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使我章
사아장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사아개연유지 행어대도 유시시외
大道 甚夷 而人 好徑
대도 심이 이인 호경
朝甚除 田甚蕪
조심제 전심무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창심허 복문채 대리검
厭飮食 財貨有餘
염음식 재화유여
是謂盜夸 非道也哉
시위도과 비도야재
使 : 하여금 사 介 : 낄 개·클 개·작을 개 唯 : 오직 유 施 : 베풀 시
畏 : 두려워할 외 夷 : 평평할 이 徑 : 지름길 경 朝 : 조정 조 除 : 섬돌 제
蕪 : 거칠 무 倉 : 곳집 창 服 : 옷 복 綵 : 비단 채 帶 : 띠 대 劍 : 칼 검
厭 : 싫어할 염·물릴 염 餘 : 남을 여 盜 : 훔칠 도·도적 도 夸 : 풍칠 과·클 과
내가 조금이나마 앎이 있어서 큰 도를 행하고자 하지만, 오직 베푸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큰 도는 매우 평평하거늘 사람은 지름길을 좋아한다.
조정은 심히 섬돌을 쌓으나, 밭은 매우 거칠며,
창고는 매우 비었거늘, 옷은 문채가 화려하고, 허리에 찬 칼은 날카롭고,
싫증나도록 마시고 먹고, 재화는 남음이 있으니,
이를 일컬어 ‘도적의 우두머리’(盜夸)라고 한다. 도가 아닌 것이다.
도를 터득한 성인이 만일 이 세상을 직접 다스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21세기 현대사회에서도 정치를 하고 있는 자들과 정치를 하려고 하는 자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성인의 정치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이 장에서는 도에서 멀어진 자들이 천하를 취하고자 하여 무도한 정치를 하고 있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무도한 자들의 폭정은 매양 같다.
진정 큰 도를 터득한 성인은 아는 체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저 조그마한 앎이 있어서 큰 도를 천하에 펴고자 한다”는 표현을 하였다. 그런데 정작 큰 도를 이 세상에 편다는 것이 그저 두려울 뿐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너무나도 도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진정 큰 도는 매우 쉽고 간단하고 평탄하건만, 세상 사람들은 자기 소견으로 보이는 지름길만 찾아가려고 한다.
『주역』은 대자연의 원리를 음양(陰陽)의 역동성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계사상전」제1장에서 천하의 이치가 쉽고 간단하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건(乾)은 쉬움으로써 다스리고, 곤(坤)은 간단함으로써 능하니, 쉬우니 쉽게 다스리고 간단하니 쉽게 따르며, 쉽게 다스리니 친함이 있고 쉽게 따르니 공이 있으며, 친함이 있으니 오래할 수 있고 공이 있으니 클 수 있으며, 오래하니 현인의 덕이 되고 클 수 있으니 현인의 업이니, 쉽고 간단하여 천하의 이치를 얻으니, 천하의 이치를 얻음에 하늘과 땅 가운데에서 (사람의) 자리가 이루어진다.(乾以易知 坤以簡能, 易則易知 簡則易從, 易知則有親 易從則有功, 有親則可久 有功則可大, 可久則賢人之德 可大則賢人之業, 易簡而天下之理 得矣, 天下之理 得而成位乎其中矣.)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천하의 이치가 이렇게 쉽고 간단함을 모르고 그저 어렵고 험한 쪽으로만 가려고 한다. 『주역』「계사상전」제5장에 “어진 자가 보매 ‘어질다’고 일컫고, 지혜로운 자가 보매 ‘지혜’라고 일컫고, 백성은 날마다 쓰면서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가 적다”(仁者見之 謂之仁, 知者見之 謂之知, 百姓 日用而不知, 故 君子之道 鮮矣.)고 하였다. 『중용』제14장에서도 “그러므로 군자는 평이함에 거하여 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험함에 행하여 요행을 구한다”(故 君子 居易以俟命, 小人 行險以徼幸.)고 하였다.
이렇게 소인은 어렵고 험한 일을 자처한다. 그러니 이러한 소인, 즉 도가 없는 자들이 천하를 다스리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소인들이 다스리는 나라의 조정은 확고부동한 권력을 누리기 위해 섬돌을 높게 쌓아 궁궐을 만드는데, 정작 백성의 생활터전은 황폐하다. 백성이 사는 집의 곡식 창고는 텅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해 정치한다는 고관대작들은 옷을 더욱 화려하게 입고, 더욱 확고한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허리에는 날카로운 칼을 차고 다니며, 온갖 연회와 주연으로 싫증나도록 먹고 마시며, 그들의 창고에는 온갖 보화로 가득 차 있다. 천하를 다스린다는 구실로 백성을 황폐하게 하면서도 온갖 권력과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는 이러한 자들을 뭐라고 표현하겠는가? 그저 ‘도적의 우두머리’(盜夸)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행태는 도가 아닌 것이다.
도를 모르는 도과(盜夸)들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며 우후죽순 나서고 있으니, 그저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이것이 도를 펴고자 하여도 두려운 이유이다.
使我介然有知하야 行於大道하나 唯施是畏로다
大道는 甚夷어늘 而人은 好徑이라
朝甚除이나 田甚蕪하며
倉甚虛어늘 服文綵하고 帶利劍하고
厭飮食하고 財貨有餘하니
是謂盜夸라 非道也哉인저!
※ 대산 김석진·수산 신성수,『주역으로 보는 도덕경-대산 노자강의』 대학서림, 2005, 199∼2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