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산책/주역

11. 지천태(地天泰)

돈호인 2020. 10. 26. 19:09

괘의

천기와 지기가 잘 교류하여 천하가 태평하듯이, 사회 각계각층의 이해관계를 잘 조율하여 국가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도모하라(輔相天地).

 

괘명과 괘상

외괘가 곤지(坤地), 내괘가 건천(乾天)으로 이루어진 괘의 명칭을 ()라고 한다. 사회가 태평하고 기운이 잘 소통됨을 의미한다.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지만, 천지기운이 교류하여 조화된다는 면에서 보면, 하늘의 기운은 아래로 내려오고(天氣下降) 땅의 기운은 위로 올라가서(地氣上昇) 천기와 지기가 잘 교류하여 태평한 세상을 이루게 된다. 사회적 양상도 마찬가지이다. 통치자와 백성이 서로의 기운을 잘 소통하여 사회가 안정되고 있는 양상이다. 아래에 있어야 할 백성의 기운이 위에 올라가 있고, 위에 있어야 할 통치자의 기운이 아래로 내려와 있으니, 위아래가 서로 기운을 잘 통하고 있는 것이다.

 

서괘

서괘전은 천택리괘 다음에 지천태괘가 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履而泰然後에 安이라 故로 受之以泰하고

리이태연후    안      고    수지이태

이행하여 태평한 다음에 편안하다. 그러므로 태로써 받고

 

천택리(天澤履)괘 상구효사에 밟아 온 것을 보아서 상서로운 것을 상고하되 그 상서로움이 돌아오면(두루 잘했으면) 크게 길하다고 하였으니, 마찬가지로 천기(天氣)와 지기(地氣)가 잘 교류되면 태평하게 되고, 국가사회에 있어서도 통치자와 백성이 잘 교류하면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괘사

泰는 小往코 大來하니 吉하야 亨하니라.

태    소왕    대래      길       형

태(泰)는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니 길하여 형통하다.

泰 : 클 태·편안할 태

 

()()이 밖에 있으니 작은 것이 가는 것이고, ()()이 안에 있으니 큰 것이 오는 것이다. 큰 양()의 기운이 안에 있으니, 길하고 형통하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泰小往大來吉亨은 則是天地 交而萬物이 通也며

단왈 태소왕대래길형    즉시천지 교이만물    통야

上下 交而其志 同也라.

상하 교이기지 동야

內陽而外陰하며 內健而外順하며 內君子而外小人하니

내양이외음       내건이외순      내군자이외소인

君子道 長하고 小人道 消也라.

군자도 장       소인도 소야

단전에 말하였다. “‘태소왕대래길형’은 곧 이 천지가 사귀어 만물이 통하며, 위와 아래가 사귀어 그 뜻이 같다. 양이 안에 하고 음이 밖에 하며, 굳셈이 안에 하고 순함이 밖에 하며, 군자가 안에 하고 소인이 밖에 하니, 군자의 도는 자라나고 소인의 도는 사라진다.”

交:사귈 교   通:통할 통   長:길 장   消:사라질 소

 

  중세의 봉건적 계급질서에서 왕이 천하를 다스리는 세상이나,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 국가 원수가 국민을 다스리는 것이나, 통치의 기본원리는 같다. 천기가 내려오고 지기가 상승하여 서로 기운을 통하듯이, 정치 지배층이 아래로 내려와 민심을 살피고 아래에 있는 민심이 위로 올라가 행하니, 정치인이나 국민의 마음이 같은 것이다. 국가를 통치하는 제도는 시대마다 나라마다 달라도 진정한 정치는 민심(民心)이 반영되고 민의(民意)가 행해지는 것이다.

  군자의 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안으로는 양명(陽明)하고 강하면서도 밖으로는 유순(柔順)하니, 사회를 순하게 잘 다스리게 된다. 사회에서 질서를 어지럽히고 당리당략(黨利黨略)이나 사리(私利)만을 위하는 소인(小人)들이 밖으로 물러나고, 공리(公利)와 백성을 위하는 군자(君子)들이 안에 있어 자라나니 태평하다.

 

괘상사

象曰 天地交 泰니 后 以하야 財成天地之道하며

상왈 천지교 태    후 이       재성천지지도

輔相天地之宜하야 以左右民하나니라.

보상천지지의      이좌우민

상전에 말하였다. “하늘과 땅이 사귐이 태(泰)니, 후(后: 임금)가 이를 본받아 천지의 도를 재단하여 이루며, 천지의 마땅함을 도와서 백성을 좌우한다.”

后: 임금 후(왕비)   財:재단할 재   補:도울 보   宜:마땅할 의

 

천기와 지기가 잘 교류하는 태괘의 상을 고찰하여, 옛 임금()은 천지의 법도를 재단하고 천지의 마땅함을 도와 백성을 다스렸다. , 천지의 마땅한 법도를 잘 준칙(準則)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법도로 제도화하고 이를 통해 백성을 다스렸다. 천지의 도를 재단하고 도와서 백성을 좌우하는 것은 인간 위주의 제도를 만들고 인간만을 위한 근시안적(近視眼的)인 정책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장구한 세월에 걸쳐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 백성이 대대로 잘 살 수 있도록 다스리는 것이다.

 

효사 및 효상사

初九는 拔茅茹라. 以其彙로 征이니 吉하니라.

초구    발모여    이기휘    정       길

초구는 띠 뿌리를 뽑는다. 그 무리로써 가니 길하다.

拔:뽑을 발   茅:띠 모   茹:뿌리 여   彙:무리 휘   征:갈 정(칠 정)

 

초구는 백성의 자리이다. 태평한 세상에 국민이 다 편안하니, 모두가 한 마음으로 통치자의 올바른 정치에 따른다. 띠를 뽑으면 뿌리가 다 연결되어 얽혀 나오듯이, 국민의 마음도 하나가 되어 통치자의 뜻에 따른다. 초구가 변하면 내괘가 손이 되는데, 은 후천팔괘로 동남방에 처하고 부드러운 음목(陰木)이 되어 띠 뿌리의 상이 나오며 아울러 손순하게 통치자의 정책에 따르는 상이 된다.

 

象曰 拔茅征吉은 志在外也라.

상왈 발모정길    지재외야

상전에 말하였다. “띠 뿌리를 뽑아 가서 길함은 뜻이 밖에 있는 것이다.”

 

초구 백성의 뜻은 외괘에 있는 통치자의 올바른 정치에 있다.

 

九二는 包荒하며 用馮河하며 不遐遺하며 朋亡하면 得尙于中行하리라.

구이    포황      용빙하       불하유       붕망      득상우중행

구이는 거친 것을 싸며, 하수(河水) 건넘을 쓰며, 먼 것을 버리지 않으며, 붕당(朋黨)을 없애면, 중도를 행함에 숭상함(합함)을 얻을 것이다.

包:쌀 포   荒:거칠 황   馮:걸어서 건널 빙   河:강 이름 하   遐:멀 하

遺:버릴 유   朋:벗 붕(무리)   亡:망할 망   得:얻을 득   尙:숭상할 상(합할 상)

 

구이 양()은 내괘 가운데에 있고, 외괘에서 통치하는 육오 음()과 잘 응하고 있다. 육오 인군의 명을 받들어 태평한 세상을 이루어 나가는 역할을 한다. 태평성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도 잘 포용해야 하며, 때로는 물을 건너 외국과의 평화를 위한 선린외교(善隣外交)를 펼쳐야 하며, 아무리 먼 변방에 있는 약소한 존재라도 그들을 존중해야 하며, 또한 자기들만의 붕당(朋黨)을 만들어 세력화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중도(中道)로 폭넓은 정책을 펴서 잘 실행해 나가면, 모두가 구이의 정치에 뜻을 합하고 숭상하게 된다.

 

象曰 包荒得尙于中行은 以光大也라.

상왈 포황득상우중행    이광대야

상전에 말하였다. “‘포황득상우중행’은 빛나고 큰 것이다.”

 

내괘가 건천으로 큰 것이며, 구이가 변하면 내괘가 이화로 되니 빛나는 것이 된다. 천하를 포용하는 중도(中道)의 정치를 실현하느라고 구이 스스로는 쉴 새가 없는 고단한 생활일지라도 그 자체가 광대하다.

 

九三은 无平不陂며 无往不復이니 艱貞이면 无咎하야

구삼    무평불피    무왕불복      간정       무구

勿恤이라도 其孚라 于食애 有福하리라.

물휼          기부   우식    유복

구삼은 평평해서 기울어지지 않음이 없으며, 가서 돌아오지 않음이 없으니, 어렵게 하고 바르게 하면 허물이 없어서, 근심하지 않더라도 미덥다. 먹는 데에 복이 있을 것이다.

陂:기울어질 피   艱:어려울 간   恤:근심할 휼   食:먹을 식   福:복 복

 

구삼은 내괘에서 외괘로 넘어가는 자리에 있다. 아무리 태평한 세상일지라도 언젠가는 세상이 막혀 비색해진다는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항상 바른 정치를 해 나가야 한다. 평평하다가도 언덕이 있는 것이 자연의 지세(地勢)이며, 좋은 세상이 있다가도 나쁜 세상이 오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이다. 그러니 태평할 때에 그 태평함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어렵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바르게 해야 허물이 없다. 이렇게 항상 조심하고 바른 정치를 해 나가면 근심하지 않아도 백성이 믿게 되고, 모든 백성이 편안하게 식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象曰 无往不復은 天地際也라.

상왈 무왕불복    천지제야

상전에 말하였다. “가서 돌아오지 않음이 없음은 천지가 사귀는 것이다.”

際:사귈 제

 

만물이 생화하는 따뜻한 봄과 여름이 지나가면, 숙살지기(肅殺之氣)로 결실을 거두는 추운 가을과 겨울이 오기 마련이다. 자연의 변화는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 순환한다. 천지가 사귀는 자연의 변화가 이렇듯이 세상사도 마찬가지이다.

 

六四는 翩翩히 不富以其鄰하야 不戒以孚로다.

육사    편편    불부이기린      불계이부

육사는 나는 듯이 부하려 하지 않고 그 이웃으로써 하여, 경계하지 않아도 믿도다.

翩:빨리 날 편   鄰:이웃 린   戒:경계할 계

 

육사는 음 자리에 음으로 자리가 바른 대신(大臣)으로서 태평한 세상에 육오 인군의 명을 받아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 육사가 응하고 있는 초구 백성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나는 듯이 다가가 그 문제를 해결해 주며, 높은 지위에 있다고 홀로 부와 권력을 누리려고 하지 않고 이웃 국민과 더불어 잘살 수 있는 복지정책을 쓰니, 초구의 백성들이 경계하지 않고 육사 대신을 믿는다.

 

象曰 翩翩不富는 皆失實也오 不戒以孚는 中心願也라.

상왈 편편불부    개실실야    불계이부    중심원야

상전에 말하였다. “‘편편불부’는 모두 실질을 잃음이요, ‘불계이부’는 중심으로 원하는 것이다.”

皆:다 개(모두)   實:실할 실

 

국민을 위한 마음으로 나는 듯이 국민에게 다가가는 것은 자기만이 실질을 얻으려는 사심(邪心)이 없는 것이다. 경계하지 않아도 믿는 것은 모든 백성이 진정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六五는 帝乙歸妹니 以祉며 元吉이리라.

육오    제을귀매    이지    원길

육오는 제을이 누이동생을 시집보내니, 복이 되며 크게 길할 것이다.

歸:돌아갈 귀·시집갈 귀   妹:누이 매   祉:복 지

 

  육오는 외괘에서 중을 얻어 태평한 세상을 이끌어 가는 통치자이다. 세상이 태평할 때에는 강력한 권력이 필요하지 않고, 유약한 듯 순하게 정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은나라 말기에 왕으로 있었던 제을(帝乙)은 태평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누이동생을 지방 제후에게 시집보냈다. 이렇듯이 왕이 자신의 누이를 지방 제후에게 시집보낼 정도로 화목한 평화정책을 폈으니 복이 될뿐더러 크게 길한 것이다.

  평화를 유지한다는 것은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고, 얻기 위해서는 먼저 줘야 한다. 중세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행해졌던 평화외교정책의 주요한 하나가 상호간에 혼인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오늘날 현대 국제사회의 정책으로 본다면, 외국과의 선린외교정책을 펴고, 다른 나라가 필요한 것은 주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는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象曰 以祉元吉은 中以行願也라.

상왈 이지원길    중이행원야

상전에 말하였다. “복이 되고 크게 길함은 중도로써 원함을 행하기 때문이다.”

 

上六은 城復于隍이라. 勿用師오 自邑告命이니 貞이라도 吝하니라.

상륙    성복우황       물용사    자읍고명       정         인

상육은 성이 터에 돌아온다. 군사를 쓰지 말고 읍으로부터 명을 알리니, 바르게 하더라도 인색하다.

城:성 성   隍:해자(垓字) 황(터 황)   邑:고을 읍   告:알릴 고  吝:인색할 린

 

  상육은 태괘의 극에 처해 있어, 태평한 세상이 그치고 쇠락해지는 상이다. 상육이 변하면 외괘가 간산(艮山)이 되어 태평한 세상이 그친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수많은 민족과 국가의 흥망(興亡)이 있어 왔다. 태평시대에 높게 쌓았던 성()이 무너져 황성옛터가 된다. 이렇게 태평한 기운이 사라질 때에는 군대를 동원하여 억지로 그 시대를 돌이키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를 반성하여 자기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 그동안 잘못된 정치로 인한 결과이니 뒤늦게 바르게 하려고 한들 인색할 뿐이다.

  오늘날에도 한 시대의 정치인이 자기 정책의 실수를 모면하려고 군대를 동원하여 외국을 공격하는 등 무리한 정책을 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세상이 등을 돌리면 스스로를 반성할 뿐이다.

 

象曰 城復于隍은 其命이 亂也라.

상왈 성복우황    기명    난야

상전에 말하였다. “성이 터에 돌아옴은 그 명이 어지러운 것이다.”

 

성이 무너져 터에 돌아옴은 이미 정치의 바른 명이 어지러워졌기 때문이다.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218∼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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