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광장

『주역』은 시간성과 공간성의 조합으로 변화의 원리를 나타낸다(우주변화의 원상)

돈호인 2014. 10. 31. 16:21

1. 시간성과 공간성에 대한 인식

 

  시간과 공간이란 개념은 인간이 현상계를 인식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우리가 '시간'이라는 개념을 독립적으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사실 '시간'이란 '공간'이 변화하는 흐름의 좌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인식하는 시간성과 공간성의 명백한 기준은 지구라는 항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과 자전을 하고 있고, 또한 지구의 위성인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공전하고 있다는 천문현상에 기초하고 있다. 시간의 기초적인 마디가 되는 년월일시(年月日時)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주기를 년(年)으로 나타내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동안 지구의 위성인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공전하는 주기를 월(月)로 나타낸 것이며, 지구가 자전하는 주기를 일(日)로 나타내고, 지구의 자전주기를 나누어서 시(時)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달을 포함한 지구라는 항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자전하는 물리적 공간의 이동좌표가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환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대자연의 변화를 관찰한 고대인의 사유 속에서도 그대로 투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해와 달이 교차하면서 하루의 밤과 낮의 기운변화가 나타나고, 지구가 공전하면서 대략적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은 지구라는 항성의 생태계 내에서는 일반적인 정률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대자연의 기운의 기본 속성을 음양(陰陽)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한 『주역』의 원저자들은 현재의 상황에서 인식되는 공간성과 그 공간적 상황이 변화해 나가는 흐름(시간성)을 어떻게 표상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심하다가 음양의 3단 분화로 나타나는 팔괘의 배열을 통하여 시간성과 공간성을 표상하게 되었다.  『주역』의 원리를 표현할 때 가장 대표적인 도본(圖本)이 되는 선천팔괘(일명 복희팔괘)와 후천팔괘(일명 문왕팔괘)가 그것이다. 선천팔괘와 후천팔괘의 괘 배열이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선천팔괘가 공간적 양상을 표현한 원리라면 후천팔괘는 공간의 변화양상(시간)에서 펼쳐지는 계절 기후의 변화원리에 맞추어 괘 배열을 달리했다는 점이다.

 

 

2. 지구의 공간적 양상과 선천팔괘(先天八卦)의 원리

 

 

   선천팔괘를 보면, 상하좌우 정방위(正方位)에 상하에는 천지(天地)를 의미하는 건(()이 정위하고 좌우에는 일월(日月)을 의미하는 리(()이 운행하는 천문적(天文的)인 형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간방위(間方位)에는 산과 연못을 의미하는 간(()가 통기하여 우뢰와 바람을 일으키는 진(()이 자리하는 지리적(地理的)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선천팔괘는 천문지리(天文地理)적인 공간(空間)성을 표상한다고 볼 수 있다.

 

 

3. 지구의 시간적 양상과 후천팔괘(後天八卦)의 원리

 

 

  후천팔괘는 팔괘의 속성을 바탕으로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나타나는 공간의 변화양상을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四時)변화의 원리에 맞추어 괘 배열을 달리한 것이다. , 후천팔괘는 선천팔괘의 건(()을 대행한 감(()가 체가 되어, 일월(日月)의 운행에 따른 기후의 변화작용에 근원을 둔 시간적계절적 변화의 상을 보여주고 있다.

 

  정방위에 있는 진(((()은 각각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四時)한서(寒暑)의 기운을 표상하여, (春生 여름(夏長 가을(秋收 겨울(冬藏 )의 이치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후천팔괘는 전체적으로 공간이 이동하면서 나타나는 계절적 변화, 즉 시간성을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후천팔괘는 계절성과 방위성의 두가지 요소를 동시에 지니게 되는 것이다. 선천팔괘의 괘체(卦體)는 상하좌우(上下左右)의 공간적 개념으로 설명함이 타당하며, 후천팔괘의 괘체는 동서남북(東西南北)의 방위와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시간적 개념으로 설명함이 타당하다.

 

 

4. 선천팔괘(공간)·후천팔괘(시간)의 조합 : 우주변화의 원상(原象)

 

 

   선천팔괘는 어느 계절과 방위에서나 공간적으로 펼쳐지는 대자연의 공간(空間)과 지리적(地理的) 원상(原象)을 표현한 것이고, 후천팔괘는 그러한 공간의 변화에서 나타나는 계절적 변화 즉 시간적(時間的) 양상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자연히 우주변화의 원리는 선천팔괘와 후천팔괘의 조합을 통해서 그 온전한 원상(原象)이 드리워지게 된다.

 

  즉 후천팔괘가 표상하는 계절·방위의 어느 시점에서나 항상 선천팔괘의 공간적 양상은 그대로 펼쳐지는 것이기 때문에, 후천팔괘의 각 팔방(八方계절(季節)에 선천팔괘의 공간적 상은 여여(如如)한 것이다. 따라서 후천팔괘의 각 괘를 체()로 하여 선천팔괘를 각각 공간적으로 배열하면, 우주변화의 원상(原象)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팔괘가 서로 거듭하여 나타나는 6효로 이루어진 대성괘(大成卦) 64괘의 조합이 자연히 드러나게 된다. 결국 64384효는 우주자연의 변화원리를 드러낸 대자연의 원상(原象)이 되는 것이다.

 

 

5. 先天·後天의 개념에 대하여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라는 용어가 이른바 역학(易學)에서 관용적으로 쓰이게 된 기원은 아마도 하도(河圖)와 낙서(洛書) 그리고 선천팔괘와 후천팔괘를 비교하게 되면서 쓰이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런데, 선천과 후천의 개념을 어떻게 파악해야 할 것인가는 다소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개념 중의 하나는 종교적(宗敎的) 이론에 입각한 것으로 후천(後天)을 내세(來世) 혹은 개벽(開闢)된 이후의 용화세계(龍華世界)로 보는 것이다. 학문적 관점에서 정리하자면 선천과 후천의 의미에는 대체로 다음의 4가지로 볼 수 있으며, 각각의 의미는 경우에 따라 특정적으로 혹은 복합적으로 쓰이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1) 학리적 개념(學理的 槪念)

 

1) 일원적 이원론(一元的 二元論) : 선천이란 구체적인 현상체로 나타나게 하는 근원적 원리로서의 형이상(形而上)을 의미하고, 후천이란 선천의 이치에 따라 천리가 변화하여 현상천(現象天)을 이루고, 일월이 운행하고 한서가 교류하며 작용하고 있는 작용적 천문의 이(), 즉 형이하(形而下)를 의미한다고 본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선천과 후천이 서로 체용(體用)표리(表裏)의 관계가 되고, 일체(一體)의 양면(兩面)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2) 이원론(二元論) : 선천의 법도(法度)와 후천의 법도(法度)가 다르다고 보며, 따라서 선천이 후천으로 바뀌면 그 법도도 바뀐다고 보는 입장이다. 예컨대 14계절중 양기운이 자라나는 봄과 여름(春夏, 선천)의 법도와 음기운이 자라나는 가을과 겨울(秋冬, 후천)의 법도는 서로 다른 이치에 의해 운행한다고 본다.

 

(2) 현상적 개념(現象的 槪念)

 

1) 시간적 선후관(時間的 先後觀) : 단순한 시간적 개념으로 파악하여 과거(過去)를 선천이라 하고 미래(未來)를 후천이라 보는 것이다.

 

2) 시기론적 개벽관(時期論的 開闢觀) : 어느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그 이전을 선천이라 하고 그 이후를 후천이라 하는 입장으로, 대체적으로 종말론적 개벽사상이나 종교관이 이러한 개념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시공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과거의 흔적을 남기며 미래로 향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하고 있는 모든 생명은 이 순간이라는 현재성에 기초하여 다가오는 미래를 창조해 나가고 있다.

 

 

※ 이상의 내용은 2005년도에 발간한 『주역통해』(46∼57쪽)와 2007년도에 발간한 『현대 주역학 개론』(106∼128쪽)의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