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의
산 위에 바람이 부니 나무가 산들산들 흔들리며 아름다운 풍광을 드러내고, 간괘(艮卦)에서 도탑게 그치니 하늘에서 명을 내린다. 큰 산처럼 두터운 덕을 쌓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라(居德善俗).
괘명과 괘상
외괘가 손풍(巽風)☴, 내괘가 간산(艮山)☶으로 이루어진 괘를 ‘점(漸)’이라 한다. 차츰차츰 나아간다는 뜻으로, 절도에 맞게 질서 있게 나아간다. 중산간(重山艮)괘에서 도탑게 그치고 나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데는 성급하게 움직이면 안 된다. 천천히 기혈(氣穴)을 풀면서 서서히 움직여야 한다. 깨우친다는 것은 천하의 연고에 통하는 것이고, 천하의 연고에 통한 군자(君子)의 사업은 천하 백성을 일깨우는 것이다. 속세를 벗어나 천하의 연고에 통하나, 통해서는 다시 속세로 돌아와 백성을 구제하고 사회를 선하게 해야 한다.
질서와 차례를 지켜 나아가는 도(道)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여자가 시집가는 절차이니, 점괘(漸卦) 괘사는 여자가 시집가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동물 가운데 질서와 차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동물이 기러기이니, 효사에는 기러기가 자라나는 과정으로 묘사되고 있다.
문명과 문화의 발전도 점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풍산점괘는 인류문명의 점진적인 발전을 묘사하고 있다.
서괘
「서괘전」은 중산간괘 다음에 풍산점괘가 온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艮者는 止也니 物不可以終止라 故로 受之以漸하고
간자 지야 물불가이종지 고 수지이점
간(艮)이란 그침이니, 물건이 가히 끝까지 그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점(漸)으로써 받고
간(艮)은 그치는 것이다. 세상사의 모든 현상과 인간의 선정(禪定)도 하염없이 그쳐 있을 수만은 없다. 그래서 차츰 나아간다는 풍산점(風山漸)괘를 간괘(艮卦) 다음에 두었다.
또한 앞의 중산간(重山艮)괘 육오효가 변하면 풍산점(風山漸)괘가 된다. 중산간괘 육오효에 “六五는 艮其輔라. 言有序니 悔亡하리라”고 하여, ‘말에 순서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 순서는 풍산점(風山漸)으로 나타난다.
괘사
漸은 女歸 吉하니 利貞이니라.
점 여귀 길 이정
점(漸)은 여자가 시집감이 길하니, 바르게 함이 이롭다.
漸:차차 점·차례 점·나아갈 점·흐를 점·물들 점·적실 점·험할 참 歸:돌아갈 귀·시집갈 귀·마칠 귀
점차 나아가는 도(道)는 마치 여자가 시집가는 것처럼 예와 풍속에 맞게 나아가야 한다. 예(禮)와 풍속(風俗)에 맞게 나아가는 데는 바르게 해야 길하다. 풍산점(風山漸)괘와 다음에 나오는 뇌택귀매(雷澤歸妹)괘는 여자가 시집가는 것을 예(例)로 설명하고 있는데, 점괘(漸卦)는 아름다운 절차와 예(禮)를 따라서 바르게 혼인하는 것이고, 귀매괘(歸妹卦)는 혼탁한 세상에 바르지 못한 관계를 맺는 것으로 풀이된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漸之進也 女歸의 吉也라.
단왈 점지진야 여귀 길야
進得位하니 往有功也오 進以正하니 可以正邦也니
진득위 왕유공야 진이정 가이정방야
其位는 剛得中也라. 止而巽할새 動不窮也라.
기위 강득중야 지이손 동불궁야
단전에 말하였다. “점차 나아가는 것이 여자가 시집감의 길함이다. 나아가서 자리를 얻으니 가서 공이 있고, 나아감에 바름으로 하니 가히 나라를 바르게 하니, 그 자리는 강(剛)이 중(中)을 얻은 것이다. 그치고 겸손하기 때문에 움직여서 궁하지 않다.”
進:나아갈 진 邦:나라 방 巽:공손할 손
차츰차츰 예(禮)와 절도(節度)에 맞게 나아가는 것이 여자가 시집가는 바른 길이다. 남녀가 만나 혼인을 하고 평생을 같이하는데, 예와 절도가 없을 수 없다. 점차 나아가서 자리를 얻으니 가서 해야 할 공이 있는 것이고, 또한 나아가서 바르게 하니 나라를 바르게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나라를 바르게 할 수 있는 자리는 외괘 구오로 강한 양(陽)이 중(中)을 얻었기 때문이다. 괘덕으로 보면 내괘 간산(艮山)☶으로 그치고 또한 외괘 손풍(巽風)☴으로 겸손하기 때문에, 움직여 나아가는데 궁함이 없다. 그칠 줄 알고 겸손할 줄 알기 때문에, 움직여도 궁색하지 않은 것이다.
풍산점(風山漸)괘는 삼음삼양(三陰三陽)괘로 그 체(體)는 천지비(天地否)괘에 있다. 위와 아래가 막혀 있는 비색한 상황에서 천지비괘의 구사 양(陽)과 육삼 음(陰)이 자리를 바꾸니, 차츰차츰 비색함을 풀어나가는 상태가 된다. 이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進得位하니 往有功也오 進以正하니 可以正邦也니”라는 문장이다. 천지비괘에서 육삼의 음이 사효로 나아가니 음 자리에 음으로 바른 자리를 얻게 되어 풍속을 착하게 하는 공이 있고, 또한 나아가 바르게 하니 나라를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괘상사
象曰 山上有木이 漸이니 君子 以하야 居賢德하야 善俗하나니라.
상왈 산상유목 점 군자 이 거현덕 선속
상전에 말하였다. “산 위에 나무가 있는 것이 점(漸)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어진 덕에 거해서 풍속을 착하게 한다.”
居:살 거·있을 거·집 거 賢:어질 현 俗:풍습 속·시속 속·속될 속·바랄 속
내괘 간산(艮山)☶ 위에 손풍(巽風)☴의 나무(陰木)가 있는 것이 점괘(漸卦)이다. 평지에서 높은 산으로 오르는 것과, 한포기 싹에서 큰 나무를 이루는 것이 모두 차츰차츰 나아가는 도(道)이다. 또한 내괘 간산☶으로 덕을 후하게 하고 외괘 손풍☴으로 아름다운 바람을 일으켜, 사회를 맑게 한다. 이렇게 군자는 풍산점(風山漸)괘의 상을 본받아 어진 덕에 거하고 풍속을 아름답게 한다.
효사 및 효상사
初六은 鴻漸于干이니 小子 厲하야 有言이나 无咎니라.
초육 홍점우간 소자 려 유언 무구
초육은 기러기가 물가에 나아가니, 어린 새(小子)가 위태해서 말이 있으나 허물이 없다.
鴻:큰 기러기 홍·클 홍 干:방패 간·구할 간·간여할 간·물가 간·천간 간
동물 가운데 가장 예(禮)와 절도(節度)가 있는 동물로는 기러기를 들 수 있다. 그래서 점괘(漸卦) 효사는 기러기를 예로 그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초효는 내괘 맨 아래에 있으니 기러기의 생애로 본다면 어린 기러기(小子)이다. 내호괘로 감수(坎水)☵가 있고 초효가 변하면 이화(離火)☲가 되니, 어린 기러기가 물가로 날아가려는 상이다.
어린 기러기가 위험한 물가로 나아가니 위태로워서 조심하라는 말을 하게 되지만, 기러기가 스스로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물가로 가려는 것은 자연한 본성이니, 그 의리(義理)가 허물이 없다.
인간으로 보면, 간산(艮山)☶으로 집안에 거하여 가도(家道)를 익히던 처녀(處女)가 배우자(配偶者)를 찾아 밖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집안에서 말이 있지만, 그 의리는 허물이 없는 것이다.
象曰 小子之厲나 義无咎也니라.
상왈 소자지려 의무구야
상전에 말하였다. “어린 기러기(小子)가 나아가서 위태로우나, 의리가 허물이 없다.”
六二는 鴻漸于磐이라. 飮食이 衎衎하니 吉하니라.
육이 홍점우반 음식 간간 길
육이는 기러기가 반석에 나아간다. 음식이 즐거우니 길하다.
磐:너럭바위 반·넓을 반 飮:마실 음 衎:즐길 간 衎衎:즐거운 모양
육이는 내괘에서 중정(中正)한 자리이다. 기러기로 보면 잘 자라서 성숙한 상태이고, 여자로 보면 가도(家道)를 잘 익혀 외괘 구오의 중정(中正)한 배우자를 만나서 정식으로 혼인하는 상태이다.
기러기가 훨훨 날아서 넓고 큰 바위에 안전하게 나아가고, 정숙한 여자가 중정(中正)한 배우자를 만나 혼인하여 반석(磐石)같은 가정(家庭)을 꾸리는 것이다. 혼인의 예(禮)를 올리니,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축하객과 함께 즐거운 잔치를 벌인다.
육이가 변하면 지괘(之卦)가 중풍손(重風巽)괘로 된다. 중풍손괘 구이효에는 “겸손함이 상 아래에 있으니, 사(史)와 무(巫)를 씀이 많은 듯하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九二는 巽在牀下니 用史巫紛若하면 吉코 无咎리라)”고 하여 크게 잔치를 벌이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象曰 飮食衎衎은 不素飽也라.
상왈 음식간간 불소포야
상전에 말하였다. “음식이 즐거운 것은 헛되이 배부르고자 함이 아니다.”
素:흴 소·바탕 소·본디 소·한갓(헛되이) 소 飽:배부를 포·만족할 포
육이가 음식을 차리고 즐거운 예(禮)를 올리는 것은 공연히 배부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중정한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사회의 풍속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것이다.
九三은 鴻漸于陸이니 夫征이면 不復하고 婦孕이라도 不育하야 凶하니 利禦寇하니라.
구삼 홍점우륙 부정 불복 부잉 불육 흉 이어구
구삼은 기러기가 뭍(육지)에 나아가니, 지아비가 가면 돌아오지 않고 지어미가 잉태하여도 기르지 않아서 흉하니, 도적을 막음이 이롭다.
陸:뭍 륙 夫:지아비 부 征:갈 정 婦:지어미 부 孕:아이밸 잉 育:기를 육 禦:막을 어 寇:도적 구
구삼은 양 자리에 양으로 제자리에 있으나, 중(中)에서 벗어나고 지나치게 강하여 망동(妄動)할 수 있다. 기러기가 물가에서 반석(磐石)으로 나아가고, 반석에 있다가 육지(陸地)로 나아간다. 그런데 기러기가 육지로 나아간다는 것은 또 다른 넓은 세상을 만나는 것이니, 자기가 속해 있던 무리와 떨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자기의 무리를 떠나 다른 무리와 섞이게 되면 추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한 가정을 꾸리던 남편이 다른 데에 마음을 두고 돌아오지 않고, 아내가 임신을 하여 잉태하더라도 기르지 않아서 흉하다. 마치 기러기가 육지에 나아가 넓은 세상을 만나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사슬고리에서 위험에 처하거나 불의의 유혹에 빠질 수 있듯이, 사람도 새로운 상황에 처하여 자기의 본분을 망각하거나 유혹에 빠지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도적을 막으면 이롭다고 하였다.
象曰 夫征不復은 離群하야 醜也오 婦孕不育은 失其道也오 利用禦寇는 順相保也라.
상왈 부정불복 이군 추야 부잉불육 실기도야 이용어구 순상보야
상전에 말하였다. “지아비가 가서 돌아오지 않음은 무리를 떠나서 추한 것이고, 지어미가 잉태해서 기르지 않음은 그 도를 잃은 것이고, 도적을 막음이 이로움은 순하게 서로 돕는 것이다.”
離:떠날 리 醜:추할 추 保:지킬 보·도울 보
한 지아비가 가정을 떠나 돌아오지 않으니 그 행세가 추할 것이고, 한 지어미가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으니 가도(家道)를 잃은 것이고, 도적을 막음이 이롭다는 것은 위험과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마땅한 도리에 순하면서 서로가 격려하며 돕는 것을 말한다.
六四는 鴻漸于木이니 或得其桷이면 无咎리라.
육사 홍점우목 혹득기각 무구
육사는 기러기가 나무에 나아가니, 혹 평평한 가지를 얻으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桷:서까래 각·가지 각(가로 뻗은 나뭇가지)
육사는 음 자리에 음으로 바른 자리에 있고, 외괘 손풍(巽風)☴에 처하여 높은 나뭇가지에 앉는 격이다. 기러기가 외괘 손풍☴의 나무에 나아가니, 나무에 있는 가로 뻗은 평평한 가지를 얻어 앉으면 허물이 없다. 인생과 사회,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나무에 나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활동무대가 되는 터전에 나아간다는 것이다. 평평한 가지를 얻는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意志)대로 운신(運身)을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자신의 역량을 편하게 발휘하기 위해서는 순하고 겸손한 덕이 필요하다.
象曰 或得其桷은 順以巽也일새라.
상왈 혹득기각 순이손야
상전에 말하였다. “혹 그 평평한 가지를 얻음은 순하고 겸손하기 때문이다.”
九五는 鴻漸于陵이니 婦 三歲를 不孕하나 終莫之勝이라 吉하리라.
구오 홍점우릉 부 삼세 불잉 종막지승 길
구오는 기러기가 언덕에 나아가니, 지어미가 3년을 잉태하지 못하나, 마침내 이기지 못한다. 길할 것이다.
陵:큰 언덕 릉 歲:해 세 莫:없을 막 勝:이길 승
구오는 외괘에서 중정(中正)한 자리이다. 천하를 다스리고 사회를 착하고 아름답게 하는 주체이다. 내괘에서 중정한 육이와도 잘 응하고 있다. 마치 기러기가 높은 언덕에 올라 천하를 웅비(雄飛)하는 격이다. 그런데 중정한 육이를 만나 결혼하여도 풍산점괘가 차츰차츰 나아가는 것이고, 또한 점괘(漸卦)의 호괘가 화수미제(火水未濟)이니 오랜 동안(3년) 아이를 낳지 못한다. 그러나 구오와 육이가 중정(中正)하기 때문에 그 뜻을 어느 누구도 이기지 못한다. 즉 원하는 바를 이루니 길하다.
象曰 終莫之勝吉은 得所願也라.
상왈 종막지승길 득소원야
상전에 말하였다. “마침내 이기지 못하여 길함은 원하는 바를 얻는 것이다.”
願:원할 원
上九는 鴻漸于逵니 其羽 可用爲儀니 吉하니라.
상구 홍점우규 기우 가용위의 길
상구는 기러기가 큰 길(하늘)에 나아가니, 그 깃이 가히 모범이 되니 길하다.
逵:한길 규(아홉 군데로 통하는 길·대로) 羽:깃 우 儀:거동 의
드디어 기러기가 하늘의 큰 길, 즉 창공(蒼空)으로 날아간다. 기러기는 떼를 지어 날아오르는데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종횡(縱橫)으로 줄을 지어 날아가니, 질서와 예의 상징이 된다. 사회의 아름다운 풍속은 질서(秩序)와 예(禮)에 있다. 가정의 도, 국가의 도가 다 마찬가지이다. 상구는 차츰차츰 나아가 드디어 또 다른 세계로 향한다.
象曰 其羽可用爲儀吉은 不可亂也일새라.
상왈 기우가용위의길 불가란야
상전에 말하였다. “그 깃이 가히 모범이 되어 길함은 어지럽지 않기 때문이다.”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560∼5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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