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명구단상

중천건괘(重天乾卦)의 육룡(六龍) : 잠룡(潛龍)과 비룡(飛龍)

돈호인 2021. 8. 30. 00:47

 

  『주역상경 맨 처음 괘인 중천건괘는 초효부터 상효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을 용()에 빗대어 묘사하고 있다. 초효의 잠룡(潛龍), 이효의 현룡(見龍), 삼효의 척룡(惕龍), 사효의 약룡(躍龍), 오효의 비룡(飛龍), 상효의 항룡(亢龍)이 그것이다.

 

  초효의 잠룡(潛龍)은 땅 속에 잠겨 있는 용이니 쓰지말라(潛龍 勿用)고 하였다. 용의 덕이 있기는 하나 아직은 미미하여 더욱더 실력을 기른 뒤에 세상에 나오라는 뜻이다. 이효의 현룡(見龍)은 덕이 있는 군자로 세상에 알려져 있으나 자신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대인을 만나라고 하였다(見龍在田 利見大人). 삼효의 척룡(惕龍)은 종일토록 열심히 노력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반성하며 위태로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라고 하였다(君子 終日乾乾 夕惕若 厲 无咎).

 

  사효의 약룡(躍龍)은 세상을 경륜해 나갈 수 있는 실력이 되는가를 시험해 보는 것이다(或躍在淵 无咎). 오효의 비룡(飛龍)은 드디어 모든 실력을 갖추어 천하 세상을 다스려 나갈 수 있으니 자기를 보필하여 함께 세상을 경륜해 갈 수 있는 대인을 만나라고 하였다(飛龍在天 利見大人). 상효의 항룡(亢龍)은 모든 상황이 지나쳐서 세상을 경륜해 나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 후회만 있을 것이다(亢龍 有悔)라고 하였다.

 

  초효의 잠룡, 이효의 현룡, 삼효의 척룡, 사효의 약룡, 오효의 비룡, 상효의 항룡은 인생의 시간적 흐름이기도 하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현대사회에서 대체적으로 15년 단위로 본다면, 사람이 태어나 15세 까지는 잠룡, 16세부터 30세까지는 현룡, 31세부터 45세까지는 척룡, 46세부터 60세까지는 약룡, 61세부터 75세 까지는 비룡, 76세부터 90세 까지는 항룡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간적 흐름에 따라 주역중천건괘 괘사를 풀이한 단전(彖傳)에는 때로 여섯 용을 따서 그때 그때의 하늘을 다스려 나간다”(時乘六龍 以御天也)고 하였다.

 

  또한 중천건괘의 육룡은 동시적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공간적 양상이기도 하다. 초효의 잠룡, 이효의 현룡, 삼효의 척룡, 사효의 약룡, 오효의 비룡, 상효의 항룡은 어느 때나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존재적 양상이다. 수많은 인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잠룡의 상황에 있고, 누군가는 현룡의 상황에 있으며, 또 어느 누군가는 척룡, 약룡, 비룡, 항룡의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與野)를 불문하고 많은 정치인들이 출사표(出師表)를 던지고 있다. 이들 중에도 누군가는 잠룡이고, 누군가는 현룡, 누군가는 척룡, 또 어느 누군가는 약룡, 비룡, 항룡의 상황에 처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용들이 대통령이 되고자 세상에 나와 혈전을 벌인다(龍戰于野 其血玄黃). 이 가운데 누군가는 비룡이 될 것이다.

 

  세간(世間)에는 출사표를 던진 대선 출마자들을 모두 잠룡(潛龍)에 비유하고 있다. 사실 주역원전에 입각한다면, 잠룡은 세상에 나서서는 안된다. 조용히 숨어서 실력을 길러야 한다. 출마자들을 잠룡(潛龍)에 비유하는 것은 땅 속에 숨어 있다가 천하를 다스리는 비룡(飛龍)이 된다는 극적인 효과를 노리는 언론계와 정치계의 수사(修辭)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