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산책/주역

10. 천택리(天澤履)

돈호인 2020. 10. 26. 00:29

 

괘의

밟아 온 이력과 역사를 보아 백성의 뜻을 잘 분별하여 정하라(辯定民志).

 

괘명과 괘상

  외괘는 건천(乾天), 내괘는 태택(兌澤)으로 이루어진 괘를 ()괘라고 한다. 밟아가는 것, 밟아 온 이력(履歷)을 말한다. 첫 번째인 중천건(重天乾)괘로부터 시작해 열 번째인 천택리(天澤履)괘에 이르기까지가 거대한 대하드라마이다. 천지창조가 이루어지고 만물이 처음 생하면서 어렵고 몽매하고 기다리고 다투고 전쟁하고 만국을 세워 도와 나가고 문명을 쌓아가는 것이 인류 역사의 큰 줄거리가 된다. 그 밟아 온 이력을 천택리괘에서 돌아보는 것이다. 천간(天干)이 갑()에서 시작하여 열 번째 계()에서 끝나는 것과 같다. 인생사, 사회사, 인류사가 다 이러한 과정으로 역사(歷史)를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후천팔괘방위로 볼 때 건은 서북방이고, 는 서방이니 가을에 추수를 거두어 결실을 맺고 겨울의 휴식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봄부터 씨를 뿌리며 일해 온 이력을 돌이켜 보는 것이다. 하늘은 위에 있고 연못은 아래에 있으니, 하늘을 우러러 나의 심연(心淵)에 부끄럼이 있었는지 돌이켜 보는 것이다.

  ‘천택리괘는 중천건괘에 체()를 두고 있다. 중천건괘 구삼효가 동하여 천택리괘가 되니 중천건괘 구삼효사를 다시 음미해 보자.

九三은 君子 終日乾乾하야 夕惕若하면 厲하나 无咎리라.

구삼은 군자가 종일토록 굳세고 굳세어서 저녁에 두려운 듯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은 없을 것이다.

 

서괘

서괘전은 풍천소축괘 다음에 천택리괘를 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物畜然後에 有禮라 故로 受之以履하고

물축연후    유례    고    수지이리

물건을 쌓은 연후에 예가 있다. 그러므로 이괘(履卦)로써 받고

 

문명이 점차 쌓여 나가고, 또한 물건이 쌓이게 되면 질서가 필요하고 예()가 필요하다. 경쟁과 전쟁을 겪고 천하를 쟁패하려고 하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공존공영(共存共榮)하는 사회적 징표는 예()이다. 그래서 소축괘 다음에 예()를 의미하는 이괘(履卦)를 두었다.

 

괘사

履虎尾라도 不咥人이라 亨하니라.

이호미       부질인      형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사람을 물지 않는다. 형통하다.

履:밟을 리   虎:범 호   尾:꼬리 미   咥:물을 질

 

인간의 삶은 아슬아슬하다. 평범한 인간의 삶이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으며, 그러한 존재들이 더불어 살고 있는 이 사회 역시 하루하루의 변화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마치 호랑이 꼬리를 밟고 있는 듯 조심조심 살아가야 한다. 내괘 태택(兌澤)은 후천팔괘방위로 서방(西方)으로 백호(白虎)를 상징하니 호랑이를 의미한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履는 柔履剛也니 說而應乎乾이라

단왈리    유리강야    열이응호건

是以履虎尾不咥人亨이라.

시이이호미부질인형

剛中正으로 履帝位하야 而不疚면 光明也라.

강중정       이제위      이불구     광명야

단전에 말하였다. “이(履)는 유가 강에 밟힘이니, 기쁨으로 하늘에 응한다. 이로써 호랑이 꼬리를 밟아도 사람을 물지 않으니 형통하다. 강건하고 중정함으로 황제의 자리를 밟아 병폐가 없으면 광명하다.”

說:기쁠 열(말씀 설․벗길 탈)   應:응할 응   帝:임금 제   疚:오랜 병 구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는 것은 육삼의 음()이 외괘의 강한 하늘에 밟혀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내괘의 태가 기쁨으로 외괘의 하늘에 응하고 있기 때문에,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물지 않아 형통하다. 특히 이괘(履卦)에서 구오는 외괘의 중정한 자리에 있는데, 구오 강이 중정함으로 천제(天帝)의 자리를 밟아서 왕으로서의 병폐가 없으면 광명하다.

 

괘상사

象曰 上天下澤이 履니 君子 以하야 辯上下하야 定民志하나니라.

상왈 상천하택    이    군자 이      변상하       정민지

상전에 말하였다. “위는 하늘이고 아래는 못이 이(履)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위아래를 분별하여 백성의 뜻을 정한다.”

辯:분별할 변   定:정할 정   志:뜻 지

 

천택리괘는 외괘가 하늘내괘가 연못으로 되어 있고, 내호괘가 이화(離火)요 외호괘가 손풍(巽風)이니, 하늘에 있는 태양이 연못 위에 비추는데 바람에 물결이 일면서 빛이 반짝이는 상이다. 태양은 하나이고 진실은 저기에 있건만, 세간(世間)에 떠도는 풍문(風聞)이 진실처럼 느껴지고 온갖 착각의 환영(幻影)이 진실을 왜곡(歪曲)하고 있다. 연못에 비치는 하늘이 진짜 하늘과 같이 보이니, 군자는 이러한 상을 보고 위와 아래를 잘 분별하여 백성의 올바른 뜻을 정해야 한다.

 

효사 및 효상사

初九는 素履로 往하면 无咎리라.

초구    소리    왕      무구

초구는 본래대로 밟아 나아가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素:흴 소·본디 소   往:갈 왕

 

초구는 양자리에 양으로 있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백성이다. 하늘의 성품을 그대로 부여받은 백성이 본래의 성품대로 소박하게 살아가면 허물이 없다. 어느 누구에게 의지할 것 없이 타고난 성품과 명()을 실천해 나간다.

 

象曰 素履之往은 獨行願也라.

상왈 소리지왕    독행원야

상전에 말하였다. “본래대로 밟아 감은 홀로 원함을 행하는 것이다.”

獨:홀로 독   願:원할 원

 

본래대로 밟아가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 의지함이 없이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과 명에 따라 홀로 삶의 목적을 구현해 가는 것이다.

 

九二는 履道 坦坦하니 幽人이라아 貞코 吉하리라.

구이    이도 탄탄      유인          정    길

구이는 밟는 도가 탄탄하니, 그윽한 사람(幽人)이라야 바르게 하고 길할 것이다.

坦:평평할 탄   幽:그윽할 유

 

구이는 내괘의 중을 얻은 자리로, 구이가 변하면 내괘가 진뢰(震雷)가 되어 밟아 나가는 것이 탄탄하게 되며, 또한 변한 상태에서 내호괘가 간산(艮山)이 되니 그윽한 산속으로 들어가는 상이다. 그러니 구이는 밟는 도가 거침없이 탄탄하지만, 마치 산 속에서 도를 닦는 유인(幽人)처럼 부귀공명(富貴功名)을 좇지 말고 바르게 살아야 길하다.

 

象曰 幽人貞吉은 中不自亂也라.

상왈 유인정길    중부자란야

상전에 말하였다. “그윽한 사람이 바르게 해서 길함은 중(中)이 스스로 어지럽지 않아서이다.”

自:스스로 자   亂:어지러울 란

 

그윽한 사람이 바르게 해서 길하다는 것은 내괘의 중을 얻은 마음(中道心)을 스스로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다.

 

六三은 眇能視며 跛能履라. 履虎尾하야 咥人이니 凶하고 武人이 爲于大君이로다.

육삼    묘능시    파능리    이호미       질인       흉      무인    위우대군

육삼은 소경이 능히 보며 절름발이가 능히 밟는다. 호랑이 꼬리를 밟아서 사람을 무니 흉하고, 무인이 대군이 되도다.

眇:애꾸눈 묘   視:볼 시   跛:절름발이 파   咥:물을 질   武:굳셀 무·무인 무

 

  육삼은 내괘 태()의 끝에 처해 있어 밝음이 상한 자리이다. 양 자리에 음으로 처하고 또한 중도 얻지 못하였으니, 자기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망령되게 행동하여 그야말로 호랑이 꼬리를 밟는 자리이다. 내호괘가 이화(離火)니 눈이 나오고(離爲目), 외호괘가 손()이니 다리가 나오며(巽爲股), 내괘의 태는 화살의 상이고 내호괘 이화는 활의 상이니 전쟁을 하는 무인(武人)의 자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육삼은 사실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소경임에도 마치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절름발이임에도 잘 걷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분수를 모르고 망령되게 행동하니 호랑이 꼬리를 밟아 사람이 물려 흉하게 될뿐더러, 분수를 모르는 무인(武人)이 뜻만 강하여 무력으로 대군(大君)이 되고자 하는 것과 같다.

 

象曰 眇能視는 不足以有明也오 跛能履는 不足以與行也오

상왈 묘능시    부족이유명야    파능리    부족이여행야

咥人之凶은 位不當也오 武人爲于大君은 志剛也라.

질인지흉    위부당야    무인위우대군    지강야

상전에 말하였다. “‘묘능시’는 족히 밝음이 있지 못한 것이고, ‘파능리’는 족히 더불어 행하지 못하는 것이고, ‘질인지흉’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은 것이고, ‘무인위우대군’은 뜻이 강한 것이다.”

 

九四는 履虎尾니 愬愬이면 終吉이리라.

구사    이호미    삭삭      종길

구사는 호랑이 꼬리를 밟으니, 조심하고 조심하면 마침내 길할 것이다.

愬:하소연할 소·두려워할 색(삭)

 

구사는 내괘에서 외괘로 넘어간 첫 자리이다. 음 자리에 양으로 거하니 자리가 마땅하지 않고, 내괘 태호랑이(西方 白虎) 바로 위에 있으니 호랑이 꼬리를 밟아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렇지만 외괘 건체에 거하고 있으니, 조심하고 조심하면 마침내 길하게 된다. 愬愬 무서워하여 놀라는 모양을 뜻하는 형용어로 삭삭으로 읽는다.

 

象曰 愬愬終吉은 志行也라.

상왈 삭삭종길    지행야

상전에 말하였다. “조심하고 조심해서 마침내 길함은 뜻이 행해지는 것이다.”

 

구사가 비록 음 자리에 양으로 거하여 내괘 태의 호랑이를 밟고 있는 형국이어서 위태롭지만, 조심하고 조심해서 마침내 길한 것은 외괘 하늘의 뜻을 받들어 구사의 뜻이 행해짐을 말한다.

 

九五는 夬履니 貞이라도 厲하리라.

구오    쾌리    정         려

구오는 결단해서 밟으니, 바르게 하더라도 위태할 것이다.

夬:결단할 쾌   厲:위태로울 려

 

구오는 양()이 외괘에서 중을 얻은 중정(中正)한 자리로, 천제(天帝)에 해당한다. 그야말로 중정하게 결단해 가면서 밟아가지만, 항상 바르게 하더라도 위태롭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象曰 夬履貞厲는 位正當也일새라.

상왈 쾌리정려    위정당야

상전에 말하였다. “‘쾌리정려’는 자리가 정당하기 때문이다.”

 

결단해서 밟아감에 바르더라도 위태롭다고 한 이유는 구오의 자리가 정당하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라는 뜻에서 경계한 것이다.

 

上九는 視履하야 考祥호대 其旋이면 元吉이리라.

상구    시리       고상      기선       원길

상구는 밟아온 것을 보아서 상서로움을 상고하되, 상서로움이 돌아오면 크게 길할 것이다.

考:상고할 고   祥:상서로울 상   旋:돌 선·두를 선

 

상구는 천택리괘의 밟아 온 이력을 최종적으로 상고하는 자리이다. 초효부터 상효까지, 중천건괘부터 천택리괘까지, 창업에서 지금의 과정까지, 민족의 탄생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밟아 온 이력을 보아서 상서로운 것을 상고하여 그 상서로움이 돌아오면(두루 잘 했으면) 크게 길하다.

 

象曰 元吉在上이 大有慶也니라.

상왈 원길재상    대유경야

상전에 말하였다. “크게 길함이 위에 있음이 크게 경사가 있는 것이다.”

慶:경사 경

 

  천택리괘 상구효는 중천건괘로부터 시작하여 60번째가 되는 효이다. 중천건괘로부터 천택리괘까지를 천간(天干)의 시작인 갑()에서 계()로 끝나는 큰 과정으로 본다면, 천택리괘 상구효까지의 60효는 간지(干支) 60갑자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제 거대한 역사의 한 과정이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돌이켜 보아 크게 길함이 위에 있으니, 즉 마무리되는 시점에 있으니, 크게 경사가 있는 것이다.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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