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강좌

함괘(咸卦)와 소통(疏通) - 『주역』하경을 시작하며

돈호인 2015. 1. 4. 23:42

 

 

  지난 2014년 5월부터 시작된 연구소 제1기 주역원전강좌가 『주역』상경(上經)을 마무리하고 2015년 1월부터 하경(下經)에 들어가게 되었다. 『주역』상경은 천지(天地)부모(父母)괘인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로 시작하고, 하경은 자연의 상으로는 산과 연못이 기운을 통하고 인간사로는 소남과 소녀가 교감(交感)하는 택산함괘(澤山咸卦)로 시작된다. 2015년의 시작을 함괘로 시작하니 나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는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무인과적(無因果的) 의미(意味)의 일치, 즉 동시성(同時性) 원리와도 같다.

 

  함(咸)은 느낌이다(咸 感也). 느낌이란 감각이다. 감각은 외계의 물상과 현상을 인식하여 지각(知覺)하는 통로이다. 느낌은 자연의 기운과 현상계의 변화양상을 지각하고 소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자연으로 보면 산과 연못이 기운을 통하여 만물을 기르는 것이고, 인간사로는 청춘남녀가 기운을 통하여 교감하는 것이다. 산(山)은 대륙(大陸)이고 연못은 대양(大洋)을 의미한다면, 지구적인 차원에서 모든 국가와 민족이 소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사가 어찌 청춘남녀의 만남에 그치겠는가? 모든 인간관계는 느낌에서 시작된다.

 

  함괘(咸卦)는 느낌이고 소통(疏通)하는 것이다. 남녀의 만남을 비롯한 인간관계에 있어서나 기업이나 국가 정부조직의 교류에 있어서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려면 필요 이상의 조건이 없는 만남이 되어야 한다. 현실적 측면에서 대부분의 교류는 조건과 조건의 만남이라 할 수 있다. 인간관계도 인간 대 인간의 순수한 만남이 아니라 조건과 조건의 만남이며, 정치적 협상이든 노사간의 협상이든 국제적 협상이든 모든 만남에는 조건이 전제되어 있다. 그렇지만 진정한 소통은 조건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만남'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함괘 괘상전(卦象傳)에는 "비움으로 사람을 받아들여야 한다."(以虛受人)고 하였다.

 

  비움(虛)이란 순수함이다. 조건이나 이해관계를 따지면서 온갖 지략(智略)과 술수(術數)를 동원하여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실체와 존재를 인정하면서 순수한 마음과 순수한 목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그 순수함에서 정신적 영적 교감이 이루어지며,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고도로 지략화되고 계산된 정치적 사회적 교섭도 사실 그 지략과 계산 때문에 진정한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침 2015년 새 해를 맞이하여 남북이 서로 소통하자는 메시지가 오가고 있다. 조건과 조건의 만남이 아닌 진정한 소통을 하고자 하는 노력이 상호간에 이루어져야 보다 진전된 만남, 그리고 보다 진전된 관계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자주 자주 오고 가야 서로의 뜻이 통하게 될 것이다(憧憧往來 朋從爾思).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모든 영역에서 소통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소통은 교감이고 서로의 존재와 삶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통은 인간의 삶과 사회적 양상을 발전적으로 진화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소통의 근원은 인간의 실존적 삶 자체에 있다.