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산책/주역

12. 천지비(天地否)

돈호인 2020. 10. 26. 20:02

괘의

태평한 시대가 지나가고 어렵고 비색한 때가 오면, 어지러운 세태에 영합하여 부를 누리지 말고 어려움을 피하라(儉德).

 

괘명과 괘상

외괘가 건천(乾天), 내괘가 곤지(坤地)로 이루어진 괘의 명칭을 ()라고 한다. 하늘 기운은 위에만 있고(天氣在上) 땅의 기운은 아래에만 있으니(地氣在下), 천기와 지기가 교류하지 못하고(天地不通) 막혀있어 비색하다는 뜻이다. 정치사회현실에 있어서도 위와 아래, 정치인과 국민, 경영자와 근로자가 서로 소통이 안 되고 막혀 있으니 비색한 상황이다.

 

서괘

서괘전은 지천태괘 다음에 천지비괘가 온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泰者는 通也니 物不可以終通이라 故로 受之以否하고

태자    통야    물불가이종통      고    수지이비

태(泰)란 통함이니, 물건이 가히 끝까지 통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비(否)로써 받고

 

화창한 기운이 있으면 암울한 기운이 오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듯이, 태평한 시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색한 시절도 있게 된다. 모든 상황이 한없이 통할 수만은 없다. 때문에 지천태괘 다음에 천지비괘를 둔 것이다.

 

괘사

否之匪人이니 不利君子貞하니 大往小來니라.

비지비인       불리군자정       대왕소래

비(否)가 사람이 아니니, 군자의 바름이 이롭지 않으니,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온다.

否:아닐 부·막힐 비   匪:아닐 비

 

천기(天氣)와 지기(地氣)가 막혀 교류되지 않고 위와 아래가 막혀 소통이 안 되니, 사람이 사람행세를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런 때에는 군자라도 군자로서의 행세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해로움을 받게 되니 이롭지 않으며, 군자가 다스리던 태평하던 세월이 지나가고 소인이 지배하는 음울한 세상이 된다. 이에 대해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否之匪人不利君子貞大往小來는

단왈 비지비인불리군자정대왕소래  

則是天地 不交而萬物이 不通也며 上下 不交而天下 无邦也라.

즉시천지 불교이만물    불통야    상하 불교이천하 무방야

內陰而外陽하며 內柔而外剛하며 內小人而外君子하니

내음이외양       내유이외강      내소인이외군자

小人道 長하고 君子道 消也라.

소인도 장       군자도 소야

단전에 말하였다. “‘否之匪人不利君子貞大往小來’는 곧 이 천지가 사귀지 못해서 만물이 통하지 않으며, 위와 아래가 사귀지 못해서 천하에 나라가 없다. 음이 안에 하고 양이 밖에 하며, 유가 안에 하고 강이 밖에 하며, 소인이 안에 하고 군자가 밖에 하니, 소인의 도가 자라나고 군자의 도는 사라진다.”

邦:나라 방

 

천기와 지기가 사귀지 못하니 만물이 통하지 못하여 화생하지 않고, 통치자와 국민·경영자와 근로자 등 위와 아래가 서로 사귀지 못하니 정책과 경영이 안 되어 나라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밖은 화려한 것 같지만 안으로는 음울하며, 밖은 강한 것 같지만 속은 약하며, 군자는 밖에 물러나 있고 소인이 안에 자리하니, 소인의 도가 자라나고 군자의 도는 사라지는 양상이다.

 

괘상사

象曰 天地不交 否니 君子 以하야 儉德辟難하야 不可榮以祿이니라.

상왈 천지불교 비    군자 이       검덕피난       불가영이록

상전에 말하였다. “천지가 사귀지 못함이 비(否)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덕을 검소하게 하고 어려움을 피해서, 가히 녹을 받는 것으로써 영화를 누리지 않는다.”

儉:검소할 검   辟:피할 피·임금 벽·비유할 비   難:어려울 난   榮:영화 영  祿:복 록

 

천지가 막혀 사귀지 못해서 사회가 암울하고 소인이 득세하는 때에 군자는 군자로서의 덕을 함부로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아껴서 어려움을 피해야 하며, 또한 소인이 지배하는 정치에 참여하여 녹을 받아가며 명예를 더럽히지 않는다.

 

효사 및 효상사

初六은 拔茅茹라. 以其彙로 貞이니 吉하야 亨하니라.

초륙    발모여    이기휘    정       길       형

초육은 띠 뿌리를 뽑는다. 그 무리로써 바르게 하니 길해서 형통하다.

拔:뽑을 발   茅:띠 모   茹:뿌리 여   彙:무리 휘

 

태평한 세상이나 비색한 세상이나 일반 백성은 무리로 움직인다. 항상 군중(群衆)이 되어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다. 위와 아래가 막혀 소통이 안 되니, 무리로 움직여 세상의 올바름을 갈구한다. 비록 소인이 득세하고 있지만, 백성은 구오 군자의 바른 정치를 갈구한다. 아무리 비색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하늘은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

 

象曰 拔茅貞吉은 志在君也라.

상왈 발모정길    지재군야

상전에 말하였다. “띠 뿌리를 뽑아 바르게 하여 길함은 뜻이 인군에게 있는 것이다.”

 

일반 백성은 언제나 구오 대인과 같은 어진 통치자가 나와 세상을 평화롭게 다스리기를 갈구하고 있다.

 

六二는 包承이니 小人은 吉코 大人은 否니 亨이라.

육이    포승      소인    길    대인    비    형

육이는 포용하여 이으니, 소인은 길하고 대인은 비색하니 형통하다.

包:쌀 포   承:이을 승

 

  비색한 때에 소인은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붕당(朋黨)을 만들고 자기들의 뜻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러한 소인은 한때나마 자기들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에 길하다. 그러나 군자는 비색한 때의 정황을 알기에 붕당을 만들지 않고 그야말로 검덕피난(儉德)을 하니 상황적으로는 비색하지만 결국은 형통하게 된다.

  소인이 지배하는 천지비괘 육이 효사와 군자가 다스리는 지천태괘 구이 효사를 비교해 보면, 소인과 군자가 정치하는 방법의 차이를 알 수 있다. 태평한 정치를 구현해 나가는 지천태괘 구이 군자는 거칠고 먼 것까지도 다 아우르지만 붕당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정당민주주의(政黨民主主義)를 표방하는 오늘날의 정치에서도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 보다 큰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당을 만들고 정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만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특정 집단의 붕당정치(朋黨政治)로 되고 있다는 현실을 찾아보게 된다.

 

象曰 大人否亨은 不亂群也라.

상왈 대인비형    불란군야

상전에 말하였다. “대인이 비색하나 형통함은 무리를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다.”

亂:어지러울 란   群:무리 군

 

비색한 때에 군자가 시대에 영합하지 않는 것은 난세(亂世)에 무리를 지어 백성과 나라를 어지럽히지 않기 위한 것이다.

 

六三은 包 羞로다.

육삼    포 수

육삼은 싼 것이 부끄럽도다.

羞:부끄러울 수·나아갈 수·드릴 수

 

육삼은 양자리에 음으로 있어 자리가 부당하고 중도 얻지 못하여, 비색한 세상에 온갖 부끄러운 짓을 도맡아 하는 소인이다. 그러니 하는 모든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象曰 包羞는 位不當也일새라.

상왈 포수    위부당야

상전에 말하였다. “싼 것이 부끄러운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九四는 有命이면 无咎하야 疇 離祉리라.

구사    유명      무구       주 리지

구사는 명을 두면 허물이 없어서, 동무(무리)가 복에 걸릴 것이다.

疇:밭두둑 주·무리(동무) 주·같을 주   離:걸릴 리   祉:복 지

 

천지비괘의 외호괘가 손풍(巽風)이고 구사가 변해서 외괘가 또 손풍이 되니, 하늘의 명을 두는 자리이다(重風巽卦 : 申命行事). ()은 바람()이고 바람은 하늘에서 부는 것이니 하늘의 ()으로 통한다. 내괘에서 음유(陰柔)한 소인이 세()를 얻었으니, 군자로서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손순하게 때를 기다리면 허물이 없고, 때가 되면 뜻을 같이 하는 무리와 더불어 명을 행하여 복을 받게 된다.

 

象曰 有命旡咎는 志行也라.

상왈 유명무구    지행야

상전에 말하였다. “명을 두어 허물이 없음은 뜻이 행해지는 것이다.”

 

때가 되면 구사의 뜻을 이룰 수 있다.

 

九五는 休否라. 大人의 吉이니 其亡其亡이라아 繫于苞桑이리라.

구오    휴비    대인    길       기망기망         계우포상

구오는 비색함을 쉬게 한다. 대인의 길함이니 그 망할까 그 망할까 하여 우묵한 뽕나무에 맬 것이다.

休:쉴 휴․그칠 휴   繫:맬 계   苞:더부룩이날 포·밑(뿌리) 포·쌀 포   桑:뽕나무 상

 

  구오는 외괘에서 중정한 대인으로 천하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자이다. 소인이 득세하고 있는 비색한 세상이니 구오는 왕이라 할 수는 없다. 비색한 세상에 중정한 대인이 비록 바른 정치를 행할 수는 없지만, 그 비색한 상황을 사라지게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비색한 세상이 그칠 때가 왔으니 대인의 길함이 있고, 아울러 세상이 비색해져 망할 듯 하여도 대인은 나라와 민족과 백성의 근본을 단단한 뽕나무에 매어서 다음의 태평한 세상을 이끌어 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현존할 때 망할 것을 잊지 않고, 잘 다스릴 때 어지러움을 잊지 않는 것이 몸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보전하는 지혜일 것이다. 계사하전5장에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위태할까 하는 자는 그 자리를 편안히 하는 것이요, 망할까 하는 자는 그 존함을 보존하는 것이요, 어지러울까 하는 자는 그 다스림을 두는 것이니, 이런 까닭에 군자가 편안하되 위태함을 잊지 않으며, 존하되 망함을 잊지 않으며, 다스리되 어지러움을 잊지 않는다. 이로써 몸이 편안하여 국가를 보존할 수 있으니, 역에 이르길 ‘그 망할까 그 망할까 하여 더부룩한 뽕나무에 맨다’고 하였다.”(子曰 危者는 安其位者也오 亡者는 保其存者也오 亂者는 有其治者也니 是故로 君子 安而不忘危하며 存而不忘亡하며 治而不忘亂이라. 是以身安而國家를 可保也니 易曰 其亡其亡이라야 繫于苞桑이라하니라.)

 

象曰 大人之吉은 位 正當也일새라.

상왈 대인지길    위 정당야

상전에 말하였다. “대인의 길함은 자리가 바르고 정당하기 때문이다.”

 

上九는 傾否니 先否코 後喜로다.

상구    경비    선비    후희

상구는 비색함이 기울어지니, 먼저는 비색하고 뒤에는 기뻐하도다.

傾:기울 경   喜:기쁠 희

 

비색한 상황의 맨 위에 처하니, 드디어 비색함이 기울어지는 때이다. 앞의 상황은 비색하였지만, 이제 비색함이 사라지니 편안한 웃음이 나온다. 상구에서 편안한 웃음이 나올 수 있는 것은 구사가 명()을 두어 때를 기다리고, 구오가 나라의 근본이 무너지지 않게 굳게 지켰기 때문이다.

 

象曰 否終則傾하나니 何可長也리오.

상왈 비종즉경          하가장야

상전에 말하였다. “비색함이 마치면 곧 기울어지니, 어찌 가히 오래 가겠는가?”

 

그렇다. 지천태()괘 구삼효에서도 평평해도 언덕지지 않음이 없고 가서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无平不陂 无往不復)고 했다. 아무리 비색한 상황도 때가 되면 기울어지니, 소인이 득세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던 시절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 삼음삼양(三陰三陽)괘의 체(體)인 지천태·천지비

지천태괘와 천지비괘는 모두 삼음삼양괘로 양효와 음효가 각각 내괘 외괘로 나누어져 있다. 주역 64괘 가운데 음이 셋 양이 셋인 삼음삼양괘는 모두 20괘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삼음삼양으로 이루어진 괘는 그 근본 체()를 각각 지천태(地天泰)괘와 천지비(天地否)괘에 두고 있다. 때문에 뒤에 나오는 삼음삼양괘를 고찰할 때에는 항상 그 근본 체가 되는 지천태괘와 천지비괘를 염두에 두고 고찰해야 한다.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226∼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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