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산책/주역

56. 화산려(火山旅)

돈호인 2020. 11. 6. 17:30

 

괘의

인간사회에서 상호간의 의견차이나 대립 그리고 사소한 범죄는 불가피할 경우가 있다. 때문에 죄인에 대한 형벌이나, 상대방에 대한 원망은 밝은 지혜로 삼가 신중해야 한다(明愼用刑).

 

괘명과 괘상

  외괘가 이화(離火), 내괘가 간산(艮山)으로 이루어진 괘를 ()괘라 한다. 여행한다는 의미이다. 인생은 나그네이다. 우주나그네라고 할까. 그러나 인생 여행이라는 것은 정처(定處) 없는 배회(徘徊)가 아니다. 내괘 간산으로 그쳐 있으면서 외괘 이화로 걸려있으니, 마치 태양을 중심으로 태양계의 항성이 일정한 궤도를 따라 도는 것과도 같다. 또한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보든 별들이 선회하는 것과도 같다.

  여괘(旅卦)가 지닌 보다 분명한 의의는 형벌(刑罰)의 일종인 유배(流配)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본 뇌화풍(雷火)괘는 형무소에 가두는 형벌을 집행하는 것인 반면에, 여괘(旅卦)는 나그네가 되어 다른 곳으로 유배를 보내는 형벌이다. 또한 예전에 ()는 군제(軍制)단위이고 전쟁(戰爭)을 의미하기도 하였다(상경 지수사괘 참조). 뇌화풍괘와 마찬가지로 화산려괘는 중화리(重火離)괘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화산려괘 초효가 변한 중화리괘 초구효사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重火離卦

初九는 履 錯然하니 敬之면 无咎리라.

초구는 밟는 것이 섞이니, 공경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서괘

서괘전은 뇌화풍괘 다음에 화산려괘를 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豐者는 大也니 窮大者 必失其居라 故로 受之以旅하고

풍자    대야   궁대자 필실기거     고   수지이려

풍(豐)이란 큼이니, 큰 것이 다한 자는 반드시 그 거소를 잃는다. 그러므로 여괘로 받고

 

뇌화풍(雷火)괘는 허례(虛禮)와 가식(假飾)이 풍대한 것이다. 이렇게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벗어나 겉치레만 풍성해지다가 그것이 다하게 되면 반드시 거처를 잃게 된다. 그래서 떠돈다는 여괘(旅卦)를 둔 것이다. 또한 뇌화풍괘의 상육효에서 그 문을 엿보니 고요해서 그 사람이 없다고 하였으니, 왜 없는가? 풍괘()의 큰 것이 다하면 그 거소를 잃는다고 했으니, 모두가 떠도는 나그네가 된 것이 아닌가?

 

上六은 豐其屋하고 蔀其家라. 闚其戶하니 闃其无人하야 三歲라도 不覿이로소니 凶하니라.

 

괘사

旅는 小亨코 旅貞하야 吉하니라.

여    소형    여정      길

여(旅)는 조금 형통하고, 나그네가 바르게 해서 길하다.

旅:나그네 려·무리 려·군사 려(500명의 군사)·산신제지낼 려

 

나그네 인생으로서는 크게 형통할 리가 없다. 다만 외괘에서 중을 얻은 오효 음()만이 형통하다. 나그네로서는 바르게 해야 길하다. 인생을 밟아나가는 길에는 흉하고 길한 모든 것이 섞여 있으니, 그저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바르게 해야 길하다. 괘사를 풀이한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旅小亨은 柔 得中乎外而順乎剛하고 止而麗乎明이라.

단왈 여소형    유 득중호외이순호강       지이리호명

是以小亨旅貞吉也니 旅之時義 大矣哉라.

시이소형여정길야    여지시의 대의재

단전에 말하였다. “여(旅)가 조금 형통한 것은 유(柔)가 밖에서 중을 얻어 강(剛)에 순하고, 그치고 밝음에 걸려 있다. 이로써 조금 형통하고 나그네가 바르게 해서 길한 것이니, 여(旅)의 때와 뜻이 크도다.

麗:걸릴 리·고울 려

 

나그네가 조금 형통하다는 것은 육오의 음()이 외괘에서 중()을 얻어 내괘 구이의 강()과 응하니, 육오로서는 나그네 가운데 형통한 자리라는 것이다. 여괘(旅卦)가 나그네가 되어 유랑하는 괘이지만, 괘덕(卦德)으로 보면 내괘 간산(艮山)으로 그치고 외괘 이화(離火)로 밝은데 걸리게 되면 조금 형통하고 나그네가 바르게 해서 길하다. 나그네로서 유형(流刑)을 당하고, 혹은 모든 인생이 나그네가 되어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그 때와 뜻이 크다. 인생유전(人生流轉)이요, 법륜상전(法輪相轉)이다.

 

괘상사

象曰 山上有火 旅니 君子 以하야 明愼用刑하며 以不留獄하나니라.

상왈 산상유화 여    군자 이       명신용형      이불류옥

상전에 말하였다. “산 위에 불이 있는 것이 여(旅)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형벌 씀을 밝게 하고 삼가며 옥사(獄舍)에 남기지 않는다.”

愼:삼갈 신   刑:형벌 형   留:머무를 류   獄:옥 옥

 

내괘 간산(艮山)위에 외괘 이화(離火)불이 있는 것이 여괘(旅卦)이다. 산 위에 불이 있으니, 형벌의 불을 삼가지 않으면 온 산에 불의 재앙이 미쳐서 옳고 그름의 판단여지가 없이 모두가 재앙에 빠지게 되다. 때문에 군자는 이러한 상을 보고 본받아, 형벌 씀을 밝게 삼가고 너그럽게 하여 형무소에 가두는 중형보다는 필요에 따라서는 옥사(獄舍)에 머무르지 않게 하는 유형(流刑) 귀양을 보낸다.

 

효사 및 효상사

初六은 旅??니 斯其所取災니라.

초륙    여쇄쇄    사기소취재

초육은 나그네가 자질구레하니, 이것이 그 재앙을 취하는 바이다.

?(瑣):자질구레할 쇄·천할 쇄·가루 쇄·쇠사슬 쇄   斯:이 사   取:취할 취

 

초육은 양 자리에 음()으로 있어 부당하다. 내괘 간산(艮山)에 가만히 그쳐야 하지만, 초구가 변하면 이화(離火)가 되니 부당한 처신으로 자질구레한 차림을 하고 떠난다. 이렇게 부당한 가운데 아무 도움이 없이 누추하게 떠나가는 것이 바로 재앙을 취하는 것이 된다.

 

象曰 旅??는 志窮하야 災也라.

상왈 여쇄쇄    지궁      재야

상전에 말하였다. “나그네가 자질구레함은 뜻이 궁해서 재앙이다.”

 

六二는 旅則次하야 懷其資하고 得童僕貞이로다.

육이    여즉차       회기자      득동복정

육이는 나그네가 여관에 나아가서, 그 노자를 품고 아이 종(童僕)의 바름을 얻도다.

卽:곧 즉·나아갈 즉   次:버금 차·이을 차·여관 차·머무를 차·진영 차  懷:품을 회   資:재물 자   童:아이 동   僕:종 복

 

육이는 내괘에서 중정(中正)한 자리에 있고, 내호괘 손풍(巽風)으로 공경하며 겸손하게 처신한다. 내괘 간산(艮山)의 여관에 내호괘 손풍(巽風)으로 들어가서, 중정하게 처신하여 여행에 필요한 노자(路資)를 품고 또한 시중을 하는 동복(童僕)의 바름도 얻으니, 나그네로서는 허물이 없는 상태이다. 굳이 형벌로 말하지 않더라도, 모든 인생이 우주 나그네가 되어 이 지구에 정착하면서 육신(肉身)이 머무를 집과 노자와 동복이 있으면 허물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

 

象曰 得童僕貞은 終无尤也리라.

상왈 득동복정    종무우야

상전에 말하였다. “아이 종의 바름을 얻음은 마침내 허물이 없을 것이다.”

終:마침내 종   尤:더욱 우·허물 우

 

九三은 旅焚其次하고 喪其童僕貞이니 厲하니라.

구삼    여분기차       상기동복정      려

구삼은 나그네가 그 여관을 불사르고, 그 동복(童僕)의 바름을 잃으니 위태하다.

焚:불사를 분   喪:잃을 상   厲:위태할 려

 

  구삼은 양 자리에 양으로 있어 강하기만 하고 중을 얻지 못하여, 겸손과 공경의 도를 잃은 자리이다. 또한 외괘 이화(離火)의 불에 가까운 자리에 있으니,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한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자기가 머무르고 있는 여관을 불사르는 격이다. 그러니 동복(童僕)의 바름도 함께 잃어버리게 되어 매우 위태롭게 된다.

  내괘 간산(艮山)이 여관이 되는데 구삼이 변하면 곤지()로 되고, 외괘 이화(離火)에 외호괘가 태택(兌澤)이니 여관이 불에 타 허물어진다. 또한 간산(艮山)은 소남(小男)으로 동복(童僕)이 되는데, 역시 태택(兌澤)으로 훼절당하니 동복을 잃어버리는 상이다.

 

象曰 旅焚其次하니 亦以傷矣오 以旅與下하니 其義 喪也라.

상왈 여분기차       역이상의    이려여하      기의 상야

상전에 말하였다. “나그네가 그 여관을 불사르니 또한 상하고, 나그네로써 아래와 더부니 그 의리가 상한 것이다.”

傷:상할 상   與:더불 여

 

자기가 거처하고 있던 여관이 불살라지니 몸이 온전할 수가 없고, 또한 구삼 양()이 나그네로서의 자기 주제를 모르고 아래에 있는 음()과 함께 어울리려고 하니 그 뜻이 상한 것이다.

 

九四는 旅于處하고 得其資斧하나 我心은 不快로다.

구사    여우처       득기자부      아심    불쾌

구사는 나그네가 거처하고, 그 노자와 도끼를 얻으나, 내 마음은 불쾌하도다.

處:머물 처   斧:도끼 부   快:쾌할 쾌

 

  구사는 외괘 사효 음 자리에 양으로 거처하여 자리는 바르지 못하나, ()하게 노자와 도끼를 얻고 있는 상이다. 구사가 변하면 외괘 이화(離火)가 간산(艮山)으로 되어 거처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노자와 도끼, 즉 재력(財力)권력(權力)은 있으나 자리가 부당하여 구사 자신을 믿고 따르는 동복(童僕)이 없으니, 마음이 불쾌하다.

  또한 나그네가 되어 유랑(流浪)함에 노자와 도끼를 얻은 것은 위안이 되지만, 따르는 동복(童僕)이 없으니 마음이 유쾌하지 못하다. 마치 전쟁에 필요한 무기와 자금은 있으나, 정작 전투를 수행할 병사()가 없는 것과 같다.

 

象曰 旅于處는 未得位也니 得其資斧하나 心未快也라.

상왈 여우처    미득위야    득기자부      심미쾌야

상전에 말하였다. “나그네가 거처함은 (바른) 자리를 얻지 못한 것이니, 그 노자와 도끼를 얻으나 마음이 유쾌하지 못하다.”

 

六五는 射雉一矢亡이라. 終以譽命이리라.

육오    석치일시망       종이예명

육오는 꿩을 쏘는데 하나의 화살로 없앤다. 마침내 명예와 명으로써 할 것이다.

射:쏠 석   雉:꿩 치   矢:화살 시

 

  육오는 외괘 이화(離火)에서 중을 얻고 있다. 외괘 이화(離火)는 활의 상이고 외호괘 태택(兌澤)은 화살의 상이다. 또한 이화는 동물로는 새를 의미한다. 중도(中道)의 마음으로 활시위를 당겨 쏘아 화살 하나로 꿩을 잡으니, 마침내 그 명성이 자자하여 위에 있는 인군(人君)이 알아보고 육오에게 명을 내려 명예롭게 된다.

  전쟁에 나아가 군사로서의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것이고, 유배를 당하여 형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나라를 위한 일을 하니, 인군과 나라가 다 알게 된다. 석치일시망(射雉一矢亡)은 재미있는 문장 중 하나이다. 글자를 풀어서 해석하면 꿩()을 쏘아서 화살 하나()를 잃으니, 자에서 를 빼면 射雉一矢亡()가 된다.

 

象曰 終以譽命은 上逮也일새라.

상왈 종이예명    상체야

상전에 말하였다. “마침내 명예와 명으로써 함은 위에 미치기 때문이다.”

逮:미칠 체

 

上九는 鳥焚其巢니 旅人이 先笑後號咷라. 喪牛于易니 凶하니라.

상구    조분기소   여인     선소후호조    상우우이    흉

상구는 새가 그 집을 불사르니, 나그네가 먼저는 웃고 뒤에는 울부짖는다. 소를 쉽게 잃으니 흉하다.

鳥:새 조   焚:불사를 분   巢:새집 소·깃들일 소·망루 소   笑:웃을 소  號:부르짖을 호   咷:울 도(조)   易:쉬울 이

 

  화산려(火山旅)괘의 맨 위에 처한 상구는 음 자리에 양으로 있어 자리가 부당한데다, 외괘 이화(離火)의 극에 처하여 마치 새가 그 집을 불사르는 격이다. 육오는 화살 하나로 새를 잡아 공을 세워 명예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상구는 새가 자기 집을 불사르니 죽은 새를 거저 얻는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좋아서 웃지만, 새가 멀리 날아 도망가거나, 잡아도 불에 그슬린 새를 얻게 되니 뒤에는 울부짖는 꼴이 된다.

  이는 자신의 노력이 없이 우연히 횡재(橫財)를 하려다가 오히려 재앙이 되는 격이다.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소를 쉽게 잃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바른 심성과 정신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나그네로써 이화(離火)의 맨 위에 거하고 있으니 그 분함을 참지 못하고, 또한 자기 정신마저 불태워버리니 이러한 지경은 듣지 못했다는 뜻이다.

  중화리(重火離)괘 괘사에 암소를 기르면 길하다(畜牝牛 吉)고 하였는데, 소는 인간의 정신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또한 천뢰무망(天雷无妄)괘 육삼 효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六三은 无妄之災니 或繫之牛하나 行人之得이 邑人之災로다.

육삼은 무망의 재앙이니 혹 소를 매나 행인이 얻음이 읍사람의 재앙이다.

 

  또한 상구가 변하면 지괘(之卦)가 뇌산소과(雷山小過)괘가 되는데, 소과괘 상육효를 같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上六은 弗遇하야 過之니 飛鳥 離之라 凶하니 是謂災眚이라.

상육은 만나지 않아서 지나가니, 나는 새가 떠난다. 흉하니 이를 재앙이라 이른다.

 

象曰 以旅在上하니 其義焚也오 喪牛于易하니 終莫之聞也로다.

상왈 이려재상       기의분야    상우우이      종막지문야

상전에 말하였다. “나그네로써 위에 있으니 그 의리가 불사르는 것이요, 소를 쉽게 잃으니 마침내 듣지 못하도다.”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587∼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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