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산책/주역

33. 천산돈(天山遯)

돈호인 2020. 10. 30. 21:38

 

괘의

소인이 득세하여 군자의 뜻이 행해지지 않을 때에, 군자는 몸의 사사로움을 이겨 예에 회복하고(克己復禮), 소인을 대하기를 악하게 하지 말고 엄하게 하여 소인이 망동함을 경계하라(不惡而嚴).

 

괘명과 괘상

외괘가 건천(乾天), 내괘가 간산(艮山)으로 이루어진 괘를 ()괘라 한다. 은둔한다, 도망한다는 뜻이다. 순양(純陽)으로 되어 있던 중천건(重天乾)에서 음이 자라나 천풍구(天風姤)가 되고 다시 음이 내괘 가운데 효까지 이르니, ()의 군자들이 음() 소인의 세력을 막지 못하고 피하게 된다. 중효(中爻)가 이래서 중요하다. 음효가 초효에 이어 내괘 중을 차지하니,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기운도 어찌할 수 없이 물러나게 된다. ()괘와 상반된 양상, 즉 양의 군자가 초효에서 내괘의 중인 이효까지 임하니, 음 소인이 양 군자에게 감화되는 지택림(地澤臨)괘를 이미 살펴본 바 있다. 괘는 12월괘로 음력 6월괘에 해당한다.

서괘

서괘전은 뇌풍항괘 다음에 천산돈괘를 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恒者는 久也니 物不可以久居其所라 故로 受之以遯하고

항자    구야    물불가이구거기소   고    수지이돈

항(恒)이라는 것은 오래하는 것이니, 물건이 가히 그 곳에만 오래 거할 수 없다. 그러므로 돈으로써 받고

 

()이라는 것은 오래하는 것이다. 그런데 물건이나 상황은 항상 변하는 것이기에 한 곳에만 오래 거할 수 없고 또한 한 상황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오래하면 물러나게 되니, 항괘 다음에 물러나고 도망한다는 돈괘를 두었다.

 

괘사

遯은 亨하니 小利貞하니라.

돈    형      소리정

돈(遯)은 형통하니 바르게 하면 조금 이롭다.

돈(遯)은 형통하니 소인은 바르게 하면 이롭다.

遯:달아날 돈(둔)

 

  아래에 두 음 기운이 내괘의 중효까지 올라와 실세(實勢)를 형성하니, ()의 군자로서도 어찌할 수 없이 물러나지만, 군자의 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형통하다. 나아갈 때면 나아가고 물러날 때면 물러나는 것이 군자의 ()이고, 아무 거리낌 없이 때도 없이 나아가기만 하는 것이 소인의 도이다. 《중용》 2장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仲尼曰 君子는 中庸이요 小人은 反中庸이니라. 君子之中庸也는 君子而時中이요 小人之(反)中庸也는 小人而無忌憚也니라.

중니(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중용을 하고, 소인은 중용에 반대로 한다. 군자가 중용을 함은 군자이면서 때로 맞게 하기 때문이요, 소인이 중용에 반대로 함은 소인이면서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의 기운이 자라나는 때에 군자가 바름과 덕을 지나치게 하면 오히려 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바르게 함이 조금 이롭다고 하였다. 한편, 돈괘(遯卦)는 음의 소인이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기에 소인(小人)의 입장에서는 바르게 하면 이롭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遯亨은 遯而亨也나 剛當位而應이라 與時行也니라.

단왈 돈형    돈이형야    강당위이응      여시행야

小利貞은 浸而長也일새니 遯之時義 大矣哉라.

소리정    침이장야         돈지시의 대의재

단전에 말하였다. “돈(遯)이 형통함은 물러나서 형통한 것이나, 강한 것이 자리에 마땅해서 응하여 때로 더불어 행한다. ‘바르게 하면 조금 이롭다’는 것은 점차 길어지기 때문이니, 돈의 때와 뜻이 크도다.”

浸:잠길 침·차츰차츰 침

 

()이 형통한 것은 군자가 물러날 때에 적절히 물러나서 형통하다. 군자인 구오 양()이 외괘에서 중정(中正)하여 내괘의 육이 음()과 응하고 있어 적절하게 때와 함께 행한다. 바르게 함이 조금 이롭다는 것은 음 소인이 점차 자라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군자가 때와 상황에 중용(中庸)을 지키니, 물러나는 때와 뜻이 크다.

 

괘상사

象曰 天下有山이 遯이니 君子 以하야 遠小人호대 不惡而嚴하나니라.

상왈 천하유산    돈      군자 이       원소인       불악이엄

상전에 말하였다. “하늘 아래 산이 있는 것이 돈(遯)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소인을 멀리하되 악하게 하지 않고 엄하게 한다.”

遠:멀 원   惡:악할 악   嚴:엄할 엄

 

돈괘는 외괘 건천(乾天)아래에 내괘 간산(艮山)이 있는 상이다. 하늘 아래에 산이 있으니, 군자가 하늘과 같은 굳센 마음을 지키고 있지만 때가 아니어서 산 속에 은둔하고 있는 상이다. 이러한 기운을 보고 군자는 세력이 커지고 있는 소인을 멀리한다. 그런데 소인을 대함에는 군자의 덕을 내세워 소인에게 악하게 하면 안 되고, 군자로서의 위엄을 지켜 엄하게 하여야 한다. 소인이 점차 자라나는 상황에서 소인에게 군자의 도를 지나치게 내세우면 오히려 소인이 군자를 해치게 된다. 따라서 군자는 군자로서의 위엄을 지켜 소인이 저절로 감화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효사 및 효상사

初六은 遯尾라 厲하니 勿用有攸往이니라.

초륙    돈미    려      물용유유왕

초육은 도망하는데 꼬리이다. 위태하니 가는 바를 두지 말라.

尾:꼬리 미

 

초육은 돈괘의 맨 아래에 있는데 중을 얻지 못하고 양자리에 음으로 있으니, 처신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이다. 전체 상황에서 맨 아래가 되니 도망가는 동물의 꼬리에 해당한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속담이 있다. 초육이 구사 양과 응하고 있어 구사 양이 도망함에 같이 가려고 하지만, 초육은 꼬리에 해당하니 도망하려다 잡혀서 해를 받을 위험이 있다. 초육으로서는 자기와 응하고 있는 구사가 도망하더라도 내괘 간산(艮山)의 덕을 지켜 가만히 그쳐 있어야 재앙이 없다.

 

象曰 遯尾之厲는 不往이면 何災也리오.

상왈 돈미지려    불왕       하재야

상전에 말하였다. “도망하는 꼬리의 위태함은 가지 않으면 무슨 재앙이겠는가?”

 

六二는 執之用黃牛之革이라. 莫之勝說이니라.

육이    집지용황우지혁       막지승설

육이는 잡는데 누런 소의 가죽을 쓴다. 이기어 말하지 못한다.

執:잡을 집   革:가죽 혁   莫:없을 막   勝:이길 승   說:말씀 설

 

육이는 내괘에서 중정한 자리에 있다. 음으로서 양의 기운을 물러나게 하는 주체이다. 소인이지만 중정한 자리에 있어 황소의 가죽처럼 질기고 단단하게 뜻을 굳게 하여 음의 세력을 잡아 나간다. 특히 아래에 있는 초육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육이에게 복종하게 하여 음의 세력을 키워 나간다. 육이에 의해 양의 기운이 물러나니 육이로서는 승승장구(乘勝長驅)한다.

 

象曰 執用黃牛는 固志也라.

상왈 집용황우    고지야

상전에 말하였다. “잡는데 누런 소를 쓰는 것은 뜻을 굳게 하는 것이다.”

固:굳을 고

 

九三은 係遯이라 有疾하야 厲하니 畜臣妾에는 吉하니라.

구삼    계돈      유질       려       휵신첩       길

구삼은 물러나는데 매인다. 병이 있어 위태하니 신하와 첩을 기르는 데는 길하다.

係:맬 계·매일 계   疾:병 질   畜:기를 휵   妾:첩 첩

 

  구삼은 양자리에 양으로 바른 자리이다. ()으로서 아래 두 음의 세력이 커져 오니 물러나고 싶지만, 내괘 간산(艮山)에 처하여 물러나지 못하고 그치게 된다. 물러나고 싶은데 물러나지 못하니, 마음에 병이 생겨 위태롭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니, 차라리 그 자리에 처하여 내괘의 음 소인들을 가급적이면 바르게 키우려고 노력한다. 신하와 첩이라는 것은 초육과 육이의 음을 말한다.

  내괘 간산(艮山)의 위에 처한 구삼으로서는 큰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은 못 된다. 구삼이 변하면 천지비(天地否)괘가 되니 위아래가 막히게 되고, 구삼이 외괘의 양 군자들과 같이 하려해도 막혀서 서로 뜻을 통하지 못하게 된다.

 

象曰 係遯之厲는 有疾하야 憊也오 畜臣妾吉은 不可大事也니라.

상왈 계돈지려    유질       비야   휵신첩길    불가대사야

상전에 말하였다. “물러나는데 매여서 위태로움은 병이 있어 고달픈 것이고, 신하와 첩을 길러 길함은 가히 큰 일을 못하는 것이다.”

憊:고달플 비

 

구삼이 물러나는데 매여서 위태로운 것은 구삼이 도망하고자 해도 아래 초육과 육이에 매이니 병이 생겨 고달픈 것이고, 신하와 첩을 길러 길하지만 가히 큰 일을 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九四는 好遯이니 君子는 吉코 小人은 否하니라.

구사    호돈       군자   길    소인    부

구사는 좋아도 물러나니 군자는 길하고, 소인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否:아닐 부

 

  구사는 외괘 건천(乾天)에 처하여 하늘과 같이 큰 마음으로 소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자리이다. 그런데 구사는 아래 초육 음과 잘 응하고 있으니, 남녀의 정으로는 초육 음에게 좋아하는 마음이 있게 된다. 그러나 때가 소인의 세력이 커지는 때이니, 군자는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여 초육 음이 아무리 좋아도 물러난다.

  그런데 이 자리에 소인(小人)이 있다면 초육 음에 마음이 끌려 소인배와 뜻을 같이하게 되니 결국은 비색하게 된다. 권력을 잡아 통치하는 자가 누가 봐도 소인임에 틀림없는 상황에서도, 항상 권력에 영합하여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소인배들이 있다.

 

象曰 君子는 好遯하고 小人은 否也리라.

상왈 군자    호돈      소인    비야

상전에 말하였다. “군자는 좋아도 물러나고, 소인은 비색할 것이다.”

否:아닐 부·막힐 비·비색할 비

 

小人否也리라에서 ()자를 아니 부로 풀어도 되고, 비색할 비로 풀어도 된다. , 효사에서와 같이 소인은 그렇게(군자처럼)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풀이할 수도 있고, 군자처럼 하지 못하니 결국 소인은 비색할 것이다로 풀이할 수 있다.

 

九五는 嘉遯이니 貞하야 吉하니라.

구오    가돈      정       길

구오는 아름답게 물러나니 바르게 해서 길하다.

嘉:아름다울 가

 

구오는 외괘 건천(乾天)에서 중정한 자리에 있다. 내괘에서 중정한 육이 음과 잘 응하고 있으나, 육이가 소인의 세력으로 자라나니 구오는 때를 알고 모든 상황을 조리하면서 아름답게 물러난다. 구오가 물러나는 것은 모든 상황을 그냥 포기하고 물러나는 것이 아니다. 군자는 물러날 때 물러나더라도, 항상 전체를 생각하고 다음 일을 생각하여 미리 대비한다.

 

象曰 嘉遯貞吉은 以正志也라.

상왈 가돈정길    이정지야

상전에 말하였다. “아름답게 물러나 바르게 해서 길함은 뜻을 바르게 하기 때문이다.”

 

上九는 肥遯이니 无不利하니라.

상구    비돈       무불리

상구는 살찌게 물러나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肥:살찔 비

 

상구는 물러나는 때에 외괘 건천(乾天)의 맨 위에 있고, 구삼과는 같은 양으로 서로 응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미련 없이 물러날 수 있다. 상구 자신으로서는 이롭지 않음이 없는 상황이다. 물러나는 때에 구사 군자는 초육 음과 응하고, 구오 군자는 육이 음과 응하고 있으나, 상구만은 구삼 양과 응하지 않으니 상구가 처신함에 의심할 바가 없는 것이다.

 

象曰 肥遯无不利는 无所疑也라.

상왈 비돈무불리    무소의야

상전에 말하였다. “살찌게 물러나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疑:의심할 의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399∼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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