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광장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과 인식의 다양성

돈호인 2018. 3. 30. 11:54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이란 용어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사용되어 온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을 의미하는 용어와 공간을 의미하는 용어가 고대로부터 사용되어 왔고 그 용어들의 맥락을 따라 오늘날 보편적 용어인 시간과 공간이란 용어로 포함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고대 동아시아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은 우주(宇宙)로 집약된다고 볼 수 있다. 문자(文子)』 「자연(自然)편에서는 노자를 인용하면서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를 라 하고, 사방과 상하를 라 한다(往古來今謂之宙, 四方上下謂之宇).”고 하였다. 전국시대의 시자(尸子)에서도 유사한 언급이 나타나고, 이후 진대(秦代)삼창(三蒼)여씨춘추(呂氏春秋), 한대(漢代)회남자(淮南子), 태현(太玄)등으로 이어졌다. ()는 공간적 개념이고, ()는 시간적 개념이다. 공간적 개념인 우와 시간적 개념은 주를 합성하여 우주라고 함으로써 고대인의 사유 속에는 시간과 공간은 분리될 수 없는 개념임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공간적 개념으로서의 우()를 먼저 표현하고 공간내 만물의 변화를 나타내는 시간적 개념인 주()를 그 다음에 표현하였다는 점이다.

 

   근대 서구의 과학적 인식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분리된 독자적 개념으로 표현하다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등장한 이후 현대물리학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분리되지 않은 시공간(時空間, time-space) 연속체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이 세상의 변화를 설명하려는 수단으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왔다. 시간공간이란 용어가 아니더라도 시간성과 공간성을 나타내는 용어를 사용하여 삶의 흐름을 표현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공간성을 의미하는 천지(天地)라는 용어와 시간성을 의미하는 사시(四時)라는 용어를 들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시간이란 개념은 물질(인간의 신체를 포함한 유형적 사물)이나 사건 혹은 상황이 공간에서 이동하거나 변화하는 흐름을 파악하는 좌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특정 공간 안에서 특정 사물이 움직이거나 또는 특정 사건이나 상황이 변화해나가는 양상의 흐름을 우리는 시간이란 개념을 통해 살피게 된다. 한편 공간은 거시적으로는 우주공간에서부터 미시적으로는 원자에 이르기까지 공간의 영역은 다차원적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인간이 인식하는 기본적인 공간의 범주는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가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되풀이하면서 펼쳐지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지구를 중심으로 한 공간적 범주 안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이 생활하고 있으며, 수많은 사건과 상황들이 펼쳐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모든 존재와 상황은 공간 안에서의 활동양상이 저마다 다르다. 인간 또한 각자의 생활영역에서 각자의 공간적 활동을 하고 있다. 시간이란 개념을 사용한다면,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고유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모든 존재 각자에게 고유한 시공간을 주관적 시공간또는 정신적 시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천차만별의 생활양상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모든 존재가 인식할 수 있는 시공간변화의 일정한 흐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지구의 공전과 자전주기 그리고 달의 공전주기이다. 지구의 공전과 자전주기 그리고 달의 공전주기에 입각하여 고대로부터 인류는 년(지구의 공전주기), (달의 공전주지), (지구의 자전주기), (지구 자전주기의 분할)라는 시간개념을 활용하여 왔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이란 지구의 공전과 자전주기에 입각한 거대한 천체물리학적 변화의 한 좌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유형적 사물, 즉 천체의 주기적 변화에 기초한 개념이다. 바로 이 시공간 개념을 객관적 시공간또는 물리적 시공간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신적 관점에서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물질적 시공간과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정신은 육체가 머물고 있는 공간적 범주에 한정됨이 없이 사유작용을 일으킨다.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면서, 공간적으로는 자신의 육체가 있는 공간에서부터 지구의 어느 곳 더 나아가 우주공간에 이르기까지 정신적 사유의 폭을 마음대로 팽창시킬 수 있다. 정신에는 시공간적 한계가 없다.

 

   정신과 물질의 관계는 인간 자체 안에서 보면 정신과 육체와의 관계로 볼 수 있고,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로 보면 인식주체와 객체(사물 및 현상, 사건 등)의 관계로 볼 수 있다. 모든 존재에는 저마다의 정신이 있기에 모든 사건과 현상에는 수많은 정신작용이 다양하고 다차원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근대 이후의 과학정신에 입각한다면 모든 사건과 상황은 물리적 관계의 인과성으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렇지만 모든 사건과 상황에 모든 존재의 정신이 다층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모든 인간은 각자의 정신세계 범주 안에서 대상이 되는 현상과 사건을 인식하고 또한 작용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모든 존재는 객관적 시공간 안에서 생활하고 있으면서도 각자가 느끼는 주관적 시공간은 저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시공간을 인식하는 차원은 모든 존재마다 상이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컴퓨터, 인터넷,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유비쿼터스 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현대 과학문명은 전통적인 시공간 개념을 자유자재로 응축시키고 확장시키며 더 나아가서는 자유자재로 연결시키기도 하고 단절시키기도 하는 이른바 전자적 시공간 개념을 낳게 되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시공간 개념은 대체로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볼 수 있다. 첫째는 객관적 시공간이다. 이는 태양과 지구와 달의 천체물리학적 시공간으로 연월일시로 표현되는 시공간이다. 둘째는 상황적 시공간이다. 이는 자연과 사회와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일상생활에서 펼쳐지는 상황적 변화의 흐름을 말한다. 셋째는 주관적 시공간 또는 정신적 시공간이다. 이는 인간 개개인의 주관적 인식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개념을 말한다. 넷째는 예측적 시공간이다. 이는 미래적 상황의 흐름을 앞당겨 살펴보는 것으로 이른바 점()이란 매개체를 통하여 나타나는 시공간이다. 그리고 끝으로 전자적 시공간이다. 이는 현대 과학문명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사물인터넷으로 표현되는 시공간으로 물리적 시공간과 상황적 시공간 그리고 정신적 시공간을 넘나드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 내용은 신성수, 「『주역의 미래예측(未來豫測)과 시공간 인식, 동방문화와 사상, 1,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동양학연구소, 2016, pp. 7073”의 내용을 토대로 수정 보완하여 2017년 한국주역학회 춘계학술발표회에서 발표한 내용의 일부를 옮긴 것임(각주는 생략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