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의
산 아래에 불이 있어 환히 비추고 단풍이 물들면서 아름답게 꾸미듯이, 나라를 밝게 다스리고 사회를 아름답게 꾸미며 형벌(옥사)을 판단함에는 신중하게 하라(无敢折獄).
괘명과 괘상
외괘가 간산(艮山)☶, 내괘가 이화(離火)☲로 이루어진 괘를 ‘비(賁)’라고 한다. 산 아래에 붉은 단풍이 들면서 아름답게 꾸민다고 하여 ‘꾸밀 비’라고 한다. 또한 사회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는 혹 있을 수 있는 가벼운 범죄는 엄격하게 처벌하지 말고 사회를 원만하게 이끌어가야 한다. 범죄인이 많아진다는 것은 법이 잘못돼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내괘의 이화(離火)☲의 형벌을 외괘 간산(艮山)☶으로 그치게 한다는 의미도 된다.
서괘
「서괘전」은 화뢰서합괘 다음에 산화비괘가 온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嗑者는 合也니 物不可以苟合而已라 故로 受之以賁하고
합자 합야 물불가이구합이이 고 수지이비
합(嗑)이란 합함이니, 물건이 구차하게 합하지만은 못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비로써 받고
苟:진실로 구·구차할 구 已:따름 이
서합은 씹어 합하는 것인데, 모든 물건과 상황이 무작정 합하는 것만은 아니며 서로 꾸미기도 한다. 또한 무조건 형벌로만 해 나갈 수 없으며, 때로는 사회의 화합을 위해 형벌을 완화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화뢰서합괘 다음에 산화비괘를 두었다.
괘사
賁는 亨하니 小利有攸往하니라.
비 형 소리유유왕
비는 형통하니, 가는 바를 둠이 조금 이롭다.
賁:꾸밀 비·바뀔 비·클 분·날랠 분·땅이름 륙
비(賁)는 사회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고, 가벼운 죄는 화합 차원에서 용서해 주는 것이니 형통하다. 산 아래에 단풍이 서서히 아름답게 물 드는 것과 같이, 또한 내괘 이화(離火)☲의 별들이 외괘 간산(艮山)☶의 북극성을 중심으로 서서히 돌아가듯이, 가는 바를 둠이 조금 이롭다. 너무 욕심을 내지 말고 조금씩 나아가라는 뜻이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賁(亨)는 柔 來而文剛故로 亨하고
단왈 비(형) 유 래이문강고 형
分剛하야上而文柔故로 小利有攸往하니 天文也오
분강 상이문유고 소리유유왕 천문야
文明以止하니 人文也니
문명이지 인문야
觀乎天文하야 以察時變하며
관호천문 이찰시변
觀乎人文하야 以化成天下하나니라.
관호인문 이화성천하
단전에 말하였다. “비(賁)는 유가 와서 강을 빛나게 하는 까닭에 형통하고, 강(剛)을 나누어 올라가서 유(柔)를 빛나게 하는 까닭에 가는 바를 둠이 조금 이로우니 천문이요, 문명해서 그치니 인문이니, 천문을 보아서 때의 변화를 살피며, 인문을 보아서 천하를 화하여 이룬다.”
文:글자 문·문채 문·빛날 문 察:살필 찰
산화비괘도 삼음삼양(三陰三陽)괘로 그 체는 지천태(地天泰)괘에 있다. 태평한 세상에서 행해지는 사소한 범죄는 사회 화합을 위해 감히 엄격한 형벌로 다스리지 않는다. 지천태괘에서 구이와 상육이 자리바꿈하여 상육의 음유(陰柔)가 내괘의 가운데로 와서 초효와 삼효의 강(剛)을 꾸며주기 때문에 형통하고, 내괘의 강은 나뉘어서 구이 강(剛)이 위로 상효자리로 올라가 음유(陰柔)를 꾸며주는 까닭으로 외괘가 간산(艮山)☶이 되니 가는 바를 둠이 조금 이롭게 된다.
우주에서 저마다의 길을 따라 운행하고 있는 별들이 밤하늘을 꾸며주고 있는데, 지구에서 볼 때 그 별들의 운행은 서서히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이 바로 천문(天文)이다. 또한 내괘 이화(離火)☲로 문명하고 외괘 간산(艮山)☶으로 그치니, 문명함이 오래 그쳐 있어 인간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천문(天文)을 보아서 춘하추동 사시의 변화를 살피며, 인문(人文)을 보아서 천하를 화하여 이룬다.
의서(醫書)의 고전으로 알려지고 있는 《황제내경소문(黃帝內經素問)》 제69편 「기교변대론(氣交變大論)」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帝曰 余聞호대 得其人하야 不敎면 是爲失道라 하고 傳非其人이면 慢泄天寶라 하니 余誠菲德하야 未足以受至道하나 然이나 而衆子哀其不終이라. 願夫子컨대 保於無窮하고 流於無極토록 余司其事하야 則而行之하곤 奈何잇고?
황제가 말하였다. “내가 듣기를 ‘그 사람(참된 사람)을 얻어서 가르치지 않으면 이는 하늘의 도리를 잃은 것이고, 그 사람이 아님에도 전하게 되면 하늘의 보배(寶)를 함부로 누설하는 것이다’라고 하니, 내가 진실로 덕이 없어 지극한 도를 전수 받기에 부족하나, 그러나 백성들이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고 있다. 그대에게 바라건대 영원토록 보존하고 끝이 없이 흐르도록, 내가 그 일을 맡아 법칙으로 하여 행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岐伯曰 請遂言之也니이다. 《上經》에 曰 夫道者는 上知天文하고 下知地理하며 中知人事하면 可以長久라 하니 此之謂也니이다.
기백이 말하였다. “제가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上經》에 이르길 ‘무릇 도(醫道)라는 것은 위로는 천문(天文)을 알고, 아래로는 지리(地理)를 알며, 가운데로는 인사(人事)를 알면, 가히 길고 오래할 것이다’고 하였으니, 바로 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帝曰 何謂也오?
황제가 말하였다. “무슨 뜻인가?”
岐伯曰 本氣位也니이다. 位天者는 天文也오 位地者는 地理也오 通于人氣之變化者는 人事也니이다. 故로 太過者는 先天하고 不及者는 後天하니 所謂治化而人應之也니이다.
기백이 말하였다. “기(氣)에 근본하여 자리한 것입니다. 하늘에 자리한 것은 천문(天文)이고, 땅에 자리한 것은 지리(地理)이며, 사람 기운의 변화에 통하는 것이 인사(人事)입니다. 그러므로 운기(運氣)가 태과(太過)하면 기후가 계절보다 먼저 이르고, 불급(不及)하면 기후가 계절보다 늦게 이르니, 이른바 다스리고 화하여 사람이 기운에 응하는 것입니다.”
괘상사
象曰 山下有火 賁니 君子 以하야 明庶政호대 无敢折獄하나니라.
상왈 산하유화 비 군자 이 명서정 무감절옥
상전에 말하였다. “산 아래에 불이 있음이 비(賁)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뭇 정사를 밝히되 감히 옥을 판단함이 없게 한다.”
庶:많을 서·여러 서 敢:감히 감 折:꺽을 절·결단할 절 獄:감옥 옥
비괘(賁卦)는 산 아래에 불이 있는 상이다. 군자는 이러한 상을 보아서, 내괘의 이화(離火)☲는 불이고 문명하니 정치를 밝게 하며, 외괘 간산(艮山)☶은 그치는 것이고 덕을 말하니 함부로 옥(獄)을 결정하여 형벌을 내리지 않는다. 또한 호괘가 뇌수해(雷水解)가 되니 허물은 용서해 주고 죄는 감해 주어야 한다. 뇌수해괘 괘상사를 참고하여 보자.
象曰 雷雨作이 解니 君子 以하야 赦過宥罪하나니라.
상전에 말하였다. “우레와 비가 일어남이 해(解)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허물을 용서하고 죄를 감해준다.”
효사 및 효상사
初九는 賁其趾니 舍車而徒로다.
초구 비기지 사거이도
초구는 그 발을 꾸미니, 수레를 버리고 걸어가도다.
趾:발지 舍:버릴 사·집 사 徒:걸어다닐 도·일꾼 도·징역 도·죄수 도·다만 도
초구는 비괘에서 맨 아래에 있으니 발을 꾸미는 것과 같다. 내괘가 이화(離火)☲로 속이 비어 있으니 수레의 상이다. 양이 양자리에 있어 자리가 바른 초구가 외괘의 육사 대신과 정응하여 서로 꾸미고자 하는데, 바로 위에 육이 음이 있으니 초구가 육이 음과 꾸미려다가 그만둔다. 즉 초구가 내괘의 수레를 타려는 것은 육이 음과 꾸미려는 것이다. 그러나 소박하게 있는 그대로 정응인 육사를 만나기 위해 수레를 버리고 걸어간다. 초구가 변하면 내괘가 간산(艮山)☶이 되니 수레를 타지 않고 그치는 것이다. 초구 백성이 육사 대신을 만나는데 수레를 타고 높은 행세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의리상 탈 수 없는 것이다.
象曰 舍車而徒는 義弗乘也라.
상왈 사거이도 의불승야
상전에 말하였다. “수레를 버리고 걸어감은 의리상 타지 않는 것이다.”
弗:아닐 불 乘:탈 승
六二는 賁其須로다.
육이 비기수
육이는 그 수염을 꾸미도다.
須:수염 수·기다릴 수·잠깐 수·모름지기 수
육이는 서로 꾸미는 상황에서 응하는 효인 육오가 같은 음(陰)이기에 육오와 꾸미지 못하고 바로 위에 있는 구삼 양과 꾸미게 된다. 마치 육이가 구삼의 강한 턱에 붙어있는 수염처럼 구삼이 하는 대로 따르며 꾸미는 것이다.
象曰 賁其須는 與上興也라.
상왈 비기수 여상흥야
상전에 말하였다. “그 수염에 꾸밈은 위와 더불어 흥하는 것이다.”
육이가 수염을 꾸미는 것은 구삼과 더불어 움직이는 것이다.
九三은 賁如 濡如하니 永貞하면 吉하리라.
구삼 비여 유여 영정 길
구삼은 꾸미는 듯함이 젖는 듯하니, 오래도록 바르게 하면 길할 것이다.
濡:젖을 유
구삼은 양자리에 양으로 자리는 바르나 중을 얻지 못하였다. 또한 꾸미는데 있어 응하는 자리인 상구는 같은 양이기 때문에 서로 꾸미지 못한다. 그래서 구삼은 바로 위아래에 있는 음과 꾸미게 된다. 즉 구삼이 같은 내괘에 있는 육이와는 내괘 이화(離火)☲로 꾸미는 듯하고, 또 한편으로 외괘에 있는 육사와는 내호괘가 감수(坎水)☵이니 젖는 듯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는 구삼이 육이와 육사의 두 음 사이에서 지조를 잃은 듯이 보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능멸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길이 바르게 해야 길하다고 하였다.
象曰 永貞之吉은 終莫之陵也니라.
상왈 영정지길 종막지릉야
상전에 말하였다. “오래도록 바르게 해서 길함은 마침내 능멸하지 못한다.”
莫:없을 막·말 막·아득할 막·저물 모 陵:언덕 릉·업신여길 릉
구삼이 오래도록 바르게 하면, 육이와 육사 사이에서 빚어지는 오해에서 벗어나 마침내 구삼을 능멸하지 못한다.
六四는 賁如 皤如하며 白馬 翰如하니 匪寇면 婚媾리라.
육사 비여 파여 백마 한여 비구 혼구
육사는 꾸미는 듯함이 흰 듯하며, 흰말이 나는 듯하니, 도적이 아니면 청혼할 것이다.
皤:흴 파 翰:날개 한·흰말 한·날 한·높을 한 寇:도적 구 媾:화친할 구
육사는 음 자리에 음으로 있어 자리가 마땅하고, 초구 양과 상응하는 관계이다. 그런데 바로 아래에 구삼 양(陽)이 있기 때문에 육사 음이 구삼 양과 꾸미는 듯하다가 정응관계인 초구가 있으니 구삼과 꾸미지 않아 흰듯하게 보이는 것이다. 육사가 변하여 양으로 바뀐 상태에서 외호괘가 태☱가 되니, 태☱는 후천팔괘방위로 서방으로 백색(白色)이 나온다. 결국 구삼과 꾸미지 않고 순결한 흰말이 되어 나는 듯이 초구와 만나게 되니, 초구가 도적이 아니면 청혼하는 것이다.
‘도적이 아니면 청혼한다(匪寇婚媾)’라는 말은 옛날 유목사회 혼인풍습에 약탈혼(掠奪婚)이 있는데, 남자가 말을 타고 가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약탈해가 혼인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말을 타고 약탈하는 예는 도적의 경우와 혼인의 경우가 있으니, ‘도적이 아니면 청혼하리라’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서로 음과 양이 정응관계에서 꾸미는 것이니 청혼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象曰 六四는 當位疑也니 匪寇婚媾는 終无尤也라.
상왈 육사 당위의야 비구혼구 종무우야
상전에 말하였다. “육사는 마땅한 자리를 의심함이니, ‘도적이 아니면 청혼하는 것’은 마침내 허물이 없다.”
疑:의심할 의 尤:더욱 우·허물 우
육사가 음자리에 음으로 마땅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정응관계인 초구와 상비관계인 구삼이 있으니, 두 양 사이에서 육사가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다. ‘도적이 아니면 청혼한다’는 것은 마침내 초구를 만나 꾸미기에 허물이 없다.
六五는 賁于丘園이니 束帛이 戔戔이면 吝하나 終吉이리라.
육오 비우구원 속백 잔잔 인 종길
육오는 언덕의 동산에 꾸미니, 비단 묶음이 작으면 인색하나, 마침내 길할 것이다.
丘:언덕 구 園:동산 원 束 : 묵을 속 帛:비단 백 戔:해칠 잔·쌓일 전·적을 전
육오는 양 자리에 음으로 와 외괘의 중을 얻고 있으나, 내괘의 육이와는 같은 음으로 서로 꾸미지 못한다. 그래서 육오는 바로 위에 있는 상구 양(陽)을 꾸미게 되는데, 외괘가 간산(艮山)☶이니 상구는 언덕의 동산이 된다. 육오가 양자리에 음으로 있어 충실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상구와 꾸미고 혹은 상구에게 청혼하는데 주는 선물인 비단묶음이 작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색하지만, 중을 지키고 있으니 마침내 길하게 된다. 분수에 맞게 소박하게 하라는 뜻이다.
속백(束帛)은 비단 5필을 각각 양끝에서 마주 말아 한 묶음으로 한 것을 말하는데, 나라 사이에 빙문(聘問)하던 예물(禮物)을 뜻한다. 또한 가례(嘉禮)때 납폐(納幣)로 쓰던 양단(兩端)을 뜻한다. 그래서 육오효는 왕의 자리로 국가 원수로서 외국과 교류하거나, 집안의 어른으로 다른 집안과 교류함에 소박하게 한다는 뜻도 있다.
象曰 六五之吉은 有喜也라.
상왈 육오지길 유희야
상전에 말하였다. “육오의 길함은 기쁨이 있는 것이다.”
喜:기쁠 희
上九는 白賁면 无咎리라.
상구 백비 무구
상구는 희게 꾸미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상구는 음 자리에 양으로 있고 외괘 간산(艮山)☶의 맨 위에 처하여 응하는 자리인 구삼 양과는 같은 양으로 서로 꾸미지 못한다. 그래서 아래의 육오 음과 꾸미게 되는데, 육오가 비단묶음이 작으면 인색하나 길하게 되듯이, 상구도 아무 욕심이 없이 있는 그대로 꾸미면(白賁) 허물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
象曰 白賁无咎는 上得志也라.
상왈 백비무구 상득지야
상전에 말하였다. “희게 꾸며서 허물이 없음은 위에서 뜻을 얻는 것이다.”
상구가 맨 위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꾸미면 허물이 없고, 결국 맨 위에서 상구 자신이 품었던 뜻을 얻게 된다.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304∼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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