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경(詩經)』의 문화사적 의의
중국 역사에서 최초의 통일은 秦나라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나, 실질적인 통일 국가의 틀을 이루고 유지하였던 것은 漢나라에 이르러서이다. 그러나 한나라 초기에는 혼란한 정세를 바로잡기 위한 통치제도의 수립에 주력하다가 진시황에 의한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 이후 단절되었던 유가사상을 국가의 토대를 이루는 정치이념으로 모색하면서, 무제(武帝, 재위 기원전 141-87)에 이르러 유가는 한나라의 정치이념으로 채택된다. 기원전 136년에는 수도 장안에 오경박사를 설치하여 『詩』『書』『禮』『易』『春秋』의 오경을 전문으로 연구하게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유가사상이 정치 사회적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경전으로 승격되어 경학이 발전하게 되었다.
『시경』은 B.C. 11세기부터 B.C. 17세기 즉 西周로부터 춘추시대 중기에 이르기까지 약 5백년간의 韻文을 모은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된 시집으로 알려져 있다. 『시경』은 서주시기로부터 춘추시대 중기에 이르기까지 고대 중국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기도 하다.
『시경』은 총 311편으로 되어 있으나, 제목만 있고 가사가 없는 ‘笙詩’ 6편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305편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周왕실에서 별도로 사람을 파견하여 민간의 시가를 수집하는 ‘采詩’라는 제도를 두었는데, 후대 사람들은 『시경』의 적지 않은 작품들이 이런 방식으로 수집되었다고 여겼다. 또 『史記』등의 기록을 근거로 孔子가 刪定했다고도 하나, 현대에는 대부분 그 설을 의심하고 있다.
『시경』은 크게 ‘風’, ‘雅’, ‘頌’의 세 가지로 나뉜다. ‘國風’이라고도 하는 ‘풍’은 토속적인 음악이란 뜻으로, 각 제후국의 토속적인 가요로서 周南, 召南, 邶, 鄘, 衛, 王, 鄭, 齊, 魏, 唐, 秦, 陳, 檜, 曹, 豳 등 ‘15국풍’을 포함해 모두 160편의 작품이 전해온다. ‘아’는 ‘大雅’와 ‘小雅’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모두 105편이 전하며 주로 귀족의 작품이다. 또 ‘송’은 ‘周頌’, ‘魯頌’, ‘商頌’ 세 가지로 나뉘는데, 모두 40편이 들어 있으며 주로 귀족들이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歌舞의 樂章이다.
『시경』의 시는 모두 주나라 초기에서 춘추 중엽에 이르는 시기의 작품으로, 陝西, 山西, 河南, 山東, 湖北 등지에서 창작된 것이다. 이 작품들은 고대의 생활상을 폭넓게 보여주기 때문에 고대의 사회상과 사상을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전적이다. 또 형식에 있어서는 대부분 4언을 위주로 하고 보편적으로 賦, 比, 興의 수법을 사용하였는데, 생동감 있는 묘사와 질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언어,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음절이 강한 예술적 감화력을 내뿜는다. 이처럼 『시경』은 중국 문학사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며 중국 고대 시가의 현실주의적 토대를 다져 놓았다.
양계초는 “시 3백편은 중국의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문학작품이다. 그 중에서 ‘송’은 대개 전문적인 문학가나 음악가가 제작한 것으로 가장 典重하고도 풍성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며, ‘아’도 부분적으로 전문가가 제작한 것인 듯하나 ‘남’과 ‘풍’은 순수한 평민문학으로서 전후 수백 년 동안의 각 고장과 각 계급과 각 직업의 남녀 양성의 작품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담겨진 감정도 국가․사회․가정․우인간의 개인적인 교제, 남녀간의 원한과 사모 등 그 모든 감정을 대표하는 작품이 없는 것이 없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양계초는 『시경』연구의 의의를 문학적 가치 이외에도 고대의 사료, 또는 사료를 판단하는 척도로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이른바 ‘ 『시경』의 시대’에 대하여, 중국 민족의 사회조직의 기초와 그 인생관의 근본에 대한 비교적 명확한 개념을 얻을 수 있으며, 또 각 고장의 민심의 이동 및 그것이 점차 순화되어 간 과정도 대개 짐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연구는 당시의 동식물의 분포상태, 성곽, 궁실의 건축양식, 농기구, 병기, 禮器, 그 밖의 용구의 제조방법 및 의복, 음식의 발달과정 등 이러한 상황을 분석하면 얻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시경』에 담겨 있는 점술문화를 살펴보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범인류적 차원에서 행해졌고 또한 현대에도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점술의 原型을 탐색하는 것이며, 또한 고대 중국인의 종교신앙과 관련한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문화의 정신적 근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2. 『시경』 속 점술문화의 특성과 현대적 의의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사회의 문화적 특징 가운데 하나가 점술문화라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다. 『성경』속에서도 고대 유대인의 점술문화를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으며, 동양의 각종 고전 속에서도 점술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동양 고전 가운데 고대인의 다양한 문화와 정서를 반영하고 있는 고전이 바로 『시경』이라 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동양 고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헌인 『시경』을 통하여 고대 중국인의 점술문화를 살펴보았다. 『서경』『국어』『좌전』등의 문헌이 특정 계층인을 대상으로 하거나 특정된 목표로 지어진 것과는 달리, 『시경』에는 고대 중국인들의 일반적인 정서와 생활풍속을 풍부하게 담고 있기 때문에, 점술문화를 분석함에 있어 보다 보편적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시경』에 담겨 있는 내용을 살펴볼 때, 중국 고대인의 정서와 생활 속에 담겨 있는 점술문화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시경』에 나타난 점술의 유형으로는 점복(거북점), 점서(시초점), 점몽, 점성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 가운데 거북점에 관한 사례가 가장 많으며, 그 다음으로는 시초점과 몽점을 들 수 있다. 당시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도 점복과 점서 그리고 점몽의 점술문화가 대중화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이러한 사실은 『주례』에 기술된 주요 점술유형이 卜․筮․夢인 것과도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시경』과 『주례』등의 점술 유형을 볼 때, 점술문화의 기본유형 즉, 점술의 원형으로는 점복과 점서 그리고 점몽임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주역』서법과 관련하여 설시의 재료가 되는 시초가 당시 널리 퍼져 있는 식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 시초로 주역점을 쳤다는 것은 또한 점술문화가 보편화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점은 고대인의 실존적 삶의 과정에서 극한 상황에 처할 경우 인간으로서의 선한 소명을 받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행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당시 빈번하게 행해지는 점술로 인한 폐단을 지적하는 내용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모사가 들끓는 상황에서 거북점이 너무 자주 행해지다 보니, 거북점의 신령함이 모독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으로서의 실천에 옮기지 않고 계략만 세우기 위해 거북점만 치고 있는 세태를 풍자한 시는 점술문화의 폐단을 지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넷째, 천문기상을 보아 앞날의 정황을 예측하는 점성에 관한 내용도 있으나, 일반인의 생활과 정서를 주로 반영하고 있는 『시경』에서는 점성과 관련한 내용은 단 한 군데에 불과했다.
다섯째, 고대사회에 도읍을 정하거나 옮기기 전에 반드시 거북점을 쳤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서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첨단문명으로 치닫고 있는 현대사회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점술문화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대와 문명이 달라져도 인간에 내재된 보편적 정서는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때로는 원시적인 것과 문명적인 것을 비교하면서, 원시적인 것을 미신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어 말하곤 한다.
그러나 "‘원시’는 결코 옛날이나 우리와 먼 다른 곳의 지적 상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그와 마찬가지로 ‘현대’ 또한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의 지적 상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또한 인간정신의 진화의 단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 그러나 가장 현대화된 도시에서도 원시적인 요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동시에 가장 미개한 수리남 토착민에게도 현대적인 요소는 존재한다."
현상적으로 펼쳐지는 인류의 문명적 발전이 인간에 내재된 정신적 원형을 바꾸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고대 점술유형 가운데 『시경』과 『주례』등에서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는 점몽(占夢)은 현대에 들어와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와 융(C. G. Jung, 1875-1961)에 의해 재해석되어 정신분석학과 분석심리학으로 발전되고 있듯이, 고대 인류문화에 내재된 각종의 점술은 오늘날 새로운 해석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상 이 세계는 고대와 중세 및 근현대가 단절되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어 온 종적 문화사(縱的 進化史)를 지금 이 순간의 횡적 지평선(橫的 地平線) 위에서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최첨단으로 치닫는 현대문명의 한 가운데 존재하고 있는 현대인의 생활이나 정서 속에는 고대로부터 형성된 점술문화의 근원적 양상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고대 정신문화의 주요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점술을 특정 종교적 신념하에 미신으로 치부하는 견해도 있지만, 현대 철학적 관점에서 점술의 합리성을 재조명하는 연구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인류 정신문화의 원형을 이 시대에 새롭게 창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경』속의 점술문화와 정서는 지금 이 시대에도 현대인의 실존적 삶 속에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이 글은 신성수, 「『詩經』에 나타난 占術文化 연구」 (『인문학연구』 제23호,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3, 329∼357쪽) 가운데 제2장 ‘『시경』의 문화사적 의의’와 제4장 ‘결론 : 『시경』속 점술문화의 특성과 현대적 의의’ 부분을 각주를 생략하고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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