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산책/주역

15. 지산겸(地山謙)

돈호인 2020. 10. 27. 11:24

괘의

후덕한 산이 땅 아래에 있듯이 부유함을 덜어서 가난함에 보태어 사회의 형평을 유지하고, 상황을 잘 판단하여 공평하게 베풀어라(稱物平施).

 

괘명과 괘상

외괘가 곤지(坤地), 내괘가 간산(艮山)으로 이루어진 괘를 ()이라 한다. 땅 위에 있어야 할 높은 산이 오히려 땅 아래에 있으니,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상이다. 바람 등의 자연현상이 지나치면 재앙을 가져오게 되지만 순하면 만물의 생화작용이 편안하게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세상사도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내세우면 시기와 질투를 받고 때로는 해로움도 당하지만,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하면 만인이 좋아하고 따르게 된다. 지산겸괘는 일양오음(一陽五陰)괘로 그 체()는 중지곤(重地坤)괘에 있다. 중지곤괘 육삼효가 변하면 지삼겸괘가 되니, 곤괘 육삼효사를 음미해 보자.

 

六三은 含章可貞이니 或從王事하야 无成有終이니라.

육삼은 빛남을 머금어 가히 바르게 하니 혹 왕의 일을 좇아 이룸은 없지만 마침은 있다.

 

서괘

서괘전은 화천대유괘 다음에 지산겸괘를 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有大者는 不可以盈이라 故로 受之以謙하고

유대자    불가이영      고    수지이겸

큰 것을 둔 자는 가히 채우지 못한다. 그러므로 겸으로써 받고

盈:찰 영

 

큰 것을 둔 자일수록 마음을 비우고 낮추어야 한다. 중천건괘의 상구효사에서 살펴보았듯이, 뉘우치는 용(亢龍)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낮추어야 한다. 그래서 겸손하다는 지산겸괘를 화천대유괘 다음에 두었다.

 

괘사

謙은 亨하니 君子 有終이니라.

겸    형      군자 유종

겸은 형통하니, 군자가 마침이 있다.

謙:겸손할 겸   終:마칠 종

 

산과 같이 높은 능력과 지위가 있더라도 땅 아래에 처하듯이 겸손하니,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된다. 또한 어떠한 일이든 잘 마칠 수 있다. 그야말로 유종(有終)()를 거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謙亨은 天道 下濟而光明하고 地道 卑而上行이라.

단왈 겸형    천도 하제이광명       지도 비이상행

天道는 虧盈而益謙하고 地道는 變盈而流謙하고

천도    휴영이익겸       지도    변영이유겸

鬼神은 害盈而福謙하고 人道는 惡盈而好謙하나니

귀신    해영이복겸       인도    오영이호겸

謙은 尊而光하고 卑而不可踰니 君子之終也라.

겸    존이광       비이불가유    군자지종야

단전에 말하였다.

“겸이 형통함(謙亨)은 하늘의 도가 아래로 내려서 광명하고, 땅의 도는 낮은데서 위로 행한다.

하늘의 도는 가득한 것을 이지러지게 하며 겸손한 데에는 더하고,

땅의 도는 가득한 것을 변하게 하며 겸손한 데로 흐르게 하고,

귀신은 가득한 것을 해롭게 하며 겸손함에는 복을 주며,

사람의 도는 가득한 것을 미워하며 겸손한 것을 좋아하니,

겸(謙)은 높고 빛나고 낮아도 가히 넘지 못하니 군자의 마침이다.”

濟:건널 제   卑:낮을 비   虧:이지러질 휴   盈:찰 영   益:더할 익  變:변할 변   流:흐를 류   福:복 복

惡:미워할 오   好:좋을 호  尊:높을 존   踰:넘을 유

 

하늘은 위에 있지만 그 기운은 아래로 내려서 세상을 광명하게 하고, 땅은 아래에 있지만 그 기운은 위로 올라가 하늘과 합한다. 높으면 높을수록 아래로 내려와야 그 덕이 광명하게 되고, 자신을 낮추면 그 덕은 위로 올라간다. 천도(天道지도(地道신도(神道인도(人道)사법계(四法界)가 다 이러한 것이다. 세상사의 모든 일이 겸손함으로 유종(有終)의 미()를 이룬다.

 

괘상사

象曰 地中有山이 謙이니 君子 以하야 裒多益寡하야 稱物平施하나니라.

상왈 지중유산    겸       군자 이      부다익과       칭물평시

상전에 말하였다. “땅 가운데 산이 있음이 겸(謙)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많은 것을 덜어 적은 데에 더해서, 물건을 저울질하여 베풂을 고르게 한다.”

裒:덜 부·줄 부·모을 부·포로 부   寡:적을 과   稱:저울질할 칭   施:베풀 시

 

  땅 위로 솟아 있어야 할 산이 땅 가운데에 낮게 처하니, 이러한 상을 보고 군자는 많은 것은 덜어내어 적은 데에 더하고, 모든 상황을 잘 저울질해서 사회의 형평(衡平)평등(平等)을 구현하여야 한다. 사회정의(社會正義)의 기본 핵심은 형평과 평등에 있다.

  사회의 병폐가 되는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누진세(累進稅) 등의 세금정책을 통해 재원(財源)을 마련하고, 그 자금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지혜택을 구현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은 사회정의(社會正義)이고 평등(平等)을 구현하는 원리이다.

 

효사 및 효상사

初六은 謙謙君子니 用涉大川이라도 吉하니라.

초륙   겸겸군자     용섭대천         길

초육은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이니, 큰 내를 건너더라도 길하다.

用:써 용(以)·쓸 용   涉:걸어서 건널 섭

 

초육는 양자리에 음으로 있고 겸괘의 맨 아래에 있다. 겸손한 괘체에서 맨 아래에 처하고 또한 음으로 있으니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이다. 이렇게 겸손하면 무슨 일을 하더라도 능히 감당할 수 있다. 이러한 군자는 큰일을 시켜도 능히 이루어 낼 수 있다.

 

象曰 謙謙君子는 卑以自牧也라.

상왈 겸겸군자    비이자목야

상전에 말하였다.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는 낮춤으로써 스스로 기른다.”

牧:기를 목

 

초육의 겸손하고 겸손함은 스스로를 낮추어 덕을 기르는 것이다.

 

六二는 鳴謙이니 貞코 吉하니라.

육이    명겸      정    길

육이는 겸손함을 울리니, 바르게 하고 길하다.

鳴:울 명·울릴 명

 

육이는 내괘에서 중정한 자리에 있어 억지로 겸손하려고 하지 않아도 겸손함이 저절로 울려 퍼지는 상이다. 내괘의 간산(艮山)으로 덕이 있는 상태에 육이가 변하면 손풍(巽風)이 되니 더욱 겸손하다.

 

象曰 鳴謙貞吉은 中心得也라.

상왈 명겸정길    중심득야

상전에 말하였다. “겸손함을 울림이 바르게 해서 길함은 중심을 얻은 것이다.”

 

九三은 勞謙이니 君子 有終이니 吉하니라.

구삼    노겸      군자 유종       길

구삼은 수고로워도 겸손하니, 군자가 마침이 있으니 길하다.

勞:수고할 로

 

구삼은 일양오음(一陽五陰)의 겸괘(謙卦)에서 유일한 양()이다. 내괘 간산의 위에 처하여, 큰 덕으로 다섯 음을 대신하여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니 수고로운 상태이지만, 겸손하게 일을 수행해 나간다. 이러한 군자는 유종(有終)의 미를 거두게 되니 길하다. 공자는 계사상전8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수고로워도 겸손하니 군자가 마침이 있으니 길하다”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수고로워도 자랑하지 않으며, 공이 있어도 덕으로 하지 않음이 두터움의 지극함이니, 그 공으로써 남에 아래함을 말한다. 덕은 성함을 말하고 예는 공손함을 말하니, 겸손이란 것은 공손함을 이루어서 그 자리(位)를 보존하는 것이다.”(勞謙이니 君子 有終이니 吉이라하니 子曰 勞而不伐하며 有功而不德이 厚之至也니 語以其功下人者也라. 德言盛이오 禮言恭이니 謙也者는 致恭하야 以存其位者也라.)

 

象曰 勞謙君子는 萬民의 服也라.

상왈 노겸군자    만민   복야

상전에 말하였다. “수고로워도 겸손한 군자는 모든 백성이 복종한다.”

服:옷 복·잡을 복·좇을 복·행할 복·다스릴 복

 

겸괘 구삼은 유일한 양으로 온갖 일을 도맡아 수고롭게 일을 하면서도 겸손하니, 모든 백성이 구삼을 따르고 복종하게 된다.

 

六四는 无不利撝謙이니라.

육사    무불리휘겸

육사는 겸손함을 휘둘러 이롭지 않음이 없다.

撝:가리킬 휘·휘두를 휘·도울 위

 

육사는 대신(大臣) 자리에 있으며 음 자리에 음으로 처하여, 겸손함을 사방에 휘두르는 격이다. 육오 인군에게도 겸손하고 아래 백성에게도 겸손하니, 그 겸손함이 사방에 두루 미친다. 육사가 변하면 양으로 바뀌어 외괘가 진뢰(震雷)가 되니 겸손함을 휘두르는 상이 된다.

 

象曰 无不利撝謙은 不違則也라.

상왈 무불리휘겸    불위칙야

상전에 말하였다. “겸손함을 휘둘러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은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違:어길 위   則:법칙 칙

 

육사는 대신 자리에 있다. 대신으로서 겸손하게 하는 것은 곧 나라의 법도를 잘 준수하는 것이다.

 

六五는 不富以其鄰이니 利用侵伐이니 无不利하리라.

육오    불부이기린       이용침벌      무불리

육오는 부하지 아니하고 그 이웃으로써 하니, 침벌함이 이로우니, 이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鄰:이웃 린   侵:침노할 침   伐:칠 벌

 

육오는 외괘의 중을 얻은 인군(人君)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로서의 겸손함은 홀로 부와 권력을 누리려고 하지 않고, 만백성과 그 부를 같이 하는 것이다.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자로서 무작정 겸손하여 나라를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인군으로서 나라의 법에 복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마땅히 징벌을 해야 이롭다.

 

象曰 利用侵伐은 征不服也라.

상왈 이용침벌    정불복야

상전에 말하였다. “침벌함이 이로움은 복종하지 않는 것을 정벌하는 것이다.”

征:칠 정

 

上六은 鳴謙이니 利用行師하야 征邑國이니라.

상륙    명겸       이용행사      정읍국

상육은 겸손함이 우니, 군사를 행하여 읍국을 침이 이롭다.

鳴:울 명·울릴 명   師:군사 사

 

상육은 겸괘의 맨 위에 처하여 아무리 겸손하고자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를 알아달라고 우는 격이다. 이러한 상황은 남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다. 그래서 군사를 행하여 자기 읍국(邑國)을 침이 이롭다고 하였다. 읍국(邑國)이란 자기 마음을 가리킨다.

 

象曰 鳴謙은 志未得也니 可用行師하야 征邑國也라.

상왈 명겸    지미득야    가용행사       정읍국야

상전에 말하였다. “겸손함이 움은 뜻을 얻지 못한 것이니, 가히 군사를 행하여 읍국을 치는 것이다.”

未:아닐 미   得:얻을 득

 

상육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자기 뜻을 이룰 수 없다. 군사를 동원하는 강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반성하고 언행을 돌이켜야 한다.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25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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