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의
약한 바람이라도 거듭하여 계속 불게 되면 천하 만물을 움직이게 된다. 겸손하고 겸손한 자세로 명을 펴서 일을 행하라(申命行事).
괘명과 괘상
외괘도 손풍(巽風)☴, 내괘도 손풍(巽風)☴으로 이루어진 괘를 ‘손(巽)’괘라 한다. 인사적(人事的)으로 보면 어려운 상황에서 겸손하고 겸손하며 일을 행하여 자기 명을 펴는 것이다. 또한 자연의 이치로 보면 바람이 거듭하여 하늘의 명이 행하는 것이다. 바람이 거듭하면 만물이 흔들리며, 천하가 하늘의 명을 새로이 받게 된다. 뇌화풍(雷火豐)괘와 화산려(火山旅)괘에서 하늘이 심판을 하는 것은 과거의 죄를 처벌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새로이 하늘의 명을 편다.
손괘(巽卦)는 64괘 가운데 57번째에 있고 하경 27번째에 있어서 인사(人事)를 의미하는 하경을 마무리하는 중요한 자리이다. 60갑자로는 57번째인 경신(庚申)에 해당한다. 경신(庚申)이란 고쳐서 새롭게 편다는 의미이다. 《주역》은 64괘로 이루어져 있으나, 실제로는 60번째 수택절(水澤節)괘에서 모든 현상의 파노라마가 끝나게 된다.
서괘
「서괘전」은 화산려괘 다음에 중풍손괘가 온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旅而无所容이라 故로 受之以巽하고
여이무소용 고 수지이손
나그네로 용납할 바가 없다. 그러므로 손괘(巽卦)로써 받고
화산려(火山旅)괘는 인생의 나그네로서, 전쟁을 수행하는 병사로서, 형벌을 받고 귀양 가는 죄인으로서 용납할 바가 없다. 그러나 천하의 이치는 모든 것을 다시 거두어들인다. 또한 아무리 나그네라 할지라도 겸손의 덕을 갖추고 공경하면 다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거듭 겸손하다는 손괘(巽卦)를 여괘(旅卦) 다음에 둔 것이다.
괘사
巽은 小亨하니 利有攸往하며 利見大人하니라.
손 소형 이유유왕 이견대인
손(巽)은 조금 형통하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우며 대인을 봄이 이롭다.
巽:공손할 손·사양할 손
손(巽)은 겸손하고 또 겸손하게 하여 일을 하는 것이다. 또한 바람이 거듭하며 하늘의 새로운 명을 펴는 것이다. 조금 형통하다는 것은 겸손하게 낮추어야 형통하다는 뜻이다. 새로운 명이 행해지니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롭고 또한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重巽으로 以申命하나니
단왈 중손 이신명
剛이 巽乎中正而志行하며 柔 皆順乎剛이라.
강 손호중정이지행 유 개순호강
是以小亨하니 利有攸往하며 利見大人하니라.
시이소형 이유유왕 이견대인
단전에 말하였다. “거듭한 바람(겸손)으로 명을 거듭하니, 강(剛)이 중정(中正)에 겸손해서 뜻이 행하며, 유(柔)가 모두 강(剛)에 순하다. 이로써 조금(작은 것) 형통하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우며 대인을 봄이 이롭다.
重:거듭 중 申:거듭할 신·아뢸 신·펼 신·보낼 신
거듭한 바람과 거듭한 겸손으로 명을 펴는 것이 손(巽)이다. 구이와 구오의 양강(陽剛)이 중정한데 있으면서 겸손하여 그 뜻이 행해진다. 초효와 사효의 음(陰)은 각각 내괘의 구이와 구삼, 외괘의 구오와 상구의 강(剛)에 모두 순하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조금 형통한 것이고, 또는 작은 음(陰)이 형통한 것이다. 그러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롭고 만인을 이끌어줄 대인을 봄이 이롭다.
괘상사
象曰 隨風이 巽이니 君子 以하야 申命行事하나니라.
상왈 수풍 손 군자 이 신명행사
상전에 말하였다. “따르는 바람이 손(巽)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명을 거듭해서 일을 행한다.”
隨:따를 수
내괘 외괘로 바람이 거듭 부니 계속 바람이 따르는 상이 손괘(巽卦)이다. 이러한 상을 보고 군자는 바람이 거듭하듯이 명을 거듭해서 일을 행한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손괘(巽卦)는 57번째로 60갑자 순서로는 경신(庚申)에 해당한다. 명(命)을 거듭하는 것은 명(命)을 고치는 것이다.
이제 인사(人事)를 의미하는 하경(下經)을 마무리하는 시점이니, 새로운 명을 편다. 선천이 끝나고 후천이 오는 중천시대(中天時代)에 중화리(重火離)․중수감(重水坎)의 재앙이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뇌화풍(雷火豐)과 화산려(火山旅)에서 나타나고, 잘못된 구질서(舊秩序)를 단죄(斷罪)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한 하늘의 명이 거듭한다. 그야말로 신명(神命·神明)의 바람이다.
효사 및 효상사
初六은 進退니 利武人之貞이니라.
초육 진퇴 이무인지정
초육은 나아가고 물러나니, 무인(武人)의 바름이 이롭다.
進:나아갈 진 退:물러날 퇴 武:굳셀 무·무인 무
겸손하고 겸손한 손괘(巽卦)에서 초육은 맨 아래에 있고 양 자리에 음으로 있으니 지나치게 겸손하여 용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저 겸손하기만 하고, 바른 판단을 하여 과감하게 행동하지 못하니, 나아가기도 하다가 다시 물러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무인(武人)과 같은 용맹과 바름이 이롭다. 나아가다가 물러나는 것은 뜻을 의심하기 때문이고, 무인의 바름이 이롭다는 것은 나약한 뜻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象曰 進退는 志疑也오 利武人之貞은 志治也라.
상왈 진퇴 지의야 이무인지정 지치야
상전에 말하였다. “나아가고 물러남은 뜻이 의심하는 것이요, 무인의 바름이 이로움은 뜻이 다스려짐이다.”
疑:의심할 의 治:다스릴 치
九二는 巽在牀下니 用史巫紛若하면 吉코 无咎리라.
구이 손재상하 용사무분약 길 무구
구이는 겸손함이 평상 아래에 있으니, 사(史)와 무(巫)를 씀이 어지러운 듯 하면 길하고 허물이 없을 것이다.
牀:평상 상 史:사관 사 巫:무당 무 紛:어지러울 분 若:같을 약
구이는 음 자리에 양으로 있으나 내괘의 중(中)을 얻고 있다. 구이가 변하면 간산(艮山)☶이 되어 산 아래로 바람이 부는 것이 마치 평상 아래에 바람이 부는 것과 같다. 이는 평상 아래에 바람이 솔솔 스며들듯이,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라는 의미이다. 사(史)와 무(巫)는 옛날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祭司長)을 의미한다. 즉 제사장을 동원하여 제사를 올리는 것이 어지러운 듯 많게 하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이는 실질적으로 무당을 불러 굿하라는 것이 아니라, 천명(天命)의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니 겸손하게 지극한 정성으로 마음을 집중하여 천명에 응하기 위한 노력을 하라는 뜻이다.
象曰 紛若之吉은 得中也일새라.
상왈 분약지길 득중야
상전에 말하였다. “어지러운 듯해서 길한 것은 중(中)을 얻었기 때문이다.”
九三은 頻巽이니 吝하니라.
구삼 빈손 인
구삼은 자주 겸손하니, 인색하다.
頻:자주 빈 吝:인색할 린
구삼은 중(中)에서 벗어나 있고, 양 자리에 양으로 강하기만 하여 겸손하기가 어려운 상태이다. 손괘(巽卦)의 덕은 겸손한 것이니 구삼도 겸손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구삼 자체가 강하기만 하니 겸손하려다가도 강하게 처신하게 되어 제대로 겸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자주 겸손하다고 한 것이다. 결국 진실로 겸손한 덕을 갖추지 못하니 인색하다. 이는 구삼의 뜻이 궁색한 것이다.
象曰 頻巽之吝은 志窮也라.
상왈 빈손지린 지궁야
상전에 말하였다. “자주 겸손하여 인색함은 뜻이 궁한 것이다.”
窮 : 다할 궁·궁할 궁
六四는 悔 亡하니 田獲三品이로다.
육사 회 망 전획삼품
육사는 뉘우침이 없어지니, 사냥하여 삼품을 얻도다.
悔:뉘우칠 회 田:사냥할 전(佃) 獲:얻을 획 品:물건 품
육사는 중(中)을 얻지 못하였으나, 음 자리에 음으로 자리가 바르고 겸손하게 처신한다. 새로운 명이 행해지는 과도기(過渡期)에 많은 어려움이 있고 따라서 미리 앞서서 행하지 못하는 뉘우침이 있으나 그 뉘우침도 없어진다. 마침내 사냥해서 삼품(三品)을 얻는 공을 세우게 된다.
삼품(三品)은 인군으로부터 등용되어 공직(公職)에 오른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한 것을 얻어 백성과 인군에게 베풀어주는 공을 세운다는 의미도 된다. 항상 강유(剛柔)의 도를 겸하여야 한다. 겸손하다는 것은 나약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자 《도덕경(道德經)》 제36장을 음미해 보자.
將欲翕之인댄 必固張之요 將欲弱之인댄 必固强之며 將欲廢之인댄 必固擧之요 將欲取之인댄 必固予之니 是謂微明이라하니 柔弱은 勝剛强하니라 魚不可脫於淵이오 國之利器는 不可以示人이니라.
장차 거두고자 하려면 반드시 펴고, 장차 약하고자 하려면 반드시 강하며, 장차 폐하고자 하려면 반드시 흥하고, 장차 빼앗고자 하려면 반드시 주니, 이를 ‘미묘한 밝음’(微明)이라 일컬으니, 부드러움과 약함은 굳셈과 강함을 이긴다. 물고기는 가히 못에서 벗어날 수 없고, 나라의 이로운 그릇(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미묘한 무기)은 가히 남에게 보여서는 안된다.
象曰 田獲三品은 有功也라.
상왈 전획삼품 유공야
상전에 말하였다. “사냥해서 삼품을 얻음은 공이 있는 것이다.”
九五는 貞이면 吉하야 悔 亡하야 无不利니 无初有終이라. 先庚三日하며 後庚三日이면 吉하리라.
구오 정 길 회 망 무불리 무초유종 선경삼일 후경삼일 길
구오는 바르게 하면 길해서 뉘우침이 없어서 이롭지 않음이 없으니, 처음은 없고 마침은 있다. 경(庚)으로 앞서 삼일하며 경(庚)으로 뒤에 삼일하면 길할 것이다.
庚:일곱째천간 경·고칠 경·단단할 경
중풍손(重風巽)괘의 신명(申命)은 아무 때나 부는 것이 아니다. 신명이 행해지는 그 때를 밝히고 있는 것이 구오효이다. 새로운 명을 베풀 때에는 바르게 하면 길해져서 그동안의 뉘우침이 없어지고 이롭지 않음이 없게 된다. 과거지사(過去之事)는 과거로 흘러갈 뿐이다. 오로지 처음은 없고 새로운 명을 펴기 위한 마침을 둘 뿐이다. 그 때는 바로 경(庚)으로 먼저 삼일하고 경(庚)으로 뒤에 삼일하는 때이다. 천간(天干)으로 경(庚)은 가을 후천(後天)을 의미한다. 경(庚)으로 먼저 삼일은 여름에 해당하는 정(丁)이고, 경(庚)으로 뒤에 삼일은 천간의 끝이자 겨울에 해당하는 계(癸)이다. 그래서 처음은 없고 마침을 두는 것이다.
구오가 변하면 지괘(之卦)가 산풍고(山風蠱)가 되는데, 고괘(蠱卦) 괘사에는 ‘갑(甲)으로 먼저 삼일하고 갑(甲)으로 뒤에 삼일한다’고 하여 시작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蠱는 元亨하니 利涉大川이니 先甲三日하며 後甲三日이니라.
고(蠱)는 크게 형통하니, 큰 내를 건넘이 이로우니, 갑(甲)으로 먼저 삼일하고 갑(甲)으로 뒤에 삼일한다.
여기에 담긴 의미를 다 헤아릴 수는 없다. 또한 해석에 있어서도 단순한 논리로 풀 문제는 아니다. 이른바 깊은 수양을 통한 직관적(直觀的) 판단(判斷)이 필요한 부분이다. 「역서(易序)」의 다음 부분을 인용하여 깊은 뜻을 헤아리고자 한다.
時固未始有一而卦未始有定象하고 事固未始有窮而爻亦未始有定位하니 以一時而索卦則拘於无變이면 非易也오 以一事而明爻則窒而不通이면 非易也오 知所謂卦爻彖象之義而不知有卦爻彖象之用이면 亦非易也라. 故로 得之於精神之運과 心術之動하야 與天地合其德하며 與日月合其明하며 與四時合其序하며 與鬼神合其吉凶然後에아 可以謂之知易也라.
雖然이나 易之有卦는 易之已形者也오 卦之有爻는 卦之已見者也니 已形已見者는 可以言知어니와 未形未見者는 不可以名求니 則所謂易者 果何如哉아. 此 學者所當知也라.
때는 진실로 처음부터 하나만 있지 않고, 괘는 처음부터 정해진 상이 있지 않으며, 일은 진실로 처음부터 궁함이 있지 않고, 효 또한 처음부터 정해진 자리가 있지 않으니, 한 때로써 괘를 찾은 즉 변화가 없음에 구애되면 역(易)이 아니고, 한 일로써 효를 밝힌 즉 막혀서 통하지 않으면 역(易)이 아니고, 이른바 괘효단상의 뜻을 알더라도 괘효단상의 쓰임을 알지 못하면 역시 역(易)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신의 운용과 마음의 움직임에 체득해서, 천지와 그 덕을 합하며, 일월과 그 밝음을 합하며, 사시와 그 차례를 합하며, 귀신과 그 길흉을 합한 뒤에야 가히 역(易)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그렇지만, 역(易)에 괘가 있는 것은 이미 나타난 것이니, 이미 형상하고 이미 나타난 것은 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형상하지 않고 나타나지 않은 것은 무어라 이름을 구할 수 없으니, 이른바 역(易)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이는 배우는 자가 마땅히 알아야 할 바이다.
象曰 九五之吉은 位正中也일새라.
상왈 구오지길 위정중야
상전에 말하였다. “구오의 길함은 자리가 바르고 가운데하기 때문이다.”
上九는 巽在牀下하야 喪其資斧니 貞애 凶하니라.
상구 손재상하 상기자부 정 흉
상구는 겸손함이 평상 아래에 있어서, 그 노자와 도끼를 잃으니 고집함에 흉하다.
牀:평상 상 資:재물 자 斧:도끼 부
중풍손(重風巽)괘의 맨 위에 있는 상구는 음 자리에 양으로 있어 자리가 부당하다. 손괘(巽卦)의 맨 위에 처하고 있으면서 자신의 자리를 망각하고 그저 겸손하고자 하여 평상 아래에 있으니, 이것은 겸손함이 지나친 것이다. 그래서 상구가 가지고 있는 재물과 권력(도끼)마저도 잃게 되니, 자신의 자리를 망각하고 마냥 겸손하려고 하는 것을 고집하면 흉하다. 겸손함이 평상 아래에 있다는 것은 맨 위에 처하여 궁하기 때문이고, 자신의 재물과 권력을 잃으니 바르지 못하고 흉한 것이다.
象曰 巽在牀下는 上窮也오 喪其資斧는 正乎아 凶也라.
상왈 손재상하 상궁야 상기자부 정호 흉야
상전에 말하였다. “겸손함이 평상 아래에 있음은 위에서 궁한 것이고, 그 노자와 도끼를 잃는 것은 바르겠는가? 흉하다.”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595∼6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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