할 대 育:기를 육
외괘의 하늘☰ 아래에 우레☳가 행하여 망령됨이 없는 천성(天性)을 만물에 부여하는 자연의 원리를 보고, 옛 왕들은 만물이 싹트는 봄,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 결실을 거두는 가을, 원기를 봉장하는 겨울 등 각 때에 맞추어 만물을 길렀다. 이는 천지자연의 법도에 따라 정치를 잘 하였다는 뜻이다. 무망(无妄)괘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품을 어떻게 잘 가꾸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괘이다.
효사 및 효상사
初九는 无妄이니 往애 吉하리라.
초구 무망 왕 길
초구는 망령됨이 없으니, 감에 길할 것이다.
초구 양은 외괘 하늘☰의 천성(天性)을 그대로 부여받은 상태이다. 천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내괘 진☳으로 움직여 나가니 길하다. 하고자 하는 뜻을 이룰 수 있다.
象曰 无妄之往은 得志也리라.
상왈 무망지왕 득지야
상전에 말하였다. “무망의 감은 뜻을 얻을 것이다.”
六二는 不耕하야 穫하며 不菑하야 畬니 則利有攸往하니라.
육이 불경 확 불치 여 즉이유유왕
육이는 밭을 갈지 않아서 거두며, 1년 밭을 갈지 않았는데도 3년 밭이 되니, 곧 가는 바를 둠이 이롭다.
耕:밭갈 경 穫:거둘 확 菑:1년 묵은 밭 치·일굴 치 畬:3년 묵은 밭 여·새밭 여
육이는 내괘에서 중정한 자리에 있고, 외괘 건☰에서 중정한 구오와 잘 응하고 있다. 하늘로부터 중정한 천성(天性)을 받아 천리(天理)에 순응하고 있으니,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치(菑)’는 1년 묵은 밭을 말하고 ‘여(畬)’는 3년 된 밭을 말한다. 《이아(爾雅)》에 의하면, 밭이 1년 된 것을 ‘치(菑)’라 하고 2년 된 것을 ‘신전(新田)’이라 하며 3년 된 것을 ‘여(畬)’라 한다(田 一歲曰菑 二歲曰新田 三歲曰畬). 1년 농사를 다 짓지 않았는데도 3년 농사가 이루어지듯, 모든 일이 뜻하는 대로 저절로 잘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즉 의도적으로 부를 축적하려고 하지 않아도 부(富)하게 되는 것이고, 또는 천성(天性)에 따라 살아갈 뿐 욕심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노자(老子)의 심법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도덕경》 제51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道生之하고 德畜之하며 物形之하고 勢成之하니 是以로 萬物이 莫不尊道而貴德이라. 道之尊과 德之貴는 夫莫之爵而常自然이라. 故로 道生之하고 德畜之하며 長之育之하고 亭之毒之하며 養之覆之하니 生而不有하고 爲而不恃하며 長而不宰를 是謂玄德이니라.
도가 낳고 덕은 기르며, 물건을 형상하고 형세를 이루니,
이로써 만물이 도를 높이고 덕을 귀하게 하지 않음이 없다.
도의 높음과 덕의 귀함은 무릇 누가 부여함이 없이 항상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도가 낳고 덕이 기르며, 자라게 하고 이루어 주며,
형통하게 하고 성숙하게 하며, 길러주고 살피니,
낳아도 소유하지 않고, 하여도 자랑하지 않고, 길러도 주재하지 않음을
이를 일컬어 ‘현묘한 덕’이라 한다.
象曰 不耕穫은 未富也라.
상왈 불경확 미부야
상전에 말하였다. “밭을 갈지 않아도 거둠은 (억지로) 안 해도 부하게 되는 것이다.”
하늘의 중정한 천성을 받아 천리에 맞게 순응하니, 억지로 부유하려고 하지 않아도 부유하게 된다. 또한 중정한 천성으로 욕심이 없이 바르게 사니 혼자 부유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六三은 无妄之災니 或繫之牛하나 行人之得이 邑人之災로다.
육삼 무망지재 혹계지우 행인지득 읍인지재
육삼은 무망의 재앙이니, 혹 소를 매나 지나가는 사람의 얻음이 읍 사람의 재앙이로다.
或:혹 혹 繫:맬 계 得:얻을 득
육삼은 양자리에 음으로 있어 부당하고 중도 얻지 못하여, 바른 도를 잃고 천명에 어긋나 지극히 망령된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재앙이 있게 되니, 마치 동네 어귀에 소를 매놓았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소를 가져가서 읍 사람의 재앙이 되는 것과 같다. 육삼이 변하면 내괘가 이화(離火)☲가 되는데 이(離)☲는 동물로 소에 해당하기도 한다(중화리괘 참조).
그런데 ‘소(牛)’는 인간의 정신(精神)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중도를 잃고 배회하다가 어느 종교나 신념에 정신을 매놓지만, 정작 지나가던 다른 사람이 자기 정신을 채가니, 자기 정신을 잃어버리는 재앙이 되는 것이다. 《맹자(孟子)》 「고자장구상(告子章句上)」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孟子曰仁은 人心也오 義는 人路也니라. 舍其路而弗由하며 放其心而不知求하나니 哀哉라! 人이 有雞犬이 放則知求之호대 有放心而不知求하나니 學問之道는 無他라 求其放心而已矣니라.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짊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로움은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을 모르니, 애처롭다. 사람이 닭과 개가 도망가면 찾을 줄을 알되, 마음을 잃고서는 찾을 줄을 알지 못하니,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그 잃어버린 마음(放心)을 찾는 것일 뿐이다.”
象曰 行人得牛 邑人災也라.
상왈 행인득우 읍인재야
상전에 말하였다. “지나가는 사람이 소를 얻음이 읍 사람의 재앙이다.”
중도를 잃고 천성을 상실한 망령된 상태에서 정신(소)을 매 놓지만 지나가던 사람이 채가니,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재앙인 것이다.
九四는 可貞이니 无咎리라.
구사 가정 무구
구사는 가히 바르게 하니, 허물이 없을 것이다.
구사는 음자리에 양으로 있고 중을 얻지 못한 상태이나 외괘 건천☰에 있고, 구사가 변하면 손☴이 되니 하늘의 명에 겸손하게 따르는 상이다. 이렇게 바르게 하면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을 굳게 지켜서 허물이 없게 된다.
象曰 可貞无咎는 固有之也일새라.
상왈 가정무구 고유지야
상전에 말하였다. “가히 바르게 해서 허물이 없음은 굳게 두기 때문이다.”
九五는 无妄之疾은 勿藥이면 有喜리라.
구오 무망지질 물약 유희
구오는 무망의 병은 약을 쓰지 않으면 기쁨이 있을 것이다.
疾:병 질 藥:약 약 喜:기쁠 희
구오는 외괘 건천(乾天)☰에서 중정한 자리이다. 그런데 구오가 변하면 외괘가 이화(離火)☲가 되어 병이 있을 수가 있다. 망령됨이 없는 상황에서도 미처 알지 못하는 뜻밖의 병이 있을 수 있다. 천성(天性)을 닦아 나가는 수양을 하는 중에도 불시(不時)의 병이 생길 수 있는데, 이러한 병은 약을 쓰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낳게 된다. 또한 천성에 따라 망령됨이 없이 살더라도, 때로는 시련이 닥칠 수 있다. 이러한 시련에 동요되지 않고 굳게 천성을 지켜 나가면 큰 기쁨이 있게 된다. 수양하면서 나타나는 병과 망령됨이 없이 착하게 살다가도 닥치는 시련과 같은 것은 가히 시험할 수 없는 것이다.
象曰 无妄之藥은 不可試也니라.
상왈 무망지약 불가시야
상전에 말하였다. “무망의 약은 가히 시험하지 못한다.”
試:시험할 시
上九는 无妄애 行이면 有眚하야 无攸利하니라.
상구 무망 행 유생 무유리
상구는 무망에 가면 재앙이 있어서 이로운 바가 없다.
상구는 외괘 건천(乾天)☰의 극에 있어 도가 지나친 상태이다. 상구가 변하면 태택(兌澤)☱이 되니 기운이 사라지고 훼절당하여 재앙이 된다. 망령됨이 없는 상태 그대로 있어야 한다. 아래 내괘에서 자리가 바르지 않고 중을 얻지 못한 육삼 음과 응하고 있으니, 상구 자신은 망령됨이 없더라도 바르지 못한 육삼에게 가면 재앙이 있게 되어 이로운 바가 없다. 이는 맨 위에서 궁하게 되어 오는 재앙인 것이다.
象曰 无妄之行은 窮之災也라.
상왈 무망지행 궁지재야
상전에 말하였다. “무망의 감은 궁해서 재앙이다.”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330∼3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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