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의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원만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저마다의 본분을 지키고 맡은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야 한다(言行有恒).
괘명과 괘상
외괘가 손풍(巽風)☴, 내괘가 이화(離火)☲로 이루어진 괘를 ‘가인(家人)’이라 한다. 불이 바람을 타고 잘 타오르듯이, 바람☴과 불☲은 한 집안이란 뜻이다. 또한 불이 타면 따뜻한 바람이 일듯이, 한 솥밥을 먹으며 화목한 집안을 가꾼다는 뜻이다.
서괘
「서괘전」은 지화명이괘 다음에 풍화가인괘를 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夷者는 傷也니 傷於外者 必反其家라 故로 受之以家人하고
이자 상야 상어외자 필반기가 고 수지이가인
이(夷)라는 것은 상함이니, 밖에서 상한 자는 반드시 그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가인으로 받고
명이(明夷)는 밝음이 상한 것이다. 밖에 나가서 상하게 되면 반드시 집안으로 돌아와 안식(安息)을 하게 되니, 지화명이괘 다음에 풍화가인괘를 두었다는 뜻이다.
괘사
家人은 利女貞하니라.
가인 이여정
가인(家人)은 여자가 바르게 함이 이롭다.
가인(家人)괘는 집안을 의미하고, 집안 살림살이는 주로 여자로부터 이루어진다. 내괘가 이화(離火)☲로 중녀(中女)이고 외괘가 손풍(巽風)☴으로 장녀(長女)이니, 내괘와 외괘의 상이 모두 음괘(陰卦)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지만 가인괘에 있어서 각 효 자리의 역할은, 내괘는 여자의 도로써, 외괘는 남자의 도로써 풀이되고 있다.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중세 봉건적인 이념을 차치하고, 오늘날 남녀평등(男女平等)의 이념이 실현되고 있는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여자의 바름이 이로운 것은 틀림없는 말이다. 한편, 풍화가인괘의 진정한 뜻은 각자가 본분을 지켜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괘사의 “利女貞”을 여자가 바르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남자든 여자든 한 집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
彖曰 家人은 女 正位乎內하고 男이 正位乎外하니
단왈 가인 녀 정위호내 남 정위호외
男女正이 天地之大義也라.
남녀정 천지지대의야
家人이 有嚴君焉하니 父母之謂也라.
가인 유엄군언 부모지위야
父父子子兄兄弟弟夫夫婦婦而家道正하리니
부부자자형형제제부부부부이가도정
正家而天下 定矣리라.
정가이천하 정의
단전에 말하였다. “가인(家人)은 여자가 안에서 자리를 바르게 하고, 남자는 밖에서 자리를 바르게 하니, 남녀가 바르게 함이 천지의 큰 의리이다. 가인(家人)에 엄한 인군이 있으니 부모를 말한다. 아비는 아비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형은 형답게, 동생은 동생답게, 남편은 남편답게, 아내는 아내답게 하여 집안의 도가 바르게 될 것이니, 집안을 바르게 하여야 천하가 정해질 것이다.
嚴:엄할 엄 謂:이를 위 兄:맏 형 弟:아우 제
여자는 안에서 본분을 바르게 하고 남자는 밖에서 본분을 바르게 하는 것이 천지의 큰 뜻이다. 천지(天地)는 자연의 본성에 따라 본분을 지켜 나갈 때 만물을 잘 생화하듯이, 가정의 도는 각자의 역할과 본분에 충실하여야 한다. 중세 봉건적 계급질서에서 인격평등의 현대사회로 전환되었어도, 남녀가 각자 맡은 안팎의 역할을 바르게 해나가는 가인(家人)의 도는 바뀌지 않는다.
천지의 조물주가 있고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있듯이, 집안에는 엄한 인군이 있으니 가장(家長)으로서의 부모(父母)이다. 아버지, 자식, 형, 아우, 남편, 아내가 각자의 본분을 잘 지켜나갈 때 집안의 도가 바르게 되고, 사회의 기본단위인 집안마다 가도(家道)가 바르게 되면 결국 나라가 바르게 되고 천하가 바르게 된다. 《대학(大學)》 「제가치국장(齊家治國章)」에 있는 다음 구절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所謂治國이 必先齊其家者는 其家를 不可敎오 而能敎人者 無之하니 故로 君子는 不出家而成敎於國하나니 孝者는 所以事君也오 弟者는 所以事長也오 慈者는 所以使衆也니라.
이른바 “나라를 다스림이 반드시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함에 있다”는 것은 그 집안을 가르치지 못하고 능히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자가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집을 나가지 않고 나라에 가르침을 이루니, 효(孝)는 인군을 섬기는 방법이요, 제(弟)는 어른을 섬기는 방법이요, 자(慈)는 무리를 이끄는 방법이다.
一家 仁이면 一國이 興仁하고 一家 讓이면 一國이 興讓하고 一人이 貪戾하면 一國이 作亂하나니 其機如此하니 此謂一言이 僨事며 一人이 定國이니라.
한 집안이 어질면 한 나라가 어짊을 흥기하고, 한 집안이 사양하면 한 나라가 사양함을 흥기하고, 한 사람이 탐하고 어그러지면 한 나라가 난을 일으키니, 그 기틀이 이와 같으니, 이것을 일러 ‘한 마디 말이 일을 그르치며, 한 사람이 나라를 안정시킨다’고 하는 것이다.
괘상사
象曰 風自火出이 家人이니 君子 以하야 言有物而行有恒하나니라.
상왈 풍자화출 가인 군자 이 언유물이행유항
상전에 말하였다. “바람이 불로부터 나오는 것이 가인(家人)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말에는 실지가 있고 행동에는 항상함이 있게 한다.
가인괘는 내괘가 이화(離火)☲로 불이고, 외괘가 손풍(巽風)☴으로 바람의 상이다. 불이 타오르면 기압(氣壓)에 차이가 생겨 기류(氣流)가 형성되면서 바람이 일게 된다. 불로부터 일어나는 바람은 따뜻한 바람이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서 화목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름다운 정경이다. 불은 인간의 정신(精神)이고, 말과 행동은 정신으로부터 나온다.
군자는 헛된 말을 하지 않고 행동에는 항상함이 있어 모든 사람이 믿고 따르게 한다. 집안의 도나 정치의 도나 다 마찬가지이다.
효사 및 효상사
初九는 閑有家면 悔 亡하리라.
초구 한유가 회 망
초구는 집에 있어서 익히면 후회가 없을 것이다.
閑:익힐 한·막을 한
가인(家人)괘에 있어서 내괘 이화(離火)☲는 여자의 도리를 중심으로 말하고, 외괘 손풍(巽風)☴은 남자의 도리를 중심으로 말하고 있다. 초구는 내괘 맨 아래에 있으니 시집 안간 처녀를 의미한다. 요조숙녀(窈窕淑女)로 집에 있으면서 예의범절과 가도(家道)를 익히면 나중에 결혼하여 가정을 잘 꾸려 나가게 되니 후회가 없다. 집에서 가도(家道)를 익히는 것은 뜻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뜻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초구가 변하면 내괘가 간산(艮山)☶이 되니 집에 그쳐 있는 상이다. ‘한(閑)’은 ‘막는다’는 뜻도 있으나 여기서는 ‘익힌다’는 뜻으로 새긴다.
象曰 閑有家는 志未變也라.
상왈 한유가 지미변야
상전에 말하였다. “집에 있어서 익힘은 뜻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六二는 无攸遂오 在中饋면 貞吉하리라.
육이 무유수 재중궤 정길
육이는 이루는 바가 없고, 집안에서 음식을 지으면, 바르게 해서 길할 것이다.
攸:바 유 遂:이룰 수 饋:먹일 궤
육이는 내괘에서 중정(中正)한 자리이다. 집안에서 살림을 맡은 며느리이다. 외괘에서 중정한 구오가 남편이 되니, 내괘에서 중정한 아내는 집안의 살림을 맡아 제사를 받들고(奉祭祀) 손님을 맞으면서(接賓客) 가도를 실현한다. 음 자리에 음으로 있어 바르고 중도를 지키니, 순하고 공손하게 집안 살림을 잘 한다. ‘궤(饋)’는 먹이다․드리다․식사 등의 뜻이 있고, 《주례(周禮)》에는 높은 사람에게 물건을 진상하는 것을 궤라 하였다(進物於尊者曰饋). ‘중궤(中饋)’는 집안에서 부녀자가 음식을 만드는 것 또는 그 음식, 부인 또는 아내를 뜻한다.
象曰 六二之吉은 順以巽也일새라.
상왈 육이지길 순이손야
상전에 말하였다. “육이의 길함은 순해서 공손하기 때문이다.”
九三은 家人이 嗃嗃하니 悔厲나 吉하니 婦子 嘻嘻면 終吝하리라.
구삼 가인 학학 회려 길 부자 희희 종린
구삼은 집 사람이 엄숙하게 하니 위태로움에 뉘우치나 길하니, 아내와 자식이 희희덕거리면 마침내 인색할 것이다.
嗃:엄할 학 嘻:웃을 희
구삼은 내괘 이화(離火)☲의 맨 위에 있으니, 집안 여자 중에는 가장 연장자(年長者)로 시어머니를 뜻한다. 시어머니로서 며느리에게 또한 딸에게 엄하게 하니 안쓰럽게 여겨 뉘우치기도 하고 때로는 갈등이 일어 위태롭기도 하지만, 집안의 도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니 길하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엄숙한 기강(紀綱)이 없어 집안의 처자(妻子)들이 희희덕거리기만 하면, 내내 즐거운 모습인 것 같지만 결국에 가서는 집안의 절도를 잃게 되어 인색하게 된다. 오늘날의 이른바 핵가족(核家族) 시대에 있어서도 집안 어른이 가풍(家風)을 전하고, 후손은 집안 어른을 존중하는 예가 필요하다.
象曰 家人嗃嗃은 未失也오 婦子嘻嘻는 失家節也라.
상왈 가인학학 미실야 부자희희 실가절야
상전에 말하였다. “집 사람이 엄함은 잃지 않는 것이요, 아내와 자식이 희희덕거림은 집안의 절도를 잃는 것이다.”
六四는 富家니 大吉하니라.
육사 부가 대길
육사는 집을 부하게 하니, 크게 길하다.
육사는 외괘 손풍(巽風)☴에 있어 남자의 도를 나타낸다. 음 자리에 음으로 자리가 마땅하고, 외괘 손풍☴의 아래에 있어 지극히 순하니, 밖에서도 겸손의 덕으로 일을 하여 집안을 부하게 한다. 육사가 변하면 지괘(之卦)가 천화동인(天火同人)괘가 되니, 밖에 나가서도 겸손하게 사람과 뜻을 같이하여 일을 한다. 크게 길하다.
象曰 富家大吉은 順在位也일새라.
상왈 부가대길 순재위야
상전에 말하였다. “집을 부하게 하여 크게 길함은 순함이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九五는 王假有家니 勿恤하야 吉하리라.
구오 왕격유가 물휼 길
구오는 왕이 집안을 지극히 하니, 근심하지 말아서 길할 것이다.
假:빌 가·거짓 가·이를 격
구오는 외괘의 중정한 자리니 집안으로 보면 가장(家長)이지만 나라로 보면 왕(王)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왕도 집안을 지극히 하니, 모든 식솔(食率)이 근심을 하지 않고 길하다. 집안을 지극히 한다는 것은 구오와 정응인 육이 아내와 사귀어 서로 사랑함과 더불어 가족 모두에게 사랑을 두루 베푸는 것을 말한다.
가장(家長)이 사랑을 베풀어 집안을 지극히 하듯이, 왕(王)은 정치를 잘 해서 백성과 나라를 지극히 한다. ‘가(假)’는 ‘거짓’이라 할 때는 ‘가’로 발음하고, ‘지극하다’고 할 때는 ‘격’으로 발음하니, 여기서는 지극하다는 뜻이다.
象曰 王假有家는 交相愛也라.
상왈 왕격유가 교상애야
상전에 말하였다. “왕이 집안을 지극히 함은 사귀어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上九는 有孚코 威如면 終吉하리라.
상구 유부 위여 종길
상구는 믿음을 두고 위엄있게 하면 마침내 길할 것이다.
威:위엄 위
상구는 맨 위에 처하여 집안으로 보면 가장 높은 어른, 즉 시아버지요, 할아버지이다. 집안의 가장 높은 어른으로서는 믿음을 두고 위엄을 지켜야 한다. 구오의 아들 가장(家長)이 집안을 잘 이끌어 갈 것이라는 믿음, 시어머니(할머니)가 며느리와 딸들에게 가도(家道)를 잘 가르칠 것이라는 믿음, 자식․손자들이 잘 클 것이라는 믿음을 두고 위엄을 지키면 마침내 길하게 된다. 위엄(威嚴)이라는 것은 인생의 경륜에서 나오는 것이니, 곧 그동안의 생애(生涯)와 경험을 돌이켜 반성하면서도 삶의 지혜를 후손에게 전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象曰 威如之吉은 反身之謂也라.
상왈 위여지길 반신지위야
상전에 말하였다. “위엄있게 해서 길한 것은 몸을 반성함을 말한다.”
※ 수산 신성수, 『주역통해』, 대학서림, 2005, 430∼4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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