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산책/주역

20. 풍지관(風地觀)

돈호인 2020. 10. 28. 00:21

괘의

하늘에서 바람이 불면서 천하를 고무(鼓舞)시키듯이, 민생(民生)을 잘 살펴 올바른 길을 가르치라(觀民設敎).

 

괘명과 괘상

  외괘가 손풍(巽風), 내괘가 곤지(坤地)로 이루어진 괘를 ()이라 한다. 땅 위에 바람이 불어 천하 만물을 고루 만져 주듯이, 천하 백성을 두루 살펴본다는 뜻이다. ()자는 황새()가 비상하여 천하를 보는() 상을 취한 것이다. 아래에 있는 만 백성을 살펴보고 두루 어루만져주는 관세음보살의 마음을 나타내는 상이기도 하다. 또한 내괘의 음이 자라나서 사효(외괘 초효)까지 이르니, 구오와 상구의 양 군자가 애틋한 마음으로 천하를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다.

  관()은 정신수양을 나타내는 괘이기도 하다. 내괘의 곤지(坤地)는 인간의 배를 의미하고 외괘의 손풍(巽風)은 인간의 호흡(呼吸)이다. 천지가 바람을 일으켜 기운을 교류하듯이, 인간은 호흡으로 내기(內氣)와 외기(外氣)를 교류시킨다. 수양자세에 관한 내용은 중산간(重山艮)괘에서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정신계(精神界)로 들어가는 경지를 단계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괘가 관괘(觀卦)이다. 또한 10번째의 천택리(天澤履)괘가 인류역사(人類歷史)의 대단원을 돌이켜 보는 괘였다면, 20번째의 풍지관(風地觀)괘는 11번째 지천태(地天泰)괘로부터 19번째 지택림(地澤臨)괘까지의 사회적 변화양상을 총괄적으로 살펴보는 의미도 된다.

 

서괘

서괘전은 지택림괘 다음에 풍지관괘가 온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臨者는 大也니 物大然後애 可觀이라 故로 受之以觀하고

임자    대야    물대연후   가관       고    수지이관

임이란 것은 큼이니, 물건이 커진 뒤에 가히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관으로 받고

 

지택림(地澤臨)은 양의 기운이 크게 임하는 것이고, 물건과 상황이 커지는 것이다. 이렇게 물건과 상황이 커지면 가히 볼 수 있기 때문에, 임괘(臨卦) 다음에 본다는 관괘(觀卦)를 두었다.

 

괘사

觀은 盥而不薦이면 有孚하야 顒若하리라.

관    관이불천      유부       옹약

관(觀)은 세수를 하고 천신하지 않으면, 믿음을 두어서 우러러 볼 것이다.

觀:볼 관   盥:대야 관·씻을 관   薦:올릴 천·천거할 천   顒:엄숙할 옹·우러러볼 옹·공격할 옹

 

  관()은 정신수양과 관련된 괘이다. ()은 세수한다는 뜻이지만, 술잔을 들고 땅에 부어서 신()을 강림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者 進爵灌地 以降神也). ()이라는 것은 제수(祭需)를 올리는 것이다. 《춘추공양전》에는 희생()이 없이 올리는 제사를 천()이라고 하였다(無牲而祭 謂之薦).

  정신수양에 있어 중요한 것은 지극한 정성이다. 제사를 올리기 전에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는 것은 신과 자연에 대한 정성을 지극히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제사를 올리고 나면 제사의 번거로움과 제사를 끝냈다는 해이한 마음에 정성이 산만해진다. 그래서 목욕재계를 하고 제수(祭需)를 올리기 전의 마음 상태를 지속하게 가지면, 돈독한 믿음이 생겨서 하늘과 신을 우러러 보게 된다고 한 것이다. 정자(程子)역전(易傳)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관(盥)은 제사지내는 처음에 손을 씻고 향술을 땅에 붓는 것이니 신을 구하는 때이고, 천(薦)은 날 것과 익은 것을 올리는 때를 말한 것이다. 관(盥)은 일의 시작이니 사람의 마음이 정성과 엄숙함을 지극히 다할 때이고, 이미 올린 뒤에 예를 자주 해서 번거롭게 되면, 인심이 흩어져서 정성스럽고 한결같음이 처음 세수할 때만 같지 못하다.

 

단전은 괘사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단사

彖曰 大觀으로 在上하야 順而巽하고 中正으로 以觀天下니

단왈 대관       재상      순이손       중정       이관천하

觀盥而不薦有孚顒若은 下 觀而化也라.

관관이불천유부옹약    하 관이화야

觀天之神道而四時 不忒하니

관천지신도이사시 불특

聖人이 以神道設敎而天下 服矣니라.

성인    이신도설교이천하 복의

단전에 말하였다. “크게 봄으로 위에 있어서, 순해서 겸손하고, 중정으로 천하를 보니, ‘관이 세수를 하고 올리지 않으면 믿음을 두어서 우러러 본다’는 것은 아래가 보아서 화함이다. 하늘의 신비한 도를 보매 사시가 어긋나지 않으니, 성인이 신비한 도로써 가르침을 베풂에 천하가 복종한다.”

忒:어긋날 특

 

구오와 상구의 양이 천하를 크게 보기 위해 위에 있다. 내괘 곤지(坤地)로 순하고 외괘 손풍(巽風)으로 겸손하고, 구오가 외괘에서 중정(中正)하여 천하를 보니, 아래에 있는 백성들이 제사 올릴 때의 정성스런 마음으로 구오를 바라보면서 교화된다. 하늘의 신비스런 도를 보니 춘하추동 사시가 어긋나지 않고, 성인은 신비스런 도로써 가르침을 베푸니 천하 백성이 이에 복종한다.

 

괘상사

象曰 風行地上이 觀이니 先王이 以하야 省方觀民하야 設敎하니라.

상왈 풍행지상    관      선왕    이        성방관민      설교

상전에 말하였다. “바람이 땅위를 행하는 것이 관이니, 선왕이 이를 본받아 방소를 살피고 백성을 보아서 가르침을 베풀었다.”

省:살필 성   方:방소 방   設:베풀 설   敎:가르칠 교

 

  관괘(觀卦)는 바람이 땅 위로 불어 행하는 상이다. 이러한 상을 보고 옛 왕은 바람이 천하를 두루 만지며 지나가듯이, 방방곡곡을 살피고 곳곳에 있는 백성의 상태를 보아서 각각의 상황에 필요한 가르침을 베풀었다. 관괘(觀卦)는 종교적인 뜻을 담고 있는 괘이기도 하다. 각각의 상황과 처지를 고려하고 중생(衆生)의 근기에 맞추어 가르침을 베푼 것이 성인(聖人)의 가르침이요 법문이다.

  관괘(觀卦)에서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살피고 또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알려야 한다. 종교인(宗敎人)의 바른 자세는 단순한 덕담(德談)과 격언(格言)으로 중생을 매혹시킬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 처하여 진실로 구제할 수 있는 노력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효사 및 효상사

初六은 童觀이니 小人은 无咎오 君子는 吝이니라.

초륙    동관      소인    무구    군자    인

초육은 아이의 봄이니, 소인은 허물이 없고 군자는 인색하다.

童:아이 동

 

초육은 세상을 보는 경지에 있어 맨 아래 단계에 해당한다. 양 자리에 음으로 있어 자리가 부당하고, 맨 아래에 있으니 마치 어린 아이가 세상을 보는 것과 같은 좁은 소견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소인은 원래 그러한 자이기에 허물될 것은 아니지만, 만일 군자가 이런 상태라면 인색하다.

 

象曰 初六童觀은 小人道也라.

상왈 초육동관    소인도야

상전에 말하였다. “초육의 동관은 소인의 도이다.”

 

六二는 闚觀이니 利女貞하니라.

육이    규관      이녀정

육이는 엿봄이니, 여자의 바름이 이롭다.

闚:엿볼 규

 

육이는 내괘에서 중정한 자리이나, 관괘(觀卦)에서는 정신계의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한다. 초육이 아이가 보는 것과 같다면, 육이는 겨우 세상 이치를 문틈으로 엿보는 것과 같다. 따라서 육이가 소인인 음()으로 중정하니 여자의 바름이 이롭다고 하였으나, 군자가 엿보는 정도라면 역시 추한 상황이다.

 

象曰 闚觀女貞이 亦可醜也니라.

상왈 규관여정    역가추야

상전에 말하였다. “엿봄으로 여자가 바름이 또한 가히 추하다.”

 

六三은 觀我生하야 進退로다.

육삼    관아생      진퇴

육삼은 나의 삶을 보아서 나아가고 물러나도다.

進:나아갈 진   退:물러날 퇴

 

육삼은 관수행(觀修行)에 있어 중요한 단계이다. 사실 밖의 경지를 바라보는 것은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진정 자기 모습을 본다는 것은 보통 경지가 아니면 볼 수가 없다. 자아(自我)에 집착되어 본질이 가려진 자기 참모습을 본다는 것은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는 관건(關鍵)이 된다. 그래서 나의 참모습을 보되 큰 그릇이 안 되면 물러나 정성스럽게 생업에 충실하고, 큰 일을 할 수 있는 그릇이면 더 나아가 천하를 구제하는 높은 경지로 올라간다. 육삼이 변하면 풍산점(風山漸)괘가 되니 차츰차츰 나아가야 한다.

 

象曰 觀我生進退하니 未失道也라.

상왈 관아생진퇴       미실도야

상전에 말하였다. “나의 삶을 보아 나아가고 물러나니 도를 잃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보아, 자기의 역량을 깨달아 진퇴(進退)를 결정하니, 나아가든 물러나든 도를 잃는 것이 아니다.

 

六四는 觀國之光이니 利用賓于王하니라.

육사    관국지광      이용빈우왕

육사는 나라의 빛을 보니, 왕에게 손님됨이 이롭다.

賓:손님 빈·묵을 빈·대접할 빈·공경할 빈·인도할 빈

 

육사는 음자리에 음으로 있고(得位) 외괘의 첫 자리이다. 육사가 변하면 외괘가 건천(乾天)으로 되니, 마치 속세를 벗어나 천계(天界)에 입문하는 격이다. 세상을 크게 잘 헤아리니, 나라의 재상이 되어 백성을 다스릴 수도 있다. 육삼에서는 자기 자신의 삶을 보는 것이었지만, 육사는 한 단계 더 상승하여 나라 전체의 빛을 본다. 이 정도로 세상을 보는 경지에 이르면 천상계의 신명()이 손님으로 대접한다.

 

象曰 觀國之光은 尙賓也라.

상왈 관국지광    상빈야

상전에 말하였다. “나라의 빛을 봄은 손님을 숭상하는 것이다.”

尙:숭상할 상

 

九五는 觀我生호대 君子면 无咎리라.

구오    관아생      군자    무구

구오는 나의 삶을 보되, 군자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구오는 외괘에서 중정(中正)한 자리이다. 크게 봄으로 위에 있는 자리이다(大觀在上). 육삼의 觀我生을 통과하고 육사의 觀國之光을 거치면서 도탄(塗炭)에 빠진 세상을 두루 살펴보고, 구오에서는 다시 나 자신이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할 수 있는 역량이 되는가를 돌이켜 본다. 그래서 구오가 자기 자신의 삶을 보는 것은, 결국은 천하 백성을 보는 것과 같다. 물론 감당할 수 있는 그릇, 즉 군자라면 허물이 없지만, 만일 소인(小人)이 이 경지에 도달하여 자신을 돌이켜 본다면 인색하게 되거나 흉하게 될 수도 있다.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차이, 진정한 종교와 사이비 종교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象曰 觀我生은 觀民也라.

상왈 관아생    관민야

상전에 말하였다. “나의 삶을 보는 것은 백성을 보는 것이다.”

 

上九는 觀其生호대 君子면 无咎리라.

상구    관기생       군자    무구

상구는 그 삶을 보되, 군자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상구는 관괘(觀卦)의 맨 위에 있어, 저 높은 하늘에서 천하를 바라보는 것이다. 초효의 백성에서부터 구오의 군자에 이르기까지, 그 각각의 삶을 두루 보는 최상의 경지이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경지이다. 도탄(塗炭)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천하 백성을 바라보는데,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이 역시 군자의 심법(心法)을 터득해야 이 경지에 이를 수 있다.

 

象曰 觀其生은 志未平也라.

상왈 관기생    지미평야

상전에 말하였다. “그 삶을 보는 것은 뜻이 편안하지 않다.”

平:편안할 평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287∼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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