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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수지비(水地比)

돈호인 2020. 10. 25. 15:09

괘의

전쟁이라는 고통을 딛고 천하를 평정하여 나라를 세우니 올바른 재상을 등용하고 지방 제후를 친히 하라(建國親侯).

 

괘명과 괘상

외괘가 감수(坎水), 내괘가 곤지(坤地)로 이루어진 괘를 ()라 한다. ()는 돕는 것이다. 천지(乾坤)의 기운으로 생하여 간둔지제(艱屯之際)를 지나 정신적 교육을 받고() 육체적 기름을 받으면서 때를 기다리다가() 천하를 쟁패하려는 구상을 하고(), 드디어 일대 전쟁을 하여() 천하를 열게 되었다(). 그러니 새로운 천하가 시작되는 ()괘는 그동안 어려웠던 시대를 마감하고 구오 천자(天子)를 중심으로 서로 도와가면서 나라를 바르게 세워 나가야 함을 뜻한다.

 

서괘

서괘전은 지수사괘 다음에 수지비괘가 온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師者는 衆也니 衆必有所比라 故로 受之以比하고

사자    중야    중필유소비   고    수지이비

‘사(師)’는 무리니, 무리는 반드시 돕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비(比)로써 받고

 

군사나 일반 다중(多衆)이나 모두 무리인데, 무리가 일정 방향으로 지향해 나가려면 반드시 서로 도와야 한다. 그래서 사괘 다음에 돕는다는 비괘를 둔 것이다.

 

괘사

比는 吉하니 原筮호대 元永貞이면 无咎리라.

비    길       원서      원영정       무구

不寧이어야 方來니 後면 夫라도 凶이리라.

불녕          방래   후    부       흉

‘비(比)’는 길하니, 처음 점을 하되 원(元)하고 영(永)하고 정(貞)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편안하지 못하여 바야흐로 오니, 뒤에 하면 대장부라도 흉할 것이다.

比:견줄 비·도울 비   原:처음 원   筮:점칠 서   永:길 영   寧:편안할 녕  方:바야흐로 방  來:올 래   後:뒤 후   夫:사내 부

 

  천수송(天水訟)괘의 정쟁(政爭)과 지수사(地水師)괘의 전쟁(戰爭)을 거쳐 수지비(水地比)괘에서 천하를 세우게 되니 길하다. 그러나 새롭게 천하를 세워나가야 하는 때이므로, 착하고 오래 하고 바르게 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건국이념(建國理念)을 올바로 세우고, 나라를 세우는 목적을 길이 지켜나가고 또한 바르게 해야 한다. 그래야 천하 백성도 마음을 편안히 하고 인군을 도와줄 수 있다.

  ‘편안하지 못하여 바야흐로 온다는 것은 중천건(重天乾)의 하늘과 중지곤(重地坤)의 땅이 서로 기운을 교감하여 수뢰둔(水雷屯)에서 만물을 낳아 초창()하게 되는데, 이 때는 마치 갓난아기를 출산하여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며 기르듯이, 천지부모의 마음은 편안치 못한 것이다. 그래서 수뢰둔(水雷屯)괘 단전에 天造草昧에는 宜建侯而不寧이니라고 하였다. 만물이 처음 나오는 둔괘에서의 편안치 못함이 산수몽(水蒙)괘의 정신교육, 수천수(水天需)괘의 육체적 양육, 천수송(天水訟)괘의 정략, 지수사(地水師)괘의 전쟁을 거쳐, 비로소 천하가 하나가 되어 안정된 평화를 찾게 되니, 편안하지 못하다가 바야흐로 편안한 세상이 왔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렇게 천하가 평화를 찾아 서로 도와나가야 하는 때에 동참하지 않고 뒷전에서 구경만 하게 되면, 설사 세상을 경륜할 수 있는 대장부라 할지라도 때에 부응하지 못하여 흉하게 된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比는 吉也며 比는 輔也니 下 順從也라.

단왈 비    길야    비    보야   하 순종야

原筮元永貞无咎는 以剛中也오

원서원영정무구    이강중야

不寧方來는 上下 應也오 後夫凶은 其道 窮也라.

불녕방래    상하 응야    후부흉    기도 궁야

단전에 말하였다. “비(比)는 길하며 비는 돕는 것이니, 아래가 순하게 좇는 것이다. ‘원서원영정무구’는 강으로 가운데 함이요, ‘불녕방래’는 위와 아래가 응함이요, ‘후부흉’은 그 도가 궁한 것이다.”

補:도울 보   應:응할 응   窮:궁할 궁

 

수지비(水地比)괘는 내괘가 곤지()로 백성이 순하고 외호괘가 간산(艮山)으로 덕을 갖추고 있으니, 아래의 백성이 덕을 갖춘 인군에게 순종함을 의미한다. 유일한 양인 구오가 외괘 오효 자리에 있어 중을 얻었으니, 구오 왕은 나라를 세우고 천하를 친히 함에 처음부터 착하고 길이 바르게 해야 허물이 없다. 편안하지 못하다가 바야흐로 편안한 세상이 오게 된 것은 위의 인군과 아래의 백성이 서로 응하기 때문이다. 뒤에 하면 대장부라도 흉하다는 것은 모두가 구오를 도와 나라를 평화롭게 만들어가는 때에 상육효와 같이 때를 놓치고 함께 하지 못하면 그 도가 궁해짐을 말한다.

 

괘상사

象曰 地上有水 比니 先王이 以하야 建萬國하고 親諸侯하니라.

상왈 지상유수 비    선왕    이      건만국       친제후

상전에 말하였다. “땅 위에 물이 있는 것이 비(比)니, 선왕이 이를 본받아 만국을 세우고 제후를 친히 하였다.”

建:세울 건   親:친할 친   諸:모두 제   侯:제후 후

 

  수지비(水地比)괘는 땅 위에 물이 있는 상이다. 땅 위에 있는 물은 사방에 흘러 땅을 윤택하게 젖게 한다. 예로부터 선대의 왕은 이러한 기운을 보고 지방에 제후를 봉하여 제후국(諸侯國)을 두면서 만국을 세우고 아울러 제후와 친교를 맺었다. 이는 천자(天子)로서 평화를 선양하기 위해 이민족(異民族)의 땅에도 제후를 봉하여 나라를 세우고 또한 모든 제후와 선린정책(善隣政策)을 강화함으로써 나라를 안전하게 유지했다는 말이다.

  오늘날의 의미로 본다면, 국내적으로는 지방정치를 잘하도록 지방 관료를 잘 선임해야 하고 또한 지방 관리들을 잘 독려해야 한다는 것이고, 국제적으로 본다면 자기 나라의 정책에 잘 동조해 갈수 있는 동맹국(同盟國)을 두루 두어 그런 나라들과의 평화선린외교(平和善隣外交)를 잘 펼쳐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효사 및 효상사

初六은 有孚比之라아 无咎리니 有孚 盈缶면 終애 來有他吉하리라.

초륙    유부비지      무구       유부 영부    종    래유타길

초육은 믿음을 두고 도와야 허물이 없을 것이니, 믿음을 둠이 질그릇에 가득하면, 마침내 다른 길함이 있어 올 것이다.

孚:미쁠 부   盈:찰 영   缶:장군 부(질그릇)   他:다를 타

 

초육은 맨 아래 백성자리이다. 양자리에 음으로 있어 오랜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피폐한 상태이다. 백성 상호간에 서로 도와야 하고 응하는 자리인 육사 대신에게도 협조를 잘 해야 한다. 잘 살수 있다는 믿음을 두고 서로 도와야 허물이 없고, 그러한 믿음이 질그릇에 가득 찰 정도로 강하면 마침내 길하게 된다. 다른 길함이 있어 온다는 것은 하늘의 은총을 받는 것이고, 또한 구오 왕으로부터 복을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象曰 比之初六은 有他吉也니라.

상왈 비지초륙    유타길야

상전에 말하였다. “‘비(比)의 초육’은 다른 길함이 있는 것이다.”

 

다른 길함이 있다는 것은 초육이 응하는 자리가 육사 대신이어서 초육이 육사 대신을 도와 열심히 일하지만, 정작 육사 대신이 아닌 구오 천자로부터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천하의 근본은 백성이니, 초육 백성이 구오 왕으로부터 복을 받는다는 것은 나라가 평화롭게 됨을 의미한다.

 

六二는 比之自內니 貞하야 吉토다.

육이    비지자내    정      길

육이는 돕는 것을 안으로부터 하니, 바르게 하여 길하도다.

自:부터 자·스스로 자

 

육이는 내괘의 중을 얻고 음자리에 음으로 있으니 중정(中正)하고, 역시 외괘에서 중정한 구오 왕과 잘 응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천하가 서로 도와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육이는 스스로 구오 천자를 도와준다고 나서면 안 된다. , 육이는 내괘에서 중도를 지키면서 초육 백성을 잘 도와야 한다. 또한 마음의 중도를 잘 지켜 나가야 한다.

 

象曰 比之自內는 不自失也라.

상왈 비지자내    부자실야

상전에 말하였다. “돕는 것을 안으로부터 하는 것은 스스로 잃지 않는 것이다.”

 

육이가 안으로부터 돕는다는 것은 육이가 중정한 마음으로 스스로의 본분을 잃지 않는 것이다.

 

六三은 比之匪人이라.

육삼    비지비인

육삼은 돕는데 사람이 아니다.

匪:아닐 비

 

육삼은 양자리에 음으로 거하고 중도 얻지 못한 상태이며(失位不中), 또한 상육과는 같은 음으로 응하지도 않는다(不應). 그러니 모두가 협력하여 나가야 하는 시대적 상황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여 사람다운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象曰 比之匪人이 不亦傷乎아.

상왈 비지비인    불역상호

상전에 말하였다. “돕는데 사람 아님이 또한 상하지 않겠는가?”

亦:또 역   傷:상할 상   乎:어조사 호

 

  나라를 세우고 천하가 친화하는 때에 모두가 협력해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육삼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지 못하여 사람 역할을 못하니 결국 상하게 된다. 육삼이 변하면 음이 양으로 바뀌면서 수산건(水山蹇)괘로 되니, 상하여 다리를 저는 양상이 된다.

  384효사를 풀이한 효상전(소상전)의 문장은 모두 자로 매듭을 짓고 있는데, 다만 이 수지비괘 육삼 효상사와 하경의 택화혁괘 구삼 효상사의 두 곳에만 달리 하고 있다. , 수지비괘 육삼 효상사는 자로 매듭짓고, 택화혁괘 구삼 효상사는 자로 매듭지었다(象曰 革言三就어니 又何之矣리오).

 

六四는 外比之하니 貞하야 吉토다.

육사    외비지       정      길

육사는 밖으로 도우니, 바르게 하여 길하도다.

 

육사는 음 자리에 음으로 있어 자리가 바르고(得位) 대신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자리이다. 밖으로 돕는다는 것은 육이가 내괘에서 안을 돕는 것과 마찬가지로, 육사는 외괘에서 밖을 도와야 한다. 특히 대신으로서 구오 왕을 도와야 함을 물론이다.

 

象曰 外比於賢은 以從上也라.

상왈 외비어현    이종상야

상전에 말하였다. “밖으로 어진 이를 돕는 것은 위를 좇는 것이다.”

 

육사가 외괘에서 밖을 돕는 것은 어진 이를 돕는 것이고, 이는 곧 위에 있는 구오 왕을 따르는 것이다.

 

九五는 顯比니 王用三驅에 失前禽하며 邑人不誡니 吉토다.

구오    현비    왕용삼구    실전금       읍인불계   길

구오는 나타나게 도우니, 왕이 세 군데로 모는 것을 씀에 앞의 새를 잃으며, 읍 사람이 경계하지 않으니 길하도다.

顯:나타날 현   驅:몰 구   誡:경계할 계

 

구오는 외괘에서 중정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다. 만백성이 서로 도와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구오 천자는 현명하게 밝게 처신하여 백성을 도와야 한다. 천자로서 백성을 돕는 것은 정치를 잘하는 것이다. 예컨대 왕이 사냥을 하여 짐승을 잡더라도 한 쪽을 열어 놓고 몰아가는 삼구법(三驅法)을 써서 살고자 하는 동물을 살려 보내면, 사냥터 주변의 읍 사람도 그러한 인군의 덕에 감동하여 경계하지 않는다. 이는 왕으로서 모든 백성에게 서로 도움을 권면하더라도, 백성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象曰 顯比之吉은 位正中也오 舍逆取順이 失前禽也오

상왈 현비지길    위정중야    사역취순    실전금야

邑人不誡는 上使 中也일새라.

읍인불계    상사 중야

상전에 말하였다. “나타나게 도와 길함은 자리가 바르고 가운데 하기 때문이고, 거스르는 것은 버리고 순한 것을 취함이 앞의 새를 잃음이요, 읍 사람이 경계하지 않음은 위에서 부림이 가운데 하기 때문이다.”

舍:버릴 사(집 사)   逆:거스를 역   取:취할 취   使:부릴 사

 

육오 왕이 백성을 현명하게 돕는 것은 그 자리가 정중(正中)하기 때문이다. 삼구법(三驅法)을 써서 살고자 하여 거스르는 것은 살게 놔두고 명이 다하여 순하게 잡히는 것을 취하는 것은 마치 살고자 하여 도망가는 앞의 새를 놔두는 것과 같다. 읍 사람이 경계하지 않는 것은 왕으로서 중도로 정치를 잘 하기 때문이다.

 

上六은 比之无首니 凶하니라.

상륙    비지무수    흉

상육은 돕는데 머리가 없으니 흉하다.

首:머리 수

 

상육은 수지비괘의 맨 위에 처하여 자리만 높은 상태이다. 모두가 구오를 중심으로 협력하고 있는데, 상육은 뒷전에서 등을 돌리고 있으니 머리가 없는 것이다. 괘사의 後夫凶이 되는 자리이다. 육삼은 比之匪人이요 상육은 比之无首, 모두가 협력하여 도와야 하는 상황에서도 육삼과 같은 비협력자(非協力者)도 있고 상육과 같은 방관자(傍觀者)도 있는 것이다.

 

象曰 比之无首 无所終也니라.

상왈 비지무수 무소종야

상전에 말하였다. “돕는데 머리가 없음은 마칠 바가 없는 것이다.”

 

모두가 돕는데 등을 돌리고 있으니, 아무리 스스로 역량이 있다고 한들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남들은 밥을 먹기 위해 협력하며 일하고 있는데, 남들이 차린 밥을 앉아서 먹고자 하는 격이니, 마칠 바가 있을 수 없다.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19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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