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산책/주역

23. 산지박(山地剝)

돈호인 2020. 10. 28. 23:03

 

괘의

산이 땅 위에서 천하를 내려보듯이 소인이 득세한 세상에서도 군자는 민생을 두텁게 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노력을 한다(厚下安宅).

 

괘명과 괘상

외괘가 간산(艮山), 내괘가 곤지(坤地)로 이루어진 괘를 ()괘라 한다. ()은 깎인다는 의미로 초효부터 오효까지 자라난 음기운이 마지막 남은 상구 양()을 깎는다는 뜻이다. () 입장에서는 아래의 음기운에 의해 깎여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상구 양()이 소인이냐 군자이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다르다. 산지박(山地剝)괘는 일양오음(一陽五陰)괘로 중지곤(重地坤)괘 상효와 중천건(重天乾)괘 상효를 아울러 살펴볼 필요가 있다.

 

重天乾卦 上九는 亢龍이니 有悔리라.

             상구는 높은 용이니 뉘우침이 있을 것이다.

重地坤卦 上六은 龍戰于野하니 其血이 玄黃이로다.

             상육은 용이 들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렇다.

 

서괘

서괘전은 산화비괘 다음에 산지박괘가 온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賁者는 飾也니 致飾然後애 亨則盡矣라 故로 受之以剝하고

비자    식야   치식연후    형즉진의    고     수지이박

비(賁)란 꾸밈이니, 꾸밈을 이룬 다음에 형통하면 다한다. 그러므로 박(剝)으로써 받고

飾:꾸밀 식   致:이룰 치   盡:다할 진

 

비괘(賁卦)는 꾸미는 것인데 다 꾸미고 나면 형통하지만, 더 이상 꾸밀 것이 없기 때문에 깎여나가게 된다. 그래서 깎인다는 박괘()를 산화비괘 다음에 두었다.

 

괘사

剝은 不利有攸往하니라.

박    불리유유왕

박(剝)은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

剝:벗길 박·깎을 박

 

박괘()는 마지막 남은 양이 아래의 다섯 음에 의해 깎여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 입장에서는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 그러나 음()의 입장에서는 반대일 것이다. 《주역》은 군자(君子)를 위주로 한 학문이고 군자를 양()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런데 소인(小人)과 군자(君子)를 음과 양으로 대비시킬 때, 역동적인 사회의 갈등관계에서 상대적인 관계에 있는 두 양상, 즉 보수(保守)진보(進步)의 양상에서 어디를 군자로 보고 어디를 소인으로 봐야 할 것인가? 즉 예컨대, 보수(保守)를 양으로 보고 진보(進步)를 음으로 본다면, 양을 군자로 보고 음을 소인으로 보는 전통적인 해석에 다소 변화를 주어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관념을 이해하면서도 새로운 관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剝은 剝也니 柔 變剛也니

단왈 박    박야    유 변강야

不利有攸往은 小人이 長也일새라.

불리유유왕    소인    장야

順而止之는 觀象也니 君子 尙消息盈虛 天行也라.

순이지지    관상야    군자 상소식영허 천행야

단전에 말하였다. “박(剝)은 깎는 것이니, 유(柔)가 강(剛)을 변하게 하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음은 소인이 자라기 때문이다. 순하여 그침은 상을 봄이니, 군자가 사라지고 불어나고 차고 빔을 숭상함이 하늘의 운행이다.”

變:변할 변   攸:바 유   尙:숭상할 상   消:사라질 소   息:자랄 식  盈:찰 영   虛:빌 허

 

오효까지 자라난 음이 양을 변하게 하여 깎는 것이다. 마지막 남은 양이 대인(大人)이면 변하지 않고 다섯 음의 무리를 잘 교화시켜 감화시키지만, 소인(小人)이라면 음의 세력에 편승하여 변하게 된다.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는 것은 음의 세력이 너무 커져 있기 때문이다. 괘의 덕을 보면 내괘 곤지()로 순하고 외괘 간산(艮山)으로 그쳐있는데, 이러한 상을 보고 군자는 양 기운과 음 기운이 사라지고 불어나고 차고 비는 자연의 법도를 깨달아 처신한다.

 

괘상사

象曰 山附於地 剝이니 上이 以하야 厚下하야 安宅하나니라.

상왈 산부어지 박       상    이      후하       안택

상전에 말하였다. “산이 땅에 붙어있는 것이 박(剝)이니, 상(위에 있는 군자)이 이를 본받아 아래를 후하게 하여 집을 편안하게 한다.”

附:붙을 부   厚:두터울 후   宅:집 택

 

  박괘()는 내괘가 곤지(坤地)이고 외괘가 간산(艮山)으로 산이 땅에 붙어있는 상이다. 또한 맨 위에 있는 양()이 음에 의해 깎이는 상이다. 그러면 양(), 즉 군자(君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양()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음()이 자신을 깎지 못하도록 아래를 두텁게 쌓아서 자기 집을 편안히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후한 덕으로 아래 음을 교화시켜 모두가 사는 집을 편안히 하는 것이다. 소인(小人)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두텁게 쌓아 자신을 보호하려다가 결국은 음의 세력에 의해 자기 집을 잃게 될 것이지만, 군자(君子)는 음의 세력을 덕으로 교화시켜 모두가 사는 집, 즉 이 세상을 편안하게 한다.

  여기서 산지박괘의 체가 되는 중지곤(重地坤)괘의 괘상사를 다시 음미해 보자.

 

象曰 地勢 坤이니 君子 以하야 厚德으로 載物하나니라.

상전에 말하였다. “땅의 형세가 곤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싣는다.”

 

효사 및 효상사

初六은 剝牀以足이니 蔑貞이라 凶토다.

초륙    박상이족      멸정       흉

초육은 상을 깎는데 발로써 하니, 바름을 멸한다. 흉하도다.

牀:평상 상   蔑:업신여길 멸·어두울 멸·멸할 멸·깎을 멸

 

깎여나가는 산지박(山地剝)괘에서 초효는 맨 아래에 있어 평상(平床)으로 보면 다리()에 해당한다. 초효가 변하면 내괘가 진이 되니 발이 나온다(震爲足). 양 자리에 음으로 있고, 중도 못 얻었으며, 응하는 육사도 같은 음()이니 초효를 도와줄 수가 없다. 평상의 바른 상태를 멸하는 것이니 흉하다.

 

象曰 剝牀以足은 以滅下也라.

상왈 박상이족    이멸하야

상전에 말하였다. “상을 깎는데 발로써 함은 아래를 멸하는 것이다.”

 

六二는 剝牀以辨이니 蔑貞이라 凶토다.

육이    박상이변      멸정       흉

육이는 상을 깎는데 언저리로써 하니, 바름을 멸한다. 흉하도다.

辨:나누일 변·분별할 변(평평한 상판과 다리로 나뉘는 곳으로 상판 언저리를 뜻함)

 

육이는 내괘에서 중정한 자리이지만, 박괘(剝卦)의 양상이 깎여나가는 것이고, 응하는 육오도 같은 음으로 도와주지 못하니, 평상으로 치면 언저리까지 깎여져서 바름이 멸하는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내괘에서 두 번째 음 자리에 음이 오면 중정(中正)한 상태이기 때문에 좋은 양상으로 풀이되지만, 박괘(剝卦)는 전체 기운의 양상이 깎여나가는 것이니 육이효가 중정함에도 불구하고 깎여나가 흉한 상태가 된다.

 

象曰 剝牀以辨은 未有與也일새라.

상왈 박상이변    미유여야

상전에 말하였다. “상을 깎는데 언저리로써 함은 더불음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육삼이 언저리로써 깎여나가는 것은 응하는 육오가 같은 음으로 육이와 더불어 도와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六三은 剝之无咎니라.

육삼    박지무구

육삼은 깎는데 허물이 없다.

 

육삼은 양자리에 음으로 와 자리가 부당하고 중도 얻지 못하였으나, 다섯 음 가운데 유일하게 상구 양()과 응하고 있다. 그래서 상구의 도움을 받아 깎여나가는 허물을 면하게 된다.

 

象曰 剝之无咎는 失上下也일새라.

상왈 박지무구    실상하야

상전에 말하였다. “깎는데 허물이 없음은 위와 아래를 잃기 때문이다.”

 

육삼이 허물을 면하게 되는 것은 상구의 도움으로 같은 음인 아래의 초육, 육이와 위의 육사, 육오를 잃고 상구 양과 같이 하기 때문이다.

 

六四는 剝牀以膚니 凶하니라.

육사    박상이부   흉

육사는 상을 깎는데 살로써 하니 흉하다.

膚:살갗 부

 

육사는 내괘의 평상을 지나 외괘의 첫 자리이고 음 자리에 음으로 있으니, 마치 평상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의 살에 해당한다. 깎여나가는 괘에서 드디어 사람의 살이 깎여나가 다치는 상황이니 흉하다. 육사가 변하면 외괘가 이화(離火)가 되니 재앙을 의미한다. 재앙에 절박하게 가까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象曰 剝牀以膚는 切近災也라.

상왈 박상이부    절근재야

상전에 말하였다. “상을 깎는데 살로써 함은 재앙에 절박하게 가까운 것이다.”

切:절박할 절   近:가까울 근   災:재앙 재

 

六五는 貫魚하야 以宮人寵이면 无不利리라.

육오    관어      이궁인총       무불리

육오는 고기를 꿰어서 궁인의 사랑으로써 하면, 이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貫:꿸 관   魚:물고기 어   宮:집 궁   寵:괼(사랑․은총) 총

 

  산지박(山地剝)괘에서 육오는 양자리에 음으로 있어 자리가 부당하나, 외괘의 중()을 얻어 전체를 이끌어가는 왕에 해당한다. 외괘가 간산(艮山)이니 깎이는 재앙이 그치는 것이고, 또한 상구가 바로 위에 있어 교화를 받으니 깎이는 재앙이 없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왕으로 세상을 다스리는데 초효부터 사효까지의 음 소인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물고기는 음에 해당하기에 마치 물고기()들을 한결같이 꿰어서 궁녀(宮女)들에게 사랑을 베풀듯이 사랑을 두루 베풀면 음들이 교화를 받아 이롭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다.

 

象曰 以宮人寵은 終无尤也리라.

상왈 이궁인총    종무우야

상전에 말하였다. “궁인의 사랑으로써 함은 마침내 허물이 없을 것이다”

尤:허물 우

 

上九는 碩果不食이니 君子는 得輿하고 小人은 剝廬리라.

상구    석과불식      군자    득여       소인    박려

상구는 큰 열매는 먹지 않으니, 군자는 수레를 얻고 소인은 집을 깎을 것이다.

碩:클 석   果:실과 과   食:먹을 식   輿:수레 여   廬:오두막집 려

 

  깎여나가는 박괘(剝卦)에서 상구는 양으로 맨 위에 거하고 있다. 아래에 있는 다섯 음들이 상구를 깎고자 밀려온다. 그러나 가을의 숙살지기(肅殺之氣)로 잎이 다 떨어지고 열매가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마지막 남은 큰 열매는 먹지 않고 다음 해의 농사를 위한 종자로 써서 다시 큰 수확을 거두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비록 음 기운에 의해 밀려나 맨 위에 있는 유일한 양이라 할지라도, 군자(君子)라면 음들을 잘 교화시켜 상구 자신을 따르게 하여 큰 수레를 얻게 되지만, 소인()은 결국 음에 편승하게 되니 마지막 남은 자신의 초라한 오두막집까지도 깎이게 된다. 난세(亂世)에 처한 궁박한 상황에서도 소인과 군자의 처세 결과는 다른 것이다. 성인(聖人)은 결국 거름이 되어 민생구제(民生救濟)의 대도(大道)를 펴게 되니 수레를 얻는 상이지만, 소인(小人)은 시류(時流)에 편승하여 온갖 나쁜 짓을 하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象曰 君子得輿는 民所載也오 小人剝廬는 終不可用也라.

상왈 군자득여    민소재야    소인박려    종불가용야

상전에 말하였다. “군자가 수레를 얻음은 백성을 싣는 것이고, 소인이 집을 깎음은 마침내 가히 쓰지 못하는 것이다.”

載:실을 재

 

군자가 큰 수레를 얻는다는 것은 천하 백성을 얻는 것이고, 소인이 집을 깎게 된다는 것은 끝내 세상을 위해 쓰지 못함을 말한다.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31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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