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의
하늘에는 하늘의 법칙이 있고 지상에는 지상의 법칙이 있으니, 악함에 대한 징벌을 밝히고 사회의 올바른 법칙을 세워라(明罰勅法).
괘명과 괘상
외괘가 이화(離火)☲, 내괘가 진뢰(震雷)☳로 이루어진 괘를 ‘서합(噬嗑)’이라 한다. 괘상(卦象)으로 볼 때 아래턱(초구)과 위턱(상구) 가운데 있는 구사의 실물(陽)을 씹어 합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외괘가 불☲이고 내괘가 우레☳이니 번개와 천둥을 의미하며, 이는 사회적으로 범죄를 응징하는 형벌(刑罰)을 뜻한다. 오늘날 형사법(刑事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를 나타낸 대표적인 괘이다.
서괘
「서괘전」은 풍지관괘 다음에 화뢰서합괘가 온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可觀而後에 有所合이라 故로 受之以噬嗑하고
가관이후 유소합 고 수지이서합
가히 본 다음에 합하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서합으로 받고
범죄와 형벌을 밝게 하는 것은 구체적인 정황에 임(臨)해서 잘 살펴본(觀) 뒤에 죄의 유무를 판단할(噬嗑) 수 있다. 또한 풍지관(風地觀)에서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소인들을 보면서,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형벌을 사용한다.
괘사
噬嗑은 亨하니 利用獄하니라.
서합 형 이용옥
서합은 형통하니, 옥을 씀이 이롭다.
噬:씹을 서 嗑:합할 합·말 많을 합 獄:옥 옥
서합(噬嗑)은 사회의 부조리를 잘 씹어 합하고 단죄(斷罪)할 것은 단죄하여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것이기에 형통하다. 또한 외괘의 이화(離火)☲로 밝게 판단하고 내괘의 진뢰(震雷)☳로 움직여 나가니 형통하다. 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범죄를 다스리는 데는 뉘우칠 때까지 사회에서 격리하는 옥(獄)을 쓰는 것이 이롭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頤中有物일새 曰噬嗑이니 噬嗑하야 而亨하니라.
단왈 이중유물 왈서합 서합 이형
剛柔 分하고 動而明하고 雷電이 合而章하고
강유 분 동이명 뇌전 합이장
柔得中而上行하니 雖不當位나 利用獄也니라.
유득중이상행 수부당위 이용옥야
단전에 말하였다. “턱 가운데 물건이 있기 때문에 이르길 서합(噬嗑)이니, 씹어 합하여 형통하다. 강과 유가 나뉘고, 움직이고 밝고, 우레와 번개가 합하여 빛나고, 유(柔)가 중을 얻어 위로 행하니, 비록 위(位)는 당치 않으나, 옥을 씀이 이롭다.”
頤:턱 이 雷:우뢰 뢰 電:번개 전 章:빛날 장 雖:비록 수
초구는 아래턱이고 상구는 위턱이며 구사 양은 턱 가운데의 물건이 되니, 서합(噬嗑)괘는 턱 가운데 물건이 있는 상이다. 그래서 물건을 잘 씹어 합하여 소화가 잘 되게 하는 것이고, 또한 사회를 잘 조화시키는 것이기에 형통하다.
서합(噬嗑)괘는 삼음삼양(三陰三陽)괘로 그 체는 천지비(天地否)괘에 있다. 위와 아래가 막혀서 비색한 때에 올바른 사회를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위에만 있는 양강(陽剛)과 아래에만 있는 음유(陰柔)가 나뉘어, 막힘을 뚫고 움직여서 밝게 해야 하는데, 마치 우레와 번개가 합하여 빛나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 또한 천지비괘의 초육 음(陰)이 구오 양(陽)과 자리를 바꾸어 외괘에서 중을 얻어 위로 올라가니, 비록 육오가 양자리에 음으로 있어 자리는 마땅하지 않지만, 유약한 인군으로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옥(獄)을 쓰는 것이 이롭다.
괘상사
象曰 雷電이 噬嗑이니 先王이 以하야 明罰勅法하니라.
상왈 뇌전 서합 선왕 이 명벌칙법
상전에 말하였다. “우레와 번개가 서합(噬嗑)이니, 선왕이 이를 본받아 벌을 밝히고 법을 신칙(제정)하였다.”
罰:죄 벌 勅:신칙할 칙·조서 칙
내괘가 진뢰(震雷)☳로 우레를 나타내고, 외괘가 이화(離火)☲로 번개를 나타내는 상이 서합(噬嗑)괘이다.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우레가 우르릉거리면 모두가 두려워하듯이, 옛 왕들은 이러한 서합괘의 상에서 죄가 되는 벌을 세상에 밝게 알리고 처벌원칙을 법으로 제정하였다. 오늘날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를 말하는 것이다.
▣ 주역에서의 범죄와 형벌
《주역》 64괘 가운데 범죄(犯罪)와 형벌(刑罰)의 원리를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괘가 네 괘가 있는데, 상경에 화뢰서합(火雷噬嗑)괘와 산화비(山火賁)괘가 있고 하경에 뇌화풍(雷火豐)괘와 화산려(火山旅)괘가 있다. 이 가운데 화뢰서합괘는 죄형법정주의의 대원칙을 천명한 괘이고, 산화비괘는 민사적인 법률관계를 나타내고 있으며, 뇌화풍괘는 엄격한 형벌을 집행하는 괘이며, 화산려괘는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오늘날의 법리로 보면 사회격리 차원에서의 보호감호처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네 괘가 모두 형벌은 밝게 해야 한다는 뜻에서 이화(離火)☲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화뢰서합괘 여섯효의 구조
화뢰서합(火雷噬嗑)괘는 범죄를 다루는 사법구조(司法構造)를 나타내고 있다. 초효와 상효가 범죄인이 되는데, 초효는 경범죄(輕犯罪)요 상효는 중범죄(重犯罪)를 의미한다. 이효와 삼효는 범죄인을 체포․수사하고 기소하는 일선 경찰(警察)과 검찰(檢察)을 의미하고 있다. 사효와 오효는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하급심(下級審)과 상급심(上級審)의 재판절차를 나타내고 있다.
효사 및 효상사
初九는 屨校하야 滅趾니 无咎하니라.
초구 구교 멸지 무구
초구는 형틀을 신겨서 발을 멸하니 허물이 없다.
屨:신 구·밟을 구 校:학교 교·가르칠 교·질곡 교(차꼬와 수갑·칼의 총칭) 滅:멸할 멸 趾:발 지
초구는 범죄로 치면 경범죄(輕犯罪)에 해당한다. 마치 바늘도둑이 소도둑으로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형틀(족쇄足鎖)을 신겨서 다시는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발을 멸한다. 내괘 진☳은 인체에서 발(足)을 의미하고 또한 서합괘의 맨 아래에 있으니 발이 된다. 공자는 「계사하전」 제5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소인은 어질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의롭지 않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로움을 보지 않으면 권하지 않으며, 위엄으로 하지 않으면 징계하지 않으니, 조금 징계할 때 크게 경계함이 소인의 복이다. 역에 이르길 ‘형틀을 신겨서 발꿈치를 멸하니 허물이 없다’고 하니 이를 말하는 것이다.”
(子曰 小人은 不恥不仁하며 不畏不義라. 不見利면 不勸하며 不威면 不懲하나니 小懲而大誡 此 小人之福也라. 易曰 屨校하야 滅趾니 无咎라하니 此之謂也라.)
군자는 어짊과 의로움을 행하지만, 소인은 어질지 못하고 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 죄를 짓기 쉬운데, 이러한 죄를 지을 때 조금 징계하여 크게 경계하지 않으면 큰 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비록 형벌을 받지만 소인에게는 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생활에 있어 죄가 되는 경우가 필요이상으로 많다면, 오히려 국민의 생활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라의 모든 시장에 신 값은 싸고 용 값은 비싸다(國之諸市 屨賤踊貴)”는 말이 있는데, 이는 나라에 죄인이 너무 많아서 발을 잘리는 형벌을 받은 죄인들이 신고 다니는 용(踊) 값이 보통 사람이 신고 다니는 신 값보다 비싸다는 뜻으로, 나라의 법이 혹독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법의 제정과 집행은 민생(民生)의 자유와 안정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象曰 屨校滅趾는 不行也라.
상왈 구교멸지 불행야
상전에 말하였다. “형틀을 신겨 발을 멸함은 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가벼운 죄를 저지른 죄인에게 족쇄를 채우는 형벌을 주는 것은 더 이상 죄를 짓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六二는 噬膚호대 滅鼻니 无咎하니라.
육이 서부 멸비 무구
육이는 살을 씹되 코를 멸하니, 허물이 없다.
膚:살갗 부 鼻:코 비
육이는 내괘에서 중정(中正)한 자리이다. 내괘가 진☳이니 사회 일선에서 치안유지(治安維持)를 위해 일하는 역할이고, 육이가 변하면 내괘가 태택(兌澤)☱이 되니 때로는 숙살지기(肅殺之氣)로 범죄인을 체포하여 내호괘 간산(艮山)☶으로 죄인을 가두는 역할을 한다. 음 자리에 음으로 있으니 아주 부드러운 살인데, ‘살을 씹다가 코를 멸한다’는 것은 사회 곳곳을 다니며 범죄를 예방하고 단속하다가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나타낸다. 내호괘가 간산☶이니 인체에서 코의 상이다. 육이는 오늘날 일선 경찰(警察)의 역할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象曰 噬膚滅鼻는 乘剛也일새라.
상왈 서부멸비 승강야
상전에 말하였다. “살을 씹다가 코를 멸함은 강을 탔기 때문이다.”
육이가 살을 씹다가 코를 멸하게 되는 것은 육이 음이 사회 치안을 위해 범죄 현장 곳곳을 다녀야 하고, 초구의 죄인을 가까이 하여 체포해야 하기 때문이다.
六三은 噬腊肉하다가 遇毒이니 小吝이나 无咎리라.
육삼 서석육 우독 소린 무구
육삼은 말린 고기포를 씹다가 독을 만나니, 조금 인색하나 허물이 없을 것이다.
腊:포 석(말린 고기) 肉:고기 육 遇:만날 우 毒:독 독
육삼은 양자리에 음으로 있어 자리가 부당하고 중에서 벗어난 상태이다. 그렇지만 육삼은 서합(噬嗑)괘의 전체구조상 범죄인을 수사하여 죄인을 재판에 넘기는 검찰의 역할을 하는 자리이다. 양자리에 음으로 있으니 말린 고기포가 되는데, 이는 육이 경찰이 일단 수사하여 육삼에게 넘어온 것이기에 그동안 딱딱하게 마른 상태로 되었음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겉은 부드러운 고기여서 씹다가 속에 있는 딱딱한 독을 만나게 되는 상이다. 민생의 치안유지를 위한 이러한 역할이 조금 인색하지만 허물이 될 것은 아니다.
象曰 遇毒은 位不當也일새라.
상왈 우독 위부당야
상전에 말하였다. “독을 만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九四는 噬乾胏하야 得金矢나 利艱貞하니 吉하리라.
구사 서간치 득금시 이간정 길
구사는 마른 고기를 씹다가 금과 화살을 얻으나, 어렵고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 길할 것이다.
乾:마를 간 胏:포 자·치(뼈가 붙은 마른 고기) 矢:화살 시 艱:어려울 간
구사는 음자리에 양으로 있다. 내괘에서 육이와 육삼이 체포해 기소한 범죄인을 외괘의 이화(離火)☲로 밝게 판단해야 하는 자리이다. 경찰과 검찰에서 수사하여 기소하는 동안 딱딱하게 굳은 범죄인을 심리하니 뼈가 붙은 마른 고기를 씹는 상이고, 금과 화살을 얻는다는 것은 죄의 경중(輕重)을 판단하는 것이다. 《주례(周禮)》에 “소송(訴訟)에는 화살 100개를 묶어 가져가고, 옥사(獄事)에는 금 30근을 가지고 들어간다(訟入束矢 獄入鈞金)”고 하였는데, 화살을 가져간다는 것은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이고 금을 가져가는 것은 형량의 경중을 의미한다.
오늘날 형법의 원칙상 ‘무죄추정(無罪推定)의 원칙’이 있듯이, 죄의 유무를 판단하고 형량을 정하는 데에는 추호의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어렵게 하고 바르게 해야 이롭고 길하다.
象曰 利艱貞吉은 未光也라.
상왈 이간정길 미광야
상전에 말하였다. “어렵게 바르게 해야 이롭고 길한 것은 빛나지 못한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타인에게 손해를 입힐 수도 있고 때로는 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인간으로서 인간을 심판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광명한 것은 아닐 것이다.
六五는 噬乾肉하야 得黃金이니 貞厲면 无咎리라.
육오 서간육 득황금 정려 무구
육오는 마른 고기를 씹어서 황금을 얻으니, 바르게 하고 위태롭게 여기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黃:누를 황 厲:위태로울 려
육오는 양자리에 음으로 있으나, 외괘 이화(離火)☲의 중을 얻어 범죄의 유무와 그 형량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자리이다. 육사가 하급심(下級審)이라면 육오는 상급심(上級審)이 된다. 육사 하급심에서 금과 화살을 얻는다고 했으니 화살은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이고, 금은 죄가 있어 옥사의 형량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 육사에서 죄가 있음이 밝혀졌고 그 죄인을 다시 육오 상급심에서 심리하게 되니 황금을 얻었다고 한 것이다. 육사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심판하는 것은 바르게 하고 위태로운 마음으로 신중하게 해야 한다.
象曰 貞厲无咎는 得當也일새라.
상왈 정려무구 득당야
상전에 말하였다. “바르게 하고 위태롭게 여겨야 허물이 없음은 마땅함을 얻었기 때문이다.”
육오가 외괘의 중을 얻어 죄인을 심판하는 마땅한 자리에 있기 때문에 바르게 하고 위태롭게 여기면 허물이 없다고 한 것이다.
上九는 何校하야 滅耳니 凶토다.
상구 하교 멸이 흉
상구는 형틀을 메어서 귀를 멸하니, 흉하도다.
何:멜 하(荷)·어찌 하 耳:귀 이
상구는 육이에서 채포되어 수사를 받고, 육삼에서 기소되어 구사 하급심에서 재판을 받고 육오 상급심에서 최종적으로 형벌을 선고받은 중죄인(重罪人)에 해당한다. 죄가 무거우니 초구의 족쇄(足鎖)와는 달리 항쇄(項鎖)를 목에 메어서 귀를 멸한다고 하였다. 맨 위에 있으니 목에 메는 것이고, 외호괘가 감수(坎水)☵가 되니 귀를 멸한다고 하였다(坎爲耳). 공자는 「계사하전」 제5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착한 것을 쌓지 않으면 족히 명예를 이루지 못하고, 악한 것을 쌓지 않으면 족히 몸을 멸하지 않으니, 소인이 조금 착함으로 유익함이 없다 하여 하지 않으며, 조금 악함으로 상함이 없다 하여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함이 쌓여서 가리지 못하며 죄가 커져서 풀지 못하니, 역에 이르길 ‘형틀을 메어 귀를 멸하니 흉하다’고 하였다.”
(善不積이면 不足以成名이오 惡不積이면 不足以滅身이니 小人이 以小善으로 爲无益而弗爲也하며 以小惡으로 爲无傷而弗去也라. 故로 惡積而不可掩이며 罪大而不可解니 易曰 何校하야 滅耳니 凶이라하니라.)
象曰 何校滅耳는 聰不明也일새라.
상왈 하교멸이 총불명야
상전에 말하였다. “형틀을 메어서 귀를 멸함은 총명함이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295∼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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