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명구단상

월상(月相)과 천문(天文) 그리고 『주역』 : 기망(幾望) 이망(已望) 기망(旣望)

돈호인 2021. 9. 25. 11:49

 

  고대로부터 인간이 자연의 변화를 관측할 수 있는 지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천문관측의 지표로 가장 먼저 파악한 것이 아마도 월상(月相)의 변화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지구를 공전하면서 28일 주기로 변하는 월상은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관측현상이었다.

 

  음력 초하루인 삭()과 음력 보름인 망()을 기준으로 삭에서 망으로 가는 중간의 상현(上弦: 음력 매달 7-8)과 망에서 삭으로 가는 중간의 하현(下弦: 음력 매달 22-23)이 월상 관측의 기준점이 되어 왔다.

 

  이러한 천문현상은 주역의 원리에도 반영되어 있다. 흔히 선천팔괘 혹은 복희팔괘로 알려져 있는 팔괘도의 괘상의 흐름은 월상의 흐름과도 같다. 즉 순음인 곤()은 삭()에 해당하고 이()는 상현(上弦), ()은 망(), ()은 하현(下弦)에 각각 해당한다. 그래서 선천팔괘의 도상은 월상(月相)의 주기적 변화의 흐름을 보고 만들었다는 설도 주장되어 왔다.

 

  그리고 주역 경문에는 월상(月相)에 기초한 문장이 있다. 바로 월기망(月幾望)’이란 용어이다. 천문용어상 월상을 나타내는 용어 가운데 기망(幾望) 이망(已望) 기망(旣望)이란 용어가 있다. 음력 보름인 망()을 중심으로 보름 전인 14일 달을 기망(幾望)이라 하고, 보름 당일 달을 이망(已望) 그리고 보름 다음날 16일 달을 기망(旣望)이라고 부른다.

 

  음양 기운의 흐름으로 볼 때 '해'는 양의 기운을 상징하고 '달'은 음의 기운을 상징한다. 음 기운을 나타내는 달의 변화에서 음기운이 가장 극성한 때는 보름 바로 전날인 기망(幾望)이 된다. 정작 만월(滿月) 즉 보름()이 되면 이미 음기운은 쇠()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망(幾望)은 음기운 즉 여자의 기운이 드센 것을 나타내는 상징어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루어진 문장이 주역풍천소축(風天小畜)괘 상구효(上九爻)이다. 소축괘 상구효에는 이미 비가 오고 이미 그침은 덕을 숭상하여 가득함이니, 지어미가 너무 고집하면 위태할 것이다. 달이 거의 보름이니 군자가 가면 흉할 것이다.”(上九 旣雨旣處 尙德載 婦貞 厲 月幾望 君子征 凶)라고 하였다. 이 내용은 달이 거의 보름에 이른 기망(幾望)에는 음기운, 즉 여자의 기운이 가장 드세기 때문에 여자 입장에서는 너무 고집스럽게 하면 위태롭고 남자의 경우에 여자에게 가면 음기운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흉하다는 뜻이다.

 

  한편 월상을 기운의 흐름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월상(月相) 즉 달의 모습에서 의미를 전달하는 내용도 있다. 예컨대 뇌택귀매(雷澤歸妹)괘의 육오효(六五爻)에는 제을이 누이동생을 시집보내는 것이니, 그 군()의 옷소매가 그 누이의 옷소매의 좋은 것만 같지 못하니, 달이 거의 보름이면 길할 것이다.”(六五 帝乙歸妹 其君之袂 不如其娣之袂 良 月幾望 吉)라고 하였다. 은나라 말기 천자였던 제을(帝乙)의 누이동생이 왕족의 신분으로 자기보다 낮은 신분인 제후에게 시집가는데, 보름 이전의 덜 찬 달처럼 조금 부족한 듯 겸손하게 처신하면 길할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기망(幾望)은 그대로 꽉찬 망월(望月) 이전에 조금 덜 찬 달을 의미한다. 왕족이라는 신분을 내세워 거만하게 굴지 말고 매사 겸손하게 처신하라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