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광장

『주역』의 상징체계에 대하여

돈호인 2015. 2. 23. 16:39

 

 

  동서양을 망라한 고전이나 경전 가운데 주역만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단지 성현(聖賢)의 말씀을 문자(文字)로만 전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문장)의 상황이 전제되어 있는 상징체계(象徵體系)’가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주역은 대자연의 형성원리와 변화원리로서 음양이진법(陰陽二進法)으로 체계화된 상징적 부호체계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주역은 태극(太極) · 양의(兩儀; , ) · 사상(四象; 태양, 소음, 소양, 태음) · 팔괘(八卦; , , , , , , , )의 원리를 기본으로 하여 주역경문의 골격을 이루는 64384효에 이르기까지, 음양기운(陰陽氣運)의 분화와 통합 그리고 괘() · ()의 상호관계와 효()의 변화로 인한 본괘(本卦)와 지괘(之卦)의 유기적 관계 등을 통하여 자연과 사회 및 인간의 변화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언어와 문자에 내재된 상징성을 고려하면, 주역의 상징체계는 음양이진법의 상징적 부호체계라는 1차적 상징체계와주역경문(經文)2차적 상징체계로 이루어진 셈이다. 주역에 관한 학문적 이론과 철학은 상수역학(象數易學)과 의리역학(義理易學)의 대립 또는 보완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를 1차적 상징성과 2차적 상징성으로 대비하여 본다면 상수역학은 음양(陰陽)괘효(卦爻)1차적 상징성에 중점을 둔 이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의리역학은 언어와 문자의 2차적 상징성에 중점을 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주역』 「계사상전12장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글로는 말을 다할 수 없으며 말로는 뜻을 다할 수 없으니, 그렇다면 성인의 뜻을 보지 못할 것인가? 성인(聖人)이 상()을 세워서 뜻을 다하며, ()를 베풀어서 참되고 거짓됨을 다하며, 글을 붙여서 그 말을 다하며, 변하고 통해서 이로움을 다하며, 두드리고 춤을 추어 신명을 다하느니라."(子曰 書不盡言하며 言不盡意然則聖人之意其不可見乎. (子曰)聖人立象하야 以盡意하며 設卦하야 以盡情僞하며 繫辭焉하야 以盡其言하며 變而通之하야 以盡利하며 鼓之舞之하야 以盡神하니라.)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상을 세워서 뜻을 다했다(立象以盡意)’는 것은 어떤 상황과 현상을 이미지화한 상()을 통하여 구체적이고 지엽적인 언어와 문자가 지닌 한계성을 초극한다는 의미이며, ‘글을 붙여서 그 말을 다하며(繫辭焉以盡其言)’라는 내용은 주역의 괘효(卦爻)에 표현된 경문(經文)을 통하여 그 이치를 다 설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을 세워서 뜻을 다했다(立象以盡意)’는 것은 주역의 괘상(卦象)과 효상(爻象)을 말하는 것으로, 주역1차적 상징성을 의미한다. ‘글을 붙여서 그 말을 다하며(繫辭焉以盡其言)’라는 것은 주역64괘의 괘사와 384효의 효사를 말하는 것으로, 주역2차적 상징성을 의미한다. 괘상과 효상의 1차적 상징성은 불립문자(不立文字)로 직관의 영역에 속하거나 추상적인 사고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괘상과 효상의 구체적인 의미는 문자로서 형식화되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2차적 상징성으로서의 주역의 경문(經文)은 중국 고대 은()나라 말기 주()나라 초기의 시대를 배경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주역의 문장은 다시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각 시대의 문화와 가치가 투영되어 상징화된 의미로 발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경전의 토대가 되는 언어와 문자는 상황을 표현하고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특히 경전의 문자는 의미를 전달하려는 특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당대에 표현된 언어와 문자는 당대의 문화를 배경으로 하여 표현되지만, 그러한 언어와 문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후대에 와서는 보다 다양화된 상징으로 전화(轉化)되기도 한다.

 

 

* 신성수, 「『易經에서의 ()’의 의미와 해석, 동방논집4, 한국동방학회, 2011, 14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