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의
천지가 열리니 만물을 창조하고 세상을 일으켜 천하를 다스리라(創世經綸).
괘명과 괘상
외괘가 감수(坎水)☵, 내괘가 진뢰(震雷)☳로 이루어진 괘의 명칭을 ‘둔(屯)’이라 한다. ‘屯’은 ‘준’과 ‘둔’의 음이 있으나 ‘둔’으로 발음한다. 천지가 창조되어 중천건 하늘과 중지곤 땅의 기운이 교감하여 만물이 생하는 어려운 상황을 의미한다.
하늘의 양기운과 땅의 음기운이 중지곤괘 상육효에서 교감하면서(龍戰于野) 만물이 나오게 되는데, 인간을 포함한 만물이 처음 생하는 데에는 탄생의 고통과 더불어 험난한 세상을 경륜해 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사업을 처음 구상하고 시작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내괘 진(震)☳은 천기와 지기가 교감하여 땅 아래에 양기가 포태되어 태동하는 기운을 상징하며, 외괘 감(坎)☵은 앞으로의 험난함을 상징한다.
서괘
「서괘전」(序卦傳)은 중천건괘와 중지곤괘 다음에 수뢰둔괘가 온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有天地然後에 萬物이 生焉하니
유천지연후 만물 생언
盈天地之間者 唯萬物이라
영천지지간자 유만물
故로 受之以屯하니 屯者는 盈也니 屯者는 物之始生也라.
고 수지이둔 둔자 영야 둔자 물지시생야
천지가 있고 난 뒤에 만물이 생하니, 천지 사이에 가득 찬 것이 오직 만물이다. 그러므로 둔으로 받으니, 둔은 가득 참이니 둔은 물건이 처음으로 생기는 것이다.
焉:어조사 언 盈:찰 영 唯:오직 유 受:받을 수 屯:어려울 둔 始:처음 시
하늘과 땅이 생긴 연후에 천지 기운의 교감으로 만물이 나오게 된다. 천지 사이에 가득 찬 것은 만물이다. 또한 천기는 아래로 내려오고(天氣下降) 지기는 위로 올라가(地氣上昇) 교감하여 만물을 생화하는 기틀을 이루게 되니, 이 천지기운의 엉김으로 만물이 나오게 된다. 남자와 여자의 교감으로 남정(男精)과 여혈(女血)이 그 기운을 얽으니,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것과 같다.
괘사
屯은 元亨코 利貞하니 勿用有攸往이오 利建侯하니라.
둔 원형 이정 물용유유왕 이건후
둔은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 가는 바를 두지 말고 제후를 세움이 이롭다.
屯:어려울 둔 勿:말 물 用:써 용 攸:바 유 建:세울 건 侯:제후 후
하늘과 땅의 덕, 즉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사덕을 그대로 부여받아 정기(精氣)가 쌓이니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 그러나 천지 기운이 엉겨 만물이 처음 나오는 때이므로, 스스로 갈 수는 없고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제후(諸侯)를 세워야 한다. 괘사를 풀이한 단전(彖傳)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屯은 剛柔 始交而難生하며 動乎險中하니
단왈 둔 강유 시교이난생 동호험중
大亨貞은 雷雨之動이 滿盈일새라.
대형정 뇌우지동 만영
天造草昧에는 宜建侯오 而不寧이니라.
천조초매 의건후 이불녕
단전에 말하였다. “둔은 강과 유가 처음 사귀어 어렵게 나오며 험한 가운데 움직이니, 크게 형통하고 바른 것은 우레와 비의 움직임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늘이 초매를 짓는 데는 마땅히 제후를 세워야 하고, 편안하지 못하다.”
交:사귈 교 難:어려울 난 險:험할 험 滿:찰 만 造:지을 조 草:풀 초 昧:어두울 매 宜:마땅할 의 寧:편안할 녕
하늘의 강한 양 기운과 땅의 부드러운 음 기운이 처음 사귀니, 만물이 어렵게 나오고 험한 가운데 움직이게 되지만, 만물을 생화하기 위한 천지기운이 우레와 비의 움직임으로 가득하기에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해야 이롭다. 그러니 천지가 창조되어 만물이 생화하고 인류의 역사가 비롯되는 이 때에 세상을 이끌어 가고 경륜해 나갈 수 있는 제후를 세워야 한다. 그러나 만들어 가야 할 앞으로의 역사가 아득하니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어떠한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역시 마찬가지이다.
괘상사
象曰 雲雷 屯이니 君子 以하야 經綸하나니라.
상왈 운뢰 둔 군자 이 경륜
상전에 말하였다. “구름과 우레가 둔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경륜해 나간다.”
雲:구름 운 雷:우뢰 뢰 經:다스릴 경 綸:다스릴 륜
내괘가 진☳이니 우레의 기운이며, 외호괘가 간☶이고 외괘가 감☵으로 산 위에 걸쳐 있는 물 기운은 구름이니, 구름과 우레의 기운이 가득한 상이 ‘둔’이다. 군자는 이러한 기운의 상을 보고, 앞으로의 역사를 경륜해 나간다.
내괘 진뢰☳는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어 경륜해 나가야 하는 상황을 의미하고, 외괘 감수☵는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어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둔괘에 있어 초효에서 상효까지 각각의 때와 위치에 따라 해야 할 바는 다르다.
효사 및 효상사
初九는 磐桓이니 利居貞하며 利建侯하니라.
초구 반환 이거정 이건후
초구는 반환함(머뭇거림)이니, 바른 데에 거처함이 이로우며 제후를 세움이 이롭다.
磐:머뭇거릴 반, 너럭바위 반 桓:머뭇거릴 환, 푯말 환, 굳셀 환
수뢰둔괘 초구는 천기와 지기가 교합하여 생명이 탄생하고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이다. 그러나 외호괘가 간☶이고 외괘가 감☵으로 험준한 산에 구름이 걸려 있어 앞길이 아득한 상이니, 어떻게 나가야 할 바를 몰라 머뭇거리게 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자리에 바르게 거처하여 기운을 기르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후를 세우는 것이 이롭다. 둔괘에서는 구오효가 초구를 이끌어 줄 제후가 된다. 이에 대해 효상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象曰 雖磐桓하나 志行正也며 以貴下賤하니 大得民也로다.
상왈 수반환 지행정야 이귀하천 대득민야
상전에 말하였다. “비록 머뭇거리나 뜻이 바름을 행하며, 귀함으로써 천한 데에 아래 하니, 크게 백성을 얻도다.”
雖:비록 수 志:뜻 지 貴:귀할 귀 賤:천할 천 得:얻을 득
초구는 비록 경륜이 미미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거리지만 뜻은 바르게 행하고, 또한 하늘의 정기를 받아 고귀한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호괘 곤☷(백성)의 아래에 처하여 기운을 기르고 경륜해 나가니, 나중에는 크게 백성을 얻는 인재가 된다.
六二는 屯如邅如하며 乘馬班如하니 匪寇면 婚媾리니
육이 둔여전여 승마반여 비구 혼구
女子 貞하야 不字라가 十年에야 乃字로다.
여자 정 부자 십년 내자
육이는 어려운 듯 머뭇거리는 듯 하며, 말을 타도 말이 서성거리니, 도적이 아니면 청혼해 오리니, 여자가 곧아서 시집가지 않다가 십년에야 이에 시집가도다.
邅:머뭇거릴 전 乘:탈 승 班:서성거릴 반 匪:아닐 비 婚:혼인할 혼 媾:혼인할 구 字:시집갈 자
두 번째 음 ‘육이’는 중정한 음으로 외괘에서 중정한 양 ‘구오’와 잘 응하고 있다. 그런데 음 자리에 음으로 거하여 유순하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외호괘가 간☶으로 험준한 산에 막혀 그쳐 있으니 가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바로 아래에 있는 양(초구)과 정응 관계에 있는 양(구오) 사이에서 자신의 선택을 주저하는 상이다. 결국에는 중정으로 응하고 있는 구오 양을 만나게 되지만, ‘초구’때문에 주저함이 원인이 되어 한 때 기회를 놓치면 10년이란 세월을 허비하게 된다.
‘자(字)’는 여자가 시집가는 것을 뜻한다. 《예기(禮記)》에 여자가 ‘시집가는 것을 허락함에 비녀를 꼽고 자(字)를 지어준다’(女子 許嫁 笄而字)고 하였다.
象曰 六二之難은 乘剛也오 十年乃字는 反常也라.
상왈 육이지난 승강야 십년내자 반상야
상전에 말하였다. “육이의 어려움은 강을 탔기 때문이고, 십 년 만에 시집감은 떳떳함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難:어려울 난 反:돌아올 반 常:떳떳할 상
육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정응인 구오 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아래에 초구 양(강)이 있어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이고, ‘십 년 만에 시집감’은 정응인 구오와 만나는 떳떳함을 회복하는 것이다.
六三은 卽鹿无虞라 惟入于林中이니
육삼 즉록무우 유입우임중
君子 幾하야 不如舍니 往하면 吝하리라.
군자 기 불여사 왕 인
육삼은 사슴사냥에 나아가나 우인(虞人 : 몰이꾼)이 없다. 오직 숲 속으로 들어가니, 군자가 기미를 보아서 그치는 것만 같지 못하니, 가면 인색할 것이다.
卽:나아갈 즉 鹿:사슴 록 虞:벼슬이름 우(산과 연못을 맡은 벼슬 : 몰이꾼) 幾:기미 기 舍:집 사, 머무를 사, 폐할 사
吝:아낄 린(인색함, 주저함)
세 번째 음 ‘육삼’은 양자리에 음으로 처하여 위가 바르지 못하고, 외호괘가 간☶으로 산이 되는데 상효가 같은 음으로 정응이 되지 않아 도와주는 관리(몰이꾼)도 없이 혼자 숲 속으로 들어가는 형국이다. 이러한 때에 군자라면 기미를 잘 파악하여 더 이상 진행하지 말아야 하며, 그렇지 않고 가게 되면 인색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
象曰 卽鹿无虞는 以從禽也오 君子舍之는 往하면 吝窮也라.
상왈 즉록무우 이종금야 군자사지 왕 인궁야
상전에 말하였다. “사슴사냥에 나아가 몰이꾼이 없는 것은 새를 좇음이요, 군자가 그치는 것은 가면 인색하여 궁하게 된다.”
禽:날짐승 금 窮:궁할 궁
즉, 자신의 처지가 마땅하지 않은 상황에 있으면서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이니, 마치 사슴을 잡으려고 산에 갔다가 새를 좇는 격이고, 만일 계속 가게 되면 인색하여 궁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자는 하고자 하던 일을 그쳐야 한다.
六四는 乘馬班如니 求婚媾하야 往하면 吉하야 无不利하리라.
육사 승마반여 구혼구 왕 길 무불리
육사는 말을 탔다가 서성거리니, 혼인을 구하여 가면, 길해서 이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求:구할 구 往:갈 왕
네 번째 음 ‘육사’는 외괘의 감☵에 있어 어두운 상태이니 역시 일을 주저하게 된다. 또한 정응 관계인 초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위에 있는 구오 양에 마음을 두기도 한다. 그러나 정응 관계로서 육사 자신에게 필요한 상대인 초구를 만나야 하니, 가서 만나게 되면 길하여 모든 일이 이롭게 된다.
象曰 求而往은 明也라.
상왈 구이왕 명야
상전에 말하였다. “구하여 감은 밝게 하는 것이다.”
육사는 음자리에 음으로 위가 마땅하고 정응인 초구와 잘 응하니, 초구와 혼인을 구해서 가는 것은 밝게 처신하는 것이다.
九五는 屯其膏니 小貞이면 吉코 大貞이면 凶하리라.
구오 둔기고 소정 길 대정 흉
구오는 그 고택(膏澤:은혜)이 어려우니, 조금 바르게 하면 길하고 크게 고집하면 흉할 것이다.
膏:기름 고(은혜, 고택)
구오는 외괘에서 중정한 자리에 있어 둔괘 전체의 상황을 이끌어 가는 위치에 있지만, 지도자로서의 은덕을 베푸는 역할을 고집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외괘가 감괘☵로 어두운 상황일뿐더러 둔괘에서 구오는 초구를 도와 일을 풀어 나가야 하는 역할, 즉 제후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때문에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고집하지 말고 겸손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면 길하지만, 인군(통치자)으로서의 자리를 고집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쳐 흉하게 된다.
象曰 屯其膏는 施 未光也라.
상왈 둔기고 시 미광야
상전에 말하였다. “그 고택이 어려운 것은 베풂이 빛나지 못한 것이다.”
施:베풀 시
둔괘의 상황에서는 초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크기 때문에 구오가 인군로서의 역할을 고집하면 그 베푸는 것이 빛나지 못하게 된다.
上六은 乘馬班如하야 泣血漣如로다.
상륙 승마반여 읍혈연여
상육은 말을 탔다가 서성거려서 피눈물이 줄줄 흐르도다.
泣:울 읍(눈물) 血:피 혈 漣:눈물흐를 련
마지막 상육은 어려운 초창기 상황의 중심적 역할에서 벗어나 끝에 처해 있다. 둔의 상황에서 모든 사람은 초구와 구오에게 의지를 하게 된다. 상응하는 관계를 보아도 초구와 육사가 응하고 육이와 구오가 응하나, 상육과 육삼은 같은 음으로 서로 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상육이 바로 아래에 있는 구오 양에게 기대게 되나, 구오는 정응인 육이가 있으므로 결국 상육은 구오 양(말)을 탔다가 서성거리게 된다. 이는 수뢰둔(水雷屯)의 어렵고 험난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창업(創業)의 역동적인 상황에 상육이 아무런 역할도 못하면서 스스로를 한탄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象曰 泣血漣如어니 何可長也리오.
상왈 읍혈연여 하가장야
상전에 말하였다. “피눈물이 줄줄 흐르니 어찌 가히 오래하겠는가?”
何:어찌 하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고 목적을 이룰 수 없다.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155∼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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