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과 인생

『주역(周易)』의 관점에서 본 실존(實存)과 초월(超越)

돈호인 2018. 8. 1. 16:43

 

 

 

  현대문명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집단적 반응속도의 가속화’는 세계 곳곳의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고 그 흥망의 주기를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는 특히 환경문제를 포함한 자연의 이상변화와 사회적 불안요인들에 대한 인식이 동시적으로 확산되면서 ‘위기의식(危機意識)의 증폭(增幅)’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논문은 가장 오랜 연원을 가진 古典 가운데 하나인 『주역』을 통하여 실존과 초월, 파국과 희망의 문제를 살펴보고 현대사회를 조망해보았다.


  『주역』은 고대인의 삶 속에서 투영된 인생과 사회 및 자연의 변화원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실존과 초월이 융합된 학문체계라고 할 수 있다. 실존과 초월은 고대 점술문화의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는 『주역』의 연원과 경전의 상징체계에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역』에서의 실존과 초월의 문제는 주역철학의 주요개념인 길흉회린(吉凶悔吝)과 우환의식(憂患意識)을 통하여 파국과 희망의 변주로 나타난다. 이러한 파국과 희망의 변주선상에서 현대사회는 큰 전환점을 맞고 있다.

 

1. 『주역』으로 본 현대사회의 전망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이 사회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사를 돌이켜보면, 인간의 삶이란 실존과 초월의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삶과 아울러 집단적인 운명 또한 흥망성쇠의 틈 사이에서 다양한 변주곡을 울려 왔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을 둘러싼 파국과 희망의 교차, 국가사회를 비롯한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빚어지는 파국과 희망의 교차. 이 모든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주체들간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인생의 탄생과 함께 죽음이 운명을 같이 하듯이, 인류의 탄생과 함께 종말론도 같이 탄생하였다. 


  세상을 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과연 이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파국적 상황인가, 아니면 희망적 상황인가?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인가, 아니면 희망으로 나아가는 상황인가? 이 모든 지표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부정적 미래관을 가진 사람은 종말론을 주장할 것이고, 희망적 미래관을 가진 사람은 긍정적인 자세로 현실에 충실할 것이다.


  『주역』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도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주역』 64괘를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는 범주에서 특정 괘를 인용하면서 현대사회를 진단할 수 있고, 서구적 문명관의 위기론을 전제로 하여 특정 역학적 방법론으로 진단할 수도 있다. 『주역』의 점서적 성격을 애써 부인하려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인식한 『주역』의 틀에서 현대사회의 여러 현상을 괘에 비유하면서 논할 수도 있다. 『주역』의 상징체계는 천문 지리 인사를 망라한 통합적 체계이기에 세상의 모든 현상을 비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 상황이든 집단적 상황이든 파국을 논하면서 둔괘(屯卦)를 말할 수 있고, 감괘(坎卦)를 말 수 있고, 곤괘(困卦)를 말할 수 있고, 비괘(否卦)를 말할 수 있고, 명이괘(明夷卦)를 말할 수 있고, 박괘(剝卦)를 말하는 등 많은 언급을 할 수 있다. 희망 또는 초월을 말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그에 상응하는 괘들, 예컨대 태괘(泰卦)·대유괘(大有卦)·비괘(比卦)·임괘(臨卦)·대축괘(大畜卦)·승괘(升卦) 등을 연상하며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과연 현대사회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주역』의 연원인 '점서적 성격'을 고려하여 설시(揲蓍)를 하여 보았다. 설시를 통한 현대사회의 상황성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주역』은 상경 28번째에 있는 택풍대과괘(澤風大過卦)로 응답했다. 대과괘에서 삼효, 사효, 상효 세 효가 변하였는데, 변하여 간 지괘(之卦)는 풍수환괘(風水渙卦)가 되었다.


  대과괘는 초효와 상효가 음(陰)이고 중간에 있는 이효 삼효 사효 오효는 모두 양(陽)이어서, 중간은 양기운으로 강하지만 근본과 끝이 약하여 물상에 비유하자면 기둥이 흔들리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래서 괘사에는 "대과는 기둥이 흔들리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로워서, 형통하다."고 하였다. 기둥이 흔들린다는 것은 현대사회를 지탱해왔던 모든 발전적 상황들이 흔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효의 음은 현대사회를 이끌어왔던 기반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상효의 음은 미래적 정황에 대한 희망성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사회를 이끌어 왔던 토대가 약해지고 미래적 전망이 불투명해지니 현대인의 심적 동요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 처하여 좌절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가는 바를 둠이 이로워서 형통하다(利有攸往 亨)’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대과괘에서 특히 삼효와 사효 그리고 상효의 세 효가 변했으니, 그 변한 효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정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과괘 구삼효(九三爻)는 “기둥이 흔들리니 흉하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진정 현대사회를 지탱해왔던 기둥이 흔들리는 상황성을 나타낸다. 이 효가 변하면 지괘가 택수곤괘(澤水困卦)로 되는데, 곤괘는 특히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성을 나타낸다. 곤괘 삼효에 "돌에 곤하며 가시나무에 거처한다. 그 집에 들어가더라도 아내를 볼 수 없으니 흉하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경제적 궁핍으로 국가사회나 가정경제가 파탄하는 상황성을 의미한다.


  대과괘 구사효(九四爻)는 지나간 과거나 지금까지 해 온 일에 연연해하지 말고 앞으로 전진하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구사효사에 "기둥이 높아지니 길하지만 다른 것이 있으면 인색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문장을 설명한 효상전에 "기둥이 높아져 길하다는 것은 아래에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 구사효가 변하면 지괘는 수풍정괘(水風井卦)가 된다. 수풍정괘는 『주역』64괘의 순서에 있어 앞서 언급한 택수곤괘 다음에 나오는 괘로서, 곤괘가 경제적 파탄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정괘(井卦)는 새로운 경제의 틀을 만들고 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정괘 육사효에 "우물을 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나라 경제의 기본 틀을 개혁하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대과괘 상효는 “지나치게 건너다 이마를 멸하여 흉하니, 허물할 데가 없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현재의 파국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하게 고집해 가다가 진정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현대사회의 변화양상과 실태를 정확히 분석하여 실행에 옮겨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기존의 사고방식대로 밀고 나가면 결국 좌절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대과괘 상효가 변한 지괘는 천풍구괘(天風姤卦)가 되는데, 구괘 상효에는 "그 뿔에서 만나니 인색하니, 허물할 데가 없다"고 하였는데, 이는 자존심만 내세우고 기득권을 유지하여 높은 자리에 처하려고 하니 인색하다는 의미이다.


  대과괘의 삼효 사효 상효가 모두 변한 지괘로는 풍수환괘(風水渙卦)가 된다. 풍수환괘는 괘사에 “환은 형통하니, 왕이 사당을 둠에 지극히 하며, 큰 내를 건넘이 이로우니, 바르게 함이 이롭다.”고 하였는데, 이는 천하 민심이 흩어져 어려운 상황에 흩어진 민심을 지극정성으로 하나로 모아 큰 일을 해 나가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파국적인 상황에 처한 민생을 구제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현대사회는 지금까지 이룩해 놓은 문명 체계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과도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차원의 모든 분야에서 기둥이 무너지는 듯 하는 파국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과거의 잘못된 인습을 탈피하고 전반적이고 과감한 개혁과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부응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황성옛터처럼 황폐화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을 초래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파국적 상황에서 전개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흩어져 있는 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강력한 정신적 차원의 결집을 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결론 : 변화와 과정으로서의 세계

 

  『주역』의 전일론적 사유체계는 우주론적 범주에서 개체적 범주에 이르기까지 전체와 부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 다시 말하면 원시부족사회에서 현대국제사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류사회의 연결범주가 확대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 개개인의 삶, 즉 출생에서 유아기 청소년기 장년기 노년기에 이르는 과정은 세상에 대한 인식의 범주가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서론에서 언급하였듯이 인류문명의 발전은 시공간의 확장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으며, 인간 개개인의 인식론적 측면에서도 그 시공간의 범주를 확대시키고 있다. 유기적 연결망의 동시성은 위기현상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현대사회는 지구 어느 곳에 일어나고 있는 파국성이 동시적으로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 혹은 그 가능성에 대한 인식을 더욱 높이고 있다. "변화는 시간과 함께 인간 인식의 안과 밖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인간 주체는 그 변화 지점에 대한 인식의 경계를 부단히 확장하고자 한다. 결국 인간은 변화의 인식가능성에 있어서 믿음과 절망 사이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주역』에서의 괘상과 효상은 객관적인 상황성을 보여주고 있다. 상황성이란 변화의 다양한 양상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의 징표이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이든 항상 변화의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 이는 인간의 의지에 따라 객관적 상황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작용이 길흉회린 작용에 따른 파국과 희망의 변주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뉘우침’의 작용과 우환의식은 파국적 상황에서 희망적 상황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뉘우침’과 ‘우환의식’의 구체적인 실천은 현대사회가 짊어지고 있는 파국적인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려고 하는 실천적 노력을 의미한다.

 

  인간은 개개인 각자의 행위만으로 삶이 영위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개체적 자아를 중심으로 하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상황성이 다양하고 다원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가장 가까이로는 '가족'에서 출발하여, 각 개인이 속해 있는 직장, 모임, 동문회, 동아리, 지역사회, 국가사회, 국제사회 등등 수많은 조직적 상황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개인'의 행위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성, 더 나아가 개개의 국가사회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성이 때로는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실존적 상황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미시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전체적 상황과 부분적 상황을 함께 고찰할 수 있는 통시적인 관점에서 현재의 상황을 판단하고, 그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 혹은 국가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올바른 지혜라고 할 수 있다.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 속에서 현실을 직시하면서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창조적인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주역』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주역』 64괘 384효는 인생의 역정과 인간사회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실존문제가 드리워져 있으며, 아울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이 제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역』에서의 실존(實存)과 초월(超越), 다시 말하면 파국(破局)과 희망(希望)은 동시적(同時的)인 것이다. 실존 속에 초월이 있고 초월 속에 실존이 있으며, 파국 속에 희망이 있고 희망 속에 파국이 있다. 『주역』 대과괘(大過卦)에서 살펴보았듯이, 현대사회의 파국성은 정치·경제·사회·문화·환경 등의 모든 요소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 이 글은 신성수의 논문 「『周易』의 관점에서 본 實存과 超越 : 破局과 希望의 變奏」 (『인문학연구』 제22호,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2, 55∼85쪽) 가운데 제5장 ‘『주역』으로 본 현대사회의 전망’과 제6장 ‘결론 : 변화와 과정으로서의 세계’을 각주는 생략하고 옮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