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知人章
지인장
知人者 智 自知者 明
지인자 지 자지자 명
勝人者 有力 自勝者 强
승인자 유력 자승자 강
知足者 富
지족자 부
强行者 有志
강행자 유지
不失其所者 久
불실기소자 구
死而不亡者 壽
사이불망자 수
勝 : 이길 승 志 : 뜻 지 失 : 잃을 실 久 : 오랠 구 壽 : 목숨 수·수할 수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로우나 스스로를 아는 자는 밝으며,
남을 이기는 자는 힘이 있으나 스스로를 이기는 자는 강하다.
족함을 아는 자는 부유하고,
힘써 행하는 자는 뜻이 있으며,
그 바를 잃지 않는 자는 오래하고,
죽어도 망하지 않는 자는 오래 산다.
남을 안다는 것은 세상을 안다는 것이다. 즉 현상계를 잘 아는 자는 지혜롭다. 그런데 세상을 잘 아는 지혜는 오히려 세상을 어지럽히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제19장에서는 “성인을 끊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의 이로움이 백배가 된다”(絶聖棄智 民利百倍)고 하였다. 『중용』제4장에서 공자는 도(道)가 행해지지 않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도가 행하지 못할 것을 내가 안다. 지혜로운 자는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한다. 도가 밝지 못할 것을 내가 안다. 어진 자는 지나치고 어질지 못한 자는 미치지 못한다.”(子曰道之不行也 我知之矣. 知者 過之, 愚者 不及也. 道之不明也 我知之矣. 賢者 過之, 不肖者 不及也. )
스스로를 잘 아는 자는 밝은 것이다. 스스로를 안다는 것은 본성을 안다는 것이고, 본성을 안다는 것은 도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경문에서도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친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에 그침에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고 하여 ‘밝은 덕을 밝히는 것’(明明德)을 첫머리에 두어 강조하고 있다. 스스로를 안다는 것은 원래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품으로서의 밝은 덕을 밝히는 것이다. 『중용』제21장에는 밝음을 정성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정성으로 말미암아 밝아지는 것을 성(性)이라 이르고, 밝음으로 말미암아 정성스러워지는 것을 교(敎)라 이르니, 정성스러우면 밝아지고, 밝으면 정성스러워진다.(自誠明 謂之性, 自明誠 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
남을 이기는 자는 힘이 있으나, 자기 스스로를 이기는 자는 강하다. 남을 이기는 것은 힘이 있기에 강하다고 할 수 있지만, 진정 강한 것은 자기 스스로를 이기는 것이다. 『중용』제10장에서 공자는 제자인 자로(子路)가 강함에 대하여 묻자 군자의 강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므로 군자는 화하되 흐르지 않으니, 강하다 꿋꿋함이여. 중립하여 치우치지 않으니, 강하다 꿋꿋함이여. 나라에 도가 있음에 막혀있을 때(곤궁했을 때) 의지를 변하지 않으니, 강하다 꿋꿋함이여. 나라에 도가 없음에 죽음에 이르러도 지조를 변하지 않으니, 강하다 꿋꿋함이여.(故 君子 和而不流 强哉矯! 中立而不倚 强哉矯! 國有道 不變塞焉 强哉矯! 國無道 至死不變 强哉矯!)
항상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만족함을 아는 자는 어느 상황에서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항상 부유하다. 어느 상황에 있더라도 만족하지 못하면 천하의 권력을 잡고 부를 누리더라도 항상 빈한하다. 『중용』제14장에 다음의 글이 있다.
군자는 현재의 그 자리에 따라 행하고, 그 밖을 원하지 않는다.(君子 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부귀에 있어서는 부귀대로 행하며, 빈천에 있어서는 빈천대로 행하며, 오랑캐에 있어서는 오랑캐대로 행하며, 환난에 있어서는 환난대로 행하니, 군자는 들어가는 데마다 스스로 얻지 못함이 없다.(素富貴 行乎富貴, 素貧賤 行乎貧賤, 素夷狄 行乎夷狄, 素患難 行乎患難, 君子 無入而不自得焉. )
『맹자』「진심장구하」(盡心章句下)에서 맹자는 마음을 기르는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을 기름이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니, 그 사람됨이 욕심이 적으면 비록 보존되지 않음이 있더라도 (보존되지 못한 것이) 적을 것이요, 그 사람됨이 욕심이 많으면 비록 보존됨이 있더라도 (보존된 것이) 적을 것이다.”(孟子曰 養心 莫善於寡欲, 其爲人也寡欲 雖有不存焉者 寡矣, 其爲人也多欲 雖有存焉者 寡矣.)
무슨 일이든지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힘써 행하는 자는 뜻이 있는 것이다. 뜻이 없는 자는 항상 망연자실(茫然自失)하다. 하늘이 부여한 성품을 타고 난 군자가 천하에 존재하면서 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주역』‘중천건괘’(重天乾卦)는 끊임없이 운행하는 하늘의 이치를 나타내고 있는데, 그 「괘상전」(卦象傳)에는 이러한 이치를 본받아 군자가 행해야 할 덕목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상전에 말하였다. “하늘의 운행이 굳세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스스로 굳세어 쉬지 않는다.”(象曰天行 健, 君子 以 自彊不息. )
그 바를 잃지 않는 자는 오래한다. 그 바(所)라는 것은 어느 상황에 있든지 도를 잃지 않고 준행하는 것을 말한다. 즉 항상 본성을 지키고 있는 자는 도를 지키는 것이니, 영원한 도를 지키면 오래한다. 항구하게 도를 지켜야 한다는 『주역』‘뇌풍항괘’(雷風恒卦) 괘상전(卦象傳)에서는 군자가 항구한 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세워서 방소를 바꾸지 않아야 한다”(立不易方)고 하였다. 한편 세상을 잊고 거듭 그쳐서 도를 깨닫는다는 『주역』‘중산간괘’(重山艮卦) 괘상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상전에 말하였다. “겹쳐있는 산이 간(艮)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생각이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象曰 兼山 艮, 君子 以 思不出其位.)
“죽어도 망하지 않는 자”라는 것은 현세의 육신은 사라져도 도를 깨달아 영원성을 간직한 자란 뜻이다. 항구한 도의 근원을 깨우친 자가 어찌 육신과 함께 죽음을 같이 하겠는가. 육신의 한계를 벗어나 영원한 도와 함께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공자는 『논어』「이인편」(里人篇)에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子曰 朝聞道 夕死 可矣)고 하였다.
知人者는 智하나 自知者는 明하며
勝人者는 有力하나 自勝者는 强하다.
知足者는 富하고
强行者는 有志하며
不失其所者는 久하고
死而不亡者는 壽하니라.
※ 대산 김석진·수산 신성수,『주역으로 보는 도덕경-대산 노자강의』 대학서림, 2005, 135∼1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