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산책/도덕경

도덕경 제64장

돈호인 2020. 10. 16. 16:29

 

64. 其安章

     기안장

 

其安 易持 其未兆 易謀

기안 이지 기미조 이모

其脆 易泮 其微 易散

기취 이판 기미 이산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위지어미유 치지어미란

合抱之木 生於毫末

함포지목 생어호말

九層之臺 起於累土

구층지대 기어루토

千里之行 始於足下

천리지행 시어족하 

爲者 敗之 執者 失之

위자 패지 집자 실지

是以 聖人 無爲 故 無敗

시이 성인 무위 고 무패

無執 故 無失

무집 고 무실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민지종사 상어기성이패

愼終如始 則無敗事

신종여시 즉무패사

是以 聖人 欲不欲 不貴難得之貨

시이 성인 욕불욕 불귀난득지화

學不學 復衆人之所過

학불학 복중인지소과

以輔萬物之自然 而不敢爲

이보만물지자연 이불감위

 

安 : 편안할 안  持 : 지닐 지  易 : 쉬울이  兆 : 조짐 조  謀 : 꾀할 모  脆 : 연할 취

泮 : 녹을 반·나누일 판(判)  微 : 작을 미  散 : 흩을 산  抱 : 안을 포  毫 : 가는 털 호

層 : 층 층  臺 : 돈대 대  累 : 포갤 루·불릴 루·거듭 루·끼칠 루  執 : 잡을 집

敗 : 패할 패  幾 : 거의 기  愼 : 삼갈 신  貨 : 재화 화  復 : 회복할 복·돌아갈 복

輔 : 광대뼈 보·바퀴덧방나무 보·도울 보  敢 : 가히 감

 

그 편안함은 유지하기 쉽고, 그 조짐이 없음에 꾀하기 쉽고,

그 연함에 나누어지기 쉽고, 그 미미함에 흩어지기 쉬우니,

(일이) 생겨나기 전에 하고, 어지럽기 전에 다스린다.

아름드리나무는 한 터럭 끝에서 나오고,

구층의 대는 흙을 쌓음에서 일어나고,

천리의 길은 발 아래에서 비롯하니,

하려는 자는 패하고, 잡으려는 자는 잃는다.

이로써 성인은 하려고 함이 없기 때문에 패함이 없고,

잡으려 함이 없기 때문에 잃음이 없지만,

백성이 좇는 일은 항상 거의 이루어지려다가 패하니,

마침을 비롯할 때와 같이 삼가면 곧 패하는 일이 없다.

이로써 성인은 (사람이) 욕심내지 않는 것을 욕심내어,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사람이) 배우지 않는 것을 배워서, 사람들의 지나친 바를 회복시키며,

만물의 스스로 그러함을 도와서, 감히 하지 않는다.

 

 

  이 장은 무사(無事무위(無爲무욕(無欲)의 도에 내재되어 있는 역동적인 자연의 섭리를 말하였다. 도덕경은 모든 현상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것이 아니라, 도의 섭리에 따라 역동적으로 지극한 정성으로 임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세상사와 자연의 이치를 보자. 모든 현상과 상황에 처하는 마음이 편안하면 그 현상에 내재된 일은 유지해 나가기가 쉽다. 이미 일과 정황이 나타나면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가 어렵지만, 그 일의 조짐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가 쉽다. 그래서 군자는, 도를 추구하는 자는 이미 일이 나타나기 전에 기미를 보아 대처하는 것이다. 주역』「계사하전5장에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기미를 앎이 그 신(神)이구나. 군자가 윗사람을 사귀되 아첨하지 않으며, 아랫사람을 사귀되 업신여기지 않으니, 그 기미를 아는구나. 기미라는 것은 움직임의 미미함이니, 길한 것에 먼저 나타나는 것이니, 군자가 기미를 보고 일어나서 날이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으니, 역(易)에 이르길 ‘절개가 돌이라. 날을 마치지 않으니 바르고 길하다’라고 하니, 절개가 돌과 같으니 어찌 날을 마치겠는가? 판단해서 가히 알도다. 군자가 미미함도 알고 드러남도 알고, 부드러움도 알고 강함도 아니, 온 천하의 남자들이 우러러 본다.”(子曰 知幾 其神乎! 君子 上交不諂 下交不瀆, 其知幾乎! 幾者 動之微 吉之先見者也, 君子 見幾而作 不俟終日, 易曰 介于石 不終日 貞 吉, 介如石焉 寧用終日? 斷可識矣. 君子 知微知彰知柔知剛, 萬夫之望.)

 

  이미 일어난 상황을 보면, 그 물건과 상황이 연하고 약하면 원래 계획했던 대로 진행할 수가 없고 쉽게 와해된다. 마찬가지로 무슨 일을 하든지 미미한 상황은 흩어지기가 쉽다. 그래서 세상사의 모든 일이 시작되는 것은 많지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이치를 아는 성인은 모든 물건과 일이 생겨나기 이전에 기미를 포착하여 일을 도모하고, 또한 이미 일이 진행되면 그 일이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려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이 하는 일은 시작하면 뜻대로 이루어지고,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자연의 이치를 보면, 보기에 엄청나게 큰 아름드리나무는 사실 한 터럭만한 줄기에서 생장한 것이다. 세상사의 일을 보건대, 하늘을 찌를 듯한 구층 높이의 누대는 사실 한 줌 흙을 쌓는 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또한 사람의 일을 보건대, 천리를 가는 머나먼 여행은 바로 발 한 걸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시작할 때부터 욕심을 내세워 하려는 자는 결국 그 일을 이루지 못한.

  땅 속에서 나무가 자라나는 상을 취하여 오른다는 뜻을 나타낸 주역지풍승괘(地風升卦) 괘상전(卦象傳)에서는 상전에 이르길 땅 속에서 나무가 나오는 것이 승()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덕에 순하여 작은 것을 쌓아 높고 크게 한다”(象曰 地中生木 升, 君子 順德 積小以高大.)고 하였다. 또한 중용15장에서는 군자의 도는 비유하면 먼 길을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데서부터 하는 것과 같으며, 높은 데를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서부터 하는 것과 같다”(君子之道 辟如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고 하였다.

  이렇게 성인은 자연의 이치, 즉 항상 낮은 데서부터 시작하여 높아지는 원리, 항상 가까운 데서부터 출발하여 멀리 가는 원리, 미미한 조짐에서 시작되어 커지는 원리를 알기 때문에,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인은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일을 그르치지 않고, 욕심을 내세워 성취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목적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일반 백성들이 하는 일을 보면, 시작하여 거의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결국 실패하게 되는데, 이는 일이 진행되는 자연함을 보지 못하고 욕심만 내세우다가 그 욕심을 이기지 못하여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처음 시작할 때와 같은 마음으로 일을 마치는 순간까지 항상 조심하고 삼가면 실패하는 일이 없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도를 체득한 성인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살아간다. 즉 세상 사람들이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성인은 한다. 세상 사람들이 얻기 어려운 재화를 얻기 위하여 평생을 매달리지만, 성인은 그러한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오로지 순박한 도를 추구한다. 세상 사람들은 명예와 부와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을 배우려고 애쓰지만, 성인은 세상 사람들이 배우지 않는 자연의 도를 추구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많은 재화를 얻기 위해 매달리고 부와 명예를 추구하기 위해 살아가는 거짓된 삶의 과정에서 생긴 지나친 허물들을 도에 돌아가 회복하게 하고, 만물을 스스로 그러한 원리에 힘을 보태 잘 되게 할 뿐이다. 이 외에 성인은 세상 사람들처럼 욕심을 내세워 감히 무슨 일을 하려고 도모하지 않는다.

  세상을 유익하게 한다는 주역풍뢰익괘(風雷益卦)에서 마지막에 처한 상구효(上九爻)상구는 더하지 마라. 혹 치리니 마음을 세워 항상하지 못하니 흉하다”(上九 莫益之. 或擊之 立心勿恒 凶.)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공자는 계사하전5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그 몸을 편안히 한 뒤에 움직이며,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한 뒤에 말하며, 그 사귐을 정한 뒤에야 구하니, 군자가 이 세 가지를 닦는 까닭에 온전하니, 위태함으로써 움직이면 곧 백성이 더불지 않고, 두려움으로써 말하면 곧 백성이 응하지 않고, 사귐이 없이 구하면 백성이 주지 않으니, 주는 이가 없으면 곧 상하게 하는 자가 이르니, 역(易)에 이르길 ‘더하지 마라. 혹 치리니 마음을 세워 항상하지 못하니 흉하다’라고 하였다.”(子曰 君子 安其身而後 動, 易其心而後 語, 定其交而後 求, 君子 脩此三者故 全也. 危以動 則民不與也, 懼以語 則民不應也, 无交而求 則民不與也, 莫之與 則傷之者 至矣, 易曰 莫益之 或擊之 立心勿恒 凶.)

 

其安에 易持하고 其未兆에 易謀하며

其脆에 易泮하고 其微에 易散하니

爲之於未有하고 治之於未亂이니라

合抱之木은 生於毫末하고

九層之臺는 起於累土하고 

千里之行은 始於足下하나니

爲者는 敗之하고 執者는 失之하니라

是以로 聖人은 無爲라 故로 無敗오

無執이라 故로 無失이어니와

民之從事는 常於幾成而敗之하나니

愼終如始하면 則無敗事니라

是以로 聖人은 欲不欲하여 不貴難得之貨하고

學不學하여 復衆人之所過하며

以輔萬物之自然여 而不敢爲니라.

 

 

※ 대산 김석진·수산 신성수,주역으로 보는 도덕경-대산 노자강의대학서림, 2005, 24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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